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컨추리우먼 Jan 25. 2022

겨울비 내리다.

25년 차 직장인


아침 출근길에 안개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겨울비다. 날씨가 포근해졌다. 이제 칼바람 부는 날씨는 지나갔을까?


출근하자마자 교섭안 수정을 했다. 노조 측 요구로 조리실무사 정원이 110명에서 20명 늘어난 130명으로 조정안을 마련했다. 과장님과 보좌관님께 보고를 드리고 노무팀에 전달했다. 이제 교섭은 끝난 건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시의회에서 전화가 왔다. 모 의원님이 사업에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서 와서 설명을 하라고 하신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이 들었던 차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내용은 쓰레기 배출을 줄이자는 취지로 음식물쓰레기 감량 기를 각급 학교에 배치하는 내용이다. 열흘 전에도 상황 보고를 드렸는데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는 거다.


나와 담당자는 사무실에서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일단 두시 약속을 하고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했다. 상황은 검토 단계인데 수요조사를 해서 추경에 반영하려면 기준안을 마련해야 한다.


조달청에 등록된 업체만 해도 전국에 열 개는 넘는다. 구청별로 기준을 따지면 공통사항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액상으로 하수구에 방류하지 못하며 최대 용량이 100킬로 이내라는 거다. 당초에는 150킬로를 제안했었다. 학교 규모가 큰 곳은 두 개를 설치해야 하고 그에 따른 공간과 부피를 차지한다.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최근에 제주도에서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다른 일로도 안전사고는 날 수 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여하튼 보고를 마치고 사무실로 오는데 노무팀에서 연락이 왔다. 130명을 확실하게 보장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담당자는 기준을 정하다 보면 가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도 불안한지 숫자를 확실히 적어야겠다는 거다. 난 그리 하겠노라고 했다. 까짓 거 기왕에 다 퍼주는 거 20명이 많으면 어떠랴. 세수가 많아 예산이 넉넉하다는데 인건비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조리실무사들이 현장에서 진짜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는지 조합원이라는 명분 하에 권리만 내세우는 건 아닌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섭이 끝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선량한 근로자들의 처우가 개선되니 환영받을 일이다. 권리는 책임을 수반한다. 어렵게 교섭을 했으니 현장에서도 이에 맞추어 근로자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근무해주길 바랄 뿐이다.


저녁에 일찌감치 퇴근했다. 팀원들도 오늘은 야근을 안한다고 하니 난 국장님 공부하시는데 주요 업무 예상 답안지 쪽지 붙여 드리고 6시 반 경 사무실을 나왔다.


전쟁 같은 본청 생활에 나역시 그럭저럭 적응을 하고 있는 듯하다. 세월이 약인가. 다행스러운 건 날마다 쓰는 백일 글쓰기를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특하다.

작가의 이전글 월요일 또 야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