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 경쟁은 모두 망하게 합니다 (MS와 미국 항공사)

파괴적인 출혈 경쟁이 미치는 악영향

by 보이저

1편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같이 발전하는 사례에 대해 알아보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지나친 출혈 경쟁으로 너 죽고 나 죽는 상황이 펼쳐지고만 것이다. 경쟁자만 죽이면 된다는 생각에 온갖 무리수를 둔다. 그러다가 같이 망하는 것이다.


고사성어 '어부지리'는 다음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학은 조갯살을 뜯어먹으려고 필사적으로 조개를 쪼아대고 있었다. 조개는 학을 막아내느라 학의 부리를 꽉 물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이들 둘은 오랜 시간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어부는 얼른 달려가서 손쉽게 학과 조개를 둘 다 잡을 수 있었다. 서로 싸우다가 둘 다 망해버린 것이다.


역사상 지나친 경쟁으로 같이 망하고만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이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MS), 미국 항공사, 국내 카드사 사례이다. 이들은 어떻게 경쟁하다가 큰 피해를 입게 되었을까?




1.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MS)


컴퓨터 프로그램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랜 기간 그 누구도 덤빌 수 없는 초거대 공룡이었다. 이들이 만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워드는 지금도 직장인들의 필수 업무 도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런 MS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겁 없는 기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넷스케이프(Netscape)라는 기업이었다. 초창기에 인터넷을 사용하신 분들은 넷스케이프를 기억하실 것이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기본 브라우저가 필요하다. 넷스케이프는 '내비게이터'라는 접속 브라우저를 39달러에 출시하였고, 이는 큰 인기를 끌었다. 1994년 당시 내비게이터는 시장 점유율이 무려 90퍼센트에 달했다.


MS는 비상이 걸렸다. 당시 인터넷은 떠오르는 시장이었다. 이 시장을 자칫 잘못하면 넷스케이프에 통째로 다 넘겨주게 될 판이었다. MS 창업주 빌 게이츠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넷스케이프가 장악한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을 탈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MS가 사용한 수단은 다음과 같았다.



1. 무료 배포 : 넷스케이프가 건 당 39달러씩 브라우저 판매로 수익을 내고 있을 때, MS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완전 무료로 배포했다. "공기는 무료여야 하고, 인터넷 접속창은 공기와도 같답" 당시 MS가 내세운 유명한 논리였다.


2. 윈도우에 끼워 팔기 : MS는 자사 제품인 윈도우(window) 95에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기본으로 포함했다. 사용자가 굳이 넷스케이프를 사서 설치할 필요가 없게 만든 것이다.


3. PC 제조사 압박 : PC 제조사들에게 윈도 공급 조건으로 바탕화면에서 넷스케이프 아이콘을 삭제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IE) 기본으로 설정하도록 강요했다. 이 정도로 MS는 필사적으로 야비하게 넷스케이프를 제거해 버리고자 했다.


이 정도쯤 되면 넷스케이프가 거대 공룡 MS를 이길 방법은 사실상 없다. 넷스케이프는 그대로 몰락해 버렸고 불과 4년 뒤인 1998년에 아메리칸 온라인(AOL)에 헐값에 인수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MS가 승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 독점자가 된 MS는 경쟁자가 사라진 상태에서 기술개발을 등한시하였다. 그 사이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구글은 크롬(Chrome)을 출시하여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완전히 압도해 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미국 법무부에 기소되어 큰 홍역을 치르게 되었다. 지나친 출혈 경쟁으로 두 기업 모두 큰 타격을 입은 것이었다.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MS 인터넷 익스플로러



2. 미국 항공사의 출혈경쟁


원래 미국 항공사는 소수의 거대 기업이 독점하는 시장이었다. 그러다가 1978년 미국 항공업계의 규제 완화 이후, 수많은 신규 항공사가 진입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가격 파괴 경쟁이 시작되며 엄청난 경쟁이 펼쳐지게 되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회사는 회사문을 닫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속에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모든 항공사가 극한 경쟁을 치르게 되었다. 원가 이하의 항공권을 내놓았고, 마일리지 제도 경쟁도 극에 달하였다.


고객들은 익숙한 항공사를 계속 선택하는 법이다. 이미 쌓아놓은 마일리지도 있고, 여러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업체들은 이걸 뚫고 들어가기 위해 원가 이하 가격으로 항공권을 팔기 시작했다. 미국은 워낙 국토가 넓기에 항공기로 이동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교통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파격적인 비행기표 가격은 고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객들은 신규 항공사로 몰려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팬암(Pan America)이나 유나이티드(United) 항공과 같은 대형 비행사들도 가격 할인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제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느냐의 싸움이 되었다. 저가 경쟁에서 결국 작은 중소 항공사들은 하나둘씩 나가떨어지게 되었고, 팬암이나 TWA, 이스턴 항공과 같은 대형 비행사들도 이때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다 망하고 난 뒤 최후의 승자는 딱 4개사 뿐이었다. 대형사 3곳(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티드)중소회사 1곳(사우스웨스트) 뿐이었던 것이다. 마치 오징어 게임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는 상처뿐인 승리였다. 극심한 출혈 경쟁으로 산자들 역시 깊은 재정적인 상처를 입게 된 것이었다. 이들은 다시 가격을 올리고 좌석 크기까지 줄여가면서 다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미국 델타항공과 아메리칸 항공




3. 국내 카드사의 출혈경쟁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소비는 급감하였다. 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판에 돈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소비 진작을 위해 카드발급 요건을 대폭 완화하였다. 소득이 있는 것이 아니어도 만 19세 이상만 되면 부모님 동의 하에 카드 발급이 가능했고 한 명이 개수 제한 없이 카드를 다수 보유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당시 길거리마다 카드 고객 유치 가판대가 설치되었고, 온갖 경품이 내걸렸다. 키보드에 모니터, 큰 인형, 텀블러 등등.. 카드만 하나 만들면 경품까지 챙길 수 있었다. 불법이었지만 현금을 쥐어주는 판매원들도 있었다.


당시 이영애가 LG카드로 결제하며 사격도 즐기고 권투도 배우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명품 가방을 들고 데이트도 하는 광고는 '이영애의 하루'로 패러디되기도 하였다. 나도 카드만 실컷 긁어대면 이영애처럼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환상을 사람들은 갖게 된 것이다.


그 부작용은 어마어마했다. 카드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심지어 추심업자 독촉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제법 생겨나게 되었다.


카드사 역시 출혈경쟁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자 사투를 벌였던지라 그 피해가 엄청났다. 연체율이 급증하다 보니 재정에 큰 위기가 닥치게 되었다. 영세업자 비율이 95퍼센트나 되다 보니 정부 규제 탓에 카드결제 수수료를 올릴 수도 없었다. 카드사 별로 닥치는 대로 카드를 마구 발급하다 보니 그 후유증은 막대하기만 했다.


결국 LG카드는 이영애의 하루 그 광고로만 기억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다른 카드사들도 부실을 떠안으며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한 명이라도 더 고객을 늘려보려는 욕심이 출혈경쟁을 낳게 되었고 그 피해는 모두에게 되돌아오게 되었다.

LG카드 광고 속 이영애


출혈 경쟁으로 다 같이 망하게 되는 이유


그렇다면 경쟁으로 다 같이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큰 피해로 이어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다.



1. 제품 및 서비스의 차별화 실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소비자가 느끼기에 A사와 B사의 제품이 별 차이가 없다면, 선택의 기준은 오직 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 소비자가 다른 브랜드로 옮겨가는 데 큰 비용이나 노력이 들지 않을 때 출혈경쟁은 심해지게 된다.




2. 이미 포화 상태가 된 시장


한참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서는 남의 파이를 뺏지 않아도 내가 먹을 파이가 늘어난다. 하지만 시장의 성장이 멈추면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이 상황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한다. 전체 시장 크기가 고정되어 있어, 내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의 고객을 뺏어와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 역시 그렇게 내 고객을 뺏어가려고 하고 이는 과당 경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3. 높은 고정비와 퇴거 장벽


공장 설비나 임대료 등은 고정비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줄줄 나가는 돈인 것이다. 이런 고정비가 큰 산업일수록 출혈경쟁이 심해지게 된다.


손해를 보더라도 공장을 돌리는 것이 아예 멈추는 것보다 손실이 적다고 판단할 때,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이어가게 됩니다. 일단 영업이익은 적자이더라도 매출액이라도 들어와야 인건비나 임대료 충당,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설비 투자나 고용 문제 때문에 사업을 쉽게 접지 못하는 경우, 망하기 직전까지 치열하게 버틸 수밖에 없게 된다.




4. 일단 끝까지 버티면 된다는 환상


"나중에 독점하면 지금의 손실을 다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 서는 경우, 끝까지 존버하는 길(끝까지 버티는 길)을 택하게 된다. 이런 존버 전략은 대형 기업이 주로 선택하게 된다.


자본력이 강한 기업이 '치킨 게임'을 통해 경쟁사를 먼저 파산시키려 한다. 하지만 경쟁사가 예상보다 오래 버티거나 제3의 경쟁자가 등장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성 밖의 적군들이 식량이 다 떨어져서 철군하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예상외로 적군들이 잘 버티면 골치가 아파진다. 우리 역시 식량이 없어 굶는 것은 매한가지이기에 한계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이 필요한데, 이미 관계는 상할 대로 다 상한 상태이고, 협상의 여지도 없기에 더 선택지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경쟁은 잘하게 되면 모두를 이롭게 하지만, 잘못하게 되면 모두를 망하게 합니다. 마지막 3편에서는 직장에서 경쟁자가 있을 때 건강하게 경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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