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학습

나의 어린이

by 하소초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둘째의 가방을 점검하다가 수첩 안에서 "가정학습 수요조사서"를 발견했다.


그렇다. 어린이집에도 방학이 돌아온 것이다.


물론 아직 돌아온 것은 아니고 돌아올까요, 말까요 물어보는 조사서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때가 오고야 만 것은 분명했다. 지난 여름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얼레발레 '네네, 좋아요.'하는 식으로 다 나가겠다고 동그라미를 쳐서 보냈지만 이제 상황을 어느 정도 아는지라 고민이 된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가정학습기간"을 틈타 휴가다운 휴가를 쓴다. 말하자면 어린이집의 돌봄 기능이 정지되어서는 안 되니,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는 기간을 정해두고 그렇게 생긴 인력의 여유를 돌아가며 휴가로 활용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적은 인원으로 운영해야 하기에 최소한의 돌봄(식사와 배변, 안전한 놀이 환경 등)만 유지되고 평소에 하던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은 정지될 수밖에 없다.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루종일 친구들과 주구장창 자유롭게 노는 경험도 해봐야지.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가정학습 기간에 그야말로 "가정학습"에 들어가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평소보다 조금 늦게 등원하곤 했는데도 신발장의 신들이 듬성듬성 얼마 없는 걸 보고서야 깨달았었다. 사실 가정학습 기간이 되었다는 것도 신발장 덕에 며칠만에 알았었지.


'이번 주부터 방학이었던 거구나!'하고 뒤늦게 당황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실 그런 건 줄 알았어도 준비할 여력이 없었기에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합리화가 되지 않아서 힘들었다. 나는 아이가 가정학습이 끝난 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듣게 될 이야기들을 상상했다. 친척이나 조부모의 집에서 지낸 이야기나,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휑한 놀이방에서 다른 반 아이들과 서먹하게 섞여 경쟁할 필요가 없어 심드렁해진 장난감들을 시무룩한 표정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을 아이를 떠올렸다.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왠지 그런 상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결국 나는 일이 없는 아침엔 "오늘은 가지 말까?"하고 아이에게 물어 두어번 어린이집을 결석시켰다. (그리고 정말이지, 정말이지 순식간에 사라지는 하루를 맛보곤 했다.)


내내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잠만 자던 첫째 때에는 비교적 의견이 명확했다. 모종의 사정 때문에 그때도 아이의 등하원은 내가 맡아서 했는데, 어쩌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기라도 하면 배우자(자꾸 싸우지 말고 그냥 배우자)님이 듣든지 말든지 "나는 일곱 살 때까지 내내 집에만 있었는데......"하고 망연자실 했으니 말 다했지. 가정학습기간이고 뭐고 나에게 권한만 있었다면 가능한 안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집에 있는 입장이 되고 보니 명확했던 의견이 비실비실 뒷걸음질을 친다. 생활은 서툴기만 하고 행여 나를 잃을까 홀로 몰두하고 싶은 마음은 꾸준히 간절하다. 이것은 이기심일까. 집 안팎으로 즐비하던 어른들의 돌봄과 덕분에 어디서든 맘껏 어리숙하던 어린 날의 기억은 안온하거니와 내 자식도 마땅히 그러한 안온함 속에 뿌리 뻗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도 명백한데 나는 왜 그 기억 속의 어른들과 이토록 다른가.


나는 언제 어른이 될 것인가.


그러나 어른이 되기 어려운 세상이다. 공유하는 믿음도 권위도 없는 세상 속에서 어른으로 살기란 생각보다 난감한 일인 것이다. 나는 예스럽게 어른을 공경하는 법과 세련되게 아이를 우선하는 태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예스럽게 자식을 우선하는 법과 세련되게 자아 실현을 놓지 않는 태도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가정학습 기간을 가진들 이렇게 허둥지둥 대는 날 보고 애는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 빈곤한 속내를 들켜 마땅히 혼나고 덕분에 얻은 지혜를 따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은데, 내 부모의 어른됨은 나보다 더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으니 의지할 곳이 난망하다. 이번에도 모두 다 동그라미를 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그 망설임을 배우자님과 상의하고 싶어 식탁 위에 조사서를 펼쳐 두고 저녁 출근을 했는데, 돌아와 보니 말끔히 치워져 있다. 밥 먹느라 치웠겠지, 하고 두리번 거려도 없다. 아이의 가방 속에도 없다.


너무 늦었으므로 다음 날 아침 물어봐야지 하고 일단 잤는데 일어나보니 배우자님은 이미 출근하고 안 계신다. 연말이라 온갖 보고서에 바쁜 것 같아 톡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안 읽은 키즈노트가 있어 확인하니 조사서 얼른 내라는 안내다. 그래 상의는 무슨. 어차피 내게 달린 문제다. 잠시의 갈등 끝에 출근 때문에 불가피한 요일만 적어 돌봄을 부탁하는 답변을 단다. 일을 안 하는 날은 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감당하기로 한다.


지금이야 보내면 가야하나 보다, 안 보내면 아싸 신난다 하고 따르는 아이이지만, 그새 몇 개월 더 자랐으니 물어볼지도 모르잖아. "나 방학인데 왜 집에 있으면 안돼?" 그때 "어, 그건 네가 있으면 내가 일에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라고 답할 자신이 도저히 없다. 그런 대답은 차치하고서라도 막상 애한테 그런 질문을 받는 상상(천진한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 상상)을 하니 모골이 송연한 걸.


사실 애는 제 스스로 밖으로 돌기 전까진 가능한 부모와 많이 붙어 지낼수록 좋다는 확신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다. 수용적 사랑과 가족의 유대가 주는 안정감이 날 성장하게 한 거의 전부였음을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절실히 깨닫지 않았나. 얼른 벌어야지- 남몰래 울컥이는 설움을 누르며 스스로 재촉하고 닦아세웠던 이유도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였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되지.


그래도 막상 애 때문에 자꾸 일이 끊기면 짜증이 날 것이다. 준비를 하자. 늘 가장 먼저 일어나 매일의 끼니를 준비하시던 할머니처럼, 휴일 내내 잠들어 부서지기 직전의 몸을 회복하시던 아버지처럼, 치열하게 아끼며 하나둘 통장을 늘려가시던 어머니처럼...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그래도 조금만 더 부지런해져서 미리 할 수 있는 일은 좀 해두자. 일에 욕심 내다가 스트레스 받을 일을 애초에 차단해야 한다.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아 빙글빙글 웃는 아이를 포근히 수용해 주기 위해서. 다섯 살 많은 누나랑 놀다가(사실상 농락만 당하다가) 기죽어 있으면 바로 달래고 기도 좀 살려줄 수 있도록 내내 지켜보기 위해서. 사고 쳐도 화내지 않기 위해서.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믿을 수 있도록. 그 믿음을 딛고 끝없이 맞닥뜨릴 낯선 경험들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이렇게 거창한 명분들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지만, 솔직히 그냥 화만 좀 안 내도 성공하는 걸로...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