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취약한 순간이 위험합니다 (1.21 사태 교훈)

취약한 순간에 대처하는 방법

by 보이저

1968년 1월의 어느 날 겨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파평산 자락, 안 일병은 맹추위를 뚫고 경계근무 중이었다. 영하 20도의 살을 에는 추위는 몸도 마음도 다 얼어붙게 만들었다. 같이 보초를 서야 하는 병장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초소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결국 안 일병 혼자 깊게 쌓인 눈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젠장, 이럴 때 보초 서는 건 항상 내 몫이라니까...' 푸념이 나오는 안 일병이었다.


바로 100미터 옆은 미군들이 지키는 휴전선 구역이었다. 미군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추운 날 남의 나라에 와서 새벽에 일어나기 귀찮겠지..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사실상 지금 여기를 지키는 것은 안 일병 혼자 뿐이었다. 그러던 중 뭔가 후다닥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라니 떼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고라니들은 겨울에는 눈에 갇힐까 봐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뭔가 떼거지로 사사삭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한 번 가볼까? 좀 이상한데.. 그러나 너무 춥고 졸리고 배고프다. 이 추운 날 북한에서 쳐들어 올리도 없고.. 안 일병은 초소에서 눈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휴전선을 무사 통과하는 북한 특수부대


1968년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1.21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절대로 침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날씨에, 휴전선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뚫고 엄청난 속도로 침투해 들어온 북한 특수부대에 모두가 놀라게 되었다.


1968년 당시 북한 김일성은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대한민국에 혼란을 야기하여 15년 전에 이루지 못했던 적화통일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124부대라는 침투를 위한 침투부대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침투 계획을 수립하였다.


가장 추운 날, 경계가 가장 허술한 루트로 빠르게 침투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이들은 특수 요원들로, 무거운 짐을 가득 메고도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1월 16일 31명의 북한 124부대 요원들은 몰래 휴전선을 넘었다. 당시 휴전선은 철책이 아니라 나무 기둥으로 표시해 놓은 정도였다. 국군이나 주한미군에게 발각되지 않는 이상 넘어가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때 이들은 국군과 주한미군이 관할하는 경계 구역 가장 끝자락을 지나갔다. 추운 날씨에 병사들이 끝까지 꼼꼼하게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적들은 내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법이다. 그렇게 휴전선 경계는 허무하게 뚫리고 말았다.




청와대로 침투하는 북한 특수부대


이들은 청와대로 이동하던 도중 나무꾼 형제들을 만났다. 북한 특수부대는 침투 능력은 탁월했을지 몰라도 세부적인 업무처리능력은 상당히 뒤떨어졌다. 이들은 청와대 침투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들을 저질렀고, 이는 작전 실패로 이어지게 되었다. 나무꾼 형제들은 처리하는 문제도 그중 하나였다.


너무 쉽게 돌파했다는 기쁨에 도취되어 특수부대 중 한 명이 나무꾼 형제에게 그만 자기들이 북한 특수부대라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녔다. 보안 유지가 생명인데 기본을 망각한 것이었다. 이 경우 비밀을 알아버린 민간인은 어쩔 수 없이 사살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도 최소한의 인간미는 있었나 보다. 제비 뽑기 끝에 비밀유지를 약속받고 결국 이들을 살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했다는 사실을 정보기관에 신고했던 것이다.


정부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즉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차단되었고 경계근무 태세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청와대 경계는 크게 강화되지 않았다. 설마 이들이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들이 북한산만 무사히 넘었다면 충분히 정 와대 진입이 가능했고 대통령 암살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월 21일 그들은 북한산에 도착했다. 이때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또 벌어지고 말았다. 막 북한산을 다 넘으려는 찰나, 그들 앞에 경찰 두 명이 나타났다. 인적이 드문 밤중에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걸어오는 게 이상했기에 멈춰 세우고 신분을 물었다.


"우리는 육군 방첩대 소속 군인들이다. 특수 임무 수행 중이니 길을 비켜라"


그러나 행색이 남루하고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경찰관들은 종로 경찰서에 연락하였다. 곧이어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부관 출신으로 대통령 측근이었다. 하필 그때 시내버스 두 대가 승객들을 태우고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버스 전등 탓에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인지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북한 공비들은 이 버스 두 대가 진압하러 온 군인버스라고 생각하고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마구 투척했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버스에 탔던 승객들은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최규식 총경도 이때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사살되는 공비들


청와대에는 접근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신분이 들통나고 말았으니 작전은 실패한 것이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그들은 뿔뿔이 도망쳤다. 이들은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교전 중 사살되었다.


나중에 목사가 된 '김신조'씨가 이때 유일하게 생포된 북한 공비였다. 31명 중 29명이 사살당했고 한 명은 성공적으로 북한으로 탈출했다고 전해진다. 김신조는 당시 기자회견 당시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어요" 이 말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김신조 씨는 이후 귀순하여 목사가 되었다가 25년에 83세로 작고하게 되었다.


이때 대한민국의 피해도 엄청났다. 총 32명이 북한 공비와의 교전 도중 사망하거나 버스 탑승 중 공비들의 기습공격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이후 청와대 인근 북악산, 인왕산은 수십 년 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고 예비군이 창설되었다. 그리고 군 복무 기간은 36개월로 연장되었다. 중고등학교에는 군사훈련 과목인 교련이 추가되었다.


북한은 불과 9개월 뒤에도 울진, 삼척 쪽에 수십 명의 공비들을 다시 보내 주민들을 사로잡고 사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설마 또 쳐들어오겠어? 싶은 순간에 이번에는 반대쪽인 동해안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1.21 사태 때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 목사




당시 대한민국의 약점들


북한은 우리가 가장 취약한 순간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 당시 우리는 어떤 약점이 있었을까?


- 한겨울이라 휴전선 방어가 소홀했음

- 한국군과 미군 관할지역 끝부분은 경계가 소홀했음

-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올인하느라 북한을 신경 쓰기 어려웠고 한국을 도와주기도 어려웠음

- 한국 역시 많은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 중이었음


가장 취약하다 싶은 포인트에 북한이 치고 들어왔던 것이다. 이런 짓 해서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보복당할 우려가 없다고 안심하고 벌인 짓이었던 것이다.




끝까지 일을 챙기기가 어려운 이유


사실 1.21 사태 당시 대한민국이 뚫린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지금처럼 인공위성을 이용한 GPS 탐지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드론이나 열화상 감지 장치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육안으로만 감시해야 했기에 경계병이 놓치면 그걸로 그냥 끝이었다.


육안 감시가 어려운 눈이 가득 쌓인 영하 20도 이하의 엄청난 혹한을 북한 공비들은 노리고 들어왔다. 이런 날씨에는 초소에만 웅크리게 되니 감시가 소홀해지게 되고, 관할구역 가장 구석진 곳까지 감시의 손길이 미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일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할 일은 많은데 새로운 업무는 계속 치고 들어온다. 일을 쳐내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 이 경우 사람은 일을 대충 하게 된다. 중요한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루틴 하게 돌아가는 일상 업무는 그냥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만 신경 쓰고 확인 없이 후다닥 해치우게 되는 것이다. 이때 종종 사고가 터지게 된다. 관심을 적게 준 일이 취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멀티태스킹은 환상에 불과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멀티 태스킹은 허상일 뿐이고, 사람을 지치게 하고 일을 망치게 하는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누군가가 나는 멀티태스킹을 잘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 아주 간단한 일들을 수행하고 있거나

- 여러 가지 일들을 대충 하고 있거나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 능력은 제약조건을 만나게 되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1.21 사태 당시 혹한 속의 경계근무 병사들도 이런 상황이었다.


그 한계의 대표적인 원인에는 '불안'이 있다. 회사에서도 리더가 계속 나를 감시하고 조그만 일에도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망신을 준다면 이 사람은 능력을 오롯이 발휘할 수 없다. 조금만 실수해도, 일정이 늦어져도 불벼락이 떨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터널 속 사람처럼 시야가 좁아지는데 이를 '터널링' 현상이라고 부른다.


꼭 멀티태스킹이나 불안한 마음이 아니라도 사람은 구석구석 꼼꼼하게 다 챙기는 것이 사실 어렵다. 양치를 할 때 칫솔질을 어금니 끝까지 하기 어렵다. 샤워를 할 때도 몸 구석구석까지 다 씻기 어렵다.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도 구석 모서리까지 샅샅이 다 밀고 다니지 않는다. 사람 심리는 이와 같다. 몸에 밴 습관이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잘 모르는 일을 할 때도 사람은 취약하다. 내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다 보니 일을 놓치고 마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인수인계가 잘 되지 않거나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되고 이는 실수로 이어진다.


앞에서 설명한, 끝까지 꼼꼼하게 일을 챙기기 어려운 원인 네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멀티태스킹으로 인한 주의력 분산

- 긴장과 불안으로 인한 터널링 현상

- 대충 일하는 것이 습관으로 몸에 배어버림

- 잘 모르는 일이다 보니 세부사항을 놓치는 것




끝까지 일을 챙기는 효과적인 방법


그렇다면 구석구석 일을 꼼꼼하게 챙길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는 일의 스킬 부분도 있고 심리적인 부분 극복 관련 방법도 있다.



1. 늘 기록하고 체크리스트 관리하기


우리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즉시 기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내 것이 결코 아니다.


상사의 지시나 회의 중 나온 주요 내용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하자. 나중에 적으려고 하면 반드시 디테일이 사라진다. 중식당으로 내일 점심 예약을 하라고 했는데, 몇 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군데군데 빠져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할 일 목록(To-Do List)'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포스트잇, 다이어리, 메신저 등 여기저기 흩어진 메모를 한 곳으로 모으자. 그리고 반복되는 업무나 복잡한 프로세스에는 반드시 자신만의 체크리스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흘리고 가는 일들이 사라지게 된다.


매일 아침마다 그날 확인해야 할 항목을 리스트업 하자. 그리고 루틴 하게 하는 일들, 예를 들어 이메일 작성 전 첨부파일이 맞게 첨부되었는지 확인, 수신자 명단 확인 이런 체크리스트도 만들어놓고 하나씩 확인 후 이메일을 보내도록 하자.


보고서 제출 전에는 오타 확인, 수치 재검증 등 자주 하는 실수를 모아 체크리스트로 만들자.




2.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 업무를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면 딱 그것만 하게 된다. 지시가 잘못되었거나 허술하게 지시하는 경우, 놓치는 것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자료가 어디에 쓰이나요?" 확인해 보자.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면 내가 놓쳤던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스스로 보이기 시작한다.


2차 세게 대전 당시, 독일과의 전투에 투입된 미군 병사들은 불만이 많았다. 왜 머나먼 유럽 땅까지 와서 피 흘리면서 싸워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때 그들은 독일이 만든 수많은 유대인 강제 수용소로 진격하였고, 그곳에서 죽은 수많은 유대인들, 간신히 살아남아 그들을 환영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비로소 왜 내가 목숨 바쳐 독일과 싸우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처럼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3. 멀티태스킹 하지 않기


이것저것 많은 일을 벌여놓게 되면 수습하기 힘들어진다. 부서 예산을 엑셀로 정리하면서 전화로는 다른 팀 문의사항에 답변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엑셀에 입력하는 숫자는 자칫 틀리기 쉽고, 전화통화도 대충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일을 할 때는 하나만 하자. 멀티태스킹은 실수의 주범이다. 일이 너무 많다면 상사와 이야기해서 일을 줄이자. 일 많이 하고 틀리는 것보다는, 적게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낫다. 다른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에 루틴 하게 하는 사소한 일을 하기 힘들다면 양해를 구하자. 다른 사람에게 루틴 업무를 부탁하거나 마감 기한을 늦춰달라고 하는 것이다.




4. 모르는 일은 확실하게 알고 하기


모르는 일을 할 때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경험이 없다 보니 내가 어디서 실수하기 쉬운지 모르는 것이다.


이때 좋은 방법은 전임자에게 실수했던 경험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다. 틀리기 쉬운 부분, 특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물어보게 되면 내가 실수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적의 매복이 주로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 지뢰가 많이 묻혀있는 지점을 알고 행군한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듯이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일을 하자.




5. 긴장하거나 불안한 상황 최대한 피하기


평소 훈련 때는 그렇게 잘하던 선수들이 정작 올림픽 무대에 나가서는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가 많다. 모의고사 때는 그렇게 점수 잘 나오던 학생이, 수능만 보면 죽을 쑤기도 한다. 긴장이 미치는 악영향이 그만큼 큰 것이다.


이거 안되면 큰일 난다는 그 조바심이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다. 어떤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쉽게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하물며 회사에서 하는 수많은 일들 중 일부가 틀어진다고 해서 인생 어떻게 되지 않는다. 그러니 편하게 마음먹자. 그럴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좋은 성과가 나오게 된다.




6. 대충 일하는 습관 없애기


회사에서 대충 일하는 사람은 집안일도 대충 하고 모든 일을 다 대충대충 하는 법이다. 그런 삶이 몸에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서 회사에서는 꼼꼼히 일하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1.21 사태 당시 경계 근무에 소홀했던 병사들은 그날만 소홀했을까? 아닐 것이다. 매사가 그랬을 것이다. 더운 날은 덥다고. 작업한 날은 피곤하다고, 전역을 앞둔 시점에서는 내가 이 짬에 경계근무 서야 하냐고 대충 섰을 것이다.


세제도 안 묻히고 대충 설거지하고, 청소기는 의자는 빼지도 않고 대충 밀고 다니고, 빨래는 털지도 않고 구겨진 상태로 널어놓는다. 매사가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회사에서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일하고 싶으면 이런 일생생활 속 부분부터 하나씩 고쳐나가자.


꼼꼼하게 일하는 것은 습관이기에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해야 한다. 몸이 기억할 수 있도록 계속 반복하자. 먼저 집안일부터 꼼꼼하게 하자. 그리고 내 주변 정리정돈도 꼼꼼하게 해 보자. 딱 90일만 꾸준히 하면 점점 몸이 익숙해질 것이다.




마무리하며


1.21 사태는 분단현실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말도 안 되는 북한의 도발 때문에 우리 역시 많은 군경들,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 공비들이 멍청한 실수를 많이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실수 없이 청와대까지 밀고 들어왔다면 큰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탓에 한국을 도와주기 어려웠고, 당시 국군의 국방력은 아직 강하지 못했기에 대응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취약한 순간에 북한 공비들은 파고 들어왔다. 영하 20도의 혹한, 눈이 가득 덮여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황, 국군과 미군의 경계구역이 맞닿은 경계 끄트머리 지역, 베트남 전쟁이라는 다른 큰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상황.. 이렇게 약점이 노출된 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회사에서 내가 취약한 순간은 언제일까? 잘 모르는 일을 할 때, 멀티태스킹을 할 때, 중요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이다. 상사가 나를 괴롭히는 바람에 불안이 심하거나 대충대충 일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말자. 중요한 일을 할 때는 다른 사소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마감 기한을 늦추자. 폭탄 여러 개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터지는 게 제일 최악이다. 불안이 심하다면 업무 조정을 통해 다른 일을 하거나 부서를 옮기자. 불안은 내가 가진 능력의 절반도 나오기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대충대충 일하는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회사에서 집중해서 일하자' 이런 결심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 바뀌어야 한다. 설거지, 청소기, 빨래 같은 일부터 꼼꼼하게 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1.21 사태는 60년 전 사건이지만, 내가 취약한 순간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취약한 순간에는 반드시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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