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
1940년 5월 프랑스의 해안가, 데이비드 일병은 겁먹은 표정으로 하늘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마시도 못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곳까지 무려 500km를 걸어서 와야만 했다. 프랑스 해안가에만 도착하면 영국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독일의 슈투카 전투기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수시로 병사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고 갔다. 그들이 스쳐간 자리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탈진해서 쓰러지는 병사들도 점점 더 많아졌다.
독일군은 엄청난 속도로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사흘 안에 이곳에 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들에게 잡히면 우리는 끝장이다. 강제 수용소에서 중노동 하다가 차례대로 죽어가겠지..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살기는 싫었다.
그때 맨 앞에 서 있는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바다에는 수백 척의 배들로 새카맣게 덮여 있었다. 군함도 있었지만 조그만 고기잡이배들도 많았다. 심지어 요트도 있었다.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타난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몇몇 배들은 기뢰를 건드리는 바람에 펑 터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목숨 걸고 프랑스 해안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병사들에게 한 줄기 생명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그 유명한 '덩케르크 탈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독일은 무서운 속도로 프랑스를 향해 진군했다. 전차를 앞세운 독일은 거침이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4년 동안 점령하지 못했던 프랑스 파리를 불과 두 달 만에 점령하고 말았다.
연합군은 궁지에 몰렸다.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4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독 안에 든 쥐 상태였다. 프랑스 함락이 임박한 상태에서 하루라도 빨리 영국으로 무사히 후퇴해야만 했다. 문제는 후퇴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도버해협에 이미 수많은 수중폭탄인 기뢰를 설치한 상태였다. 게다가 전차를 앞세운 독일은 연합군 병력을 재빠르게 뒤쫓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40만 명의 병력을 통째로 다 잃어버릴 판이었다. 영국은 있는 대로 배를 다 끌어모아보려 했다. 해군력이 강한 영국이었지만 당시 독일이 이곳저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터라 여기에 대응하느라 함선들이 전 세계 곳곳에 뿔뿔이 다 흩어져있는 상태였다. 30만 명이 훨씬 넘는 병력을 데려오기에는 배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영국 전역에서 자발적으로 배를 가진 선주들이 배를 끌고 도버해협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몇몇 배들은 이동 도중에 독일이 설치한 기뢰에 닿아 폭발하거나, 독일 전투기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행렬은 전혀 멈춤이 없었다. 무려 870척의 선박들이 바다를 가득 메운 채 병력을 영국 땅으로 부지런히 싣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독일의 전투기들은 하늘에서 끊임없이 폭탄을 떨어뜨리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많은 선원들과 병사들은 이동 중 독일군 공격으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예상을 뛰어넘는 큰 성공이었다. 당초 40만 명 중에서 3~4만 명만 살려서 데려와도 성공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만큼 상황이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40만 명 중 무려 34만 명 가까운 병력을 무사히 영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85%의 성공률이었다. 이 병사들을 온전히 지켜냄으로써 나중에 연합군은 대대적인 반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만일 이때 병력을 몽땅 잃어버렸다면 연합군은 그대로 무너졌을 가능성이 컸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일등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희생을 감수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수많은 배 주인들이었다. 그들 덕분에 이번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 이동 도중 수많은 배 주인들이 독일군 전투기 공격을 받아 배가 침몰되었고 이들은 그 배에 탔던 병사들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럼에도 배 주인들은 망설이지 않고 이 업무를 계속했다.
그렇다면 선주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기의 배를 끌고 기꺼이 철수작전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합군 약 40만 명이 해안가에 고립된 채 전멸하거나 포로가 된다면 영국은 사실상 방어 능력을 상실하고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게 될 운명이었다. 이때 국민들은 내 아들, 내 이웃의 형제들이 몰살당할 위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국민들 상당수는 20여 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그때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포로로 잡히거나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몸소 체험했다. 그런 일을 내 다음 세대도 겪게 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주들 상당수도 제1차 세계대전 때 참전했던 용사들이었기에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영국 해군은 대형 군함들을 보내려 했으나, 덩케르크 해안은 수심이 얕아 대형 선박이 해안가에 바짝 붙을 수 없었다. 군함으로는 병사들을 데려올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해안가에서 군함까지 군인들을 실어 나를 어선, 요트, 구명정 등 작은 배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때 배 주인들은 자신의 배가 국가를 구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배가 부서질 수도 있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병사들은 다 죽는다는 책임감을 갖게 된 것이다.
정부는 처음엔 배만 빌리려 했다. 독일군 폭격기가 끊임없이 공격하고 기뢰가 둥둥 떠다니는 상황에서 배 주인들의 희생을 피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배 주인들은 "내 배는 내가 제일 잘 안다"며 직접 키를 잡겠다고 나섰다.
배 주인들은 독일군 전투기가 하늘에서 기관총을 쏘고 폭격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덩케르크로 향했다.
당시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은 상황의 심각성을 숨기지 않았다. BBC 등 언론을 통해 전해진 전황은 영국인 특유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런던 도심에는 'Dig for victory (승리를 위해 복구하라)' 플래카드가 걸렸다.
"나는 피와 수고, 눈물, 땀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처칠은 이 말을 하면서 고통 중인 영국에 헌신하겠다는 연설을 하였다. 리더가 이렇게 헌신하는 자세를 보이자 영국 국민들은 단결하기 시작했다. 배 주인들 역시 이런 헌신에 동참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덩케르크 탈출 직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직장에서도 직원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예전처럼 '까라면 까는 거지' 식으로 접근하면 반발만 사게 될 뿐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직원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성당을 짓는 세 인부들 이야기가 유명하다. 가장 성당 만들기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아름다운 성당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사람은 단순히 '무엇(What)'을 해야 하는지 알 때보다, 그 일이 '왜' 필요하고, 내가 이 일을 통해 어떻게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지 이해할 때 움직이게 된다.
이 업무가 팀의 목표, 나아가 회사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꼭 먼저 설명하고 일을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성장에 어떻게 이 업무가 기여할 수 있는지도 같이 설명하자. "이 업무를 통해 강의 콘텐츠를 스스로 만드는 경험을 쌓게 되면 나중에 전문 강사로 뛰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이렇게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이 업무가 자신의 성장을 위한 기회라고 인식하게 된다.
구글에서는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산소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과정에서는 구글 내 좋은 성과를 거두는 조직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밝혀내려고 하였다.
수많은 팀들을 조사한 결과, 단 한 가지의 공통분모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이는 내가 팀에서 어떤 의견을 제시해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무시받거나 지적받지 않고 괜찮다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있는 조직은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장소가 되었고 이는 높은 성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내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심리적 안전감이 생겨나게 된다. 실수했거나 실패했을 때 비난하기보다 격려하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데 집중하는 분위기라면, 직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칭찬과 인정은 사람을 신나게 한다.
이때 칭찬에도 방법이 있다. "수고했어요"와 같은 막연한 말보다 "이번에 우리 팀 실적을 같이 정리해 주셔서 우리 팀이 큰 수고를 덜게 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행동을 칭찬하도록 하자. 그저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짜 내 성과를 고마워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조그만 일까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보고하게 하는 마이크로 매니징(Micro-managing)은 팀원들의 동기부여를 막는 대표적인 나쁜 모습이다
과감하게 자율성을 부여하자. 일일이 다 확인하고 보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을 믿고 권한을 주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줄수록 직원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주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급격히 무너지던 연합군을 살린 큰 사건이었다. 이때 40만 중 3~4만 명만 구출해도 성공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이 다수였다. 그러나 그 열 배에 해당하는 무려 34만 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배 주인들의 목숨을 건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자기 목숨, 자기 배를 걸고 병사들을 탈출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수많은 배 주인들이 이 과정에서 독일군 전투기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 움직임은 그칠 줄을 몰랐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벌어진 '다부동 전투'가 있었다. 대구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여기가 무너지는 순간 북한군이 부산까지 진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대한민국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던 것이었다. 이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국군과 미군을 지킨 것은 '지게 부대'였다. 지역 주민들은 공산군 저격수의 총격에 수없이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지게로 부상병들을 나르고 물자를 산꼭대기까지 실어 날랐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친 것이었다.
직장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 업무를 왜 해야 하는지, 내가 맡은 이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면 업무의 가치를 알게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이 업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있다면 업무 몰입도는 확 올라가게 된다.
여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자.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만들자. 훌륭한 리더는 직원들을 쥐어 짜내서 억지로 성과를 내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굳이 자세히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게끔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것이다. 덩케르크 탈출이 성공했던 비결은 직장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제가 내일부터 2박 3일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푹 쉬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 기간 잠시 글을 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