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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Jun 02. 2022

투표 사무원을 하다.

25년 차 직장인


애초에 나는 생각이 없었다. 갑자기 우리 팀원들이 투표 요원 아르바이트를 권한다. 4명은 사전 투표 요원으로, 막내 2명은 개표 요원으로, 나는 당일 투표 요원으로 신청했다. 팀 전체에서 1명 빼고 모두 요원이라니. 사전 투표 요원은 이틀이나 해야 한다. 팀원들은 일당이 얼마냐고 물어보더니 하겠다고 한다.


 


6월 1일 전국 동시 선거 날. 새벽 4시 알람이 울린다. 새벽 5시까지 00 초등학교 시청각실로 집결해서 투표사무원을 했다. 나의 일은 시․구의원 투표용지를 배부하는 일이다. 옆에 있는 구청 직원이 3장의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어 주면 나는 하단 일련 변호를 가위로 오려 번호지 함에 넣고 차례로 배부한다. 3장씩 모아서 쭉 늘어놓으니 남대문 시장에 좌판을 벌인 느낌이다. 투표권자가 앞에 와서 보는 자리에서 번호를 제거해야 해서 쉽게 뗄 수 있도록 가위로 끝까지 오려두었다가 손으로 제거한다.


 


맞은편에서 시장, 교육감, 구청장 투표용지를 받아 좌측 기표소에서 날인 한 뒤에 바로 보이는 투표함에 넣고 나면 난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안 그러면 투표를 다 한 줄 알고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난 다시 “시의원 투표를 해야 하니 우측으로 가셔서 한 번 더 투표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반응이 여러 가지다. ‘어쩐지 3장뿐이더라’, ‘또 해요?’, ‘근데 왜 3장뿐이죠?’, ‘아 네. 한 명은 무투표 당선이라 그렇습니다.’ 하면 ‘아 아 어쩐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간다. 대체로 그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남자 어르신이다. 어떤 분은 하도 많아서 커닝 페이퍼를 가져왔다며 선거인 명부 종이 뒤에 명단을 쭉 적어오기도 했다. 그런 분들을 보면 투표에 진심이 느껴져 고마운 마음이 든다.


투표장은 보통 주민센터나 초등학교에 마련된다. 매번 투표업무를 해본 지자체 직원들은 학교시설이 불편하다고 한다. 어제 갔던 시청각실도 의자가 나무라 딱딱하고, 조명이 어두워서 불편했다. 투표가 끝난 뒤에 뒷정리해야 다음 날 학생들이 사용하니 그것도 신경 쓰인다. 학교시설은 늘 기대 이하다. 한 번 지은 뒤에 보수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물품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 원도심과 신도심의 시설격차도 심하다. 또한 학교 관계자들의 노력이나 열정에 의해서도 차이가 난다.


 


투표장은 지리적으로 경사진 곳이고 주변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6시부터 투표가 시작되었지만 한산했다. 도심 속 시골 같은 느낌이다. 투표하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이다. 젊은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유모차나 아이를 업고 온 엄마들도 있고 강아지를 안고 온 엄마들도 있다. 아이가 귀한 시대라 그런가, 더 예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같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려니 의자도 딱딱하고 어깨도 쑤신다. 저녁 6시가 되어 일반인 투표가 끝나고 방호복을 입은 뒤에 코로나 확진자 투표가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 지나갔다. 한 번은 어떻게 했지만 두 번은 못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고생하신 지자체 공무원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 투표한 시민들 모두 고생이 많았던 날이다. 


다시는 하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하고 돌아오는 길, 수고한 나에게 피자 한 판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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