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독점은 갈등을 일으킵니다(라틴어 성경, 훈민정음)

역사를 통해 알아보는 정보 독점의 폐해

by 보이저

오 대리는 석 달 전에 이 회사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었기에 이번에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새 회사는 오 대리 마음에 쏙 들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규모도 더 컸고, 사옥이 지하철역 근처라 출퇴근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새로 지은 사옥 건물에 넓은 구내식당, 심지어 카페와 편의점까지 사옥 안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 일하게 된 부서는 뭔가 이상했다.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소수의 팀원들하고만 회의를 했고, 그들만 들어갈 수 있는 별도 폴더가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별도 채팅방도 만들어서 중요한 정보를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었다.


오 대리는 그들에게 끼고 싶었다. 회식 자리도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나면 커피도 사고는 했다. 그 덕분인지 오 대리는 그 무리에 낄 수 있었다. 그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공유하는 정보는 상상 이상의 내용들이 많았다. 우리 팀 구성원들이 지난 3년 간 어떤 인사고과를 받고 있었는지, 이번 인사발령 때 어떤 임원이 우리 부서로 부임할 가능성이 큰지, 특정 팀원이 최근 어떤 이상한 행동들을 했는지 비웃는 내용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같이 합류하여 핵심멤버가 되어 권력을 독점하는 게 옳은 것인지 아닌지 오 대리는 순간 갈등을 느꼈다. 이 팀은 한 지붕 두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팀장을 중심으로 한 한 그룹, 그들과 소외된 채 파편화된 사람들이었다. 이 파편화된 사람들은 늘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다닐 뿐이었다.


오 대리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나도 이들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저들과 같이 되겠지.. 이 회사로 이직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 싶었다.




정보를 독점하려고 하는 이유


정보를 틀어쥐고자 하는 것은 권력욕이 강한 사람들의 오랜 욕구이다. 이들은 자기 세력을 형성하고 그들만 정보를 독점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면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하기에 마음 놓고 권력을 장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도 과거 3S 정책 (스포츠, 스크린, 유흥)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을 원천봉쇄하고자 하였다. 당시 프로야구, 프로축구가 출범하였고, 애마부인, 뽕 이런 수많은 에로영화들이 출시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이런 시도는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대표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까?




1. 중세 라틴어 성경 강요


중세 시대, 라틴어로 쓰인 성경만 읽을 수 있었다. 교황청에서는 사제들이 라틴어로만 소통했다. 그들은 라틴어로만 말하고 라틴어로 된 문서만 주고받았다. 사실 라틴어 외의 언어로 된 성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라틴어 외 언어로 된 성경을 읽거나 소지한 것이 발각될 경우, 파문을 받을 수도 있었다


당시 파문에 처해지게 되면 살아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호적에서 지워졌고 모든 복지 서비스에서 싹 다 제외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문에 쳐해 지는 것을 무서워했다. 파문에 쳐해 지고도 계속 라틴어 외 언어로 된 성경을 소지하는 경우, 화형과 같은 극형에 쳐해 질 수도 있었다.


16세기 종교 개혁을 추진했던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이 그간 저질렀던 죄악을 폭로하는 95개 조에 해당하는 내용을 비텐베르크 대학의 정문에 붙였다. 이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일이었다. 비슷한 시도를 했던 얀 후스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붙잡혀 화형에 쳐해 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라틴어 성경이 아닌 독일어로 된 성경을 직접 번역하여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독일어로 된 성경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되기도 하였고 번역이 엉망이라 일반인들이 읽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침 그 당시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개발된 덕에 독일어 성경은 대량으로 인쇄되어 출간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그동안 로마 가톨릭이 왜 그토록 라틴어 성경을 고집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경 그 어디에도 면죄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보 독점을 통해 사실을 은폐하려던 그들의 시도는 그렇게 실체가 밝혀지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



2. 한자 사용만 고수하던 조선


세종대왕 이전까지 역대 왕조에서는 중국의 한자만을 문자로 사용하였다. 신라시대 때 설총이 만든 '이두'라는 글씨가 있기는 했으나 널리 사용되지 못하였다. 백성들 대다수는 일자무식이었다. 어려운 한자를 배울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았고 생계유지도 어려운 판에 어려운 한자를 배울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배층들은 한자 사용만을 고수하였다. 백성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모든 일은 자기들끼리만 독점하였다. 세종대왕은 대부분의 백성들이 일자무식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서 당시 존재하는 많은 문자체계 그리고 각 발음이 나올 때 혀의 움직임이나 입 모양에 근거하여 자체 문자를 만들기로 한다. 그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다.


한글 창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많은 신하들이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최만리라는 신하는 '자체 문자 개발은 중국에 대한 배신 행위'라고 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세종대왕은 신숙주, 정인지, 성상문 등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문자 개발에 힘썼다.


이는 엄청난 일이었다.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이 쉽게 글씨를 깨우친다는 것은 지배층이 독점하는 지식을 백성들도 알게 하겠다는 의지였던 것이다. 이건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종대왕은 한글 체계로 구성된 '훈민정음'을 편찬하였다.


물론 그 이후에도 지배층은 한자 사용을 고수했지만 한글은 점차 널리 사용되었고 지금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체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권력 독점을 원하지 않았던 세종대왕의 결심이 가능하게 한 일이었다.

훈민정음 언해본




3. 전문직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


2000년대 초반까지 법전은 온통 한자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용어들 대다수도 법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로 가득했다. '친족상도례, '반의사불벌죄',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 '근저당', '가등기' 이런 용어들을 딱 들어서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용어가 어려우면 사람들은 법조인들을 찾아가야만 한다. 본인의 노력으로는 이 어려운 용어들을 이해하고 대비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조시장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런 장벽을 쌓고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은 것이다.


어렸을 때 병원에 가면 내가 아픈 곳을 의사 선생님에게 말하면 의사 선생님은 종이에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을 휘갈겨 쓰고는 했다. 필기체 영어로 쓰는 것 같기는 한데,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항상 궁금했다. 저기 쓰여있는 단어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지금은 환자가 의사에게 작성한 내용에 대해 물어보면 답변해 줄 의무가 있다. 자칫 환자가 자기 증상도 제대로 모르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불상사를 막고 의료사고에도 대비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일반인이 의료지식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허들을 낮추려는 것이다.




정보 독점이 가져오는 폐해


정보는 엄청난 힘을 지닌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작이나 허위사실을 끼워넣기 어려워진다.


정보를 가진 사람들은 이걸 싫어한다. 내가 정보를 움켜쥐어야 다른 사람들을 쉽게 조종하고, 내가 가진 정보를 찔끔찔끔 나눠주며 내가 조직의 핵심으로 군림할 수 있게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소외된 사람들은 불만을 갖게 된다. 이 불만이 누적되면 조직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게 되고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게 된다.


정보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예전처럼 그냥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이제는 AI도 있는 데다가 블라인드 앱 같은 익명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100퍼센트 충분한 정보는 아니지만, 제한적으로나마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셈이다.


내 편, 네 편 나뉘어 서로 헐뜯고 싸우는 조직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분오열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다가 같이 망하게 된다. 역사상 강하다고 평가되던 많은 국가들이 의외로 쉽게 망해버린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내부 분열이 원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바람직한 해결방안


정보를 특정인이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부터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건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공유가 곧 나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점을 인식할 때 자발적으로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가능케 하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1. 업무 프로세스 투명화 및 공동 수행


정보가 흐르는 통로를 공식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정인만 아는 정보를 줄이는 것이다. 정기적인 미팅이나 회의를 통해 업무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만들자.


특정 업무를 한 명이 전담하지 않도록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주기적인 업무 순환을 통해 업무를 다양하게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중요한 작업은 두 명이 함께 진행하여 자연스럽게 노하우와 정보가 공유되도록 만들자.




2. 조직 문화 개선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도록 만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혼자 성과를 낸 사람보다,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 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지식을 공유하면 내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이런 직원들은 자격지심이 심하다. 실력으로는 자기가 밀린다는 생각이 있기에 정보라도 움켜쥐어서 자기가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이런 직원에게 강제로 내놓으라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지식 공유 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많은 유인책을 마련하되, 공유하지 않아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도 고려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3. 커뮤니케이션 원칙 설정


모든 업무 관련 논의는 공개된 채팅방에서 진행하여, 모든 구성원들이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하자. 보안이 필수적인 사항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모든 팀원이 모든 문서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 공개'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이건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몇몇 이서 은밀하게 대화를 하는 경우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있는 곳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마무리하며


정보를 혼자서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업무 실력이 부족하기에 정보를 가지고 내 존재감을 뽐내고 내가 함부로 내쳐지는 것을 막아보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라틴어 성경이나 한자로 된 소통은 결국 허물어지게 되었다. 소수만 독점하는 정보는 오래갈 수 없다. 다수의 반발은 점점 더 심해지게 되고, 마르틴 루터나 세종대왕처럼 깨어있는 사람들에 의해 허물어지는 것이다.


북한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내용을 주입하는데 열을 올린다. 과거에는 그런 시도가 먹혀들었지만, 탈북자들이 늘어나게 되고 외부에서 한류 음악, 드라마가 유입되자 아무리 통제해도 몰래 청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정보 독점은 한 번 둑이 허물어지면 두 번 다시 둑을 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사에서의 정보 독점은 큰 분란을 야기한다. 이걸 리더가 방치하거나, 자기까지 합세해서 부추긴다면 그 조직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투명하게 정보가 소통되어 모두가 팀 내외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 수 있도록 하자. 그렇게 모두의 브레인을 모은 집단지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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