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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Apr 15. 2024

내 인생 첫 번째 마라톤

느낌 있는 일상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기부 런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공원에 도착하니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라톤 셔츠에 번호표를 붙이고 있다. 나도 벤치 위에 셔츠를 펴 놓고 쭈그려 앉아서 번호표를 붙였다. 조금 위로 붙여야 하나? 펼쳐보고 다시 올려서 붙였다. 긴장한 탓일까? 벌써 손에 땀이 난다.

 마라톤? 그건 젊은 친구들이나 하는 거 아냐? 간혹 텔레비전에 고령의 노인이 달리다가 심장마비가 왔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하던데 나이 먹은 어른들은 뛰면 죽는 거 아냐? 내 인생 사전에 마라톤은 들어있지 않았다. 연초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마라톤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을 때 난 별생각이 없었다. 사실 작년 11월부터 헬스장에서 개인 PT를 받고 있으니 나름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주 2회 관리받는다 해서 내 몸이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달리기라도 더 한다면 살도 빠지고 근력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신청해 보자.

 내가 참여한 마라톤은 일명 ‘기부 런’이라 해서 참가비 전액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부금으로 전달하는 행사다. 오호 건강관리도 하고 기부도 하고 친목을 다질 수 있다니 일 석 삼조 구나. 선착순 30명이 모집되자 기부 런 총괄 리더는 단톡방을 만들어서 6명씩 조를 짰다. 조 구성 기준은 개인별 몸무게 평균으로 나누어서 골고루 배치했다고 한다.

 2024년 1월 8일. 드디어 조별 인증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먹은 물, 식단, 운동 인증 사진을 올려 누적 점수를 관리한다. 물은 하루 2리터 이상 마셔야 하고, 식사는 밀가루나 튀김 등을 먹지 않고 채소, 단백질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짜야하며, 운동은 핸드폰에 ‘런데이 앱’을 깔아서 하루 적어도 30분 이상 걷거나 달리기 하고 - 인증을 올려야 한다. 날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인증 사진을 보며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부지런한 회원은 저녁 6시만 되면 인증 사진을 올린다. 특히, 주말 오후 하루 종일 뒹굴뒹굴 쉰 날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얼른 옷 입고 나가서 걷고 뛰었다.

 1월 한 달은 초급 걷기 6회 코스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15분 천천히 걷기로 시작해서 6회 차에는 30분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걷기를 하는 코스다. 난 출퇴근 길에 걷기를 실천했다. 운동이 끝나면 런데이 앱에 내가 걸은 동선과 속도가 지도와 함께 표기된다. 운동하고 나면 어찌나 뿌듯하던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월부터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런데이 초급 달리기는 총 8주 코스다. 주 3회 달리기를 권장하여 하루 달리면 다음 날에는 걷기 6회 차 빠른 속도와 최고속도 걷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1분 달리고 2분 걷기로 시작해서 다음 회차부터는 2분, 3분, 4분 달리고 2분 걷기로 점점 달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마지막 8주 차에는 오로지 30분 동안 달리는 것으로 끝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난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것일까?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떠오르지만 ‘자자,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달려보세요!’ 런데이 앱에서 들리는 훈련 조교의 응원 한마디와 회원들이 보내주는 응원 박수에 힘을 얻는다. 100일간 연습이 끝나고 오늘 결전의 날이 왔다.

 회원들이 모두 모여 준비체조를 하고 출발 지점으로 이동했다. 코스는 여의도 공원에서 한강 변으로 달리다가 2.5킬로 반환점을 돌아오면 된다. 출발할 때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달리는 게 쉽지 않았지만, 동료를 만나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니 서로 의지가 되고 힘이 났다. 드디어 2.5킬로 반환점이 보인다. 나와 동료는 반환점을 돌아 물을 마셨다. 시원한 바람이 한강 변에서 불어온다. 두 팔을 올리고 바람을 맞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마지막 고비 언덕이 남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며 도로변에서 사람들이 응원을 해준다. 파출소 경찰들도 조금만 더 힘내라며 박수를 쳐 준다. 200미터가 남았을까? 저 앞에 골인 지점이 보인다. 먼저 들어간 동료들이 가드레일 옆에서 응원해 준다. 다 왔구나, 드디어 골인이다!!

 숨이 차 헉헉거리면서도 우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을 기억해 주는 건 사진뿐이다. 줄을 서서 메달과 간식을 받았다. 메달이라니, 감격스럽다. 남들은 5킬로가 마라톤이냐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지금까지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난 30분 이상 달리기를 해본 역사가 없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메달을 받자마자 목에 걸고 사진을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딸들은 엄마 잘했다고 칭찬하며 박수를 쳐 준다. 2024년 4월 14일 오늘은 내 생에 첫 마라톤을 완주한 역사적인 날이다.

 달리기를 마친 회원들이 함께 모여 간식을 먹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낸 회비로 어려운 가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전달되었다며 주최 측에서 장학 증서를 주었다. 십시일반 모은 돈이 백만 원이 넘는다. 건강도 챙기고 우정도 다지고 좋은 일도 하는 기부런. 마라톤을 위해 연습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인증을 했고 조원들이 서로 합심해서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게 서로서로 격려했다. 우리 조는 최종 우승했다.

 단합된 힘을 발휘하려면 개개인의 성실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팀이 뭉칠 수 있는 협동 정신이 더 필요하다. 나의 작은 성의와 노력이 모여서 큰 힘을 발휘한다. 함께 뭉친 덕분에 조원들과 푸짐한 선물도 받았다.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여 회원들이 우정을 다지며 마라톤에 성공한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뿌듯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 마라톤에 참여한 값진 경험은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에 커다란 나침반이 되었다. 건강한 신체를 만들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미래에 어떤 일이든 물러서지 않고 도전하여 성취할 것이다. 나의 삶을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으로 만들 것이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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