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괴롭히는 리더
강석 씨는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대기업 임원이셨던 아버지는 밖에서는 유능한 사람으로 통했다. 리더십 있는 성격 덕분에 따르는 부하 직원들도 많았다. 늘 일에 파묻혀서 늦게 퇴근했고, 주말에도 수시로 출근하고는 했다.
밖에서는 "어이구! 내 새끼!" 이러며 자기 부하 직원들 잘 챙기기로 유명했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술을 잔뜩 마시고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자는 식구들을 다 깨웠다. 그리고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이 말은 수 백번도 더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는 금세 코를 드르렁거리며 거실에 대자로 뻗어서 잠들고는 했다. 아버지는 밖에서는 강해 보였지만 사실은 약한 모습을 숨기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있어 집은 그냥 잠만 자는 여관과 같은 곳이었고, 자식들은 그저 유전자를 공유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이런 아버지에게 강석 씨는 그 어떤 애정도 느낄 수가 없었다.
조선 후기에는 훌륭한 두 명의 왕이 등장한다. 바로 '영조'와 그 뒤를 이은 정조이다. 영조가 52년, 정조가 24년 도합 76년 동안 조선은 강력한 군주 밑에서 안정을 이루게 되었다.
영조는 유능한 군주로 인식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상소문들도 밤을 새워가며 다 읽고 결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노론, 소론으로 갈려 늘 당파싸움이 일상이었던 조정의 기강을 잡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똑똑하고 리더십이 있으며 완벽주의 성향이 있던 리더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영조에게는 큰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의 생모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생모는 '숙빈 최 씨'로 무수리 출신이었다. 궁녀에게도 계급이 있다. 상궁이 가장 높은 계급이라면, 무수리는 가장 낮은 계급이다. 무수리는 궁궐에서 물 길어오고, 바닥 쓸고 닦는 고된 일을 담당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숙빈 최 씨는 외모가 볼품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왕이었던 숙종이 밤중 어두운 때 이 여인을 보고는 외모가 아름다운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침실로 불러들였는데 그때 생긴 아기가 영조였다는 야사가 전해져 오고 있다 (다음날 아침잠에서 깬 숙종이 이 여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도 있다)
영조는 어머니가 궁녀, 그것도 가장 낮은 계급인 무수리 출신이라는 사실에 적잖게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왕의 어머니임에도 숙빈 최 씨의 묘소는 '릉' 칭호를 받지 못하고 그보다 낮은 등급인 '원'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왕위를 계승한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영조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난 경종이었다. 경종은 몸이 약했고 자식도 없었다. 늘 골골대는 형을 위해 동생 영조(당시 연잉군)는 게장과 곶감을 왕께 바쳤는데 경종은 그걸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걸 두고 영조가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오죽하면 영조 4년에 이인좌라는 사람이 영조는 무수리의 소생으로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니 그를 내쫓아야 한다며 반란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의 콤플렉스가 대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콤플렉스는 그의 평생을 짓누르며 괴롭히게 되었다.
영조는 위에서 언급했던 강석 씨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백성들에게는 비록 엄하지만 백성들을 위할 줄 아는 유능한 군주로 인식되었지만 부인이나 자식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가족들을 괴롭히고 편애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특히 외아들이었던 사도세자를 쌀통인 뒤주 속에 가두고 죽게 한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사도세자만 괴롭혔던 것은 아니었다. 부인을 박대하고 공주들도 차별하는 통에 집안 전체가 늘 어둠에 싸여 있었다.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영조가 외아들이었던 사도세자를 집요하게 괴롭혀서 결국 사도세자를 신경쇠약에 빠지게 한 일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40세 때 늦게 얻은 외아들이었다. 영조는 자식만큼은 왕의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도 엄청나게 많이 시켰고, 매사에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바르게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자유분방하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라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에 관심이 많았다. 영조는 세자의 이런 모습이 영 마뜩잖고 못마땅하기만 했다.
신하들이 다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사도세자를 나무라기 일쑤였다. 입이 거칠고 다혈질이었던 영조는 온갖 쌍욕을 하며 사도세자를 몰아붙였다고 한다. 활달했던 사도세자는 점차 어두운 성격으로 변해갔고, 마주치기도 싫은 영조를 피해 늘 궁궐 밖으로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영조는 어디서 저런 아들이 태어났느냐고 분명히 내 자식이 아닐 것이라고 부인이었던 정성왕후를 닦달하였다. 자기 때문에 주변 여러 사람들이 시달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도세자는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헛것을 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하면 마구 물건을 집어던지며 폭행을 일삼았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증상은 더해갔다. 이제는 궁녀, 내관들에게 칼을 휘두를 정도였다. 심지어 자기 부인인 혜경궁 홍 씨에게 바둑판을 던지기도 하였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이런 기행을 보고받으며 고민에 휩싸였다. 요양을 위해 온천에 다녀오게도 하고, 외간 여자와 만나고 다니는 것을 눈감아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증세는 호전을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마침내 영조가 칼을 빼들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죽이기로 한 것이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버리고 쇠사슬로 칭창 감아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주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다. 그렇게 사도세자는 28세에 한 많은 인생을 끝마치게 되었다.
그렇다면 영조가 사도세자만 괴롭혔던 것일까? 당연히 그건 아니다. 주요 타깃은 사도세자였지만, 딸들도 영조의 괴롭힘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사실 공주는 잘못된 표현이고 옹주가 맞다. 왕비인 정성왕후는 자식이 없었고, 후궁들이 자식을 낳았는데 후궁의 소생은 공주가 아닌 옹주로 불렸기 때문이다.
영조는 옹주들을 편애했다.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는 영조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했다. 반면에 화협옹주는 영조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엄청나게 미워했다. 청소하고 난 구정물을 화협옹주가 있는 집 뜰에 직접 뿌려댈 정도였다. 심지어 화협옹주와 결혼한 사위인 부마마저 도매금으로 싫어했다.
자기 입맛에 맞으면 잘해줬지만,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가차 없이 구박하는 게 영조였다.
영조는 자기 정실부인인 정성왕후도 엄청나게 구박했다. 조강지처라면 인생의 동반자임에도 자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영조가 왕이 되기 전, 정성왕후의 손을 보고 손이 참 곱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정성왕후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영조의 콤플렉스를 자극했다.
영조는 비록 왕자였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워낙에 낮았던 탓에 궁궐 밖에서 살아야만 했다. 게다가 어머니였던 숙빈 최 씨는 무수리였던 탓에 손이 몹시 거칠었다. 정성왕후의 대답을 듣고 양반가에서 자라지 못한 자신의 과거와 어머니의 거친 손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그때부터 영조는 정성왕후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스크래치가 나면 견디지를 못한다.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조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영조는 정성왕후의 처소에 거의 가지 않았다. 사실상 남남이었던 셈이다. 창덕궁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는 조그마한 집에 정성왕후를 살도록 했다. 당연히 궁녀들이나 내관들도 정성왕후가 이름뿐인 왕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정성왕후를 은근슬쩍 무시했다고 한다.
정성왕후가 회갑이었을 때도 아까운 예산 들여서 환갑잔치 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심지어 정성왕후가 64세에 위궤양에 심한 부종으로 사망할 당시, 피를 토하고 있음에도 꾀병 부린다고 말하면서 병문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부인의 빈소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밖에서는 잘 나가는, 성공한 리더이지만 집에서는 폭군인 사람들이 있다. 폭군은 아닐지라도 가족에게 소홀하고 가족을 마치 액세서리처럼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그런 존재로 취급하는 리더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과거 대기업 회장님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았다. 늘 우선순위는 회사였다. 집안 돌아가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고 남편은 돈만 벌어다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회사에서 일하다가 듣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결혼기념일은 언제인지, 아이는 어떻게 커나가고 있는지 관심 밖인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리더들은 왜 가족에게 무관심한 것일까?
회사 일은 성과를 내면 승진, 연봉 상승, 동료의 인정 등 즉각적이고 분명한 보상이 따르게 된다. 반면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은 '티가 안 나는' 일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도 안 난다. 잘해야 본전인 것이다. 그런데 안 하면 바로 티가 난다.
성취감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보상이 확실한 일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인데 이들은 우선순위를 직장에서의 성공에 두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이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리더들은 밖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돌아왔으니,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가족들에게 풀기도 한다. 내가 회사에서 돈을 벌어다주니 너희들도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내가 이 정도 행동은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환경에 사람은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부모가 가족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면, 나도 모르게 비슷하게 변해간다. 그토록 싫어하던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부모가 모든 수발을 다 들어준 사람의 경우, 집안일 프로세스 자체를 잘 모른다.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예 모른다. 하고는 싶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만만한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나를 평가할 수도 없는 사람이고, 내가 버는 돈을 그저 쓰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나보다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족들을 괴롭히면서 이들은 지배욕을 느끼고 쾌감을 경험한다. 많은 경우에 이들은 자기를 잘 따르는 일부 구성원에게는 잘해주면서 상대적으로 약한 구성원에게는 온갖 분노를 쏟아내며 심하게 학대하고 괴롭힌다. 이런 사람 밑에서 가족들은 오랫동안 괴로움을 겪으며 피폐해져 간다.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단 이 사람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평생 보고 배운 게 그런 것이었고, 오랜 기간 가치관이 형성되었기에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뀌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현실적인 대처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일단 그런 가족 구성원의 행동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절대 내 잘못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이 폭언을 하거나 비난할 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자. "저런 것도 자식이라고, 왜 태어나가지고" 이런 소리를 한다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자. "저건 아버지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 귀담아들을 필요 없어" 이렇게 마음속으로 선을 그어야 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라면 무리하게 설득하려 하지 말자. 논쟁이 길어져 봐야 상황만 악화된다. 그 자리를 피하거나 단답식으로 짧게 대답하고 상황을 종료하는 것이 낫다. 경제적, 물리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을 장기적으로 준비하자.
집이라는 공간이 더 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면, 물리적인 분리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같이 있을 때 서로 위로가 되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그저 유전자를 공유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만약 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이라면, 구체적인 선을 제시하도록 하자. '아이 메시지 (I-Message)' 방법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 저는 너무 무섭고 힘들어요. 이런 식으로는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워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짧고 명확하게 전달해 보자. 만약 폭언이나 협박, 폭력이 일상적이라면 반드시 녹음, 사진, 영상, 일기 등으로 기록해 두어야 한다. 이는 추후 법적 보호를 받거나 접근 금지 신청 등을 할 때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가족 모두가 무너질 수 있다. 전문가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는 오은영 박사처럼, 가족 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심리상담센터가 곳곳에 있다. 문제의 원인이 되는 당사자가 문제를 인정한다면 함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부한다면 남겨진 가족들만이라도 먼저 상담을 받아 해결방안을 마련하도록 하자. 한 사람 때문에 다른 가족 구성원들까지 더 이상 망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영조는 대외적으로 유능한 왕이었다. 영조가 다스린 52년 간 조선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카리스마 있고 똑똑한 왕이 워낙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잘했기 때문에 정국이 안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영조의 통치는 가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한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다. 심지어 영조는 통치기간 내내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다. 영조는 그 스트레스를 사도세자와 옹주들, 그리고 자신의 조강지처였던 정성왕후에게 마음껏 발산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사도세자는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며 수많은 궁녀들, 내관들을 죽였다. 결국 그는 뒤주에 갇혀 죽고 말았다. 정성왕후는 한 나라의 국모였음에도 창덕궁 가장 구석진 집에서 쓸쓸하게 죽고 말았다. 옹주들도 기를 못 펴고 살기는 마찬가지였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해야 바깥에서도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는 법이다. 영조는 유능했지만 훌륭한 군주였다고 말할 수 없다. 가족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리더는 절대 존재해서는 안된다.
가족은 아니지만, 자기 보좌관들에게 갑질하고 자기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들을 자기 수족 부리듯이 막 대하는 국회의원들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넌 아이큐가 한 자릿수야? 나는 네가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다" 보좌관에서 이런 폭언을 한 것이 들통나 결국 장관직에서 낙마한 사람도 있었다. 이제는 내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절대 용납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나가도 은퇴하면 다 끝이다. 나를 떠받들어주던 후배 직원들은 더 이상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세상은 이처럼 비정하기만 하다. 남은 생애는 평생 가족들과 같이 보내야 하는데 가족들이 과연 이 사람을 돌봐주기라도 할까? 남은 생애는 자기가 행한 죄를 돌려받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부디 가족들에게 잘하자. 가족에게 함부로 하는 리더는 회사에서도 부하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법이다. 요즘 시대는 그런 리더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용납하지도 않는다. 그걸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