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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거리가 필요했습니다.

한 걸음씩 떨어지기

 아이와 나는 늘 함께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일을 시작했지만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있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하루 3시간만 일하기로 했다.


 나오는 시간이 아이의 낮잠 시간과 겹치는 날이면 아이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배고픔을 참아야 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아이 할머니는 얼려놓은 모유를 중탕하여 숟가락으로 떠먹였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먹지 않고 엄마의 가슴만 찾아댔다.


 그렇게 14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했다. 이유식을 만들어 주어도 아이는 먹지 않았다. 일을 하나씩 늘려가면서 하루에 세 번씩 집으로 돌아가 수유를 했다. 일이 바빠 집으로 가지 못하는 날은 차오른 모유 때문에 고통을 참아가며 일정을 소화했다.


 14개월이 지날 무렵 단유를 결심하고 아이와 떨어져 있기로 마음먹었다. 함께 붙어 있으니 단유가 싶지 않았다. 친정집에 머물며 아이와 거리를 유지했다. 밤 중 수유를 했기 때문에 아이는 할머니와 잠을 청하고 나는 따로 잤다.


 아이가 우유는 먹지 않아 두유를 먹였는데 의외로 아주 잘 먹었다. 모유를 먹겠다고 나에게 오면 레몬을 발랐다. 아이는 식겁을 하며 달아났다. 신기하게도 이후로 나의 가슴을 찾지 않았다. 거리가 필요했던 거다. 습관적으로 모유를 먹인 탓에 아이는 당연한 듯 나의 가슴을 찾았을 뿐 조금 더 빨리 단유를 시도하고 적극적으로 이유식을 먹였어도 될 일이었다.


 단유 과정이 쉽지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무척 고생을 했다. 아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밥과 두유를 잘만 먹었다.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허전하기도 하고 약간의 상실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아이가 5살이 되고 나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낮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도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에서 7살이 될 때까지 낮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 되면 아이와 함께 주중에 했었던 활동을 중심으로 복습하는 형태의 놀이를 했다. 종이 접기와 클레이는 우리 모녀의 놀이 필수품이었다.  


 아이가 6살이 되었을 때 일이다. 바깥놀이를 하러 나갔다가 함께 운동을 했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아이에게 집으로 들어가자고 했더니 아이가 조금 더 놀고 오겠다고 했다. 운동 시설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었고 우리가 사는 동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내려다보면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가 혼자 노는 것을 허락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저녁 준비를 마치고 밖을 내려다보는데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19층까지 올라오는 시간이 10년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분도 걸리지 않아 있던 곳으로 올라갔는 데 있어야 하는 곳에 아이는 없었다. 함께 놀았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방금 갔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니 그냥 인사만 하고 갔다고 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도대체 아이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집이 바로 코앞인데 잊어버렸을 리 없고 한 번도 나와 떨어져 어딜 가본 일이 없는 아이인데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전화 진동이 느껴졌다. 집 전화번호다.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주 해맑은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어디예요?”

 나는 눈물을 닦으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집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아이를 안았다. 미친 듯 뛰던 심장은 속도를 늦추고 떨리던 손도 움직임을 멈췄을 때 겨우 물었다.


“어디 갔었니?”


“놀다가 집으로 왔는데 엄마가 없었어요. 엄마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저녁 준비를 마치고 내려다보니 네가 없었어. 내려가서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넌 갔다고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네 전화를 받았어. 그런데 왜 너와 난 만나지 못 한 거지? 엘리베이터가 하나는 10층에 있었고 하나는 5층에 있어서 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 나는 계단으로 올라왔어요.”

 세상에 19층까지 6살 여자아이가 그 짧은 시간에 올라올 수가 있나? 아이는 5살부터 태권도에 다녔는데 늘 달리기를 해서 그 정도는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나만 아이와 거리를 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벌써 혼자서 놀고 제 몸을 알아서 씻고 19층까지 혼자서 올라올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강한 아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아이는 거칠 것 없이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친구 아이 돌잔치에 함께 갔을 때 나와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줄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하는 사회자 말에 망설이 없이 앞으로 나갔다. 아이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는 아이가 참 기특했다.


 아이가 자라고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나는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갔다. 그즈음 나는 공부방을 운영했는데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수업을 했다. 그리고 내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책을 읽다가 함께 놀이터에 갔다.


 아이에게는 어쩌면 엄마와의 거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이사를 했다. 이사 온 아파트에서는 아이가 낯설어 나가 놀지 않았다. 사귄 친구도 없고 나가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아이가 6학년이 되고 비로소 아이는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어요. 같이 시내도 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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