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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추리우먼 Jan 22. 2022

절편

추억 속으로


새해 들어 네 번째 토요일이다.


아침에 눈뜨기 힘들어 6시 북클럽 패스하고 9시 트레이닝 건너뛰고 사우나에 갔다. 뜨거운 해수탕을 보니 피로가 저절로 풀리는 듯하다. 11시에 치과 정기검진 갔다가 집으로 왔다. 투덜거리는 나를 태우고 다니며 신랑은 운전을 해준다.


집으로 와서 봉지커피 한잔에 어제 절에서 가져온 절편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절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이다. 예전에 큰애가 어렸을 때 친정아버지께 절편이 먹고 싶다고 했다가 둘째 가졌느냐며 올케 언니가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보통 절편은 마름모 꼴로 기울어지게 썰어주는데 이번에 받은 떡은 절편 세 개 정도를 붙인 것처럼 기다랗다. 마치 두꺼운 자를 만지는 느낌이다. 한입 두입 먹어도 또 남아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하얗고 투명하고 쫄깃한 식감이 너무 좋다.


봄에는 쑥을 넣어 만든 절편이 진짜 맛있다. 쑥 향기가 입안에 온 몸으로 퍼진다. 따뜻한 양지에서 자라는 쑥을 작은 칼로 잘라서 예쁘게 씻어서 찌면 푹 익은 쑥이 걸쭉해진다. 절구에 빻아서 쌀가루와 같이 섞어 버무린 뒤에 방앗간 기계에 넣으면 하얀 쌀가루가 쑥가루로 변한다. 두세 번 넣어서 갈아준 뒤에 네모난 떡 틀에 넣고 푹 쪄서 절편 틀에 넣어 빼내면 기다란 기차처럼 절편이 나오면서 기다란 고무대야에 담긴 찬물에 빠진다.  찬물을 지나 다시 도마 위로 올라오면 썩둑썩둑 떡을 자르면 맛있는 절편이 된다. 떡이 들러붙지 않게 살짝 들기름이나 참기름에 버무려 비닐을 깐 양은그릇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온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떡 상자가 흔치 않았다. 쌀을 담아 왔던 그릇에 떡을 담아서 가져간다. 따뜻한 떡을 만지면 포근한 눈송이를 만지는 느낌이다.


절편은 흔하게 먹는 떡이 아니다. 설에는 가래떡, 추석에는 송편을 먹고 고사 지낼 때는 시루떡을 먹는다. 절편은 할아버지나 아버지 생신 때 해 먹는다. 아니면 결혼식이나 어디 관광 구경 갈 때 만든다.  맵쌀로 만들기 때문에 쌀도 구하기 어려운 집에서는 쉽게 만들 수 없는 떡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벼농사 추수를 마친 뒤에 싸라기가 생길 때는 그걸로 밥을 짓기 힘들어 쪄서 절편을 만들어 먹는다. 온전한 쌀로 만들 때보다는 빛깔이 곱지 않지만 아무 날도 아닌 때에 떡을 먹을 수 있는 자체 만으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추운 겨울에 절편이 식어 굳어지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한 불에 구우면 말랑말랑해진 절편을 젓가락으로 늘려서 꿀이나 조청, 그것도 없으면 흰 설탕에 찍어 먹는다.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른다는 표현이 딱이다.


절편을 먹으며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농사 일로 바쁜 엄마가 꼭 챙겼던 고사떡. 어디 관광이라도 다녀오시면 꼬깃꼬깃 가방 속에서 꺼내 주던 보름달 카스텔라 빵과 사이다, 절편이나 개피떡, 어떤 날에는 인절미와 사탕. 먹고 싶은 거 참으시고 자식들 주려고 담아 오시던 주름 잡힌 엄마의 따뜻한 손.


한해 중 그래도 한가한 음력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아버지 생신이 돌아왔고 그날은 동네잔치가 우리 집에서 벌어졌다. 아침에는 아버지 친구분들, 점심에는 일가 친척분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분들이 오시고 저녁에는 엄마 친구들과 아버지 고스톱 친구분들이 늦은 밤까지 고! 를 외치신다. 차갑게 살얼음이 낀 감주를 한 사발 들이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시골의 겨울은 한 해 농사를 넉넉히 지은 다음이라 아늑하고 풍족하다.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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