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아미쉬 마을)

닫힌 사회 극복하기

by 보이저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에는 특이한 마을이 하나 있다. '아미쉬(Amish)'라고 불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1693년 종교 박해를 피해 이 종교의 창시자인 야코프 암만이라는 사람이 성도들을 이끌고 유럽에서 이 마을로 이주한 이래 300년 넘게 계속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삶은 참 독특하다. 물질문명을 거부하며 산업 혁명 이전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맨발로 다닌다. 남자들은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쓰며, 여자들도 긴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화려함을 싫어하는 특성 탓에 이들의 옷은 대부분 검은색 아니면 흰색 계통이다.


이 마을에는 전기도 수도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다니며 우물에서 물을 긷는다. 빨래도 개울가에서 하며 당연히 집에 티브이나 라디오, 전화기, 휴대폰은 없다. 그렇게 바깥세상에는 귀를 닫고 그들만의 평화로운 마을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의외로 미국 내 아미쉬 사람들 수가 많다. 2020년 기준으로 무려 3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사람들이 아미쉬 마을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큰 규모의 집단인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나도 저렇게 문명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평화롭게 인생을 살고 싶다' 이 생각이 들 수 있다. 이 세상의 경쟁, 수많은 비교와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 대다수는 이런 생활을 자주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과연 아미쉬 마을은 평화롭기만 한 유토피아 세상인 걸까? 세상의 모든 문명을 차단하고 금지시킨 것이 과연 부작용은 없는 걸까?


아미쉬 사회의 예에서 무조건 금지시키고 막는 것이 왜 나쁜 일인지 설명해보고자 한다.

아미쉬(Amish) 마을 사람들
아미쉬(Amish) 마을 사람들




닫힌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


'닫힌 사회(Closed community)'라는 단어가 있다. 외부 사회와 단절되어 있으며, 배타적인 규율로 구성원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사회를 일컫는다. 이건 우리나라 시골마을만 가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로 내려간 사람들은 텃세, 공동체 활동 강요, 지나친 간섭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시골로 온 사람들에게 이것은 또 다른 속박이 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아미쉬 마을은 전형적인 닫힌 사회이다. 결혼은 그들끼리만 할 수 있으며, 평생 그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연히 그 안에서 사건, 사고나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 침묵을 강요받게 된다. 하나 건너면 다 가족에 친척이고, 친구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문제점을 폭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아미쉬 마을에서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각종 살인, 성범죄, 폭력 등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미쉬 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 안에서 정말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모두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신앙의 순수성을 명목으로 인간의 모든 욕구를 다 통제하다 보니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슬람 사회는 성에 대해 엄격하다. 여자들은 차도르나 히잡, 부르카를 쓰고 살갗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을 권장한다. 성에 대한 것을 터부시 하고 금기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성에 대해 폐쇄적인 이슬람 세계에서는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성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온갖 성범죄들이 일어나고 또 감춰지게 된다. 오히려 쉬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자인 여성을 살해하는 '명예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를 쓰고 한국 드라마 영화, 가요 등 콘텐츠들의 유입을 막고 있다. 단순 소지만으로도 1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에 처하고 있고 심지어는 공개처형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로 공포 정치를 하면 과연 북한 사람들이 한국 콘텐츠를 안 볼까? 전혀 아니다.


사람은 못하게 막을수록 더 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 열매를 먹은 것도, 로미오와 줄리엣이 양가 집 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로 만난 것도 결국은 금지가 가져온 현상이다. 북한 주민들 역시도 '도대체 한국 문화가 어떤 것이길래 국가가 이토록 기를 쓰고 막는 걸까?'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닫힌 사회에서는 이렇게 왜곡된 방향으로 사람들이 호기심을 채우게 된다.




어떻게 제한하는 것이 좋을까?


무조건 못하게 막는 것이 능사가 아님은 아미쉬 마을, 이슬람권 세상, 북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면 안 되는 일들이 많다. 도둑질하는 것, 남을 속여 재산을 가로채는 것은 법에 의해 엄격하게 금지된다. 문제는 법에 의해 규율되지 않는 것들이다. 바람직하지 않기에 제한하는 경우,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막을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1. 충분히 설명하여 납득시키기


사람은 일단 납득해야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무조건 안된다고 하면 일단 반발심을 갖게 되고, 더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안 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자. 회사에서 경영성과에 따라 지급하던 보너스를 이번에는 주지 못한다고 하자. 직원들 입장에서는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서운한 마음이 들 것이다. 이때 다음 두 가지 중 어떻게 말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1) 회사가 이렇게 어려운데 무슨 성과급 타령이에요. 안 돼요!


2) 저희도 드리고 싶지만, 올해 안전사고로 중대재해법 적용 때문에 한 달간 조업도 중지했고, 중국 수출물량 감소로 영업이익이 적자입니다. 우리 모두 노력해서 이 위기를 극복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2번이 더 바람직하다. 사람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1) 나도 안타깝다는 점, 2) 이런 사유 때문에 안된다는 점, 3) 다른 대안 제시하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다.


"게임 더 시켜주지 못하는 건 나도 안타깝지만, 오늘 더 이상 게임은 안돼. 하루에 딱 30분만 하기로 했잖니. 주말에는 그 대신 오후 3시까지 공부 다 끝내면 1시간 게임하는 것으로 약속할게"


이렇게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대를 얻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2. 열어줄 수 있는 것은 조금 허용하기


조금은 허용해야 한다고 하면 이렇게 반문하기 쉽다. "댐에 틈이 생기게 되면 그게 점점 커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되고, 결국 댐이 무너진다고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나쁜 것을 허용하게 되면 삽시간에 그 나쁜 것에 중독되어 버리기 쉽다. 그러나 마약이나 도박, 반사회적 콘텐츠 이런 것들이 아닌 이상 사람은 쉽게 나쁜 것에 탐닉하지 않는다. 오히려 막았을 때 호기심 때문에 더 열광하게 된다. 몰래 해보는 것에서 나는 특별하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 정부에서 일본 문화 유입을 막았지만 청계천만 가도 해적판 일본 가요 테이프가 넘쳐났다. 당시 일본 문화를 개방하는 순간 한국 문화계는 초토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막상 개방되었지만 한국문화는 초토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K 컬처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다. 막상 일본 문화 뚜껑이 열리자 호기심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신비주의가 사그라들고 말았다.


열어줄 것은 망설이지 말고 순차적으로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들은 호기심이 충족되는 순간 이게 별 것 아니었구나 이 생각을 하며 흥미를 잃게 된다. 아니면 건전하게 소비하게 된다.




3. 먼저 모범을 보이기


담배를 하루에 한 갑씩 피우는 골초 아버지가 고등학생 아들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훈계하면 그게 말발이 먹히겠는가? 예전에 조선 태종이 늘 궁 밖에 나가서 기생들이랑 놀기 바쁜 첫째 아들 양녕대군에게 그러지 말라고 훈계한 적이 있었다. 이때 양녕대군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아바마마는 온갖 후궁에 궁녀들까지 데리고 수시로 즐기시면서 왜 소자는 못하게 막는 것입니까?"


아무리 아들이라도 전제 군주에게 이렇게 대드는 것을 보면 양녕대군도 보통 인간은 아닌 듯싶다. 아무튼 먼저 모범을 보여야 상대방도 수긍하고 따르게 된다. 본인은 안 하면서 무엇인가를 금지하게 되면 반발심이 생기는 탓이다.





4. 규칙을 같이 만들기 (바람직한 대안 만들기)


금지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대안을 만들면 좋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일단 자기 침대에 누워 기본 두 시간씩 게임만 하는 아이에게 게임을 못하게 막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순순히 잘 따를까?


밤에 가족들이 자는 사이에 몰래 새벽까지 게임을 하게 된다. 풍선효과처럼 한 곳을 막으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막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규칙을 만들자. 하루에 게임을 한 시간만 하되, 그날 숙제를 다 했을 경우에만 허용하는 것이다. 1회 위반 시 3일간 게임 금지, 2회 위반 시는 일주일간 금지 이렇게 규칙을 세우고, 룰을 잘 지켰을 때는 주말에는 두 시간까지 늘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당근과 채찍을 이용하되, 일방적으로 규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합의하여 만들자. 그래서 자기가 세운 규칙은 꼭 준수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아미쉬 마을은 본인들의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기 고자 하는 종교적 공동체이다. 그 순수한 정신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순수성을 유지하고자 인간의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결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청년들이 왜곡된 방식으로 욕구를 해결하기도 하고, 외부세계의 자극적이고 나쁜 문화를 먼저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과연 무조건 막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미쉬 마을, 이슬람 사회, 북한 모두 폐쇄적이기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외부 문화를 무작정 막기만 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금지하거나 제한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먼저 충분히 설득하자.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왜 이게 안되는지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면서 남은 못하게 막게 되면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언제 하면 되고 언제 하면 안 되는지 규칙을 같이 세워보자. 그렇게 공감대를 얻게 되면 금지나 제한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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