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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Dec 04. 2021

김밥과 떡볶이처럼 가까워지는 우리 사이

싸고 맛있고 든든한 욕심쟁이 분식 요리

원래는 김밥에 대해서만 글을 쓰려고 했다. 그 자체로도 너무 맛있으니까. 그 자체로도 완전식품일 뿐만 아니라 속재료의 다양성까지 갖고 있으니 개개인의 입맛에 따라 취향에 따라 주문제작 (customize)이 가능하다. 단무지가 싫으면 빼면 되고,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오이가 싫다면 오이를 빼 달라고 주문하면 된다. (이런 음식의 취향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니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운영 중인 '오싫모 (오이를 싫어하는 모임)'에 대한 담론은 나중을 기약하도록 하자.) 오늘 약간 느끼한 맛이 댕기면 마요네즈를 듬뿍 짜올린 참치 김밥을 먹으면 되고, 고소한 맛이 댕기면 치즈 김밥을 주문하면 된다. 맙소사, 이토록 포용적인 메뉴를 보았나... 김밥은 참 훌륭한 분식 메뉴다.


김밥은 김밥 자체로서의 존재감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들과 함께할 때 매력이 두 배, 아니 세 배가 되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래서 글 주제를 '김밥'이 아닌 '분식'으로 잡았다.) 먼저 떡볶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매콤한데 달콤 짭짤한 떡볶이 소스에 김밥을 푹 찍먹 하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 소스 때문에 떡볶이를 주문해야 할 정도다. 유독 그날은 특별하게 (fancy 하게) 먹고 싶어 치즈 라볶이를 주문한 날엔 김밥 한 입에 라면 한 젓가락을 올려서 먹어도 정말 맛있다. 여기에 떡볶이 떡까지 함께 먹으면 탄수화물에 탄수화물, 거기에 탄수화물을 더해먹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맛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김밥은 꼭 떡볶이와 함께 해야 한다. 

앙꼬와 찐빵, 크리스마스와 산타 할아버지, 정우성과 이정재 다음으로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소울메이트는 김밥과 떡볶이가 아닐까.

떡볶이 말고도 김밥과 잘 어울리는 메뉴는 많다. 분식은 워낙 대한민국 서민을 위한 소울푸드, 위로의 음식으로서 어떤 메뉴 조합에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쫄면도 있고, 돈가스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핫도그나 주머니 사정이 여유 있다면 치킨도 가능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김밥의 베스트 프렌드는 단언컨대 떡볶이다. 야채가 풍부해서 상큼한 김밥에 떡볶이라는 걸쭉함을 얹어줬을 때 완벽한 하모니를 자랑한다고 생각한다. 아, 갑자기 또 배고파졌다.


내가 다니는 학교 주변에는 작은 상권이 있다. 하지만 여기는 소위 말하는 '대학가, ' '캠퍼스 타운'이라고 일컬어지기엔 어려운 게 큰 아파트 단지가 바로 옆에 있고 구청과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가 자리 잡고 있어서 용돈이 부족한 대학생들을 위한 물가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학교 옆 상권 중 점심시간 또는 저녁 시간만 되면 학식 마냥 학부생들 그리고 대학원생이 줄을 지어 찾는 곳이 있는데 이는 바로 고봉민 김밥 분식점이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분식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순대 메뉴가 없어 아쉬운데 프랜차이즈 매장이라 따로 메뉴를 제안드리기엔 어려울 것 같다. 아쉽네.) 각종 김밥부터 다양한 떡볶이 종류 (치즈, 떡, 라면 등을 더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그리고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와 같은 볶음밥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쫄면, 잔치국수와 같은 면류, 그리고 돈가스나 비빔밥, 떡만둣국과 같은 든든 메뉴도 많다.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연구실 동료들과 함께 간단하고 빠르게, 하지만 맛있고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싶은 날엔 분식점을 자주 찾았다. 자주 간만큼 모든 메뉴를 정복해본 것은 아니고, 내가 갔을 때 꼭 시키는 메뉴는 김밥과 라볶이, 또는 돈가스와 쫄면 이렇게 두 쌍의 메뉴가 개인적인 최애 조합이다.

어은동 고봉민 김밥에서 매번 주문하는 돈까스와 쫄면, 그리고 김밥과 떡볶이 조합. 탄수화물이 다소 많아보이는 것은 기분탓이다. 대학원생한테는 저렴한데 맛있고 든든하면 된거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맛있고 간편한 조합을 아무 하고나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수업 전후로 빠른 끼니를 원할 수도 있고, 시간이 맞으면 눈앞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은 좀 다르다.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 얼굴을 보기도 힘들어진 요즘, 어렵게 맞춘 밥 약속인데 무턱대고 김밥집에 가자는 말을 꺼내기 어렵다. 아무리 편한 사이더라도 오랜만에 본 얼굴인데, 어렵게 맞춘 시간인데, 평소 먹는 밥보다는 가격이 조금 나가더라도, 조금 더 고급지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게 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좀 더 격식을 차려야 할 때는, 좀 더 예의를 갖추고 서로를 대해야 하는 날에는 분식집은 절대 좋은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다 보면 편하게 풀어져 김밥과 떡볶이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나도 비싼 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메뉴 선정에 고민하고 맛집을 알아보는 일을 좋아한다. 무조건 비싸기만 한 음식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퀄리티 푸드 (quality food)' 즉 호화로운 '파인 다이닝 (fine dining)'까지는 아니어도 사장님의 정성이 입소문 또는 SNS를 통해 유명해져 가끔은 줄 서야만 그 맛을 볼 수 있는 곳에 방문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사실 여건만 된다면 파인 다이닝도 좋다. 나도 혀가 있고 미각을 갖고 있고 특히나 맛있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며 사는 것에 대한 감사 (appreciation)를 지향하고 있는 편이라 비싸고 질 좋은 음식도 당연히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밥 약속에서는 음식점 선정에 신경이 쓰여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생긴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인데 메뉴 선정 실패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나는 나름 계획형 맛집 인재라(?) 메뉴 리더십도 강하고 동네별로 가보고 싶은, 가봐야 하는 맛집 리스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뉴 선정이 중요한 날에는 다소 긴장하게 된다. 이럴 때면 편하게 "고봉민 콜?" 하고 편하게 가까운 분식집을 방문할 수 있는 인연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나는 일대일 약속을 좋아하고, 음식은 그 자체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 어떤 음식이든 우리가 함께 하면 된다는 그 마음 하나로 어떤 메뉴도 상관이 없어지는 만남이 참 감사하다고 느끼게 되는 요즘인 것 같다. "우리 여기 가보자"라는 맛집 탐방 목적의식 대신 "우리 얼굴 좀 보자"하고 그날의 메뉴는 상관없어지는 그런 만남 말이다. 예쁘게 차려입고 인증샷도 남길 수 있는 맛집도 좋지만 동네 분식집, 교내 덮밥집, 또는 학교 옆 감자튀김이 맛있는 호프집도 좋다.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게 되는 만남. 그래서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되는 파스타집보다 언제든 함께 분식집으로 향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일상의 편안함을 공유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사실 요즘엔 김밥 마저 '프리미엄'이 생겨서 '서민 음식'의 대표 선수인 김밥 마저 비싼 음식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다소 신경 써야 하는 약속 자리에도 김밥을 메뉴로 제안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속재료를 푸짐하게 넣고 비싼 유기농 재료를 고집했다는 이유로 만 원이 훌쩍 넘는 김밥도 목격한 적 있는데 우리나라 김밥 마저 일본식 비싼 김밥인 '후토마키'와 같은 럭셔리 음식이 되어 가볍게 즐기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싶다. (김밥이 더 맛있는데 말이다!) 그럴 땐 직접 만들어 먹어야지 뭐. 실제로 우리 엄마 아빠는 집에서 김밥을 만들 때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하시는데 어머니는 재료 구매와 손질을 담당하시고 아버지께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김밥을 예쁘게 쌓는데 열을 올리신다. 가족끼리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고 한강 공원으로 나들이 갈 때도 김밥을 자주 사 먹기도 하는데 이동도 편리하고 여기에 컵라면이나 핫도그 같은 간식거리를 더해주면 금상첨화의 피크닉 메뉴다. 빨리 날씨가 또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가족끼리 강원도 여행에 가서도 재료를 사다가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이 날은 김밥 재료 구성에 대한 의견이 불일치가 많았던 날인데 그래도 집에서 만든 김밥이 제일 맛있다.
작년 추석 연휴 때 집에서 엄마 아빠가 만들어주신 김밥이다. 솔직히 파는 김밥보다 더 예쁘지 않은가. 맛도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고 재료도 아끼지 않아 맛도 훨씬 좋았다.
간편하게 사 먹는 집 앞 분식점 김밥
난지한강공원에 갔을 때 유명한 시래기 김밥, 삼겹살 김밥등과 함께 핫도그 세트를 사서 피크닉 시간을 가졌다. 간단하게 먹으려고 선택한 메뉴였는데 오히려 더 배불렀다는 비화가 있다.

비싼 파스타를 앞에 두고 함께 하든 김밥과 떡볶이를 앞에 두고 함께 하든 모든 만남은 소중하고 그와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대화는 내 일상생활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오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메뉴가 무엇이든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서로와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노력은 피부로 느껴진다는 깨달음이다. 내가 노력하는 것이 상대방에도 느껴질 터인데 마찬가지로 나 역시 누군가 나와의 인연을 지속하고 평소의 안부에 대해 궁금해해 주는 노력들이 잘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관심의 정도가 이전과 달라지더라도 (더 늘어나든 줄어들든 간에)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유퀴즈에 출연한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지나가고 멀어지는 인연에 대해 내 가슴을 울리는 발언을 하셨는데 이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이별은 그냥 둘 사이에서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없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는 인간관계이다."


멀어진 인연에 대해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디부터 어긋난 것인지 고민하느라 마음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데 놓쳐버린 인연이 수두룩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의 큰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도 당장 내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며 맛있는 밥을 함께 하고 싶다. 나는 유독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되어 간단한 메뉴를 나눠 먹으며 딥톡 (deep talk)을 한 덕분에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으로 거듭난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도 동네 쌈밥집이든 간단한 맥주 한 잔이든 기회가 닿고 마음이 동할 때 편안한 음식을 즐기며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학교 근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쌈밥 짐 <쌈의 대가>. 앞으로 좀 더 당당하게 "우리 쌈밥 먹으러 갈래?"라고 물어봐야겠다. 맛있고 든든하고 편한 대화가 오고가는 경우가 더 많다.
감자 튀김이 맛있는 학교 앞 <폼프리츠> 비싼 와인에 보기 좋은 치즈 플레이터 안주가 아니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더 없이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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