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되면 안 되 사람(14편:고종과 니콜라이 2세)

미신에 빠져 허우적대는 리더

by 보이저

매년 새해가 되면 문지방이 닳도록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소가 있다. 어디일까? 바로 점집이다. 용하다고 알려진 점술가의 경우, 1년 치 예약이 꽉 찼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는다. 소원 성취와 관련된 전국 각지의 유명 명소들은 새해가 되면 엄청난 수의 인파가 밀려들어 빌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점을 보는 것이나 유명 명소에서 소원을 비는 것, 개인의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굿 해주고 부적 만들어주는 대가로 수억 원을 지급했는데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기도원에서 귀신 쫓는 의식을 치르다가 환자가 죽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한 국가의 지도자가 미신에 빠져 국가를 멸망의 늪에 빠뜨렸다면 어떻겠는가? 이건 그 피해가 국민들 전체에게 미치게 된다. 이번에 소개드리는 리더는 두 명이다. 조선의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이다. 19세기말, 비슷한 시기에 집권했던 두 리더는 왜 미신에 빠져 국가를 도탄에 빠뜨리게 만들었을까?




고종 앞에 나타난 진령군


'조선의 고종'은 비운의 리더이다. 불과 12세 때 왕이 된 고종은 어릴 때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눈치를 봐야 했고, 성년이 된 이후에는 부인이었던 명성황후 민 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갔다. 말년에는 비명횡사한 부인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자기가 다스리던 조선의 멸망까지 보게 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일본의 침략은 날로 거세지는 상황 속에서 고종은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진령군'이라는 무당이었다. 진령군은 처음에 명성황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인연의 계기는 1882년 임오군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 지도부의 비리로 인해 한양을 지키던 군인들에게 오랫동안 급여가 지급되지 못했다. 그나마 지급했던 쌀에는 돌이나 겨가 절반이나 섞여 있었다. 이에 분노한 군인들은 궁궐을 습격하여 많은 신하들을 살해하였고, 그 배후라고 생각했던 명성황후까지 살해하고자 하였다. 명성황후는 궁녀 옷을 입고 가마를 탄 채 충주까지 도망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한 무당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관우의 딸이라고 소개하면서 지금으로부터 딱 50일 뒤에 한양의 궁궐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한 말이었다. 군사들은 명성황후를 쫓고 있었고 당시 정권을 다시 장악했던 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가 죽었다고 선포하고 장례식까지 다 치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명성황후는 그저 농담이겠거니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청나라 군대가 밀어닥치더니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압송해 버렸다. 그리고 충주에 숨어있던 명성황후를 다시 한양으로 불러들였다. 그게 정확히 명성황후가 무당 여인을 만난 지 딱 50일 되는 날이었다.


그때 명성황후는 이 여인을 궁궐로 데려갔다. 그리고 '진령군'이라는 칭호를 하사하게 되었다. 진실로 영이 기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명성황후뿐 아니라 고종도 진령군에게 홀딱 반해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을 다 믿고 따라가게 되었다.



진령군에 끌려다니는 고종


고종을 통제하는 것은 명성황후였고, 명성황후를 통제하는 것은 진령군이었다. 사실상 조선의 최고 권력자는 진령군이었던 셈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고종은 같이 부화뇌동해서 진령군이 하는 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들어주었다.


왕세자인 순종이 병에 걸리자, 진령군은 금강산 1만 2,000개 봉우리 하나마다 쌀 한 섬과 돈 열 냥씩을 올려놓으면 낫게 된다고 말하였다. 쌀 한 섬 시세가 지금으로 따지면 50만 원 정도이고, 열 냥은 100만 원 가까운 돈이다. 각 봉우리마다 150만 원씩 1만 2,000개 봉우리에 180억 원을 쓴 것이다. 당시 조선의 1년 예산이 현재 시세로 1조 5,000억 원 정도였으니 엄청난 돈을 퍼부은 것이었다.


진령군에게 잘 보이면 고을 수령 자리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진령군은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많은 선비들이 목숨 걸고 진령군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렸지만 고종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령군이 모시는 삼국지의 관우가 있는 북묘에 자주 출입하며 관우에게 예를 올릴 정도였다.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령군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러던 중 큰일이 벌어지고 만다.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던 명성황후가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 낭인들의 손에 살해당한 것이다. 뒷배를 잃게 된 진령군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 누구도 그녀가 이후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확실히 운명을 내다보는 눈은 탁월했던 것 같다.


가뜩이나 국가는 어렵고, 일본의 야욕은 강해져만 갔는데 고종은 여기에 대응하기는커녕 진령군에 빠져 국사를 그르치고 말았다. 미신에 빠진 왕이 국가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종 황제


라스푸틴에게 현혹되는 니콜라이 2세


고종이 진령군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 러시아에는 '니콜라이 2세'라는 황제가 등극했다. 그는 서양판 고종이었다. '라스푸틴'이라는 수도승에게 빠져 국가를 파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일대, 특히 귀부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수도승이었다. 그는 환상 체험, 치유 등의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방에 가두어놓고 행하는 그의 의식은 신비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 소문은 황제인 니콜라이 2세와 그의 황후 알렉산드라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마침 그의 유일한 아들로, 황태자가 될 알렉세이 황태자는 두 살 무렵 혈우병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러시아에 있는 유명한 의사들을 초빙하여 치료하게 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황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스푸틴에게 황태자의 혈우병 치료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라스푸틴이 황태자에게 가까이 다가설 때마다 병세가 호전되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황태자에게 전화만 해도 그 즉시 병세가 좋아졌다. 그렇게 황태자는 혈우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은 기적을 보면 누구나 혹하게 된다. 당장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처음에는 라스푸틴을 이상한 사람 취급했던 니콜라이 2세도 이제는 라스푸틴이 하는 말이라면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게 되었다. 그의 신통력을 믿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자기 아들을 낳게 한 은인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이다.

니콜라스 2세와 황실 가족들


국정을 장악한 라스푸틴


니콜라이 2세는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만일 그가 일반 가정에서 가장 역할을 했다면 훌륭한 남편이나 아버지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한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 황제였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서유럽 열강들과 비교해서 현저히 힘이 약해져 있었다. 농노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고 일본마저 극동 지방에서의 러시아의 패권을 빼앗고자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정치에는 서툴렀다. 좋은 왕은 아니었던 셈이다. 우유부단했던 탓에 귀가 얇았고 판단력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기피하는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니 신하들과도 잘 만나지 않았다. 이때 라스푸틴이 나타나서 국정에 대해 조언을 하니 거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정에 간섭하였다. 관직을 팔고 그 돈으로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그에게 잘 보인 사람은 그 어떤 죄를 짓더라도 별 탈없이 금방 풀려날 수 있었다. 심지어 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그가 결정하였다. 외국 대사들은 니콜라이 2세는 젖혀두고 라스푸틴에게 달려가 논의를 할 정도였다.


그는 궁전에서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다. 귀부인들을 성추행하고 심지어 잠자리까지 요구하였지만 니콜라이 2세는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신통력을 받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부추길 정도였다. 이쯤 되면 니콜라이 2세의 판단례은 아예 없다시피 한 수준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라스푸틴의 죽음과 러시아의 몰락


라스푸틴의 이런 기고만장한 행동은 당연히 많은 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황실 안에서도 라스푸틴을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러시아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에게 지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에게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이 모든 것이 다 라스푸틴이 전횡을 휘둘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공산주의 물결이 급속도로 밀어닥치고 있었다. 레닌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 세력은 황제 및 귀족들을 반동으로 규정하고 노동자, 농민들에게 파고들고 있었다. 러시아는 밖으로는 독일에게 당하고, 안으로는 공산주의 세력에게 먹혀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라스푸틴은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1916년 연말, 그는 유수포프라는 귀족이 초대한 파티에 갔다. 사실 그 파티에는 암살 음모가 숨어 있었다. 청산가리가 든 케이크와 와인을 그에게 준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맹독성 물질인 청산가리를 먹고서도 그는 2시간이 넘게 멀쩡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발각될 것을 각오하면서 유수포프가 그에게 총을 쏘았다. 그러나 라스푸틴은 총을 맞고도 멀쩡했다. 오히려 유스포프의 목을 조를 정도였다. 결국 파티에 있던 다른 공모자들이 그에게 총을 쏘고 나서야 그를 암살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는 신적 능력을 타고났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황제는 그를 죽인 암살자들을 처형하려고 했지만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러시아를 망친 요사스러운 인간으로 라스푸틴은 전 국민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탓이다. 할 수 없이 니콜라이 2세는 유수포프와 그 일당을 가두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말았다.


라스푸틴이 죽고 불과 3개월 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였다. 블라디미르 레닌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 집단은 민중들의 호응을 받으며 황제가 있는 궁전으로 밀어닥쳤다. 황제는 강제 퇴위당했고 작은 궁전에 가족들과 같이 연금되었다. 영국으로 망명하려다 발각되었고, 시베리아로 쫓겨갔다가 결국 그곳에서 1918년 가족들과 함께 총살당하고 말았다.


라스푸틴은 자기가 곧 죽으리라는 것, 황제가 오래지 않아 퇴위당하고 죽게 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히 그는 이 쪽 방면에 탁월한 예지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라스푸틴이 전횡을 휘두른 결과, 그는 물론이고 황제 니콜라이 2세와 황실 가족들, 러시아 국민들까지 모두 다 망하고 말았다. 러시아 혁명 이후 들어선 공산주의 정권은 대숙청을 남발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 겹치면서 수천만 명이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2세가 라스푸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고, 그의 신통력이 설령 사실이라도 그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았다면 어땠을까.. 너무나 아쉬움이 든다.

라스푸틴


내가 겪은 사례 (대령 진급과 무궁화꽃 3개)


조선의 고종이나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를 보면 참 안타깝기만 하다. 격변의 시기에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그들은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때 그들은 미신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역사 속의 일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많은 리더들이 미신에 집착한다. 군대 시절 일이다. 당시 대대장은 중령이었고, 대령 승진에 목을 매고 있었다. 병사 100명으로 구성된 공군 레이더 사이트에서 가장 높은 지휘관이었던 이 대대장은 진급 발표를 앞두고 무궁화꽃 3개를 부대 화단에 심었다.



"내가 아끼는 꽃이니 각별히 아끼도록!"



누가 봐도 대령을 상징하는 무궁화 3개였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제초 작업을 하던 병사 한 명이 낫을 잘못 휘둘러서 무궁화꽃 하나가 그만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20년도 지난 일이지만, 당시 대대장의 분노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굴이 빨개져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났다.



"내가 각별히 아끼라고 했고들!"



그때 부대 전체가 얼어붙었다. 꽃을 떨어뜨린 그 병사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사색이 되었고, 그 누구도 대대장 집무실 근처도 가지 못했다. 괜히 그 근처에 있다가 불똥이 자기에게 떨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2주 뒤, 대령 심사 결과가 나왔다. 진급 실패였다. 그 대대장은 그 꽃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고 다시 한번 날뛰었다. 부대는 다시 한번 침묵에 빠져들고 말았다.

과연 무궁화꽃이 떨어져서 대령 진급이 안된 것이었을까? 결코 그건 아닐 것이다. 그는 부대 안에 종교활동 지원 차원이라고 법당을 짓고 매일 절을 하는가 하면 온갖 미신에 집착했다. 그런 일들이 소문이 안 날 리가 없다. 함량 미달이었기에 나가리 된(탈락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대기업 면접 때는 관상쟁이가 면접관으로 같이 들어온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들려온다. 기업 회장님들이 길일을 받아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공장을 완공하면 되지머리를 상에 올려놓고 거기다 고사를 지내는 곳도 많다. 조상 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수가 좋은 명당에 만들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미신에 집착하는 리더들이 많은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애교로 넘어갈 수도 있다. 뭐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종이나 니콜라이 2세, 필자가 겪었던 대대장 같이 지나치게 미신에 집착하게 되면 조직에 피해를 주게 된다. 왜 이들은 미신에 집착했을까? 그들이 미신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날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미신적인 요소에 집착하는 리더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이 미신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미신에 빠짐으로써 어떤 폐해를 초래했는지 같이 알아보고자 한다.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미신에 빠졌던 이유


이들이 미신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크게 다음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외롭고 고독한 환경


이들은 늘 고독했다.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종은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실질적으로 왕으로 군림하면서 권력을 휘둘렀고 본인은 뒷전에 밀려나있었다. 장성한 이후에는 왕비였던 명성황후 민 씨 눈치를 보며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었다.


니콜라이 2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황제가 되었던 그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미 수많은 귀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고,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는 복잡한 권력의 역학관계를 조정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이들은 달리 의지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는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심지어 일가친척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신에 심취하게 되었다.




2.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


사실 고종이나 니콜라이 2세가 처음부터 미신을 신봉했던 것은 아니다. 아내의 적극적인 설득이 있었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불러들인 진령군의 이야기를 듣고 점차 그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미래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녀의 눈, 우렁차게 흔들어대는 칼과 방울을 보며 이 사람은 뭔가 있다 싶었던 것이다.


니콜라이 2세 역시 왕비의 적극적인 설득이 있었다. 라스푸틴 이야말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계속 권유했던 것이다. 베겟 송사는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뭔가 있으니까 저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호기심을 갖게 되고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3. 실제 놀라운 일을 목격한데 따른 신비감


1884년 갑신정변 때, 고종은 개화파가 권유했던 일본 공사관으로 가지 않고, 진령군이 권유했던 관우를 모신 사당인 북묘로 피신했다. 북묘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었다. 가는 길에 개화파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날 판이었다. 이때 고종은 진령군을 믿고 모험을 선택했다.


이게 신의 한 수였다. 근처에 있는 청나라 군을 만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고종은 진령군을 믿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니콜라이 2세는 외아들인 황태자가 두 살 때 라스푸틴에 의해 혈우병이 낫는 것을 두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어떤 의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 아이가 기적처럼 살아나는 것을 보고 그는 라스푸틴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라스푸틴이 도대체 어떻게 황태자를 치료했는지는 현대 의학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은 놀라운 일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면 빠져들게 된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 흔들리지 않겠는가? 분명히 그런 영적인 능력은 존재한다. 진령군이나 라스푸틴은 분명 그런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영적인 능력은 능력인 것이고, 통치를 함에 있어 그런 사적인 믿음이 반영되어서는 곤란하다. 최대한 이성을 갖추고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정치를 수행해야 함에도 점술가가 알려주는 대로 국정을 운영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두 번의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정치에 미신이 개입하게 되면 어떤 비극이 펼쳐지는지 경험한 바 있다.

고종과 니콜라이 2세


리더가 미신에 빠지면 나타나는 문제점


미신에 집착하는 리더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크게 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주변 사람들의 조언 무시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조언을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점술가가 한 말이 아니면 그 어떤 말이라도 그저 다 공사장에서 드릴 뚫을 때 나는 소음 정도로 취급한다. 자기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리더를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입을 닫게 된다.




2.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게 됨


군대 시절, 대대장이 대령 진급을 앞두고 한 병사가 집무실 화단에 핀 무궁화꽃을 떨어뜨렸다고 분노했던 사례를 소개 드린 바 있다. 이처럼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미신에 부합하는 행동이면 그게 사회상규에 반하는 이상한 것이라도 그냥 따르는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의 평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3. 사리판단능력 상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미신을 숭배하게 하는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비선실세로 만든다. 이 사람은 그림자 권력이 되어 국정에 관여하게 되고 국정농단을 일으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조선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자기에게 감언이설로 주술적인 조언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따르면서 리더는 점점 사리판단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이는 조직을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된다.




바람직한 해결방법


미신에 빠진 리더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사리판단능력을 잃고 있고, 전적으로 그 점술가에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에 세뇌된 딸을 구하려고 부모가 그 딸을 집에 가두어버리자, 경찰에 감금죄로 부모를 신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고 싶다고 경찰에 진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리더를 돌려놓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해결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1. 리더의 심리 파악하기


리더가 미신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고, 자기가 내릴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외부의 절대적인 힘에 의존해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기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자. 논리적으로 왜 미신에 의존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따지고 드는 것은 오히려 리더의 방어 기제를 자극할 수 있다. 지금 리더가 어떤 심리 상태인지 먼저 이해부터 하자. 불안 때문이라면 그 불안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하자.




2. '플랜 B'를 제안하자


미신에 기반한 결정이 위험해 보일 때는 '틀렸다'라고 말하는 대신, 일단 리더의 생각을 경청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보이자. 리더의 결정을 존중하는 척하면서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좋다.


"말씀하신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건의 경우, 외부 변수가 많으니, 혹시 모를 리스크에 대비해 이런 보완책도 함께 준비하면 어떨까요?"


속이야 부글부글 끓겠지만 분노를 잠시만 내려놓고 리더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플랜 B를 제시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자. 분명히 플랜 B를 써야 하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3. 리더에 대한 관심 줄이기


리더의 신념에 동화될 필요도, 사사건건 싸울 필요도 없다. 지금 리더는 이상한 사람이다. 이상한 사람과 시시비비 가려봐야 달라질 건 없다. 이상한 사람도 문제지만, 이상한 사람과 옳고 그름을 놓고 싸우는 사람도 문제 이긴 마찬가지이다.


리더의 미신적 발언을 업무의 본질이 아닌 '개인적인 취향' 혹은 '독특한 의사결정 습관'으로 치부하며 감정 소모를 줄이자. 그리고 미신에 근거하여 리더가 내린 업무 지시와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기록해 두자. 나중에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할 때 유용한 근거가 된다.



마무리하며


'요즘 세상에 그런 리더가 어딨 어?'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이다. 그런 리더가 두 명이나 있지 않았는가? 나는 보수색이 강한 사람이지만, 보수 진영에서 나온 미신에 빠진 두 명의 함량 미달의 리더가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큰 과오 때문에 또 다른 함량 미달의 리더들이 반대 진영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용하다는 점쟁이 찾아가서 점 보러 다니고, 여기저기 부적 붙이고 있고.. 이런 사람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하겠지만 사람은 점점 그쪽에 빠져들게 된다. 용하다는 점쟁이들은 실제로 영적 능력을 갖고 있다. 만만하게 볼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이 사람들이 정확하게 내 과거를 맞추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놀라게 되고, 점쟁이가 하는 말에 빠져들게 된다.


단순히 봉건군주 시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미신에 빠진 리더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미신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자. 그리고 나는 이 조직을 책임져야 하는 리더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불안해하지 말자. 리더 좀 못한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지 않는다. 팀원들 존중해 주고 잘 들어주기만 해도 평균 이상의 리더가 충분히 될 수 있다. 그 정도도 못하는 리더들이 쌔고 쌘 게 현실이다. 그러니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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