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업무 수행이 중요합니다 (과거시험 답안지와 임꺽정)

첫인상이 주는 효과

by 보이저

과거 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서 어떤 의뢰인이 꼬깃꼬깃 색이 누렇게 바랜 커다란 종이를 들고 나왔다. 그 의뢰인은 이 종이에 대해 설명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과거시험 답안지인데, 이게 어떤 내용으로 작성된 것인지, 평가는 어떻게 매겨진 것인지 궁금해서 갖고 나왔습니다"


감정 전문가는 돋보기로 답안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갔다. 그리고 답안지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였다.


"과거시험 등급은 차상, 차 중, 차하 이 3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이 답안지는 그중 최하위인 차하 평가를 받은 답안지입니다. 제가 이 답안지를 읽어봤는데 일단 서론이 너무 길고 꼭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 여러 개나 빠져 있었습니다. 서론만 읽고도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면, 딱 서론만 읽고도 답안지에 대해 수준이 어떠한지 딱 감을 잡을 수 있다. 20년도 더 지난 에피소드였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었다. 그만큼 처음 내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참 중요하기만 하다.

과거시험 답안지




첫 업무수행의 중요성


이전에 첫인상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글에서 사람 이미지는 처음 5초 안에 형성되니 좋은 첫인상을 줘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첫 업무수행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신입으로 또는 경력으로 새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할 때 다들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누구나 처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첫 단추를 잘 꿰게 되면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 사람에게 일을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첫 단추를 잘못 꿰게 되면 두고두고 고생하게 된다. 잘못 뽑은 거 아닐까 비판에 시달리며 점점 자신감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쇼(Show)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때로는 직장에서 쇼도 필요하다. 처음에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 바쳐 좋은 성과를 보여주면 이후의 내 직장생활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처음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쇼잉(Showing)' 방법에 대해 소개하여 드리고자 한다.




임꺽정의 책사 서림, 그가 신임을 얻은 방법


조선 중기의 의적 임꺽정을 다들 아실 것이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많은 드라마와 만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임꺽정에게는 서림이라는 책사가 있었다. 임꺽정이 초반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서림이라는 뛰어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꺽정은 천민 중에서도 가장 신분이 낮았던 백정 출신이었다. 누구보다 차별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양반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 있던 사람이었다. 서림은 양반 출신이었다. 그는 어떻게 임꺽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초반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서림은 임꺽정을 만나 엄청난 제안을 한다. 평양감사가 1년 치 공물을 가지고 조정으로 가고 있으니 그 행렬을 덮쳐 다 빼앗자는 제안이었다.


만일 성공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재물이 임꺽정 무리에게 들어오게 된다. 문제는 삼엄한 경비였다. 천 명에 달하는 무장 병력이 그 공물 행렬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림은 골짜기에 임꺽정 무리를 매복하게 하고 한 번에 쌈 싸 먹기 식으로 완전히 포위하는 전략을 취했다. 수없이 많은 예행연습을 하며 각자에게 부여한 역할을 완전히 이해하게 만들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공물을 갖고 이동하던 무리들은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평양 감사가 눈을 부라리며 조정에 뇌물로 바치려고 긁어모았던 재물들이 몽땅 임꺽정 차지가 되었다. 임꺽정은 그때부터 서림에게 존칭을 사용하며 책사로 임명하였다. 큰 성공 하나로 단박에 임꺽정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이처럼 초반에 거둔 엄청난 성공은 큰 효과가 있다.


임꺽정




초반의 성공은 왜 효과가 클까?


'90일 만에 장악하라'는 책이 있다. 어느 조직이든 간에 초반 90일 안에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90일 안에 장악하기 위해 리더에게 내가 잘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팀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꼭 90일이 아닐지라도 초반에 일 잘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직장생활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 그렇다면 초반의 성공이 중요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 '후광 효과'와 초기 브랜딩


심리학에는 '후광 효과(Halo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태양 뒤에 비치는 후광처럼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후광이 비치게 된다는 뜻이다.


초반에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면, 나중에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평소에 잘하니까 무슨 사정이 있겠지"라며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반면에 그런 이미지를 주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작은 일 가지고도 리더는 트집을 잡게 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초기에 실망을 안기게 되면, 이후 아무리 잘해도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2. 심리적 자신감 형성


업무 성과는 본인의 멘털 관리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조직에서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은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상사와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눈치를 덜 보게 되며, 본인의 의견을 소신 있게 피력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직장생활이 재미있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과거 성공 경험이 있다 보니 자신 있게 위기를 돌파하게 된다.




3. 네트워크와 평판 형성


직장은 생각보다 좁다. 초기의 성과는 함께 일하는 상사와 동료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게 된다. 나중에 부서 이동을 하거나 이직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평판이 내 경력을 확장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된다.


내가 불리한 일을 당할 때, 내가 어떤 업무를 추진할 때 강한 발언권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내 편을 들어주게 된다. 든든한 천군만마가 생겨나는 것이다.




첫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방법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초반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좋다는 건 다 알겠는데 그렇다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누가 그게 중요한 걸 몰라서 못하나? 방법을 모르니 못하니 싶을 것이다.


여러 차례 이직 경험이 있는 내가 실제 경험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공유해 드리고자 한다. 이 방법대로만 하면 된다.




1. 유심히 관찰하기 : 부서 파악하기


초반 며칠은 탐색기이다. 유심히 팀을 관측하자. 가장 먼저 팀원 얼굴과 이름, 나이 이런 것부터 외우자. 팀의 의사결정 방식과 암묵적인 규칙을 파악해야 한다. 팀에서 실권을 가지고 있는 실세가 누구인지도 파악하자.


현재 진행 중인 업무는 무엇이 있는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각 팀마다 특유의 문화가 있다. 회의 때 다들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지, 팀장만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팀원들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보고 방식은 구두에 의존하는지 이메일 위주인지 메신저로 소통하는지, 점심 식사 때 다 같이 먹어야만 하는지, 혼자서 먹어도 상관없는지, 점심 먹고 낮잠 자도 괜찮은 분위기인지 등 사소한 디테일을 빠르게 익히는 것이 좋다.




2. 작은 성공 거두기


거창한 것에서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작은 과제에서 성과를 내어 신뢰를 확보하자.


상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명확히 확인하고, 그 우선순위에 화력을 집중하는 게 좋다. 나의 경우 담당 임원이 리더십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으로 만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강의 콘텐츠 만들기를 많이 했기에 자청해서 강의 자료를 만들었고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잘하는 일을 기반으로 이 팀이 필요로 하는 일을 발견하고 해결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3. 적극적인 소통과 질문


모르는 것은 이때 짚고 넘어가자. 처음 왔을 때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때 질문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르는 것을 밑도 끝도 없이 막 질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최대한 찾아서 먼저 이해하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렇게 물어보기보다는 "제가 파악한 바로는 로그인 후 수수료 정책조회 메뉴에 접속해야 하는 것 같은데, 이게 맞을까요?" 이렇게 본인이 먼저 확인한 것을 바탕으로 질문하는 것이 좋다.


동료들과의 가벼운 커피 타임을 자주 가져보자. 내가 커피를 사면서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충이 무엇인지 미리 파악해 두면 나중에 업무 협조를 구하기 훨씬 수월해진다.




4. 자신의 강점 증명하기


경력으로 들어온 직원은 결국 해결사로 영입된 것이다. 조직에서 지금 해결해야 하는 일에 내 강점을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존 구성원들이 방법을 잘 모르거나, 익숙함만 추구하다 보니 놓치고 있는 것들을 파악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해결책을 제안해 보자.


이전 직장에서 쌓은 노하우 중 현재 직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공유해 보자. 그렇게 하면 바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마무리하며


대학생 시절, 고시 준비할 때 많이 듣던 말이 있다. 서론을 엉망으로 쓰면 채점 교수들이 그 뒷부분은 제대로 안 읽고 나쁜 점수를 주게 된다는 말이었다.


과거 사법시험에서 한 해 1,000명 뽑을 때 2차 시험 답안지가 각 과목마다 5,000장씩 쌓이고는 했다. 이걸 채점 교수들이 두 달 만에 다 채점해야 했다. 본업도 있는 교수들인지라 고작 하루에 두세 시간 투자해서 채점을 하게 되었다. 시험지 하나당 채점시간은 3분 남짓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론이 엉망이면 '얘는 기본도 안 돼있네?' 이 생각으로 뒷부분은 잘 읽지도 않고 점수를 후려치고는 했다.


회사에서의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초기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바로 보여줘야 돼!' 마음먹는다고 성과가 뿅! 하고 바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뻥튀기 기계를 불에 달군 뒤, 옥수수를 넣어야 뻥튀기가 나오게 된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오히려 실패하게 된다.


초반에는 탐색전의 시간을 갖자. 내가 새롭게 속한 팀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내 강점을 발휘해서 이 업무를 어떻게 해결할지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정보수집에 힘써야 한다. 이 팀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이고. 이 팀에서는 의사소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자. 그리고 팀의 실세가 누구인지, 조직문화는 어떤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정보가 쌓이면 이제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고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차근차근 진행하면 된다. 고스톱에서는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하지만, 직장에서는 아니다. 첫 끗발이 좋으면 절반까지는 아니더라도 1/3은 먹고 들어간다. 그렇게 처음에 좋은 이미지를 만들자. 그게 가뜩이나 짜증 나는 직장생활이 조금은 편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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