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방법 소개
내 첫 직장이었던 중공업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큰 배를 만들던 그 회사에는 부두 여기저기에 큰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용접 소리, 크레인 움직이는 소리가 항상 울려 퍼지는 곳이었다.
당시 언론에 자주 나오던 기사가 있었다. "왜 한국은 크루즈선을 만들지 못할까"였다.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컨테이너선, 가스운반선, 부유식 생산, 저장, 하역선 등은 척척 잘 만들면서 유독 크루즈선을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 기사였다. 크루즈선 특성상 배가 항해 중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한국은 이런 기술이 없어서 만들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그 기사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글을 쓰다 보니 크루즈선에 대해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사실 관계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으니 잘못된 처방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에서 크루즈선을 만들지 않는 것은 기술이 없어서도 아니고 만들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다. 만들 수 없는 환경 아래 있기 때문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크루즈선 사례를 기초로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덥석 맡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돈이 되는 제품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것이 모든 기업들의 생리이다. 조선업계에서 크루즈선 자체 제작을 당연히 고민해보지 않았을 리 없다. 컨설팅 업체를 통해서 시장 상황도 분석해 보고 비용, 수익 분석도 진행해 보았다.
결론은 '한국에서는 크루즈선을 제작해 봐야 이익이 나지 않는다'였다. 이렇게 결론이 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에는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는 문화가 아예 없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태어났던 시, 군 지역 단위를 평생 벗어나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배는 사람이나 물건을 싣고 육지와 섬 사이를 운반하거나 해군용 함선, 고기잡이 용도로만 쓰였을 뿐이었다.
게다가 남녀가 어울려서 무도회를 하는 문화는 더더욱 없었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7살만 되면 남자와 여자는 한 자리에 있지 못하게 했다. 1883년, 개항 직후에 영선사라고 해서 조선의 고위직 신하 몇 명이 배를 타고 미국을 거쳐 유럽을 탐방하게 되었다.
이때 조선 사절단을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남녀가 같이 껴안고 춤을 추는 무도회였다. 조선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사절단들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문화적 충격이 엄청났던 것이다.
지금은 줌바 댄스, 에어로빅 등 춤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서양식 무도회는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이런 무도회 시설을 만드는 기업이 대한민국 내에 있을 턱이 없다. 크루즈선의 경우 무도회장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데 이 경우 먼 유럽에서 설비를 일일이 다 수입해서 기술자까지 현지에서 데려와 조립하는 수밖에 없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다.
한국의 경우 수영장을 갖춘 집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좁은 국토 때문에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고, 일반 주택의 경우도 전원주택이 아닌 다음에야 수영장까지 갖춘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연히 수영장 설비를 제작하는 국내 업체는 많지 않다. 특히나 서양 사람들이 선호하는 수영장은 한국과는 다르다. 결국 크루즈선에 수영장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외 대부분의 크루즈선 편의시설들은 크루즈선을 많이 타는 서양문화에 맞춰 구비되어 있다. 당연히 한국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들이 많다. 거의 모든 설비를 다 수입해야 하는데 이러고도 수익을 내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미 크루즈선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외국 조선소들이 있는데 여기에 한국기업이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래서 한국 조선소들이 크루즈선을 제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계속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 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이것저것 손을 대는 것이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자기가 해보지 않은, 잘 모르는 일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런 일에 진출하려고 하면 꼭 사기꾼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부추기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된다.
내가 잘 모르는 일에 뛰어드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직장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퇴직금 모두 날리고 모아놓은 노후자금까지 다 잃어버리는 사례가 참 많다. 다른 사람은 다 실패해도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사람은 하나의 일만 계속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 직장만 계속 다닐 수는 없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잘하는 일, 많이 해본 익숙한 일을 하자. 영업직으로 오래 근무했던 사람은 그 경력을 살리고, 재무 회계 업무를 오래 한 사람은 그 길로 가는 것이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로 다른 역량을 결합시킨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춰 글로벌을 무대로 활동한다던지, AI 활용 능력을 통해 챗봇을 만들고 AI 기반 홍보까지 나설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컨버젼스, 하이브리드 이런 용어가 유행하는 세상이다. 내가 잘하는 주 업무를 기반으로 다양한 엔진을 장착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바나나도 재배하고 사과, 사탕수수도 재배하고, 반도체도 만들고 장난감까지 모든 것을 다 만들어서 수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일까? 수입이 줄어드니 경상수지 흑자도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시야가 좁은 것이다. 더 이익이 되는 물건에 집중하지 않고 모든 물건을 자체 생산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자력갱생 어쩌고 헛소리 하는 북한이 지금 어떤 꼬락서니인지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경제학에는 '비교우위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한 국가가 어떤 물건을 생산할 때 다른 국가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것을 생산해서 수출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수입하면 서로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조선회사들이 크루즈선을 만들지 않는 것은 이 비교우위 이론에 따른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거나 하고 싶은 거 다 건드려 보는 것은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비교우위에 따라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장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수중 용접사처럼 용접을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하고 잠수도 잘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잘하는 업무를 기본 베이스로 하여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부가사항을 플러스하는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송충이가 고기 먹으면 큰일 난다. 솔잎을 먹으면서 떡갈나무 잎도 먹고 단풍나무 잎도 먹으면서 체력을 키워 나가면 된다. 절대 내가 잘 모르는 일에는 함부로 뛰어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