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배는 어떻게 물 위에 뜰 수 있을까? 쇠를 물에 놓으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쇠로 만든 육중한 배가 거뜬히 바다 위를 떠다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밀도에 있다. 비록 쇠가 물보다 비중이 더 크더라도 밀도를 잘 조절하면 물에 가라앉지 않고 뜰 수 있는 것이다. 밀도란 일정 부피 속의 질량을 의미한다. 선체를 크게 만들면 부피가 커진다. 여기에 바깥 부분만 쇠로 두르고 나머지는 뻥 뚫린 빈 공간으로 두면 밀도가 낮아지게 된다. 물보다 밀도를 낮게 하면 배가 뜨는 것이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배의 바닥, 그리고 좌우에 위치한 탱크에는 물을 싣는다. 이 물을 '평형수(ballast water)'라고 한다. 평형수를 통해 배는 흔들리는 것을 최소화하고 물 위에 떠서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배의 무게 중심을 조절하는 것이다. 배의 밀도를 물보다 가볍게 하고, 평형수 조절을 통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배는 거뜬히 물 위에 뜰 수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자살 특공대인 가미카제 비행사들이 미국의 함선을 발견하면 집중 공격을 퍼붓는 지점이 있었다. 그 지점은 바로 '흘수선'이라고 하는 배의 특정 부분이었다. 이곳이 망가지면 배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곧바로 침몰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배를 만들 때는 흘수선 부분은 두껍게 철을 갖다 대어 웬만한 공격으로는 끄떡도 없게 만들어 놓는다.
'흘수선(Draft Line)'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분이 많으실 것이다. '흘'로 시작하는 단어가 드물다 보니 오타가 난 것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다. 아니다. 흘수선이 맞는 철자법이다.
배가 물에 들어가면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위치가 있다. 그 위치가 바로 흘수선이다. 흘수선 아래는 물이고 그 위는 바깥이다. 배에 승객이나 화물을 잔뜩 싣게 될 경우, 배의 밀도는 급격하게 높아지게 된다. 자칫하면 물보다도 높아질 수 있다. 이때 평형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승객이나 화물로 인해 지나치게 낮아진 무게 중심을 다시 올려주기 위해 평형수를 빼서 배가 위로 올라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빈 배 상태일 때는 평형수를 가득 차워 배의 무게중심을 낮춰야만 한다. 배는 물에 띄우기 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떠다닐 것 같지만 결코 아니다. 과학적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T : 열대 만재흘수선
F : 담수 만재흘수선
S : 하계 만재흘수선
W : 동계 만재흘수선
흘수선은 배가 지금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만일 물이 흘수선 최대치인 만재 흘수선 이상까지 차오르면 이건 심각한 일이다. 평형수를 빼서 배의 높이를 높이거나 승객이나 짐을 하선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과도하게 일을 부여받고 밤낮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 본인은 인정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역량 수준이 바로 흘수선인데 그 선을 아득히 넘어가 버린 것이다.
반대로 흘수선 한참 아래까지 물이 내려와 있다면 수심이 얕다는 의미이다. 이 지역을 항해했다가는 갯벌에 빠지거나 암초에 부딪혀서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흘수선 아래까지 물이 빠진 것은 회사에서 전력 외 판정을 받은 상태와 같다. 믿고 일을 맡길 수가 없으니 단순 업무만 주어지는 상태로, 이 상태로는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 바닥이 긁히는 지점이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평형수는 내 삶의 무게를 조절하는 장치이다. 인생에 있어서는 휴식과도 같다. 회사에서 일만 죽어라 하고 쉼이 없으면 평형수가 사라진 상태와도 같다. 언제든 배가 무게의 중심을 잃고 기울어질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반면에 휴식만 취하는 상태 역시 곤란하다. 회사에서 자기 일은 대충대충 하면서 어떻게 놀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평형수만 가득 채운 배와 같다. 너무 무거워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가라앉게 된다. 평형수를 주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오염이 일어나지 않는데 일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면 평형수는 배 안에서 썩게 된다. 휴식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독이 되는 것이다.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최근에는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자기 계발하라고 하면 내가 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 알아서 잘할 거니까 너나 잘하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하는 사람치고 알아서 잘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자기 배가 지금 흘수선 저 아래까지 물이 다 빠져버렸고, 평형수는 배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심각한 상태이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하나씩 잠식해 들어가는 지금, 별다른 대책도 없이 대충 일하고 시간을 때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도태된다. 당장 나이가 들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면 눈앞이 막막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고민, 공부 이런 것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대충대충 일하는 습관, 무사안일주의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게 1단계인데 1단계 충족도 못한 사람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일에 파묻혀서 너무나 정신없이 회사에서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최대치인 만재 흘수선 위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태이다. 위험 신호이다. 당장은 평형수를 빼면서 무게 중심을 맞춰보려고 하겠지만, 평형수가 다 빠진 뒤에는 배는 침몰하게 된다.
내 흘수선의 위치를 알고 그 지점에 내가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무게중심이 너무 위에 있게 되어 옆으로 넘어지거나, 너무 아래에 있어 침몰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흘수선을 높여버리면 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웬만큼 짐을 싣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특수 설계된 배라면 만재 흘수선이 일반 배보다 훨씬 더 높다.
일에 대한 넓은 시야, 빠른 보고서 작성 능력, 빠르고 정확한 상황판단능력, 원만한 인간관계 능력은 직장에서 흘수선을 높일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들이다. 물론 이런 능력들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타고나는 부분도 있고 내 오랜 성장경험, 가정환경을 기반으로 서서히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은 안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하나씩 개선해 나간다면 분명히 좋아질 수 있다. 효과적인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만 하지 않아도 훨씬 개선될 수 있다. 흘수선이 높아지면 일의 속도나 정확성이 좋아진다. 설령 일을 하다가 내가 실수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해 준다. 그만큼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흘수선 높이를 높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배의 흘수선과 평형수, 배는 이 두 개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바다를 항해한다. 바다에만 띄워 놓으면 알아서 잘 항해할 것 같지만 적정 범위 내에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일이 너무나 많아지면 그 일에 치이게 된다. 잘하기보다는 쳐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일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번아웃이 오게 되고 심각한 스트레스 속에서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된다.
반대로 조직에서 전력 외로 취급받는 경우 배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흘수선은 이미 바닥까지 내려와 있고, 이미 떠오를 대로 떠오른 배에 평형수 따위가 필요할리 없다. 이는 심각한 위기 신호이다. 내 직장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업무 능력을 개선하던지 이 조직을 떠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지금 조직에서 업무 능력을 키우고 난 뒤 떠나는 것을 추천드린다. 평판이라는 게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끌어올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되돌리기 어렵다면 이 조직에서 일 잘하는 방법을 실행해 가며 누가 알아주건 말건 내 역량을 향상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맞는 조직으로 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흘수선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 일이 너무 과중하다면 일의 양을 조절하자. 일이 없다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출구전략을 고민해 보자. 직장에서 흘수선을 파악하고 평형수를 채웠다 뺐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