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갈등 없이 직장생활 하는 방법
서 코치는 회사에서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년 단기 계약으로 데려온 외부 코치이다. 인사팀 상무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상무가 직접 데려왔다는 소문도 있다.
아무튼 그는 회사의 조직문화를 진단하고 개선하는 프로젝트 총괄을 맡게 되었다. 팀원들은 많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조직문화라는 게 옷 갈아입듯이 바꾸고 싶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 모두들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가 강의하는 것을 들으면서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난데없이 광우병 시위 당시 그때 이명박 정권을 끌어내렸어야 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조직문화 개선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그는 대학교 재학 시절, 시위하다 닭장차도 타봤고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그가 강의 중에 사례로 제시하는 것들 중에는 미군 장갑차 시위, 사드 배치 같이 극히 정치적인 내용들도 많았다. 당연히 구성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치질하려고 이 회사에 코치로 들어왔냐? 이런 인간 데려온 상무도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이 직장인 익명 공간인 블라인드에 마구 올라왔다.
결국 그는 1년 뒤, 조직문화 개선 성과를 아무것도 거두지 못한 채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안 팀장은 자칭 애국보수이다. 그의 자리를 지나갈 때 컴퓨터 화면을 보면 일간 베스트(일베) 사이트가 항상 켜져 있다. 노무팀 팀장이었던 그는 노조와의 협상 때 늘 강경책으로 일관했다.
노조는 북한 지령을 받는 집단이고, 사회악이니 인간 대접을 해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당연히 노조와 협상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노조에서는 안 팀장과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고 회사에 선포할 정도였다. 그는 노무팀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신규 인원을 채용했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비슷한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뽑았다는 말이 무성했다. 면접 때 정치성향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자기와 맞는 사람을 채용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일이 터졌다. 리더 세미나 때 그가 강연을 진행하는 시간이 있었다. 새해 노사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것이었다. 그냥 원론적인 말만 하고 끝냈으면 되는데, 안 팀장은 열의에 불탔다. 마치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정당 대변인 같았다.
북한과 중국이 대한민국에 어떻게 손길을 뻗치고 있는지, 이 땅의 수많은 정치인들과 노조들이 북한과 중국에게 놀아나고 있는지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청중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말은 안 팀장이 하는데 당황하는 것은 청중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이 강연 이후 회사에서는 안 팀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결국 회사에서는 안 팀장을 권고사직 형태로 내보내고 말았다. 회사에서 데라고 있기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례 다 허구의 이야기일 것 같지만, 실제 내가 겪었던 사례들을 각색한 것이다. 정치색은 극과 극이지만, 두 사람 모두 회사를 떠나게 된 원인은 같다. 필요 이상으로 본인의 정치색을 사람들에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표현하였다. 정치에 관심이 많건 적건 간에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정치적인 색깔을 갖게 된다. 우리 모두는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 누구도 자기의 발언으로 인해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는 헌법상의 원리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면 이와는 크게 다르다. 사람들이 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주제가 있다. 강의를 할 때도 이 주제들은 되도록 다루지 말라고 조언을 듣게 된다.
정치, 종교, 성별, 지역, 외모 관련 내용들이다. 사람은 자기가 중시하는 가치관이 있고, 자존감을 갖고 있다. 그 가치관이나 자존감이 훼손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해 말했을 뿐,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절대 아님에도 마치 그 사람을 비난한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회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절대로 다른 사람들 생각이 나와 같지 않다. 설령 정치색이 비슷하더라도 그 스펙트럼은 확연하게 다르다. 극단적으로 한쪽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도에 가까운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빨갱이, 꼴통 수구 이런 말을 이런 중도 성향의 사람들이 듣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회사일은 혼자서 하는 업무는 드물다. 톱니바퀴처럼 여러 업무가 맞물려 있고 이 과정에서 담당자들끼리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관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일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당장 자기에게 독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정치 관련 대화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무조건 거부하거나, 그저 좋다고 신나서 실컷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명확하게 자기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 안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을지 생각해 보자. 회의 시간에 뜬금없이 정치 이야기를 한다면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업무를 논의하는 시간에 극히 민감한 외부 주제를 꺼내는 것은 업무 논의에 별 관심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걸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일단 안 하는 것이 정답이다. 말이라는 게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꼭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상대방이 그런 주제에 호의적인지, 나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이 사람의 정치색은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좋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내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경우에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먼저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려보자.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저희가 얘기하는 이 주제에 대한 대응방안은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화제를 다시 원래의 주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안전한 주제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맞아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보면 한숨만 나오지요. 그런데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표정이 밝으셔서요!" 이렇게 주제를 전환하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가 계속 흐르도록 하기보다는, 다른 주제로 전환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 참여를 원하지 않음을 명확히 하되, 정중함을 유지하자.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릅니다." 또는 "정치 이야기는 좀 복잡한 것 같아요. 정치 생각하면 속이 답답해서 저는 잘 떠오르지 않으려고 해요.", "저 살아가기도 힘든데 정치까지 신경 쓰기엔..." 이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센스가 필요하다.
불편함을 느낀다면 굳이 그 자리에서 경청과 공감의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할 필요는 없지만, 중립을 유지하면서 선을 긋고 넘어가자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가장 좋은 것은 단순히 공감하며 듣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 그렇군요, " "흥미롭네요, "와 같은 중립적인 반응만 보이면 된다. "맞아요, 요즘 뉴스에 관련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저희 남편도 이 문제 가지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참.." 이 정도로 이야기하고 넘어가면 된다. 거기에서 종북 주사파, 수구 친일파 이런 이야기로 넘어가면 대화가 산으로 가게 된다.
대화하는 사람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면 덜하겠지만, 그 무리 중에는 분명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침묵의 나선 이론'에 따르면 다수가 여론을 형성하게 되면 소수는 침묵하게 된다고 한다. 그 침묵이 결코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내 정치 의견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히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 자기 정치색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연히 비슷한 정치색을 가진 사람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은근히 따돌리는 것이다.
맨 앞에서 소개드렸던 서 코치 사례에서 실제 그 코치는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자기와 정치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방을 만들어서 온갖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친목질을 했다. 회사가 마치 당원들 모임처럼 된 것이었다. 그렇게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반드시 직속 임원이나 팀장에게 이야기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임원이나 팀장마저도 똥, 오줌 못 가리고 같이 부화뇌동한다면 그때는 고충 신고까지도 고려하여 이 문제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택시에 대해 자주 불평하시던 것이 있었다.
"택시기사들 중에는 여당 지지하는지, 야당 지지하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 자기 지지 정당이랑 다르면 말도 함부로 하고 운전도 거칠어진단 말이지"
정치에 사람이 너무 몰입하게 되면 내 편 아니면 다 적으로 보인다. 전투에서 적군이 보이면 무조건 사살해야 하는 것처럼 평소에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무슨 팬카페 마냥 지지하는 정치인 꽁무니 쫓아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렇게 쫓아다녀서 대한민국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게 있느냐고 말이다. 만약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이 사람은 현실인식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글이 절대 아니다. 정치에는 관심을 갖되 그걸 쓸데없이 남에게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절대 이득 되는 것 없다. 오히려 나와 반대되는 정치성향 가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뿐이다.
그렇게 한 번 거부감이 생기면 같이 일하기 힘들어진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다 틀린 것만 같고, 보고서는 어딘지 이상하게 보인다.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다. 때로는 침묵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에 대해서는 최대한 침묵하자. 그리고 일에 집중하자. 불필요한 말로 점수 깎이면 자기만 손해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