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컨추리우먼 Jan 20. 2022

언어폭력? 업무 폭력! 이랬다 저랬다하는 상사

25년 차 직장인


오늘도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1분만 여유롭게 나오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비닐 모으는 분리수거함이 꽉 차서 꺼내려다 담았던 비닐봉지가 터졌다. 바닥으로 비닐들이 쏟아졌다. 아이고ㅠ 시간도 없는데 그냥 둘 수도 없고 새비닐봉지를 꺼내서 옮겨 담았다. 그로 인해 날아간 시간이 2분이다. 으아악 서둘러 옷 입고 가방을 들고 나왔다.

싸한 날씨는 오늘이 절기상 대한임을 알려준다. 어제와 비슷한 겨울 날씨다. 계단을 오르느라 씩씩대며 사무실에 들어가면 난방을 가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덥다.

급식이라는 게 단순히 밥 한 끼로 생각하면 참 쉬운 듯하지만 업무로 접근하면 세상에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일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담당자들이 묵묵히 열심히 자리를 지켜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오전 10시에 급식실 주방 안전시설 확충에 대해 안전총괄과 와 협의를 하고 1시에는 국장님 실에서 병설유치원 방학중 중식 해결방안에 대해 전임 팀장님들과 협의를 한다. 오후에는 다시 노조와 교섭을 한다. 조리실무사 배치기준을 완화해달라 해서 해주었더니 실질적 도움이 안 된다며 힘든 학교를 먼저 해달란다. 우리는 인력지원에 한계가 있으니 힘든 학교 서열을 달라했다. 아마 오늘이면 자료를 줄 것이고 우리 팀에서 검토를 해야 한다.

처음부터 우린 그런 제안을 했는데 노조는 가당치도 않게 1,300명을 늘려 달라고 하더니 조금 많이 수그러진 듯하다. 예산과 정원은 한계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조는 다시 한번 깨달은 듯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사무실에 들어와 외투를 걸고 커피와 둥굴레차를 담아서 자리에 앉았다. 다시 고민에 빠진 병설유치원 방학중 중식. 친한 선배는 문자를 보내왔다. 본청 팀장의 자리는 브리지 역할을 할 뿐이다. 그 자리에서 뭔가 결정하려고 하면 힘들어서 못하고 자칫 나서는 것처럼 보여서 과장님이 서운해 할 수 있다고 한다. 참 힘들다.

담당 직원은 나에게 말한다.

"이제는 제가 울어야 할 차례인가 봐요."

사실 어제 유아팀 장학사가 와서 자기네 업무 때문에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며 훌쩍이고 갔다. 지난주에는 내가 훌쩍이고...

이게 뭐란 말인가? 이건 학교폭력보다 더 무서운 업무 폭력이다.

한시부터 두시가 아예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계를 보니 한시가 다 되었다. 전임 팀장님들과 차 한잔 하고 국장실 옆 협의실에서 기다렸다. 의회 행사가 늦어져 국장님 점심도 늦어졌다는 비서의 말을 들었다. 막상 협의를 하는데 국장님 태도가 달라지셨다. 걱정했던 병설유치원 방학중 중식은 위탁급식으로 정해졌다.

아니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더니 전임 팀장 두 명이 와서 말하니 수용을 하신다. 나참 어이가 없다. 내가 온 지 얼마 안 되니 내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건가? 학부모 입장에서는 위탁이든 직영이든 중요하지 않다. 괜히 국장님은 당신이 유치원에 선언하시고 뒷감당을 못하고 계신 거다. 오늘 결국 손을 들었으니 전임 팀장 말대로 코끼리 숨 너머 가는 때에 바늘로 찌른 격이다. 유아팀에서는 1인당 급식비를 산정해보고 전체 예산이 얼마나 들지 확인해야 하고 급식팀에서는 무상교육비로 지원 가능한지 알아보아야 한다.

다섯 시 교섭은 자료 제공했더니 검토하겠다면서 다음 교섭 때 보자고 한다. 내일은 시아버지 49제라 연가를 냈다. 내일 출근을 안 해도 된다고 하니 기분이 날아갈 거 같다. 새해 들어 계속 야근을 하다가 오늘 칼퇴근을 하니 가도 되나 싶다. 직원들은 다 남아서 야근을 하는데 나만 먼저 나왔다. 애라 모르겠다. 일단 퇴근하자.

작가의 이전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급식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