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는 방법
첫 직장은 거제도에 있었다. 평일에는 거제도에 있는 중공업에서 일하고 금요일 저녁마다 4시간 반이나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엄청나게 힘든 삶이 매주마다 반복되었다.
어느 날 같은 부서 사람이 거제도에서 토요일에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게 되었다. 아! 그 청첩장을 받는 순간 속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이 날 와이프랑 놀러 가기로 했는데.. 혼자 주말에 회사 기숙사에 짱 박혀있다가 결혼식에 가기는 싫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 갈까 말까'.. 결국 결심했다. 나 하나 안 간다고 뭐 달라질 것 있겠어? 이게 의무도 아니고. 그럴듯한 핑곗거리는 없을까? 아! 와이프 한 번 내세워야겠다. 그렇게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와이프가 아프다고 해서요. 제가 내일 병간호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럼 할 수 없지. 결혼식은 축의금만 보내"
그렇게 룰루랄라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문제는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같은 팀 과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토요일 날 결혼식 왜 안 왔어?"
"와이프가 감기 몸살이 심하게 걸려서요"
"너 지난번에도 집안 행사 있다고 방 대리 할머니 장례식 안 가지 않았니? 꼭 경조사 있을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기나 보네"
"저도 꼭 가고 싶었는데 하필 그때마다 일이 생기네요"
"근데 토요일에 너 봤다는 사람이 있던데?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봤다던데?"
응? 나를 봤다고? 내가 타임스퀘에 간 거 어떻게 알았지? 도대체 누구일까? 또 뭐라고 둘러댈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 살게 있어서 들렀던 거예요"
과장은 별 말이 없었다. 내가 말한 것을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또 변명하기 급급하구나 생각하겠지... 역시나 거짓말은 한 번 하면 계속해야 하는가 보다. 나 역시 기분이 착잡해졌다.
이 이야기는 실제 내 사례를 일부 각색한 것이다. 당시 막 결혼해서 신혼부터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했던 나는 금요일 저녁에는 기를 쓰고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다. 거제도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버스로만 4시간 반이었다. 신혼부터 혼자 지내게 하는 게 미안했던 것이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뭔 놈의 경조사는 그리도 많은 건지.. 그 지역 사람이 많다 보니 경조사 역시 그 지역 근처에서 진행되었다. 주말에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을 해서라도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던 것이다.
리플리 증후군처럼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 이런 사람을 한 명 겪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은 거짓말하는 것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며 정말 말하는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리플리 증후군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직장생활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떤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소개드린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참조하면 좋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거짓말을 자주 하는 경우,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는 회사에서 고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업무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동료들은 나와 같이 일하는 것, 심지어는 내 옆자리에 앉거나 같이 식사하는 것조차 기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거짓말을 한 번 하게 되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범죄자가 자기 범죄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증거를 인멸하고자 2차, 3차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지나가던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뒤, 시체를 암매장하고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등산객을 살해하려고 시도하는 일, 회삿돈 수억 원을 횡령한 뒤 발각되지 않도록 회사 장부를 조작하고 횡령한 돈을 은닉하고자, 노숙자에게 몇 만 원을 주고 명의를 빌려 대포통장을 만들고 자금을 이체하는 일 등등 범죄가 또 다른 범죄를 부르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죄가 죄를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말이란 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말해서 은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관계를 잘 모르면서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둘러대는 것, 실수를 했음에도 입 꾹 닫고 모른 척 가만히 있는 것 모두가 포함된다. 이런 행동들 모두가 상대방을 기만하고 속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밤 10시까지 일하고는 자정까지 일했다고 과장하는 것 역시 거짓말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상대방을 기만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행동에 포함된다.
거짓말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계속하게 된다. 들통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악의 구렁텅이로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다음 방법을 추천드린다.
첫째 아들은 게임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내가 살짝살짝 밤에 내 핸드폰을 건네주고 게임을 하게 했다. 와이프는 그걸 못마땅해했다. 몇 번 그랬다가 들통나는 일이 벌어지자 와이프는 규칙을 만들었다. 밤에 내 핸드폰으로 게임하는 모습이 들통나면 첫 번째는 일주일 간 생활비 카드 정지, 두 번째는 한 달간 생활비 카드 정지 이런 규칙이었다.
이때 만일 내가 폰을 아들에게 빌려줬다가 또 와이프에게 걸린다면 그때 거짓말 안 하고 버틸 수 있겠는가? 결코 아닐 것이다. 내 돈 내고 모든 물건 다 사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다. 결국 생활비 카드를 뺏기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다.
아예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자. 원인의 싹을 제거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귀찮다고 대충 일하지 않는다면,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그 뒤에 벌어질 수많은 일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아예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불리한 상황이 갑작스럽게 닥치게 되면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때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1분기 실적 보고서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정 대리가 만든 겁니다"
"정 대리! 영업이익이 10억이라고 썼는데 그 근거가 뭐야?"
갑자기 화장실 다녀왔는데 팀장이 급하게 물어본다. 뭐였지? 이미 한 달이나 지난 터에 그게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정 대리는 순간적으로 대답한다.
"회계팀에서 보내준 자료 근거로 했습니다"
일단 둘러댔는데 사실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미래통신에서 보통 자료를 보내주기는 하지만 이번에도 그랬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급작스럽게 당황스러운 상황이 오게 되면 바로 대답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그 상황을 잠시 벗어나자. 그 상황을 바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한 발자국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충분히 생각을 한 다음에 대답하자.
"제가 지금 기억나지 않는데 자료 찾아보고 정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가 만든 거 기억도 못하냐 이런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둘러댔다가 더 큰 낭패를 보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낫다. 핀잔 한 번 듣고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거짓말해서 위기를 모면했던 일이 얼마나 있었는가? 어렸을 때, 부모님 용돈을 슬쩍했다 걸렸던 경험이 있었던 분들은 내가 돈 안 훔쳤다고 말했다고 해서 부모님이 순순히 그 말을 믿어주던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한 대 맞고 끝날 일이 매가 늘어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회사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머지않아 다 들통나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업무는 여럿이서 같이 하는 업무이다. 거짓말을 해봐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확인 몇 번만 해봐도 다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면 신뢰관계에 더 큰 흠집이 나게 된다.
그리고 10년 차 이상이 되면 웬만한 업무 프로세스는 머릿속에 다 들어있게 된다. 저연차 사원이 거짓말로 둘러댄다고 감춰지지 않는다. 조금만 찾아보면 금방 이상하다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욕을 먹더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문제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람은 죄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서 그런 부분도 있지만, 한 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아 이전 대출금을 갚는 방식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당장의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대부분 다 들통나고 만다. 그 사이에 일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만다.
아예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자. 그리고 불리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이 오게 되면 당장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준비한 뒤 대처하자. 급하게 해결하려고 하면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말로는 절대 상황을 모면할 수 없다. 한 번 욕먹고 끝날 일이 심각해질 뿐이다. 그 사실을 꼭 명심하자.
"한 가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곱 가지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 (마틴 루터, 16세기 종교 개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