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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Jun 14. 2022

그냥 서운하다.

25년 차 직장인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앉아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지역 구립도서관에서 한 책 읽기 선정위원회를 운영하는 담당자다. 지난번 회의에도 일찍 가셔서 바쁜 거 같은데 앞으로 참여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다른 분을 구해보겠다는 이야기였다.


 


난 지난가을 내 책을 만든 출판사 추천으로 협의회에 참석했다. 도서관이나 출판 업계에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단독 에세이를 출간했고 학교에 근무했으니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반기에 50여 권의 책을 펼쳐놓고 추리고 추리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다. 덕분에 몰랐던 책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읽은 책이 <천 개의 파랑>이다.


 


도서관 담당자와 전화를 끊는 순간 괜히 서운함이 몰려왔다. 공직이라는 곳이 담당자가 바뀌면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인맥이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흔쾌히 수락했지만 서운했다. 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출판사 대표님께 문자를 보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지역 도서관 한 책 선정위원회 담당자가 바뀌었는데요, 학교 관계자가 필요하다길래 다른 분 모시라고 했어요. 저도 시간 내기 어렵기도 하고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문자를 보내면서도 서운함이 가시질 않는다. 원래 대표님이 참여했던 자리인데 일이 바빠 내게 물려주었던 터라 대표님께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무실 때문에 못 가게 되니 일도 하기 싫다. 학교에 근무했으면 시간 여유도 있어서 외부 활동도 편하게 했을 텐데 이렇게 된 상황도 서운하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학교로 나갈 수는 없다. 


 예전에 7급 때는 집 근처 초등학교 행정실장을 했고, 지역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을 했었다. 이름만 걸어 놓고 회의에는 거의 참석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사무장이 바뀌고 나서 전화가 왔다. 경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도 되겠느냐고 했고 난 그러라고 했다. 



사실 그때는 지역 활동 경력을 만들고 싶었다. 그냥 학교만 다니는 게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때도 그러다가 지역교육청으로 발령 나면서 일이 바빠졌고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근데 그때는 오늘처럼 서운하지 않았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본다. 성의를 다하지 못한 점도 반성해야 할 일이지만, 별 볼 일 없는 사이가 되면 남남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날씨가 흐리다. 어제도 지인과 스크린골프 쳐서 졌는데 오늘 또 도전장이 날아왔다. 아주 재미가 들었나 보다. 핸디 잡아 주랴? 하길래 거절했다. 참나, 언제부터 이겼다고 핸디 타령이야. 별일 없으면 독립서점이나 가려고 했는데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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