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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Apr 02. 2022

불금엔 와인 한 잔? 난생처음 와인 이야기

느낌 있는 일상


줌 화면에 모여서 와인 잔을 기울여 보았는가?


시작은 이랬다. 온라인 독서모임 리더는 어느 날 단톡 방에 와인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면 어떤지 글을 올렸다. 이름하여 <문화살롱>인데 매달 첫째 주 금요일 저녁에 줌으로 만나자며 제안을 했다.


와인? 와인이라고?

평소 나의 회식 문화는 첫 잔은 쏘맥이요 두 번째 잔부터는 소주 원샷으로 나가고 이차로 맥주 한 잔 마시고 귀가하는 거였다. 내게 와인은 그저 서양문화일 뿐 와인에 대해 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와인 이야기를 나누지? 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발음도 어려운 쇼비뇽 어쩌고 하는 빈티지 라벨이 어쩌고 하는 와인병에 대해 일도 모르지만 생일 케이크에 따라오는 샴페인도 와인의 일종이요, 엄마가 커다란 항아리를 땅에 묻어 만든 포도주가 서양말로 와인이었으니 아주 무지렁이는 아닌 듯하다.


줌 모임의 준비물은 원하는 와인을 준비하고 와인 잔이 없으면 아무거나 머그잔, 유리잔도 좋은데 종이컵은 쓰지 말라고 당부한다. 평소 즐겨마시는 와인이 있다면 라벨을 사진 찍어 올려보라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인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난 퇴근길에 마트에 갔다. 와인코너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내가 안내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레드와인 달지 않은 걸로 1만 원 전후로 추천해 주세요."


라고 했더니 직원은 마침 세일하는 와인이 있다며 칠레산 2020년 카베르네 쇼비뇽 1887 와인을 보여준다. 이거면 되는 건가? 가격이 착하니 사자며 난 계산하고 와인병을 들고 집으로 왔다. 내 손으로 와인을 사 온 적이 있던가? 캐나다 여행 갔을 때 <아이스바인>이 유명하다길래 사서 캐리어에 소중히 담아 왔지만 아까워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기는 하다.


여하튼 와인병 라벨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더니 모임 시작 30분 전에 병뚜껑을 열어놓으라고 한다. 와인병을 열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일단 코르크 가운데로 뾰족한 쪽을 꽂아 돌렸다. 한 2센티 정도 들어갔길래 뽑으려고 손잡이를 눌렀더니 나오던 코르크 마개가 부러졌다. 아이고 이를 어째. 다시 코르크에 꽂아 돌려서 겨우 뚜껑을 열었다. 시계를 보니 8시 20분이 되었다. 안주도 준비하라고 했으니 난 사과 반쪽을 까서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았다. 물도 챙기라 했으니 한 컵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줌 화면에는 회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리더는 와인을 잔에 따르라고 했다. 앗싸 마시는 건가? 난 넉넉하게 반 조금 안 되게 와인을 부었다. 이제 와인 잔 바닥 위 손잡이 부분을 손가락에 끼워서 흔들어 보라고 한다. 그리고는 와인 잔을 들어 코앞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고 한 모금 입에 넣었다가 호로록 마셔보라고 한다. 난 시키는 대로 코에 댔다가 한 모금 마셨다. 쌉쌀한 맛이 나고 막 담근 김치처럼 날 것의 맛이 났다. 물을 마시고 안주를 먹었다. 그러면서 <와인 폴리>라는 입문서를 넘기며 와인 기초 공부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양장판으로 두꺼운데  수강료 대신 준비물이라 기꺼이 샀다.


와인은 몇 잔을 마셔야 옳은가부터 와인잔의 크기와 용도 와인의 색깔 와인별 어울리는 안주 일명 마리아쥬라는데 주의할 것은 안주는 와인보다 간이 약해야 한다는 거다. 크래커나 치즈 바게트가 좋다고 한다. 레드와인은 일단 개봉하면 상온에서 일주일 정도 두고 마실 수 있고 스파클링이나 화이트 와인은 시원하게 해서 마셔야 한다. 디켄딩이라는 건 와인을 깨우는 건데 용기가 없으니 그냥 병뚜껑을 열어두면 된다고 한다.


원산지별 와인 라벨이 A부터 Z까지 나열되어 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고 호주는 시라즈, 아르헨티나는 말베, 미국은 진판델이 유명하다고 한다. 카쇼 즉 카베르네 쇼비뇽은 보르도가 제일 이란다.


아이고 어지러워, 한 시간이 흐른 뒤에 잔에 남은 와인을 마셔보라고 한다. 한 모금 마셔보니 시작 때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와인은 천천히 마셔야 다음날 머리가 안 아프고 꼭 와인의 두배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다른 회원들의 소감을 듣고 다음 달 모임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와인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줌 모임은 늘 회의나 독서토론만 했는데 와인 한 잔을 놓고도 충분히 음미하며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며 불금을 보낼 수 있다니 신선한 체험이었다.


다음 달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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