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워크가 무너지는 과정
20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가수는 누구일까?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고,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을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 전문가들이 꼽는 최고의 뮤지션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영국의 4인조 밴드 '비틀스(Beatles)'이다. 비틀스는 노래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아예 세계 음악 역사를 바꾸었다고까지 평가받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비틀스의 인기는 어마무시했다. 비교가 될만한 다른 가수들조차 없었다. 롤링 스톤즈, 비지스 등도 있었지만, 비틀스에 비교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그만큼 비틀스가 주는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막강하기만 하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비틀스는 멤버들 간 갈등이 극심했다. 멤버 하나하나가 작곡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가창력도 뛰어났다. 게다가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다 보니 2인자로 남기를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여기에 분열을 부추기는 외부인들이 끊이지 않았다. 솔로로 독립하면 더 잘 될 것이라고 꼬드긴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멤버들 간에 사이가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비틀스 멤버들은 그럼 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 이들의 사이가 갈라진 것일까? 사실 직장에서도 친했던 동료들 간에 사이가 틀어지고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이때 벌어지는 일은 무엇인지, 바람직한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비틀스의 역사를 기반으로 두 편의 글로 나누어 알아보고자 한다.
비틀스 멤버들이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사실 존 레넌, 폴 메카트니, 조지 해리슨은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이미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역 밴드를 결성하여 끈끈하게 맺어진 쿼리뱅크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존 레넌이 '쿼리맨'이라는 고등학교 밴드를 만들었고 여기에 하나둘씩 멤버들이 합류했던 것이다. 이들은 절친했고 늘 생활을 함께했다. 오죽하면 초기 비틀스 멤버였던 피트 베스트는 외부 출신이라 이 세 명의 끈끈한 관계에 어울리지 못했고, 다른 멤버들에 의해 밴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쫓겨났을 정도였다.
피트 베스트 대신 들어온 드러머 링고 스타는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스타일로, 이 세 명의 끈끈한 관계에 억지로 끼려고 하기보다는 관계를 존중하면서 자기 연주에 전념하였다. 그렇게 네 명의 멤버는 순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그만 바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들은 실력을 쌓아나갔다. 당시 이런 밴드들은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수많은 밴드 중 하나 정도로만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한줄기 빛이 다가왔다. 비틀스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한줄기 빛은 바로 '브라이언 앱스타인'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매니저로서, 당시 무명이었던 비틀스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작곡 능력에 탄탄한 연주, 뛰어난 가창력, 준수한 외모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그들이 전 세계 팝 음악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그는 비틀스를 다시 세팅한다. 다른 세 명의 멤버와 늘 겉돌기만 하던 피트 베스트를 내보내고 링고 스타를 새롭게 합류시켰다. 그리고 단정한 이미지로 바꾸도록 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늘 젊잖은 말투를 사용하도록 시킨 것이다. 앱스타인의 가이드에 따라 비틀스는 변화하였고, 마침 TV가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그들의 연주는 빠르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비틀스 멤버들에게 있어 큰 형님과 같은 존재였다. 아이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던 비틀스 멤버들은 앱스타인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 개성이 넘치고 자기주장 강하던 비틀스의 멤버들은 앱스타인 말이라면 두 말 없이 따랐다. 자기들을 여기까지 오르게 한 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앱스타인 역시 비틀스를 세계적인 밴드로 키워보고 싶었다. 이들은 한 마음이 되었고 비틀스는 영국을 넘어 유럽 전체, 미국에도 진출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는 '애드 설리번 쇼'라는 인기 절정의 쇼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앱스타인은 이 쇼에 비틀스가 출연하도록 성사시킨 것이었다. 그 쇼는 대히트를 쳤고 비틀스는 이제 양키 스타디움 등 미국 전역에서 만원 관중 앞에서 노래하는 스타가 되었다.
한없이 사이가 좋을 것만 같았던 비틀스 멤버들 간에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질투하고 이간질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꼬이는 법이다. 비틀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거센 태풍이 조금씩 밀어닥치던 이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정신적 지주였던 브라이언 앱스타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갑자기 사망했던 것이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사건에 비틀스 멤버들은 아연실색했다. 멤버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중재하고 조율하던 앱스타인이었다. 레코드사 계약이나 판권 관련 협상, 음악 프로나 콘서트 일정 조율은 그의 몫이었다. 앱스타인 덕분에 비틀스 멤버들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앱스타인은 사라졌고 비틀스는 물가에 놓인 아이 신세가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음악에만 전념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던 이들은 세상 물정에 어둡기만 했다.
이때부터 멤버들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폴 메카트니가 리더 역할을 하며 음악 방향 설정이나 기획사와의 협상을 주도하게 되었는데, 자존심이 강하고 폴보다 나이도 두 살이 많던 존 레넌은 폴의 권위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폴은 오랜 꿈을 펼치고자 했다.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사를 차리고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발굴하고자 했던 것이다. 회의적인 다른 멤버들을 설득하여 '애플'이라고 하는 기획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경영을 해본 적 없는 그들이 꿈만 가지고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플에서는 별다른 유망주를 키워내지 못했고 경영난에 쳐하면서 멤버들에게 큰 금전적인 손실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이때부터 폴 메카트니는 조금씩 신망을 잃게 되었다.
폴은 영화음악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Magical mystery tour라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이었는데, 당시 실험적이었던 사이키델릭 스타일을 수록하였고 당시는 흔치 않은 컬러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작품성은 뛰어났으나 시대를 너무나 앞서갔던 탓에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흥행에 실패하게 되었다. 이 일은 폴 메카트니와 다른 멤버들 간의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이 무렵, 조지 해리슨은 힌두교에 빠지고 만다. 조지 해리슨은 폴 메카트니나 존 레넌에 밀려 존재감이 크지 않은 멤버였다. 3인자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이때 조지 해리슨을 사로잡았던 것이 있었다. 그건 인도의 '힌두교'였다. '라기 샹카르'라는 인도의 시타(기타와 비슷한 힌두교의 악기) 연주자와 친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툭하면 그는 인도로 날아가 인도의 힌두교 구루(영적 지도자)들과 만나고 다른 비틀스 멤버들에게까지 만남을 권유하기도 했다. 조지 해리슨은 이 무렵부터 비틀스 음악에 인도 힌두교적 요소들을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비틀스 멤버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았다. 라기 샹카르가 자꾸 자기 사업에 멤버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등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보이자 멤버들은 샹카르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지 해리슨과도 큰 갈등을 빚게 되었고 이제 멤버들 간의 분열의 늪은 더 깊어지기만 하였다.
이 무렵 비틀스 멤버들을 찢어놓는 결정적인 인물 하나가 등장하게 된다. 그 인물은 '오노 요코'라고 하는 일본계 미국인 여자였다. 오노 요코는 전위예술가로 자기 옷을 가위로 자르게 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기행을 통해 명성을 쌓은 예술가였다.
존 레넌은 자기보다 7살이나 많은 이 여성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었다. 존은 결혼해서 이미 아들도 있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동양적인 매력을 갖고 있으며 자기를 엄마처럼 리드해 주는 오노의 존재는 그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오노 요코를 만난 이후, 존은 마치 사회운동가처럼 바뀌고 있었다. 음악도 평화나 탈핵 이런 메시지로 변화하고 있었고, 당연히 다른 비틀스 멤버들과의 음악적 견해차로 인해 큰 갈등을 빚게 되었다.
비틀스 멤버들은 절대 멤버 외 다른 외부인을 연습실에 데려오지 않는다는 룰을 가지고 있었다. 오노는 이런 룰을 무시한 채 수시로 연습실을 드나들었고 다른 멤버의 과자까지 허락 없이 먹기도 하였다. 특히나 조지 해리슨은 저 여자랑 당장 헤어지라고 존에게 소리를 칠 정도였다.
오노는 툭하면 비틀스 다른 멤버들을 흉보았다. 사랑에 콩깍지가 씐 존은 그 말이 다 곧이곧대로 들릴 뿐이었다. 특히 오노는 폴 메카트니 비난을 많이 했는데 이로 인해 둘은 결국 화해할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그만큼 베갯송사의 힘은 막강했던 것이다. 가뜩이나 사이가 많이 멀어져 있는 상황에서 오노 요코가 팀원 사이를 이간질하자 팀은 급속도로 사분오열 되고 말았다.
존 레넌은 마침내 자기는 팀을 나가겠다는 뜻을 전하기에 이르렀다.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다른 멤버들도 이런 날이 오리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미 멤버들 간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폴 메카트니는 해체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개인 앨범에 개인 매니저까지 고용해서 활동을 시작한 다른 멤버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마침내 1970년 4월, 폴 메카트니는 기자회견을 열고 비틀스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팝의 전설 비틀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존 레넌은 그 와중에도 팀의 중심인 자기가 직접 해체 발표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팀은 사이가 심각할 정도로 틀어져 있었다. 리버풀의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었던 15년 우정의 멤버들은 결국 그렇게 남남으로 헤어지고 말았다. 해체를 예감하고 Let it be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마지막 시도를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번 떠난 마음을 되돌리기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멤버들은 그 후에 개인 활동을 하며 지냈다. 존 레넌은 Imagine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발매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1980년 한 광팬이 쏜 총에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다. 조지 해리슨은 2001년 후두암으로 사망하였고 남은 두 명의 멤버 폴 메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활발하게 가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음 2편에서는 비틀스가 왜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는지 주요 원인별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직장에서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틀스의 사례를 보면서 직장에서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