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경쟁이 미치는 영향
백 차장은 직장생활 내내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핵심인재이다. 깔끔하고 명료하게 보고서를 쓰는 능력 하나는 최고라는 소리를 들어온 백 차장이다. 그런 백 차장에게는 라이벌이 있다. 그룹영업팀의 채 차장이다. 그룹영업팀 선임답게 그는 붙임성이 좋고 말주변이 뛰어나다. 백 차장이 보고서 작성에 강점을 보인다면, 채 차장은 고객을 섭외하고 유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사람들은 둘을 라이벌이라고 말한다. 팀장에서 임원이 되기까지 이 둘은 결국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임원의 경우 현실적으로 두 명 다 되기는 어렵기에 경쟁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백 차장은 붙임성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스타일이다. 그런 백 차장이 영업현장에도 최근 많이 다니고 직접 영업을 뛰는 일이 부쩍 늘었다. 누가 봐도 영업의 달인 채 차장을 의식해서인 게 티가 날 정도였다. 사무실에 앉아 보고서만 쓰는 것으로는 경쟁력이 약하다는 것을 본인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채 차장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보고서를 쓸 때 문구 하나하나,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보고서 작성능력이 부족해서 늘 아랫사람들이 대신 작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이다. 내 성과를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걸 포장하는 능력이 필요한 게 그게 바로 보고서인 것이다.
그렇게 백 차장과 채 차장은 서로를 견제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있었다. 그렇게 같이 성장하게 된 것이다.
기업의 역사를 보면 경쟁자가 있음으로써 동반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은 치열하게 물어뜯으며 싸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러다가 둘 다 망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 다툼 덕에 같이 성장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 속에 새끼 상어를 풀어놓은 것과 같다. 오랜 시간 수조 속에서 물고기들은 생기를 잃고 죽어간다. 이때 새끼 상어는 수조 속에서 물고기들을 잡아먹게 되고, 물고기들은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게 된다. 선주 입장에서는 물고기 서 너 마리를 새끼 상어에게 잃는 대신, 수 십 마리의 물고기를 지켜낼 수 있으니 큰 이득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 기업들이 동반 성장한 사례들은 무엇이 있을까?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반도체 없는 전자제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반도체는 핵심 중의 핵심 부품이다. 전자제품의 뇌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 두 기업은 대한민국의 선두 주자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이 두 기업은 세계 점유율 75%를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선두 주자들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반도체 부문의 강자는 아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 꽉 틀어쥐고 있었다. 전통의 강자인 미국이 점차 위축되고,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인 히타치, NEC, 도시바 등의 업체들이 무려 세계 1위~5위를 틀어쥘 정도였다. 대한민국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1983년 일본 업체들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고 한다. "기술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 너무 힘들겠다" 이 정도로 대한민국은 반도체 사업 불모지였다.
그러나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당시 미국 인텔 등 주요 업체에서 일하는 고급 기술자들을 거액의 연봉을 주고 영입하였다. 삼성 반도체의 선구자로 알려진 이윤우, 진대제, 황창규 이런 분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처음에는 미국, 일본 업체에 연수를 보냈으나, 이들이 핵심 기술을 알려줄 리 만무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고, 질문조차 받지 않았을 정도였다. 결국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인력을 양성하기로 한다.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한 결과, 본격적으로 착수 6개월 만인 1983년 11월에 64K D램 개발에 성공하였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한 국가가 되었다. 그 누구도 삼성이 이렇게 단기간에 해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삼성은 불과 4개월 뒤인 1984년 3월에 256K D램 개발에도 성공하면서 후발주자가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선두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이때 삼성전자의 성공을 보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국내 업체가 있었다. 바로 '현대전자'였다. 현대 역시 반도체가 미래의 핵심 유망사업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 삼성전자의 반도체 시장에서의 큰 성공은 자극이 되었다. 더 시간을 늦출 수 없었고, 국내 성공사례도 있기에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큰 난관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IMF 경제위기'였다. 현대전자는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전자부문은 모두 매각하면서까지 반도체를 살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은 별다른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자동차, 중공업 쪽이 강세이지만, 전자 쪽 기반은 별로 없었던 현대에서 반도체를 키우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현대는 고심 끝에 반도체를 포함한 모든 전자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다.
이때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은 SK였다. SK는 아예 반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택을 내렸다. 후발주자로 선두 기업들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절대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SK는 HBM이라는 반도체에 주목하게 된다. 마치 아파트처럼 층을 쌓아서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생각해 낸 것이다. 작은 면적 안에 단층으로 메모리를 넣는 것은 어렵다는 점에 착안하여 아예 다층으로 반도체를 쌓아 올린 것이다.
HBM 반도체는 2013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 방식으로 SK 하이닉스는 대박을 치게 된다. AI가 떠오르는 지금, 메모리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용량을 필요로 한다. 이때 HBM 방식은 층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메모리를 늘릴 수 있기에 AI의 발전에도 손쉽게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콜센터 직원들이 모인 사무실을 생각해 보자. 한정된 공간에 콜센터 직원들을 더 많이 투입하기 위해 직원 책상 크기도 계속 줄이고 각 방마다 벽 두께도 줄여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되니 직원들이 다닥다닥 붙어버리게 되어 옆 직원의 통화 소리 때문에 도저히 고객 응대를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 층수를 올려서 콜센터 직원들을 윗 층에 배치해 버린 것이다. 이런 반도체 아파트가 바로 HBM 반도체이다.
지금 HBM 반도체는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 HBM 반도체 특성상 대량 생산이 어렵기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직 기술을 향상해야 하지만 HBM 반도체는 한국 반도체의 차세대 동력임은 분명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삼성전자였다. 항상 SK하이닉스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 방 맞은 것이었다. 심지어 AI를 주도하는 엔디비아가 반도체 파트너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면서 그야말로 난리가 나게 되었다. 삼성전자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인드로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HBM 반도체 개발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산에 성공하게 되었다.
만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서로 자극을 주는 경쟁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국내 최고라는 자부심에 연구 개발을 등한히 했을 것이고, 한순간에 외국 업체들에 선두를 내주었을 것이다. 과거 90년대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그랬다. 세계 1~5위를 차지한 일본 업체들은 '우리가 남이가' 이 생각으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다가 미국이 독점에 강력한 제동을 걸게 되고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지금 일본은 반도체 장비나 소재 사업 쪽으로 전환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반도체를 제작할 수 있는 경쟁력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경쟁이 없는 경우 안일해지게 되고 결국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해외에도 100년 넘는 세월을 이어온 라이벌 관계가 있다. 바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이다. 이 두 회사는 전 세계 무대를 상대로 끊임없이 충돌했다. 세계 최고라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답은 우리가 알다시피 두 회사 모두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코카콜라는 1887년에 세워진 1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회사이다. 펩시 역시 1893년에 수립된 이래 탄산음료를 생산하며 코카콜라와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코카콜라가 펩시를 압도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콜라 시장에서만 그러할 뿐, 비탄산음료와 과자까지 포함할 경우 펩시가 코카콜라의 시가총액을 앞선다. 펩시는 게토레이, 치토스, 도리토스 등도 판매하는데, 미닛메이드나 조지아커피, 파워에이드를 가진 코카콜라보다 매출액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 두 회사는 주로 마케팅을 두고 끊임없이 다투었다. 펩시콜라는 콜라 분야에서 코카콜라를 앞질러 보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다. 1980년대에는 당대 최고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앞세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코카콜라를 앞지르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펩시맨이 히트를 치기도 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큰 실수를 하기도 하였다. 마이클 잭슨은 펩시 광고를 찍던 중에 조명에서 튄 불꽃이 머리에 붙는 바람에 큰 화상을 입고 말았다. 필리핀에서는 병뚜껑에 349로 인쇄된 병을 구입한 2명에게 100만 페소(약 4,000만 원)를 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공장 직원의 실수로 2개만 찍혀야 하는 349가 무려 80만 개가 찍혀버리고 말았다. 80만 명에 이르는 소비자들이 100만 페소를 내놓으라고 몰려들었다. 합산하면 무려 32조 원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펩시 기둥뿌리가 뽑힐 상황이었다.
당연히 펩시는 "뻥이야!"를 외쳤고 분노한 사람들은 필리핀 펩시 본사 앞에서 시위에 나섰다. 시위는 점점 과격해졌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수류탄을 투척하는 바람에 두 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지나친 마케팅 때문에 사망자까지 생긴 것이다. 그 이후 필리핀에서 펩시는 지금까지도 금지어로 통할 만큼 펩시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코카콜라는 수려한 문구와 고급스러운 CM광고로 승부수를 띄웠다. "난 느껴요!", "마시자, 코카콜라" 문구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르는 코카콜라 문구이다. 1980년대 코카콜라 광고는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았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촌스럽지 않다.
북극곰이 썰매를 타고 다니면서 코카콜라를 마시는 장면은 영원히 기억될 광고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 환상을 심어주는 광고인 것이다. 코카콜라는 "우리의 경쟁상대는 오직 물뿐이다" 이렇게 외칠 정도로 자사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전 세계 탄산음료 시장 매출액의 40퍼센트는 코카콜라가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펩시보다는 마케팅에 있어 덜 무리수를 두고 있는 편이다.
중요한 것은 코카콜라, 펩시콜라가 서로를 의식하며 다양한 광고전략을 세우며 제품군을 다변화한다는 점이다. 라이벌이 있기에 이들은 그냥 멈춰 있을 수가 없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회사의 명운을 걸고 마케팅에 나서며 제품군을 다양화하면서 제3의 콜라는 등장하기 어렵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코카 아님 펩시 이렇게 양분된 것이다. 그렇게 두 회사는 지금까지도 윈윈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둘 다 글로벌 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는 다음 4가지의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는 가전제품 제조부터 주요 소재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하여 메모리 반도체에 힘을 쏟았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따라잡기보다는, HBM이라는 신개념 반도체를 선보임으로써 AI 시장에 특화된 반도체 분야 쪽으로 치고 나갔다.
코카콜라는 클래식과 전통에 초점을 맞추었다. 산타클로스, 북극곰 등을 활용해 '행복', '가족'의 가치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펩시콜라는 마이클 잭슨 등 당대 최고 스타를 동원하며 패기와 젊음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두 경쟁자들은 같은 전략을 쓰지 않고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다른 포지셔닝을 시도했다. 그래서 주 고객층이 차별화되었고 자기만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은 나도 해봐야지 이런 동기부여를 촉발하였다. 삼성전자가 64K D램 개발에 이어 256K D램까지 만들어내자 한국에서 이게 가능하구나 나도 해봐야지 이런 생각이 퍼져나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가진 반도체의 개발은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게 되었다. SK 하이닉스가 HBM반도체를 개발하면서 AI 기업들의 이목을 끌게 되자 시장파이는 엄청나게 커지게 되었고 삼성전자도 이 분야에 뛰어들며 커진 파이의 혜택을 같이 누리게 되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도 마찬가지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라인드 테스트'이다. 소비자들은 눈을 가린 채 콜라를 맛보고는 어느 회사 콜라인지 맞추게 되었다. 이는 두 제품에 대한 동반 관심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어떤 브랜드가 더 맛있는가?" 갑론을박이 펼쳐지며 탄산음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폭발시켰다. 이는 두 회사의 매출 동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펩시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 코카콜라는 유통망을 강화하고, 코카콜라가 신제품을 내놓으면 펩시는 더 혁신적인 용기 디자인으로 대응하며 서로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그들은 마케팅 퀄리티를 높이며 시장을 계속 키워나갔다.
시장 환경이 바뀔 때 두 회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던 시기, 많은 외국 회사들은 투자를 최대한 줄이면서 원가절감에 골몰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오히려 투자를 늘리면서 연구 개발 및 신공장 설립에 주력하였다. 이때가 선진기업들을 따라잡을 절호의 찬스라고 보았던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인수,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나갔다. 후발주자인 만큼 이미 기술을 갖춘 회사들을 흡수하면서 선진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펩시는 콜라만으로는 코카콜라를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스낵(프리토레이), 스포츠 음료(게토레이), 주스 등으로 사업을 대거 확장했다. 종합 식품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매출 규모면에서 펩시가 코카콜라를 앞서고 있다.
코카콜라는 잘하는 쪽을 더 잘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였다. '음료 전문성'을 강화한 것이다. 코카콜라는 음료 분야에 집중하면서 콜라 등 탄산음료 이외에 생수, 차, 커피 등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미 갖추어진 전 세계 유통망을 통해 성공적으로 판매를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두 기업은 권투 스파링을 통해 서로를 강하게 공격함으로써 스스로를 단련해 나갔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만약 한쪽이 독점했다면 혁신이 무뎌졌을 것이다. 이때 새로운 기업이 그 틈을 치고 들어왔다면 이미 거대해진 공룡은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의외로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HBM이라는 신기술로 무장한 SK하이닉스가 있었기에 메모리 시장에서조차 삼성전자는 안주할 수 없었다. 계속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새 기술을 따라잡아야만 했다. 적대적 공생을 통해 서로 자극을 받으며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코카콜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펩시가 있기에 늘 마케팅에 신경을 써야만 했고, 신제품 개발에도 늘 많은 투자를 해야만 했다. 지금 상황에 그저 안주해 버리는 순간 언제든 넘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두 회사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 경쟁하면서 둘 다 살아남을 수 있었다.
※ 다음 2편에서는 반대로, 지나친 출혈경쟁으로 인해 모두가 다 피해를 본 사례들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이들은 왜 실패하게 되었을지 같이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