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낙관과 비관을 경계합시다 (유대인 수용소)

유대인 수용소와 바빌론 유수가 주는 교훈

by 보이저

나치 독일에 의해 처음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을 때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부류는 이번 해가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모두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낙관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른 부류는 우리는 절대 풀려나지 못할 것이고 이곳에서 결국 죽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한 해가 지나가도 우리는 풀려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새롭게 수용소로 끌려온 소련 출신 유대인들은 독일이 소련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독일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낙관적인 사람들은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그들은 머지않아 하나둘씩 죽어갔다.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작에 삶에 대한 희망을 다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들은 작업도 대충 했고 식사도 잘하지 않았다. 일부는 일을 대충 하다가 독일 병사들에 의해 총살당하기도 했고 다른 일부는 영양실조로 죽어나갔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들, 지나치게 비관적인 사람들 모두 수용소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낙관주의, 비관주의 모두 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대인 수용소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위험성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수)


위의 글은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오랜 기간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있었고 구사일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지나친 낙관주의와 지나친 비관주의가 갖는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역사 속에서 하나 또 등장한다. 바로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수' 사건이다. 바빌론 유수란 이스라엘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1,000km 이상 떨어진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수도 예루살렘 성벽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바빌로니아의 침공에 결사항전했다. 그러나 당시 근동 최강국이었던 바빌로니아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예루살렘 성은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왕궁과 성전, 수많은 집들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왕을 포함한 수많은 왕족, 귀족, 일반 백성들은 쇠사슬이 채워진 채로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차 없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바빌로니아 땅으로 가게 되었다. 이때 스마야, 시드기야 같은 근거 없는 낙관론자들은 그들이 2년만 지나면 바로 고향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나야 비로소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향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 말을 들었을까? 사람들은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소리에 끌리기 마련이다. 2년 만에 돌아간다는 말과 70년이 지나야 돌아갈 수 있다는 말 중 어느 말이 더 달콤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사람들은 2년 만에 돌아간다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레미야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돌에 맞아 죽게 되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 돌아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예로서의 그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희망을 잃고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냥 바빌로니아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갈 수 있는 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하루하루를 신앙에 의지해서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그날이 온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끝까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마침내 70년 뒤에 그들의 후손들은 조상의 땅인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이들의 수는 처음 끌려왔던 사람들의 10퍼센트 남짓이었다.

바벨론 유수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갖는 위험성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빌론 유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둘 다 모두 위험하다.


우리는 낙관적인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비관적인 것은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 배워왔다. 론다 번의 '시크릿'이나 조엘 오스틴의 '잘 되는 나'처럼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우주의 기운이 내게 온다, 일이 저절로 풀려 나간다고 말하는 책들도 있을 정도이다.




1. 지나친 낙관주의


'다 잘 될 거야'라는 믿음은 때로는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게 된다. 이는 준비 부족과 방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험 요소나 변수를 고려하지 않아 위기 상황에 대처할 '플랜 B'를 세우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고통이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현실을 부정하려는 자세로 일관하다 보니, 정작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된다. "다 잘 될 거야!" 이런 근거 없는 기대를 품었다가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심리적 죄절감은 더 크게 다가오게 된다.




2. 지나친 비관주의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할 때 역시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이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시도조차 하기 전에 포기하게 된다. 이는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기 충족적 예언' 탓에 나쁜 결과만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 미리 실패를 예상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결국 예상했던 실패를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늘 끊임없이 불평한다. 이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어 고립을 초래하게 되고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속적인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져오게 되어 만성적인 우울감이나 불안 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극복방법


뭐든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지나친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는 상극인 듯 하지만 결국 상황에 대한 인식이나 판단능력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메타인지'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나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 상황에 대한 판단이 미흡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1. 극단적 낙관주의 극복법


근거 없는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을 붙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1)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자.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발생 가능한 나쁜 상황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플랜 B)을 세우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이다.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대대적으로 시행한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절대 대상자일리가 없어' 이런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니라, '이번에 만일 희망퇴직자 대상자로 지정된다면?' 이 생각을 해보자. 지정된다면 제 발로 나갈 것인지, 버틸 것인지, 나간다면 먹고 살아갈 대안은 있는지, 버틴다면 예상되는 불이익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2) 제삼자의 피드백을 수용하라.


낙관주의자는 자신의 희망 사항을 사실로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주변사람들의 조언 따위는 구하지도 듣지도 않는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친구나 동료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의 조언을 '방해'가 아닌 '안전장치'로 받아들이자.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3) 수치와 데이터에 집중하라


감정적인 "잘 될 거야" 대신, 객관적인 통계나 과거의 사례 등 구체적인 숫자를 확인하며 의사결정을 내리자. 이번에 명예퇴직 후 식당 개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통계청에서 분석한 명예퇴직자 경제활동 보고서나 창업 5년 내 식당 폐업률 이런 자료를 보면서 수치에 집중하자. 뜨거워 위진 가슴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2. 극단적 비관주의 극복하기


자신을 짓누르는 불안 원인을 찾아 그 불안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1) 생각을 긍정적으로 전환해 보기


'나는 역시 안 돼. 안될 놈은 안 되는 거야!' 생각이 들 때, 그 근거가 타당한지 따져보자. '안 될 수도 있지만, 이번엔 준비를 더 했으니 다를 수 있어' 이렇게 생각을 조금만 긍정적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2) 작은 성공 경험 쌓기


너무 큰 목표를 세우게 되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당장 5,000미터가 넘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라고 하면 등산 안 해본 일반인들이 무슨 수로 오르겠는가?


일주일에 한 번 뒷산 중턱까지 오르기, 이런 작은 목표부터 성공시키자. 그런 작은 성공이 축적되면 '나도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마무리하며


어떤 어미 토끼가 있었다. 아기 토끼가 물었다. "엄마! 위험한 동물들은 없어?", "이 동산은 평화롭단다. 나는 평생 이 동산에서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위험한 동물들은 없었어. 그렇게 의심하고 살면 못 써"


어느 날 아기 토끼가 독사굴을 발견했다. '엄마가 이 동산은 평화롭다고 했으니 이 굴도 괜찮을 거야' 아기 토끼는 깊숙하게 손을 집어넣었다. 과연 아기 토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낙관적인 것은 좋은 것이고, 비관적인 것은 나쁘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정답이 아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토끼처럼 아기 토끼를 잃을 위험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늘 비관적으로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다 떠안고 살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뮤지컬 서편제에 나오는 노래 가사이다. 진짜 살다 보면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고 또 살아지게 된다. 무엇인가를 너무 잘하려고,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부담을 내려놓으면 편해진다. 그리고 나쁜 일이 있을 때 벗어나는 것도 좋지만, 잘 벗어나지지 않을 때 그 안에서 또 살아가는 법을 사람은 터득하게 된다.


지나친 낙관주의, 비관주의를 경계하며 이 땅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정답임을 명심하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작가의 이전글부당한 업무지시, 꾸준히 증거자료를 모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