김경문, 김응룡, 김인식 감독 사례로 보는 믿음에 대한 고찰
2025년 한국시리즈는 LG트윈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4승 1패로 챔피언 반지를 끼게 된 것이다. 이 시리즈에는 큰 분수령이 있었다. 바로 시리즈 4차전 경기였다. 당시 LG트윈스는 한화 이글스를 2승 1패로 리드하고 있었다. 4차전을 한화가 이긴다면 2승 2패 동률이 되는 순간이었다. 두 팀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것이다.
9회 초까지 한화가 LG를 4대 1로 이기고 있었다. 1이닝을 잘 버티기만 하면 한화가 승리할 판이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모른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 한 이닝에 3점을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승부의 추는 사실상 기울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이때 승부를 뒤흔드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화의 김경문 감독이 마무리 투수로 김서현 선수를 마운드에 올린 것이었다. 사실 김서현 선수는 시즌 막판부터 제구력 난조로 좋지 못한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었다. 지난번 플레이오프 때는 결승타를 맞고 경기를 내준 쓰라린 아픔도 갖고 있던 터였다.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 선수를 살리고 싶어 했다. 계속 이렇게 쳐져있는 모습이 아닌 다시 살아난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김서현 선수는 감독의 믿음을 등에 업고 9회 초 마운드에 오르게 되었다.
과연 그 경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경기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무한정 믿음을 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다. 믿음이 지나치거나 특정인에게만 믿음이 쏠릴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지 야구에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해 드리고자 한다.
앞서 설명해 드린 25년 한국시리즈 4차전, 한화의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 선수를 마운드에 올린다. 모든 야구팬들의 시선은 그에게 쏠렸다.
한국시리즈 경기는 중압감 과의 싸움이다. 은퇴한 한 선수는 그런 큰 경기 때 마운드에 올라가면 수 만 명의 관중들 함성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던져야겠다 그런 생각도 들지 않고 모든 상황이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긴장감과 중압감이 엄청난 것이다.
21살의 프로 3년 차 투수 김서현이 이 중압감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그는 빠른 공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제구력으로 많은 위험성이 있던 투수였다. 이미 지난 경기에서도 불쇼를 펼쳤던 그였기에 믿고 맡기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김경문 감독은 이런 김서현을 믿고 중용하기로 한다. 다시 한번 마무리 투수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마운드에 오른 김서현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역시나 주자를 내보내며 아웃 카운트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불을 지르려고 장작을 열심히 모으고 있었다. 결국 그는 투런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이제 스코어는 4대 3, 한 점 차이로 좁혀 들었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을 교체하지 않았다. 믿음을 계속 준 것이다. 그러나 이미 멘털이 붕괴된 김서현은 연거푸 주자를 내보냈다. 그때서야 김서현은 다른 투수로 교체되었다. 이미 주자가 잔뜩 나간 상황에서 뒤의 투수가 제대로 수습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결국 뒤에 나온 투수들도 LG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그 경기는 LG트윈스가 9회에 무려 6점을 내며 7대 4 대역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반대 스타일의 야구 감독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그는 바로 김응룡 감독이다.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그 패러디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는 해태에서만 무려 18년 간 감독을 하면서 9번이나 되는 해태의 우승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스타일이었다. 고독한 승부사 스타일이었던 그는 선수들과 일체 사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식사도 따로 했고 커피 타임 이런 거는 일절 없었다. 같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자기 팀 선수가 홈런을 치면 감독이 같이 하이파이브도 하고 격려해 줄 만도 한데 일체 표정 변화도 없이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게 선수들은 장기판 위 말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특히나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들에게는 가혹했다. 기량이 떨어졌다 싶으면 절대 기용하지 않았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었더라도 그건 과거일 뿐 배려는 일절 없었다. 이에 반발하고 항명했던 선수들도 여럿 있었지만, 그 선수들은 여지없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해버렸다. 자기 철학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믿음이란 없었다. 지금 제일 잘하는 선수 쓰는 것, 그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미래 잠재력, 과거의 영광 이런 것은 그에게 일체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 그 덕분이었는지 그는 감독 커리어 동안 무려 11번이나 우승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김인식 감독은 '믿음의 야구', '재활공장장'으로 통한다. 그는 한 번 믿음을 준 선수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아무리 부진해도 끝까지 그 선수를 기용하며 다시 컨디션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고는 한다.
심지어 어떤 베테랑 선수가 다른 팀에서 방출당한 경우, 그 선수를 자기 팀으로 데려와 다시 뛰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는 '재활 공장장'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부상당하거나 이미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을 재활시켰기 때문이다. 은퇴하고 빵집을 운영하던 조성민도 다시 그의 밑에서 뛰었고, 기아에서 방출당한 김인철, 일찌감치 코치로 일하던 지연규를 다시 활용하였다. 부상으로 은퇴를 결심한 강동우를 다시 설득하여 선수로 뛰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하면 신인들을 외면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베테랑을 중심으로 특정 선수에게만 신뢰를 보내며 계속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선수들에게는 거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오죽하면 김인식 감독은 한화에 2군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젊은 영건들은 방치되었고 성장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끌던 한화는 2008년 후반기부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믿음을 주던 베테랑들이 나이가 더 들어감에 따라 실력이 급격히 하락하였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들은 기회를 받지 못하다 보니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고,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한화는 웃음후보, 만년 꼴찌팀으로 10년 이상의 암흑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특정 선수들에게만 믿음을 주는 것은 조직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믿음을 받는 선수들은 지옥 끝까지도 쫓아갈 만큼 그 리더를 믿고 따르겠지만, 신뢰를 받지 못한 선수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조직은 병들어가고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글만 읽으면 두 번째 케이스인 김응룡 감독처럼 믿음 같은 건 일체 주지 말고 성적만 신경 쓰는 게 답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응룡 감독도 2013년~2014년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개막전부터 13연패를 당하면서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예전에는 김응룡 감독의 카리스마형 방식이 먹혀들었다. 까라면 까라는 군대식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아닌 복종이 미덕인 사회였고, 복종을 효과적으로 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던 것이 바로 김응룡 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부터는 그런 방식이 잘 먹혀들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그런 리더는 꼰대 소리를 들으며 권위를 잃어만 가고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아무리 리더라도 팔로워들을 설득해야 하는 시대이다.
이때 어떤 모습이 바람직할까? 무조건 믿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건 절대 아니다. 김경문 감독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무조건적인 믿음은 조직을 망치게 된다. 결과를 그르치기 때문이다. 김인식 감독처럼 특정 구성원에게만 전폭적인 믿음을 주는 경우, 믿음에서 소외된 구성원들은 팀 내 분란을 일으키게 된다.
믿음을 주는 것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다르다. 믿음은 그 사람이 잘못해도 무한히 감싸안는 것이지만, 권한 부여는 그 사람에게 일에 대해 주도권을 부여하되, 그에 따라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권한을 주었음에도 성과가 기대치를 밑돈다면 그 권한을 계속 부여해서는 안된다.
김서현 선수가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저 믿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무리 투수를 다른 선수에게 맡겨야만 했다. 권한을 다른 선수에게 주는 것이다. 그걸 못한 김경문 감독은 뼈아픈 결과를 야기하였다.
권한을 회수하는 경우,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자. 그 구성원은 상심이 클 것이다. 이때 위로한답시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
"네가 참 열심히 했는데, 운이 없었던 것 같아. 세상만사가 뜻대로 안 되는 법이지" (X)
"네가 열심히 한 것은 알겠는데,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야. 현장 조사가 더 필요했는데, 몇 사람 의견만 듣고 일을 추진한 게 제일 아쉽네. 더 맞는 일을 부여할 테니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 (O)
1)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했음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2)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3) 앞으로 어떤 업무를 부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같이 설명하자. 그렇게 새로운 일에서 성과를 내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믿음을 계속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신뢰까지 거두어 버려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업무 성과에 대해 믿음을 계속 주지 않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대화하고 설명하면서 조언도 하고 식사도 같이하자. 인간관계를 계속 원활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분명히 이 사람이 잘하는 영역이 있다. 나도 모르고, 본인도 잘 모를 뿐, 분명히 그 사람만의 강점이 있다. 그 강점을 찾아서 일을 부여해 나가자. 그 순간 시들어 있던 꽃이 활짝 피게 될 것이다.
무한정 믿음을 주는 것도, 믿음 그런 것 없이 아예 돌을 대하듯이 구성원들을 대하는 것 둘 다 정답은 아니다. 특히나 일부 구성원에게만 믿음을 주는 것은 조직을 병들게 하는 지름길이다. 믿음은 결국 일의 성과와 직결된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계속 권한을 부여해야 하고, 제 역할을 못한 사람에게는 그 일에서는 제외하되 다른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게 제대로 된 믿음이다.
이번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인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큰 경기에서 얻어맞은 선수는 계속 얻어맞는다. 나는 그런 선수는 쓰지 않는다"
결국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쓰면서 믿음을 주는 것이 성과도 거두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해 마음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없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믿음은 비료와도 같다. 적당한 양을 제대로 주면 나무의 성장을 촉진시키지만, 하나도 주지 않거나 아무 데나 막 퍼주면 그 나무는 말라죽게 된다. 비료와도 같은 믿음을 제대로 줄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