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일

May he act in peace...

by 하소초


정오가 되자 종이 블라인드의 어두운 색이 환해진다.


아침엔 너무 추워서 정이 뚝 떨어졌었는데 실은 화창한 날씨였나 보다. 접힌 틈새마다 환하게 퍼진 빛이 소리처럼 천천히 볼륨을 키우더니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우와아, 이 화창한 온기... 딱 그 느낌으로 온몸으로 퍼지는 허기... 우와아아...먹어야 해애......


찐 감자 세 알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얼마 전 설마설마하며 시키는 대로 신청했다가 정말로 받은 상생페이백으로 제일 알이 굵은 수미감자 한 박스를 주문했었다. 페이백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기에 처음 가입하고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물건이 좋아 기분이 좋았었지.


그러나 놀랍게도 그 감자 한 박스를 나 혼자 먹고 있다. 고구마를 구워 주면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삶은 감자는 아무도 먹지 않거든. 어릴 때도 다들 고구마를 더 좋아했었지.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단 걸 잘 못 먹어서 할머니가 감자를 삶을 때 제일 반가워했다.


특히 여름에 먹는 북감자를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감자 맛을 아는 (혹은 달고 짠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나를 기특해하며 그 더위에도 기꺼이 큰솥에 물을 끓이곤 하셨다. 할머니 몰래 솥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푹푹 찔러보다가 마침내 대접에 건져진 감자를 매끈하게 벗겨 호호 불어가며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살짝 베어 물면 포슬포슬 무너진 어귀에 반짝이던 물기.

고개 들어 내뿜던 뜨거운 입김.


예상대로 그 맛은 안 난다. 감자도 겨울 감자거니와, 호들갑을 떨며 아뜨아뜨거리는 날 정겹게 바라봐 주시던 할머니가 이제는 곁에 안 계시니까.(고향 내려가셨음.) 그리고 솔직히 애들 밥 먹이면서 방치하는 식으로 삶다 보니 너무 익어 터져서 보기에도 별로다. 혹시나 하고 김에 쪄봐도 마찬가지. 돌보지 않으면 터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카레를 하고 볶음밥을 하고 감잣국을 끓여도 워낙 커서 한 개씩밖에 줄어들지 않는 저것들을, 내가 귀찮은 끼니로라도 때워야지. 다음번엔 구워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김치를 꺼내 먹을까 말까 하다 귀찮아 관둔다. 어릴 땐 소금 찍어 먹는 걸 좋아했는데, 그것도 관둔다.


초라한 끼니에 굳이 더 애쓰지 말자. 데운 그릇 그대로 무심히 컴퓨터 앞으로 와 앉는다. 그리고 오랜만에 영화를 틀었는데, 큰맘 먹고 고른 영화를 자꾸 중간에 멈췄다. 계속 볼 지 고민됐기 때문이다. 설정이 너무 뻔해 자꾸 다음 장면이 예측되는 게 싫었다.


계속 볼 것인가. 말 것인가. 아 나도 성인 ADHD 그런 건가.

몇 번이나 그러다가, 유튜브로 들어가면 또 남는 것 없이 정신만 산만해지지 싶어 다시 재생한다.


하지만 역시 영화가 너무 뻔하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죽음 앞에 아이가 겪는 당혹감을 마주하니 눈물이 난다. 사체로 누운 자식을 발견한 엄마 때문에 울음이 터진다. 아 너무 뻔한데... 하면서도 예상했던 그 장면이 나오면 번번이 당하고야 만다. 시한부 환자가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읽어도...무슨 얘기할지 알면서도... 흑...


눈물 훔치느라 얼굴에 달라붙은 감자 껍질을 떼어내자니 ‘이쯤 되면 영화가 뻔한 것인가 내가 뻔한 것인가’하는 민망함에 괜히 더 영화 탓을 한다. 뻔하다. 죽음이라는 뻔한 소재와 삶의 소중함이라는 뻔한 주제를 이렇게 학예회 연극처럼 뻔한 방식으로 풀어내도 되는 것인가. 엉엉엉.


게다가 아흔이 가까운 배우에게 이 영화도 저 영화도 어쩜 이렇게 온통 죽음을 앞둔 역할만 맡길 수가 있는가. 어서 죽으라고 고사를 지낸 것인가. 그는 그런 뻔한 역할 하나하나에 어쩜 이렇게 다 일일이 정성을 들였는가. 이렇게 빈틈이 없으니 어디로 어떻게 때릴 줄 알아도 틀림없이 맞고 아플 수밖에...


마지막 병석에서까지 대본을 놓지 않았다는 얘기를 떠올리니 더욱 그렇다. 죽음이라는 뻔한 운명을 지근거리에 두고도 그는 너무 많이 해서 뻔할 법도 한 자신의 일에 몰입했단다.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지닌 자가 누구보다 초보자처럼.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십 년 전 무대에 선 그를 보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60대 부부의 이야기였는데 그의 나이가 그때 이미 칠십이 넘었었다. 칠십이면 상당한 노인처럼 여겨지던 때여서 젊디 젊었던 나는 내심 골골대는 노익장이 궁금하여 극장을 찾은 것이었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소극장에 2인극이었지만 그는 발성으로만 극장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몸짓과 동선이 확고하여 힘이 넘쳤으며 격한 감정으로 꽝꽝 무대 바닥을 내딛을 땐 끔쩍끔쩍 가슴이 뛰었다. 훌쩍 상대 배우를 둘러업을 땐 노인은 없고 뜨겁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극장을 나와서도 얼얼하던 그 기분이 생생하다.


그 뒤로 늘 존경하는 마음으로 간간이 보도되는 건재함에 마음을 놓곤 했었는데, 그 뻔뻔한 마음을 비웃듯 삶과 죽음의 사정은 속절이 없고 남겨진 이야기만 나의 뻔한 습관들을 호되게 꾸짖는다. 혀 밑으로 식은 감자의 미미한 독기가 아리다.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치를 꺼내 와야지.


김치와 먹는 감자가 더 맛있을 건 뻔한 일이니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점차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될 것도 뻔한 일이니까. 귀찮아도 감자를 갈아 전을 하자. 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다들 더 좋아할 건 뻔한 일이잖아. 삶은 건 내게나 추억이지. 게으른 기대로 뻔뻔한 실망을 반복하는 짓은 이제 그만 두자.


뻔한 소재와 플롯도 최선을 다해 긍정하면 이토록 꽉 찬 감동을 주는 것을, 이토록 안정감 있는 마무리로 완성되는 것을, 감자 껍질 떼어가며 확인하지 않았나. 추억 팔이 하다가 잊을 뻔한 할머니의 정성, 손주 먹일 생각에 야채 트럭 올 때마다 기웃대던 마음은 아무리 되새겨도 뻔하지 않다.


식은 감자도 정성 들여 먹을게요.

아무리 뻔한 하루도 뻔하게 살지 않을 게요.


영화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찾아 볼게요.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