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되면 안 되 사람(11편:알바니아 엔베르 호자)

다른 부서와의 교류를 거부하는 폐쇄적인 리더

by 보이저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알고 있는가? 많은 분들은 "그런 나라도 있었어?" 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알바천국이 회사 이름 바꿨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반응이 이상하지 않은 게 알바니아는 불과 30년 전 까지는 지구촌 그 어떤 나라와도 관계 맺기를 꺼려했던 은둔자 국가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당시 알바니아의 별명이 '유럽의 북한'이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알바니아는 유럽의 발칸반도 인근에 위치한 국가이다. 면적은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최근에는 세계 많은 나라들과 교류하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폐쇄적인 면모가 그대로 유지되는 게 사실이다. 같은 유럽 사람들조차 알바니아라는 국가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알바니아는 어쩌다가 이렇게 폐쇄적이고 고립된 국가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한 지도자의 어이없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이 지도자는 알바니아가 국경의 문을 여는 순간 서구사회의 오염된 가치관이 밀려 들어오게 되어 나라를 망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알바니아를 중세 시대 국가로 후퇴시킨 그 장본인은 바로 '엔베르 호자'라는 사람이었다.


직장에도 다른 부서와 소통하기를 꺼려하고 혼자 고립된 채 지내는 리더들이 있다. 심지어 회장 중에도 다른 정관계 사람들과 일절 소통하지 않고 직원들과도 접촉을 피하며 회장실에 홀로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 살아갈 경우 어떻게 되는지 호자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알바니아 위치


알바니아의 영웅이 된 엔베르 호자


호자가 지도자가 되어 펼쳤던 폐쇄적인 정책을 생각하면 그는 동네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외톨이로 살았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당시 알바니아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젊은 시절 프랑스로 유학하여 생물학을 공부하였다. 이때 철학과 정치학도 같이 전공하였으며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까지 총 5개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천재였다고 한다.


이런 천재들이 잘못된 가치관에 경도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이 시기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본주의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하였다. 그는 알바니아로 귀국하였고 수도 티라나의 한 고동학교 교사가 되어 프랑스어와 윤리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호자는 알바니아 공산당의 민족 해방 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당시 알바니아는 독일의 동맹군이었던 이탈리아가 장악한 상태였다. 이탈리아군은 약하기 그지없었다. 웬만한 전투에서는 다 패배하는 수준이었다.


호자는 이 점을 잘 이용하였다. 유고슬라비아의 공산당 지도자 티토는 호자에게 호의적이었고 많은 군사적 지원을 해주었다. 당시 독일은 여기저기 전선이 흩어져 있었기에 알바니아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그는 특유의 게릴라 전술로 이탈리아군을 격파하고 수도 티라나로 진격할 수 있었다. 호자가 알바니아의 영웅이 되는 순간이었다.

엔베르 호자


유고슬라비아와 결별하는 엔베르 호자


마침내 1946년 알바니아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는 불과 38세의 젊은 나이에 알바니아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40년에 달하는 오랜 그의 독재체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맨 처음 그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결심한다.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티토가 툭하면 청구서를 내밀었던 것이었다. 호자는 알바니아를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국가로 만들고 싶었다. 단칼에 유고슬라비아의 간섭을 거절했던 호자는 모든 유고슬라비아 기술자들을 추방하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맺어던 조약들을 모두 파기하였다. 그렇게 알바니아는 제일 먼저 유고슬라비아와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다.


소련은 호자의 이 결정을 마음에 들어 했다.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의 눈에는 자기 말에 자꾸 토를 달고 자기 길을 가려는 티토가 영 거슬렸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호자를 칭찬하며 알바니아에 많은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유고를 버리고 공산주의 큰 형님인 소련을 얻은 것이다.




소련, 중국, 북한과도 결별하는 엔베르 호자


그러나 소련과의 친밀한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다음 소련의 서기장이 된 흐루시초프는 스탈리의 야만적인 정책을 비난하고 수정주의 노선을 도입하였다. 호자는 흐루시초프를 공산주의의 배반자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소련과의 모든 관계를 다 청산하고 말았다.


호자의 파트너는 이제 중국, 북한뿐이었다. 다른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나 쿠바, 베트남 등은 소련과 긴밀한 관계였기에 소련의 지시에 따라 알바니아와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렸다. 그나마 중국과 북한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소련과는 다른 독자 노선을 걷고 있었기에 알바니아가 유이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국가였다.


그러나 중국과도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문화혁명 이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덩샤오핑이 다음 주석이 되자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시장경제체제를 대폭 도입한다. 호자는 덩샤오핑이 공산주의가 가진 순수한 가치를 훼손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끝내게 된다. 이때 호자는 김일성 역시 일인 독재체제로 변질되었다고 비난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도 끊어버렸다. 일인 독재는 자기도 도긴개긴인데 북한을 비난한 것이다.


그렇게 알바니아는 모든 국가들과 사이가 다 틀어진 채 철저히 은둔자 국가가 되어버렸다. 알바니아는 그렇게 철저히 잊힌 국가가 되었다. 별다른 무역도 없이 모든 물자를 직접 만들고 키우는 자력갱생 국가가 되고만 것이다.




수십만 개의 벙커를 만드는 호자


호자는 다른 국가들이 혹시 알바니아를 쳐들어오지는 않을지 늘 걱정하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벙커였다. 순수한 알바니아 체제를 시기한 다른 열강들이 알바니아를 언제든지 쳐들어 올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오늘날 많이 쓰는 용어로 말하면 뇌내망상이 심했던 것이다.


알바니아에는 무려 17만 개 이상의 '콘크리트 벙커'가 건설되었다. 도시의 건물 사이, 논 한복판, 산꼭대기 등등 국토 곳곳에 흉물스러운 벙커가 도사리고 있었다. 도로를 지을 때, 건물을 지을 때, 농사를 지을 때 등등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이 벙커는 아주 성가신 존재였다. 이 벙커들 짓겠다고 콘크리트를 여기에 다 쏟아붓는 바람에 도로, 건물 건설은 줄줄이 다 취소되었다.


어린이들은 12세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총을 들고 벙커 안에서 적과 맞서 싸우는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한참 공부하고 뛰놀아야 할 사춘기 아이들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알바니아 같은 거지 국가는 줘도 안 갖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유지보수비가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데 그걸 어느 나라가 감당하겠는가? 알바니아가 천연자원이 많은 나라도 아니고, 지정학적 위치가 좋은 것도 아닌데 더더욱 탐낼 국가는 없다. 호자 혼자서 망상에 빠져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알바니아의 콘크리트 벙커


끝나지 않은 알바니아의 불행


호자는 40년 가까이 알바니아늘 철권통치하다가 1985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었다. 그 이후 알바니아는 조금씩 걸어 잠근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 굳어진 알바니아의 폐쇄성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알바니아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었다. '카눈'이라고 하는 전통인데, 대를 이어 가문의 원수에게는 반드시 갚아줘야 하는 사회적 풍습이다. 아직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농경사회이고 여러 민족이 같이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 보니 가문이 강조되었다. 다른 가문과 적을지는 경우, 대를 이어 보복이 이루어졌다. 고조할아버지가 다른 가문 사람에게 죽은 것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수하려고 이를 가는 것이다. 다툼의 원인은 의외로 별게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 논으로 더 많은 물을 댈지, 상대 가문 논에 더 많이 댈지 이런 사소한 다툼이 가문 간의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근대적인 전통까지 어우러지다 보니 알바니아는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도통 모른 채 가문의 복수에만 치중하는 이상한 국가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알바니아는 경제가 낙후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이다. 산업화의 물결을 타지 못했기에 많은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해외를 떠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알바니아의 지도자 엔베르 호자의 극단적인 폐쇄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알바니아는 폐쇄적이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이다.

호자 시절, 알바니아 풍경


폐쇄적인 리더가 가져오는 문제점


엔베르 호자, 흥선 대원군, 북한의 김 씨 삼부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극단적인 쇄국정책으로 외부와 담을 쌓고 지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알바니아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꽉 막힌 빈곤한 국가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조선은 아예 나라가 망해버렸다. 폐쇄적인 리더는 이처럼 한 국가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리더가 직장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리더는 다른 부서와 일체 소통을 하지 않고 팀원들과도 좀처럼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리더 주변에는 유리장벽이 쳐져 있는 것만 같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회장이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이 붙은 그분은 직원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했다. 직원들과 겸상하지 않는다고 사내 식당도 이용하지 않았고 임원들조차도 보고 때 외에는 회장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회장과 직원 간에는 아무런 공감대가 형성되기 어려웠다. 회장이 구중궁궐 속에 갇혀 있는데 무슨 소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회사는 조직문화가 뒤쳐진 채 관료제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젊은 직원들은 얼마 못 버티고 나가기 일쑤였다. 중대재해법 등 외부환경은 변하고 있는데 회장은 이런 변화에 무심하기만 했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회사 채석장이 붕괴되어 두 명이 사망했던 것이다. 하필 중대재해법 첫 빠따가 되고 말았다. 회사는 사업을 접네 마네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휘청거렸고 회장은 국정감사 출석, 압수수색 등 별별 일을 다 겪을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최근 징역 4년이 구형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처럼 폐쇄적인 리더는 소통을 하지 않다 보니 외부환경 변화에 무심하다. 내부 소통에도 소홀하다 보니 직원들과 갈등에도 시달린다. 자기 생각이 늘 옳다는 독선과 아집에 빠져 호자처럼 벙커 짓는 쓸데없는 일을 벌이게 된다. 오랜 기간 외부와 소통하지 않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지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리더를 상대하는 방법


외부와 교류하지 않는 폐쇄적인 은둔형, 독단형 리더를 상대하는 것은 매우 지치는 일이다. 도무지 자기 고집을 꺾으려고 하지 않고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리더들은 정보의 독점을 통해 권위를 유지하려 하거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걸어 잠그는 경우가 많다.


이런 리더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미리 보고하여 리더의 불안감 낮추기


폐쇄적인 리더는 외부의 충고나 피드백을 자기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네가 뭘 안다고 감히 나에게!" 이런 말이 조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논리적인 설득은 그저 소 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먼저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가 궁금해하기 전에 먼저 일의 진척 상황을 공유하자. '상황이 잘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리더의 불안감이 줄어들게 된다. 이들은 불확실한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뭐든 애매모호한 표현 대신 단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아예 말을 꺼내지 않거나 알아보고 다시 보고 드리겠다고 하자.


공개적인 장소보다는 개인적인 면담 시간에 조용히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리더의 방어 기제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타이밍을 잘 보고 있다가 리더의 기분이 좋아 보일 때 보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2. 외부 소식은 최대한 순화해서 말하기


교류를 거부하는 리더에게 외부 소식은 꼬리를 밟힌 고양이가 내지르는 꺄아악! 소리 정도로 들릴 뿐이다. 외부 소식을 전할 때는 최대한 순화해서 전달하도록 하자.


"팀장님, 옆의 마케팅 기획팀에서는 이번 달에 1박 2일 워크숍을 간답니다"


이러면 마치 나는 그런 것도 할 줄 몰라서 안 가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요즘 날씨도 선선해졌는데 1박 2일 워크숍 어떠실까요? 팀장님 좋아하시는 바다낚시 가능한 펜션 추천드립니다"


굳이 외부 사례를 들 필요 없이 최대한 순화해서 말하자. 리더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외부 사례는 최소화하거나 드러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다.





3. 공식적인 채널을 활용하고 대화는 꼭 기록하자


리더가 폐쇄적일수록 정보 왜곡이나 책임 회피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꼭 확보해야 한다.


구두로만 협의하지 말고, 대화 내용을 요약하여 메일로 공유하자. "방금 논의한 대로 올해 예산 사용 실적은 판관비는 제외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공식적인 채널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기록은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막아준다. 워낙에 자기 기분대로 기억을 잘 왜곡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안전장치는 꼭 필요하다.


만약에 이 리더와는 도저히 말을 섞기 힘들겠다 싶으면, 리더와 소통이 원활한 다른 동료를 통해 의견을 우회 전달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





4. 나의 정신적 에너지 보호하기


내가 이 폐쇄적인 리더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그런 헛된 기대를 버리자. 내가 이번 주에 로또 1등 당첨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이런 리더는 불평, 불만, 남탓하기를 늘 입에 달고 다닌다. 리더가 이런 폐쇄적인 태도를 보일 때 자책하지 말자. 당신 탓이 절대 아니다. 리더의 성격적 결함일 뿐이다. 그냥 그런 인간인 것이다.


이런 리더 밑에서 배울 점이 있는지, 리더의 온갖 짜증을 천사처럼 다 받아주는 게 맞는 일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보자. 도저히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직이나 부서 이동 등도 고민해 보자.


"다툼이 심한 여인과 궁궐에서 함께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잠언 21장 9절 말씀이다. 이 말씀은 부부관계뿐 아니라 직장 상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폐쇄적인 리더와 함께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보다 창고에서 혼자 일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엔베르 호자는 프랑스 유학파에 5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엘리트 었다. 그런 똑똑한 사람이 이상한 빨간 사상에 빠져들자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졌다. 공산주의 가치를 순수하게 지켜내는 것만이 국가가 바로 서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서방세계는 악에 빠진 세력으로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올림픽 참석조차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보이콧했다. 심지어 같은 공산주의 우방국에게 조차 배신자, 변절자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알바니아는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을 왕따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매우 강한 경우 이렇게 외부와 담을 쌓고 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내가 최고이기에 굳이 남과 교류할 생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보다 열등할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 조언을 하는 것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비추는 것이다.


리더를 갈아치울 수만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차선책을 생각해 보자. 최대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피하고 순화해서 말을 하자. 말 바꾸기, 기억 왜곡이 취미인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반드시 공식 기록으로 남겨 공유하도록 하자. 그리고 도저히 같이 하기 어렵다 싶으면 그때는 떠날 방법도 생각해 보자. 사람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엔베르 호자는 우리에게 폐쇄적인 리더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리더는 최악의 리더이다. 조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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