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일 잘하는 방법
많은 한국인들은 고구려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만주 벌판까지 드넓은 영토를 호령했던 고구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수나라, 당나라에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전투력.. 그래서인지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이후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상상해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고구려가 절정의 전투력을 보여준 쾌거가 있었다. 그 전투는 바로 '살수대첩'이었다. 서울 을지로의 기원이 된 '을지문덕'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살수(청천강)에서 수나라군을 대파한 것이다. 누구나 역사 공부를 하면서 외웠던 그 전투이다. 수나라가 이때 받았던 피해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이 전투 패배로 인해 곧바로 국가가 멸망해 버렸다.
이때 수나라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병사들에게 1인당 50kg에 달하는 식량을 직접 짊어지고 500km에 달하는 거리를 행군하도록 한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도록 하기 위해 수송부대도 운영하지 않고 각자도생 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각자도생 한 사람은 전체 인원의 1%도 채 되지 않고 머나먼 고구려 땅에서 죽고만 것이었다.
직장에서 과도한 양의 업무를 부여하는 상사들이 있다. '이거 다 너 좋으라고 시키는 거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 내가 사원 때는 이거보다 더했어.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서 숙식했던 적도 있었어" 이런 사탕발림으로, 때로는 협박으로 팀원들에게 일을 던져준다. 팀원들은 과도한 업무에 깔려 신음하다가 결국 번아웃으로 나자빠진다. 그렇게 이직하게 되고 병석에 눕게 된다.
수나라의 패배 사례는 오늘날의 직장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렇다면 수나라 황제 양제는 왜 병사들에게 직접 식량을 지고 가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렸던 걸까?
직장인들 중에는 말도 안 되는 업무량에 지금 이 시간에도 신음을 내지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직장에서 과중한 업무 부여가 어떤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 살수대첩 사례를 통해 총 2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서기 7세기 무렵, 수백 년 간의 혼란기를 끝내고 중국 대륙에는 마침내 통일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 국가가 바로 '수나라'였다. 수나라는 고구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동쪽에 버티고 앉아 백제, 신라, 일본과 교역하는 것을 방해하며, 북방의 돌궐족과 손을 잡고 끊임없이 수나라를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수나라는 고구려를 정복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수차례의 시도에도 고구려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수나라는 고구려가 강한 국가임을 인식하고 특단의 대책을 세우게 된다.
"모든 병력을 다 끌어모아라. 100만이 넘는 대군으로 고구려를 칠 것이다"
당시 수나라 병사의 수는 무려 113만 명이었다. 당시 중국 인구가 1억 명이 되지 않았는데 113만 대군은 짜고 짜낸 숫자였다. 이쯤 되면 고구려 하나 때려잡자고 국가의 명운을 걸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까맣게 땅을 메운 수나라 군대는 개미떼처럼 고구려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나라의 명운을 걸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수나라는 요하강 하나를 건너는 데만도 두 달이나 걸렸다. 고구려가 끊임없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다리를 계속 끊었기 때문이다.
변방의 성 하나도 제대로 정복하지 못하자 수나라는 다급해졌다. 식량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30만의 정예병을 별동대로 편성하여 곧바로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으로 진격하도록 명령한다.
이때 수나라 황제 양제는 황당한 지시를 내린다. 별동대에게 직접 보급품을 지고 이동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각종 군장류에 식량까지.. 군장류야 평소에도 병사 개인이 들고 다니는 것이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식량이었다. 인당 석 섬, 지금 기준으로 50kg의 식량을 지고 가라고 한 것이다.
평생 무거운 짐 지어본 적 없는 황제다 보니 사람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대한민국 군대의 경우, 완전군장을 할 경우 최대 40kg가 나온다. 훈련소 때 완전군장을 하고 1박 2일 행군을 경험해 본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나중에는 기진맥진해서 비몽사몽 상태로 겨우 행군을 하게 된다. 인간이 짊어지고 갈 무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군장은 병사들에게 큰 부담이다. 오랜 시간 완전군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전투력 감소로 이어지기에, 웬만하면 이런 군장은 트럭을 통해 옮긴다.
당시 병사들은 지금 병사들과는 체격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불과 150년만 해도 조선의 성인 남성 키는 160cm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50kg는 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 무게를 지고 전속력으로 요동에서 평양성까지 500km가 넘는 거리를 진격하게 했으니 그 결과는 어땠겠는가?
병사들은 빠르게 지쳐만 갔다. 그들은 몰래 식량을 조금씩 땅에 버리거나 아예 숲에다가 흘려버렸다. 심지어 밤에 땅을 파고 묻어버리는 병사들도 있었다. 너무나 무겁고 힘들다 보니 자기 목을 자기 손으로 스스로 졸라버린 것이었다. 병사들도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지만, 당장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상부에서도 이 사실을 눈치채고 식량을 몰래 버리다가 적발될 경우 사형으로 다스렸다. 그러나 무게에 짓눌린 병사들이 나 살자고 식량을 몰래 버리는 것을 일일이 다 감시할 수는 없는 판이었다. 평양성 근처까지 도착할 무렵, 이미 식량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싸워보기도 전에 굶주림 때문에 전투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식량을 싣고 서해안으로 오던 수나라 수군마저 고구려군에게 격퇴당했다. 고구려는 수나라 군이 지나가는 지역은 청야전술을 통해 식량이 될만한 작물은 모두 없애버렸다. 이제 30만 명의 수나라 별동대는 독 안의 쥐가 되고 말았다.
이 당시 고구려의 총사령관은 을지문덕 장군이었다. 그는 사신으로 가장하여 수나라 부대에 들어갔다. 병사들은 먹을 것이 없어 지쳐 쓰러져 있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을 파악한 을지문덕 장군은 일부러 고구려군에게 거짓으로 패배하며 수나라 부대를 평양성 깊숙이 유인하였다.
수나라에서는 고구려가 약하니 식량이 부족해도 어떻게든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만 정복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직접 맞닥뜨린 평양성은 엄청난 규모의 견고한 성이었다. 지쳐있는 수나라 병사들이 덤벼들어서 무너뜨릴 수 있는 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을지문덕이 수나라에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수나라가 군대를 철수하면 고구려 왕과 본인이 직접 수나라 황제를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나라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식량도 다 떨어진 상황이었고 평양성은 도저히 함락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수나라는 못 이긴 척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뜩이나 후퇴할 명분이 필요했는데 얼씨구나 좋아하면서 그 즉시 군대를 철수했다. 그러나 이것은 을지문덕의 계략이었다. 수나라 30만 군대 앞에는 다가올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수나라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고구려는 후퇴하는 수나라군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참에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다시는 고구려를 침략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퇴하는 수나라 군대를 끊임없이 공격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나라 군대는 전투를 치러야 했다. 전열을 갖춰서 전투를 하려고 하면 고구려 군대는 도망치고, 치고 빠지기 식 전투가 계속되자 가뜩이나 배가 고픈 수나라 군대는 더욱 빠르게 지쳐갔다. 지쳐 쓰러져 낙오되는 병사들도 부지기수로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게릴라 전에 끝이 아니었다. 을지문덕은 비장의 전략을 준비하였다. 수나라 군을 한 곳에 몰아넣고 완전히 몰살시킬 비책이었다. 그 비책이 바로 '살수대첩'이었다. 수나라 군이 지금의 평안북도 지방에 있는 청천강을 건널 때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전투에서 가장 취약한 순간 중 하나는 강을 건널 때이다. 강은 뻥 뚫린 공간이라 피할 곳이 없다. 거센 물살 탓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어렵다. 그렇기에 강을 건널 때 적이 기습하게 되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이런 상황을 막고자 강을 건널 때는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철저하게 주변 정찰을 한다.
그러나 수나라 병사들은 행군에 지치고 배고픔에 탈진한 상태였다. 기본적인 정찰조차 소홀히 한 채 살수(청천강)를 건너게 되었다. 을지문덕은 덫을 쳐 놓은 채 수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나라 부대가 한참 살수를 건너고 있을 때 을지문덕은 크게 소리쳤다.
"우리 땅을 유린하는 저 악한 수나라 놈들을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마라. 공격하라!"
고구려군은 함성 소리와 함께 일제히 강을 건너는 수나라군에게 화살을 비 오듯이 날렸다. 수나라군은 완전히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수나라군은 강물에 들어간 채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수나라 군사는 고작 2,7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30만 대군 중 1% 채 되지 않는 군사들만이 간신히 도망친 것이었다. 이 패배는 엄청난 후폭풍을 초래했다. 백성들이 들고일어났고 중국 대륙 각지에서 반란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수나라는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멸망하게 되었다. 고구려에게 당한 타격으로 국가까지 무너지게 된 것이었다.
수나라가 무너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병사 각자에게 50kg의 식량을 지고 가게 한 것에 있었다.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너무 큰 부담을 짊어지게 함으로써, 전투력이 떨어진 것이었다. 이는 수나라 군대만의 실책이 아니다. 지금 많은 직장에서도 리더들의 승진하고픈 욕심 때문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다음 2편에서는 수나라 군대가 무너지게 된 원인이었던 50kg 식량 운반을 내용으로 하여, 직장에서 과도하게 업무를 부여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지 설명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