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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Jun 13. 2022

힐링 제천

25년 차 직장인


<제천 1일 차>



제천 한방 힐링 연수. 지인과 아침 8시 10분에 집결해서 제천으로 출발했다. 근무 중에 3일이나 사무실을 비우고 연수에 참여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과장님을 설득해서 어렵게 마련한 2박 3일 연수다.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과 전국에서 모인 직원들은 흥겨워 보였다.


 

제천은 지대가 높아 예로부터 황기, 당귀 등 한약재로 유명하단다. 한방엑스포를 개최했던 도시답게 매년 한방 박람회도 연다. 점심을 먹고 한방 비누와 핸드 로션 만들기 체험을 했다. 학생 체험활동으로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로션 만들 때는 재료별 무게를 일일이 재서 잘 섞어서 주사기에 넣은 뒤에 피스톤을 이용해 로션 통에 담는 과정을 해보면서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1층으로 내려와서 단체로 건식 족욕과 발 마사지를 받았다. 한꺼번에 3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데도 끄떡없이 해내는 마사지사들은 베트남에서 왔다고 한다. 예전에 베트남 연수 갔을 때도 발 마사지를 받은 기억이 난다. 마사지사는 이상하게 생긴 면도날로 굳은살을 도려내 주었다.



제천의 명물은 의림지다. 의림지는 농사를 짓기 위해 인공으로 만든 저수지다. 삼한 시대에 만들어졌고 조선시대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의림지 주변에는 커다란 소나무, 수양버들, 벚나무 등 아름드리 수목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행들은 의림지 박물관을 돌아 저수지로 갔다. 날이 가물어서 그런가 저수지 수위가 낮아졌고 근처 폭포에도 물이 말랐다. 박물관 야외에 활쏘기 체험장이 있길래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활을 쏘아봤다. 5번 활쏘기를 했는데 처음 2번은 내가 이겼고 나머지 3번은 내가 졌다. 활쏘기에서 진 사람은 저녁에 맥주를 사기로 했다.



 저녁으로 떡갈비를 먹고 나서 숙소에 마련된 야외 탁구장에 가서 가로등을 조명 삼아 탁구를 한게임 쳤다. 난 잘 치지 못해 공을 자꾸 홈런으로 쳐서 떨어뜨렸고, 떨어진 공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여야 해서 힘들었다. 낮에 활쏘기 진 사람이 맥주 내기를 했으므로 내가 샀다. 밤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시골이라 별들도 눈에 띄게 반짝인다.



<제천 2일 차>


 

아침 산책길 연꽃 연못에서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침 식사 후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신다. 새소리도 들리고 토끼가 노닌다. 저 멀리 산자락에 안개가 끼어 있고 저 아래 청풍호수는 고요하다. 숙소 위치가 참 좋다. 조용한 가운데 닭이 울고 새가 운다. 핸드폰으로 녹음해서 ASMR을 만들었다. 고즈넉한 아침이다.


 

소백산, 월악산과 치악산으로 둘러싸인 제천은 인구 12만 명에 임야가 73%나 된다고 한다. 시멘트 회사가 많고 철도청 직원들이 많다니 교통 요충지다. 제천 2일 차 오전에는 청풍호 유람선을 타러 나갔다. 청풍호수는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호수인데 10개가 넘는 지역 마을이 수몰되었다고 한다. 왕복 1시간 반 동안 조용한 호수에 배를 띄우고 옥순봉, 금수산 등 주변 경치를 바라보니 저절로 시구가 떠오른다. 안타까운 사실은 충주호냐 청풍호냐 호수 명칭을 두고 제천시와 충주시는 긴 세월 소송 중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비봉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저 아래 산과 호수가 둘러싸여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전망대와 이어진 약선당 걷기를 한 뒤에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금수산으로 가서 숲길 체험을 하려 했으나 마침 비가 내리는 관계로 숲 해설사와 함께 사상체질 검사를 한 뒤에 나에게 맡는 한방차 만들기를 했다. 난 태양인과 소양인의 중간 어디쯤이다. 감잎차를 마시면 좋단다. 저녁 식사는 토종닭으로 얼큰한 닭볶음탕을 먹고 어제처럼 탁구 한게임에 맥주 내기를 했다. 초승달이 조금 더 커졌다.



<제천 3일 차>



제천 3일 차다. 아침에 창밖을 보니 호수에 물안개가 피어난다. 다슬기 된장국을 먹고 모닝커피를 마셨다. 다시 청풍호로 가서 옥순봉 출렁다리를 왕복으로 건넜다. 호수를 가로질러 가는데 가이드는 일부러 좌우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다리가 더 출렁거린다. 전국에 웬만한 관광지에는 출렁다리가 놓이는 듯하다. 가을 단풍 질 때 건너가면 더 운치가 있겠다. 어르신들도 씩씩하게 잘 건너간다.



버스는 청풍 문화단지에서 멈추었다. 단지에는 호수에 수몰된 마을을 구경할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예전에는 호수에 바지선을 띄우고 버스도 실어 날랐고 겨울에는 물이 얼어 썰매도 타고 놀았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충주댐 건설로 인해 추억이 담긴 마을이 물속으로 잠겼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야외 벤치로 나가니 저 아래 호수에서 쏘아 올리는 분수를 구경할 수 있다. 높이 100미터 이상으로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가까이에서 본다면 더욱 장관일 것이다.


 

이제 제천 구경을 마치고 유명한 곤드레밥집으로 갔다. 정원도 잘 꾸며 놓은 집은 내부 시설도 넓다. 반주로 동동주를 한잔 마시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버스는 제천역을 지나 엑스포 주차장에 연수생들을 내려준다. 난 2박을 함께 한 룸메이트와 인사를 나누고 승용차를 같이 타고 온 우리 팀은 발 마사지를 다시 받았다. 개운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맞는 직원들과 함께 연수 기회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각자의 일정이 있고 사무실 사정이 있는데도 조율해서 같은 날짜에 시간을 맞추었다. 이번이 아니면 같이 갈 수 없을 거 같아서 어렵게 만든 시간인데 심적 부담은 컸지만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든지 퇴직을 한다. 만 60세는 요즘 나이로 청년이다. 인생의 3분의 1은 부모님이 키워주시고 3분의 1은 직장생활로 버티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인생 2막을 즐겁게 보내려면 3개의 운동과 1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데 부족한 걸 채워야 한다. 이제 서서히 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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