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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SMIN Aug 08. 2020

우리는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  당신이 있는 것이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천연 사진과 함께 읽을 때는 몰랐다.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진심이 무엇인지 가늠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득 예상치 못한 다른 곳에서 그의 뜻을 발견하고는 아! 하고 다시 한번 책을 꺼내 들었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

사실 나는 여기 “지구”의 위치가 광활한 우주를 배경 삼아 본다면 작은 점 하나, 그래서 언제 생명을 다할지 모르는 나약한 존재. 창백 하기까지 한  작은 점. 한 줄기 빛에 의존한 티끌에 불과한 특별할 것 없는 지점, 의지를 가지고 찾지 않는다면 배경에 불과한 곳. 그러니 우주는 얼마나 광활한가...로 읽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의 생각이 다시 내게 찾아왔다. 그 작은 점에 무슨 연유에서인지 닻을 내리고 정착한 나는 존재의 나약함이나 의미 없음이 아닌 얼마나 기적적인 존재인가!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사진, 속표지 사진 중 일부
아득히 먼 곳에서 지구는 어떤 특별한 존재로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만은 다르다. 이 점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그게 여기이다. 그게 고향이다. 그게 우리이다. 그 위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 우리가 아는 모 든 사람, 우리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람,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갔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집합, 수천 종류에 이르는 종과 사상, 경제 정책, 모든 사냥꾼과 채집가, 모든 영웅과 겁쟁이, 모든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모든 왕과 농민,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와 희망에 찬 아이, 모든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윤리적 지도자, 모든 부패한 정치인,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 모든 성인과 죄 인이 우리 종의 역시를 통틀어 이곳, 태양 광선에 매달린 먼지 한 톨 위에서 살아갔다.
<진리의 발견,  창백한 푸른 점 재인용, p626, 마리아 포포바>




출근길, 늘 듯던 풍성한 음량의 음악을 물리고 단선율의 피아노곡을 듣는다.

“건반 하나하나의 섬세한 소리가 만든 맑고 사색적인 피아노 선율을 감상하세요. 마음 깊숙이 닿는 아름다운 음의 파장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줍니다.”라는 에디터의 설명이 덧붙여진 곡들이다. 어찌 보면 복잡한 인생사라 하지만 그 줄기만 놓고 차분히 살펴본다면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닐 수 있다. 생명이라면 다 그렇듯  <창백한 푸른 점> 속 어디에선가 이유도 모른 채 느닷없이 태어나 살다가 어느 날 생명의 불꽃이 다하여 꺼지는 날, 우주의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것. 누구나 예외 없이 그것과 다름 아닌 일이다.

지하철 소음과 쉴세 없이 이어지는 안내방송 소리를 비집고 결국 내 귀에 도착하는 피아노 음의 파장이 자신의 존재를 내게 증명한다.

어쩌면 우주 속 창백한 점에 이어진 한 줄기 빛이 결국 나이게 까지 도착해 만들어 낸 파장이 현재 나와 우리의 의미와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라면 좀 더 조용히 세상을, 삶을 감상해 볼 일이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고 가며 지속적으로 나에게 이어져 있는 피아노  파장이 없다면 피아노는 그저 사물에 불과할 뿐. 일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모습이 가지는 의미는 좋고 나쁨, 풍성하고 빈약함, 긍정과 부정의 차원을 떠나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일 것이다. 그 조차 없다면 우리는 몇 점의 고깃덩어리, 몇 리터의 수분, 혹은 몇 가지 화학 원소들.

무엇이든 존재의 의미를 가지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과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올려다보았던 하늘의 그 별들은 맞은편 갈릴레오와 시선을 마주친 후에야 우리를 꿈꾸게 하였고, 성간 우주로의 먼길을 떠난 보이저호가 작별인사로 남긴 사진 한장은 우주 한끝에 설치한 작은 거울이 되어 결코 볼 수 없었던 우리의 민낯을 마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이 서로 간의 연결을 통해 일어난 파장일 것이다. 어디 이러한 일들이 하늘에만 있으랴. 너와 나, 눈을 마주치고 상대가 되어 주어야 마음이 통하고 이야기가 탄생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선명히 하는 별과 같은 존재다. 갈릴레오의 눈에 별들이 그랬던 것처럼, 칼 세이건에게 그 한 점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연결되어 있다면 꿈을 꾸게 하는 별과 같은 존재가 바로 당신일 것이다.

  

사각박스 안쪽의 점 하나. 그래서 하찮은 것이 아니라 귀중한 것이다. 그 속에서 나의 존재가 의미를 가지려면, 당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당신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광막한 우주 어는 한 모퉁이에 우리가 “위치”한다는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그 작은 점 속에서 탄생한 수많은 생명과 그 속에 깃든 이야기들이  존재의 의미를 가지는 곳이 바로 “이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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