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앞선 글에서는 한 국가 안에 언어가 무려 800개가 존재하는 파푸아뉴기니 사례를 살펴보았다. 국민들 간에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다 보니 부족 간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언어가 통하는 사람끼리는 '원톡'이라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발동해서 죄수도 마음대로 풀어주고 허가도 일사천리도 통과된다.
당장 내가 편의점에 가서 콜라 한 캔을 집어 들고 카드를 내니 점원이 "请用现金支付!" 이렇게 말해버리면 황당할 것이다. 나보고 도대체 뭘 어쩌라는 말인 건가..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고 카드를 내니 자꾸 카드를 받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물건 하나 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면 당연히 대화가 가능하다. 이게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국가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내가 다른 사람이 하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잘 늘어놓는다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사례처럼 원톡에서 배제되고 고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고립은 경쟁력 상실을 의미하기에 이 기회에 반드시 그 원인을 찾아보자.
한 대리가 한참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띠링띠링 울린다.
'뭐야, 바빠 죽겠는데'
받을까 말까 하다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받았다.
"안녕하세요! 시스템지원팀 박민석 대리입니다. 지난번 사내시스템에 올려주신 서빙로봇 상품 소개자료 건으로 전화드렸습니다
"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걸까요?"
"최신 자료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최신 자료요? 무슨 말씀이신지.."
"회사 게시판에 최신 자료를 올리게 되어 있잖아요. 근데 올라가 있는 자료가 예전 자료인가 봐요. 정보가 잘못된 게 많이 있더라고요"
"게시판이요?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가뜩이나 바쁜데 한 대리는 열이 확 뻗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회사 모든 임원, 팀장들이 모이는 연간 실적 공유회는 큰 행사이다. 올해 실적 공유회는 차 과장이 담당하고 있다. 팀장은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뭔가 나사가 풀린 듯한 차 과장이 이 업무를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실적 공유회는 어디까지 준비되었어? 중간보고라도 좀 하지"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아니.. 열심히가 문제가 아니라, 잘 되어가고 있어? 지난번 그 호텔 리셉션장은 음향 시설이 어때?"
"가봤는데 방음이 잘 되어서 주변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 방음 말고.. 마이크랑 스피커 음향이 어떻냐고?"
"문제없습니다. 직원이 문제없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직접 확인했어야지. 작년에 마이크 삑삑 거려서 민망했었잖아"
"마이크 얼마 전에 새로 사서 문제없을 겁니다"
팀장은 한숨을 내쉰다. 뭔가 대화 핀트가 조금씩 안 맞는다. 호텔 음향시설이 어떤지를 물어보는데 소음이 어떻다는 둥, 새로 산 마이크라 괜찮다는 둥 질문에서 벗어난 답이 날아오는 것이다. 이번 행사 어째 느낌이 싸하기만 하다.
내일 있을 워크숍을 앞두고 팀장이 회의를 소집했다.
"오 대리는 오전 8시에 사무실 도착하면 바로 지하 우편함에 가서 교재 챙겨서 차 트렁크에 넣어줘. 그거 끝나면 8시 반에 컵과일 50개 배달 올 건데 그것도 받아서 같이 넣고 메리어트 호텔로 와줘. 그 정도는 부담스럽지 않지? 이거 실수하면 절대 안 돼!"
"네. 이해했습니다"
오 대리는 수첩에 부지런히 받아 적는다.
다음 날 아침, 오 대리는 차 트렁크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넣어서 메리어트 호텔에 도착했다. 팀장이 물품을 체크하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오 대리를 바라보았다.
"오 대리! 이거 우리 교재 아니잖아. 지하 우편함에서 가져온 거 맞아?"
"지하 우편함이요? 1층에 있는 우편함에서 가져왔습니다"
"지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교재 이름 좀 봐. 이름이 아예 다르잖아. 이름만 봐도 이거 아니라는 거 딱 알겠다.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일을 해. 당장 1시간 뒤에 워크숍 시작인데 어쩔 거야!"
오 대리는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살다 보면 이처럼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첫 번째 사례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질문을 받는 사례이다. 참 당황스럽다. 군대 생활관에서 편안하게 티브이 보며 누워있는데 갑자기 당직사관이 들어오더니 이유도 말해주니 않고 총 들고 군장 다 갖추고 5분 안에 집합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왜 물어보는 건지 정보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면 질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동문서답으로 이어지게 된다.
두 번째 사례는 변명을 하려다 보니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팀장의 추궁은 이어진다. 자기도 잘 모르겠는데 자꾸 물어보니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기보다 자꾸 요리조리 피해 가며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 보려고만 한다.
세 번째의 경우, 팀장은 오 대리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전달하고 있다. 오 대리는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는 메시지에만 집중했을 뿐, 그 물건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신경 쓰지 못했다. 한 번에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다 보니 세부 정보를 흘려버린 케이스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상대방과의 대화는 산으로 올라가게 되고, 갈등만 쌓이게 된다. 상대방은 나에게 실컷 다 설명해 줬는데 나는 이해를 못 했다 보니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된다. 대화 패턴이 이렇게 흘러가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상대방의 말에 너무 집중하려고 하면 오히려 세부 내용을 놓치게 된다. 상대방이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려다가 거기에 정신이 팔려 정작 뒤에 나오는 말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수비수들이 실점하지 않으려고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열심히 쫓아다닌다. 그러면 과연 실점하지 않을까? 오히려 더 실점을 많이 하게 된다. 공만 쫓아다니다가 상대팀 공격수가 뛰어 들어오는 것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 오히려 놓치게 된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다가 정작 큰 그림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왜 이 말을 하고 있고, 어떤 주제로 말하는 것인지 큰 틀을 중심으로 이해하자. 그 뒤에 세부내용은 재차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내 입으로 다시 물어보면서 확인하자. 이메일이나 문자 등 글로 적어서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더욱 좋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것,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 등 나에게 불리한 것을 주제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피하고만 싶은 게 사실이다. 기분 좋은 결과가 나올 턱이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말을 아끼자. 그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자꾸 계속 말을 하면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된 말이 나오게 된다. 솔직히 지금 상황을 이야기하고 빠르게 더 알아보고 수습하겠다고 인정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LA에 비가 공연 가는 것을 네 글자로 줄이면 뭐가 될까?"
"음.. 모르겠는데요. 뭘까요?"
"정답은 LA갈비야! 하하하!"
뜬금없이 아재 개그를 퍼붓는 팀장이다. 팀장이 부임한 지는 이제 사흘 정도 되었는데 이 사람 대화 패턴을 도무지 모르겠다. 그때 과장이 슬며시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팀장이 저렇게 말하는 거 웃으면서 받아줘야 해. 재미없다고 말하거나 반응 안 보이면 삐져서 그거 앙갚음하는 스타일이야"
상대방의 대화 패턴을 알게 되면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이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쉽고 쉽게 대처하게 된다. 틀, 시마이, 어림짐작 등 일본어 단어를 자꾸 쓰는 사람과의 대화라면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다면 대화가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데 정신을 뺏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까 1번 사례처럼 상황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다짜고짜 말부터 거는 사람들이 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기만 하다. "어제 그 일 어떻게 되었어요?" 이러면 '도대체 어제 그 일이 무엇일까?'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러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혹시 내가 실수했던 그 일 다시 끄집어내서 혼내려는 건가? 아님 이번 주 실적 보고서?' 괜히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는 재빠르게 상황부터 파악하자. 추측하려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물어보자.
"무슨 일로 그러시나요? 정확하게 정리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대화를 이어나가자.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대화만 이어질 뿐이다.
창세기에서 니므롯이라는 지도자가 바벨탑이라는 높은 탑을 지으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는 언어가 하나였기에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셨다.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는 시도는 허무맹랑하면서 교만하게 보였다.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모두 달라지게 하셨다. 하루아침에 "굿모닝", "구텐 모르겐", "니하오", "마르하반" 각기 쓰는 말이 다 달라졌으니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싸우다가 흩어지고 말았다. 당연히 바벨탑 공사는 그대로 중단되었다.
만일 우리가 파푸아뉴기니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늘 의사소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언어가 무려 800개라 저마다 각각 다른 언어로 말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회사에서건 집에서건 대화가 잘 되지 않아 답답한 순간들이 참 많을 것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 오해하기도 하고 놓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엉뚱하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한 번에 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대화의 의도, 목적, 주요 내용을 파악한 뒤, 세부 내용은 내가 이해한 언어로 다시 한번 물어보자.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요청하자. 변명은 피하고 솔직하게 상황을 말하도록 하자. 그리고 상대방이 말하는 패턴을 알면 대화가 한결 쉬워진다. 결국 많이 대화해 보자.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는 없지만 이런 노력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 분명 좋아질 수 있다.
우리는 단일언어를 쓰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