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를 휘어잡는 방법
전쟁영화를 보게 되면 마치 모기처럼 "애애애앵!" 소리를 내며 급강하하는 전투기 장면을 볼 수 있다. 모든 전투기는 날아다닐 때 저런 소리를 내나 보다 싶지만 그건 결코 아니다. 이 소리로 유명한 전투기가 있다. 바로 독일의 슈튜카(Stuka) 전투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의 슈튜카 전투기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애애애앵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슈튜카 전투기는 낮게 날아다니며 땅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기관총 난사를 하기 일쑤였다. 이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하면 일단 다들 도망치기 바빴다. 소리에 미리 겁을 먹은 것이다.
수십대의 슈튜카 전투기가 편대를 이루면서 내는 소리는 사람을 잔뜩 움츠리게 만들었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랜딩기어에 사이렌을 장착했다. 고도의 심리전인 것이다. 그들은 이를 '예리코의 나팔'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제히 불었던 나팔에서 착안한 단어였다. 예리코의 나팔 덕분에 독일은 전투기로 큰 재미를 볼 수 있었다. 확실하게 기선제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오리족'은 뉴질랜드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원주민이다. 이들은 백인들이 뉴질랜드로 이주하기 전부터 그 땅에 살고 있었던 호전적인 민족이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사냥을 즐기던 마오리족은 일찍부터 백인들이 쓰던 머스킷총, 대포를 받아들여 자기들의 권리를 지키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특이한 의식을 치렀다. '하카'라고 불리던 이 의식은 혀를 잔뜩 빼고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무서운 표정으로 적을 노려보는 방법이었다. 상대방은 가뜩이나 호전적인 마오리족이 이렇게 기선을 제압할 때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뉴질랜드는 이 하카를 본떠 럭비 대회 시작 전, 선수들이 집단으로 이 의식을 치르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싸움의 절반은 기선제압에서 이미 결판이 난다고 한다. 운전 중 시비가 붙었을 때 상대편 차에서 떡대가 우람한 사람이 튀어나온다고 하자. 그 자체로 이미 겁을 먹게 된다. 기세에서 밀리는 것이다. 학부모 모임에서도 어떤 학부형이 고위 공무원이나 판사, 검사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내가 초라해 보이게 된다.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주눅이 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 할 말 다하면서 자기주장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 대다수의 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의 신체적 힘이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뭔가 잘못된 일을 했을 때도 사람은 위축된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혹시 실수한 것은 없는지 늘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거나 해서는 안 되는 청탁을 들어준 경우에는 이 사실이 들통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감이 사라지는 그 순간, 내 앞의 방패는 사라지게 된다. 방패가 있다는 것은 그 어떤 화살이나 창이 날아와도 막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방패가 사라졌으니 언제든 내가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움츠러들게 된다.
자신 있게 내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고 남이 하자는 대로 늘 끌려다니기만 한다. 누가 내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잃어버려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도 되는지,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선을 제압하는 사람은 다르다. 내 의견을 자신 있게 표현하고 말소리도 크고 우렁차다. 웃음소리도 호탕한 사람들이다. 걸음걸이, 앉은 자세에서도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강한 사람이라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감 있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기선을 제압당할 일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전에 내가 비슷한 일을 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 경우, 그 일을 하기 싫어한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주 혼나고 나빴던 기억이 있었다면 그 근처에도 가기 싫어한다. 트라우마가 되어 계속 나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이번에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밀려든다. 스포츠 선수 중에서는 '입스'라고 해서 갑자기 근육이 경직되면서 평소 잘하던 동작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예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실패에 대한 나쁜 기억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 제목처럼,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심리학에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높으면 그 기대대로 실제 변하게 된다.
반면에 늘 혼나고 지적받고 망신당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잃게 된다. 매사에 주눅이 들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눈치만 보면서 그저 틀리지 않기 위해, 혼나지 않기 위해 매사에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괜히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가 혼날까 봐 딱 시킨 일만 하는 것이다.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가 '체벌 문화'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중, 고등학교 선수들은 체벌이 일상화되었다. 심지어 프로야구 모 감독은 투수리드를 못한다고 팀의 포수를 더그아웃에서 원산폭격 시키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선제압은커녕 늘 기가 죽어서 다닐 수밖에 없다.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일을 하는 경우 당연히 자신감을 갖기는 힘들다. 용접 경력 10년인 사람에게 페인트 도색 일을 시킨다면 이 사람은 헤매게 된다. 해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재무회계 업무만 쭉 해온 사람에게 영업 현장에 나가서 서빙로봇 팔아오라고 하면 잘 팔 수가 없는 것이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단풍나무 잎을 주게 되면 배탈이 난다. 포병부대 병사에게 닥치고 돌격 명령을 내리면 어리바리 헤매다가 총알밥이 되기 딱 좋다. 내 안마당에서 시합을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팀들도 일반적으로 홈경기 승률이 더 높은 법이다. 그만큼 익숙함이 주는 자신감은 그 효과가 매우 크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다. 친구와 싸우는 건 피해야 하지만, 만약에 싸움이 붙는다면 다른 데는 볼 것 없고 무조건 상대방 코만 집중 공격하라고 하셨다. 코피가 나게 하면 기선제압 효과가 크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코피 흘리면서 싸웠다가는 징계해고감이라 절대 해서는 안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기선제압은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방이 함부로 얕잡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어깨를 펴고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며,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자. 이때 지나치게 빤히 보는 것은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하고 상대방에게 집중한다는 느낌으로 쳐다보자.
목소리는 너무 크거나 작지 않게, 다소 느리지만 명확한 발음으로 이야기하자. 말이 빠르면 조급하게 느껴지고, 끝을 흐리면 자신감이 없어 보일 수 있다. 중요한 내용은 끊어서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게 되면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한다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번 분기 매출액은 지난 분기 대비 3.5퍼센트 상승했습니다. 상승 원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공격적인 마케팅입니다"
두괄식으로 말하면서 이렇게 근거를 첫째, 둘째, 셋째로 넘버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상대방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컬링에서는 선공보다 후공이 득점에 유리하다. 상대팀의 수를 내다보고 대응할 수 있고, 최후의 일격을 내가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여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자.
불필요한 군말("음...", "저...", "그...")을 사용하지 않아야 똑 부러지는 인상을 주게 된다. 만일 대화하기 힘든 상황이면 과감하게 다음에 대화하자고 하자. 내가 편한 타이밍에 대화함으로써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팩트 기반으로 대화하자. 감정적인 반응보다는 정확한 사실과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대화해야 설득력을 높이고 상대방이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저에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나요?" (X)
"다른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저에게 한심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솔직히 그 말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O)
아이 메시지에 근거하여 말함으로써 상대방을 덜 자극하면서도 내 기분 상태를 명확하게 전하자.
결국 내가 잘하는 일을 하게 되면 사람은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게 된다. 만일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면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자. 예상되는 상황(회의, 면접, 협상 등)에 대해 미리 주제와 예상 질문, 나의 대응 논리를 준비해 두자. 준비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해당 상황이나 대화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나 전문성을 보여주면 상대방에게 신뢰와 권위를 주어 기선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전문성을 드러내게 되면 이 사람 말은 신뢰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미리 준비하고 전문성을 쌓으며 자신감을 확보하자.
삼국지에서 장비는 장판교라는 다리 위에 서서 크게 외쳤다.
조조의 군대는 유비의 군대를 바짝 뒤쫓아가고 있었다. 장비는 여기에서 시간을 충분히 벌어주어야만 했다. 그래야 유비가 군새들을 이끌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장비는 출중한 무예실력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런 장비에게 덤벼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선제압이란 이런 것이다. 그때 회사를 비 오듯 퍼붓거나, 큰 희생을 감수하고 수십 명이 돌격했다면 천하의 장비라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세에 눌린 조조의 군사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위축되다 보니 생각의 폭이 작아진 탓이었다.
장비처럼 내가 그 일에 자신감이 있을 때, 당당한 자세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때 그 누구도 나를 쉽게 보지 못하게 된다. 누구를 해치고자 함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기선을 제압하도록 하자. 태권도를 배우는 것이 싸움대장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함과 같은 것이다. 오늘부터 허리를 펴고 큰 소리로 외쳐보자.
"난 할 수 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