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때문에 난처한 상황 만들지 않기
송 대리는 같은 팀에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황 차장이다. 고지식한 성격인 황 차장을 부서원들은 늘 답답하게 생각했다. 외부 행사가 있어 옆 부서 차를 빌려 타고 가면 좋은데, 차량 이용 규칙에 위배될 수 있다면서 끝끝내 반대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낑낑대며 택시로 짐을 옮기는 일도 있었다.
그때부터 송 대리는 황 팀장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황 차장이 상무에게 불려 가 큰 소리로 혼나는 일이 있었다. 송 대리는 동료에게 사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동료의 반응은 없고 자리로 돌아온 황 차장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러더니 송 대리에게 큰 소리를 쳤다.
아뿔싸.. 동료에게 보내야 하는 그 메시지를 사실 황 차장에게 보내고 만 것이었다. 시간을 10분 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위 사례는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사실 내가 사원 때 저질렀던 실수 경험담이었다. 당시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엄청나게 당황하고 말았다.
물론 그 차장님과도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사과를 드리기는 했지만, 그게 사과 한마디로 좋아질 수 있겠는가? 다행히 몇 달 뒤 그 차장님은 다른 부서로 가게 되었지만 그전까지 나는 차장님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말실수는 왜 하게 되는 것일까? 메신저로 보낸 것이니까 이건 말실수는 아니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텍스트 형태의 말이기에 이것 역시 그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이런 말실수는 왜 하게 되는 것일까?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정보를 이야기할 때 사람은 긴장도가 높아지게 된다. 뇌의 인지 기능이 긴장을 조절하는 데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언어 필터링'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게 되고, 엉뚱한 사람에게 말을 하기도 한다. 비밀이 주는 긴장감으로 인해 다양한 상황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아이러니한 과정 이론(Ironic Process Theory)'이라고 부른다. "그 말만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강하게 의식할수록, 우리 뇌는 그 단어를 계속 모니터링하게 되고 결국 무의식 중에 그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내가 지금 대출금을 갚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하자. 회사에 알리기 부끄러운 일이라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대출빚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지' 이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직장 동료들에게 이 말을 하기 쉬워진다.
친한 동료나 편한 자리에서는 경계심이 풀리게 된다. 이때 머릿속에 떠오른 필터링되지 않은 생각들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예시로 들었던, 황 차장님 혼난 것을 비웃은 것도 사실 친한 동료와의 대화였기에 방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익숙한 상황에서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즉흥적으로 내 생각을 말하게 되기에 실수하기 쉽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고픈 욕구를 갖고 있다. 이게 건전하게 표출되지 못하는 경우, 조직 내 온갖 가십, 험담 등 확인되지 않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곤 한다.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은 해서는 안 되는 말도 하게 되고 점점 더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혹 떼려다가 혹 하나 더 붙이는 사람들인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이다. 이런 말은 한 번 들으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도 학창 시절에 들었던 나쁜 험담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경험이 있으면서 그 당시에 부서 차장님을 욕하다니.. 사람은 자기가 상처받은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준다. 나 역시 내로남불의 이 모습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은 화상과도 같다. 그 흉터가 지워지지 않고 평생 지속된다. 학창 시절에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후유증' 때문이다. 그 PTSD 후유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상대의 단점이나 실수를 가볍게 내뱉은 말은 당사자에게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이런 자기 의심을 심어주게 된다. 무심코 던진 비수 같은 말은 상대에게 분노, 슬픔, 굴욕감을 주며, 이는 심한 경우 불안 장애나 불면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과거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말실수는 상대에게 장기적인 심리적 상처(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다.
말실수는 개인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내 사회적 위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사람은 내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구나', '나를 존중하지 않는구나' 이런 확신을 주게 되어, 오랜 시간 쌓아온 유대감을 한순간에 파괴하게 된다. 특히 제삼자가 있는 자리에서의 말실수는 상대방의 사회적 이미지를 왜곡시킬 수 있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며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입에 자물쇠를 채우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털어놓자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방법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말실수를 애초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참 어려운 일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미운 감정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받은 만큼 갚아주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데 유난히 목소리가 큰 사람, 자기 자랑이 유난히 심한 사람은 싫어질 수밖에 없다.
그냥 그런 사람에 대해 관심을 꺼버리자. 싫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계속 그 생각을 품고 있지 말고 뺨이라도 툭툭 치면서 그 생각을 날려버리자. 그런 생각은 독과 같다. 계속 품고 있으면 어느새 번지면서 나를 병들게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누구에게나 미움받는 사람은 결국 끝이 좋지 않다. 굳이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알아서 몰락하게 된다. 그러니 그 사람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그런 하찮은 사람 때문에 내가 괴롭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거 하나는 꼭 명심하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상한 행동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받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참 많은데, 내가 피해 줬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싫어하기 전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미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가 그런 대접을 받기 싫다면 나도 누군가를 싫어해서는 안된다. 나만의 취미나 관심사를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할 일이 없고 심심할 때 그런 생각이 더 드는 법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지게 된다.
'근묵자흑'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먹을 가까이하면 나도 모르게 검게 변한다는 말이다. 이상할 정도로 직장동료들 흉을 잘 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의 대화에는 흉보는 대화에 꼭 포함되어 있다. 임원 욕, 팀장 욕, 동료 욕, 옆 부서사람 욕, 거래처 욕.. 아마 귀가 간지러운 사람들 많을 것이다.
원래 직장생활의 꽃은 험담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다. 그렇게 배설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리고 기분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끝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람 마음이라는 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 사람만 보면 흉봤던 게 자꾸 떠오르게 된다. 여름철에 땀을 뻘뻘 흘리는 팀 동료 욕을 어제 신나게 했다면, 그 사람이 오늘도 땀을 흘리는지, 땀 냄새는 안 나는지 거기에 자꾸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렇게 그 동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다른 사람 자주 흉보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과감하게 멀리하자. 남는 게 없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내 욕하기 바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가진 부족한 면은 눈 감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 나 역시 단점이 있는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흉보는 게 일상인 사람과는 과감하게 거리를 두자. 그냥 혼자 지내는 게 차라리 더 낫다. 30대 이후부터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솎아내고 정리하는 시기이다.
부서 내 흘러 다니는 온갖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고 그걸로 주목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발 그러지 말자.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당신을 주목할 수는 있겠지만 좋은 이미지로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입이 헤픈 가벼운 사람으로 인식할 뿐이다.
주목받지 말고 살면 된다. 왜 회사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가? 부서 바뀌면 지나가면서 그냥 인사나 하고 지내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실속 있게 내 할 일 하면서 회사 밖으로 나갔을 때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면서 살아가자. 그러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말실수가 유난히 많은 사람이 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자연히 많아지는 법이다. 그리고 돋보이기 위해 할 말, 안 할 말 구분 못하고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말실수 안 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떨쳐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내 취미나 관심사를 만들어서 거기에 신경 쓰자. 먹이를 많이 주는 동물이 더 쑥쑥 자라듯이, 내가 관심을 더 두는 것이 머릿속을 더 많이 차지하게 된다.
싫어하는 사람을 자꾸 떠올리며 증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푸라기 인형에 그 사람 인형 붙이고 송곳으로 찌르면서 저주한다고 해도 그 사람은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자면서 살아간다. 도리어 미움에 사로잡힌 나만 밥 못 먹고 밤잠 설치게 된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노자의 말대로 그런 사람은 머지않아 시체가 물에 둥둥 떠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제발, 나는 그런 짓을 하는 가해자는 아닌지도 냉정하게 따져보자.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은 수두룩하게 봤는데, 가해자라고 반성하는 사람은 못 봤다.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누군가 나를 증오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말실수를 안 하려면 말실수를 유발하는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게 하는 환경이 있다면 멀리하면 된다. 이 단순한 원칙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