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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Nov 28. 2021

카페 라테 한 잔과 함께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고찰

라테 한 잔과 떠나는 소싯적 "라테는 말이야" 추억 여행

따뜻한 라테 한 잔의 여유. 깊은 커피 향에 고소한 우유의 맛이 더해져 미각과 후각 모두 만족스러운 한 모금이다. 게다가 카페 사장님께서 라테 아트 장인인 경우라면 시각적인 기쁨까지 더해져 만족감은 두 배가 된다. 이 모든 게 라테 한 잔이 완성해주는 시간이다.


라테의 매력은 블랙커피와는 완연히 다르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깔끔한 목 넘김도 좋지만 데워진 우유가 들어간 라테의 따뜻한 풍요로움을 좋아한다. 거품기가 가득 찬 카푸치노를 작은 티 스푼으로 떠먹는 것도 좋고, 우유의 양을 보다 적게 하여 진한 원두 향을 느낄 수 있는 플랫 화이트도 좋다. 워낙 유제품을 좋아하는지라 부드러운 우유 맛이 더해진 카페 라테 한 잔이면 속도 든든해지는 것이 그 따뜻함이 오래 유지돼서 좋은 것 같다. 바리스타 사전을 찾아보니 우유 거품이 뚜껑 역할을 하여 커피의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고 하는데 "더워 죽어도 따뜻한 (더죽따)" 커피를 즐겨마시는 나에겐 그래서 따뜻한 라테 한 잔이 최고의 카페 메뉴인 듯하다.  

좋아하는 책과 다이어리를 들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서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

하지만 라테의 단점(?)도 분명히 있다. 카페 타임 전에 과식을 했다면 유독 양을 많이 해서 큰 잔에 마시는 것이 특징인 라테 주문이 망설여진다는 점이다. "커피 한 잔인데 뭐 어때"라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반응도 있겠지만 너무 배부르다면 우유 한 컵은 꽤나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라테가 마시고 싶은 날엔 계획적으로 카페 방문 시간을 조율한다. 아침밥을 잔뜩 먹고 오후 시간에 카페에 간다거나, 아예 이른 아침에 라테 한 잔을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날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커피를 엄청 좋아하지만 카페인에 굉장히 민감하여 오후 두 시 이후에는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해서 여유로운 라테 한 잔을 즐기기 위해서는 심혈을 기울여 하루 일과를 계획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따른다. 그래도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름다운 선율의 배경음악에 취해 고소한 라테 한 모금을 마시면 이미 고생한 보람은 충분하다고 느끼게 된다.


여름엔 시원한 라테가 좋다. 고소한 우유 한 잔에 풍미 짙은 에스프레소 샷을 더하면 잠도 깨고, 속도 든든하고, 더 뭉클하게 카페를 즐길 수 있다.
더운 여름엔 유독 아이스 라테를 많이 사 마셨다. 폴 바셋의 "소화가 잘 되는 라테"는 속도 편안하고 고소함으로는 절대 뒤처지지 않는 라테다. 

라테는 차갑게 마셔도 고소함이 유지되는 신기한 음료다. 더운 여름 샌드위치와 함께 피크닉 중이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아이스 라테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커피와 우유의 고소한 조화로움이 든든함과 상쾌함을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아주 달달한 디저트가 당기는 날엔 입안의 남아도는 설탕을 깨끗하게 씻어내려 줄 투명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필요한 법이지만 그래도 여유가 된다면 디저트와 함께 하는 아이스 라테도 그 나름대로 매력이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구움 과자류보다는 폭신한 케이크가 라테와 함께 먹었을 때 더 맛이 좋은 것 같다.

실험이 없는 날엔 교내 산책을 하며 라테 한 잔을 하기도 한다. 이젠 추워져서 산책이 어렵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나는 학교에 있을 테니... 사진첩에 유독 아이스 라테가 많다.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테 중 고민될 땐 하나씩 시켜서 나눠 먹을 수 있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게 가장 좋다. 

이번 주는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카페 타임을 가졌다. 자취를 시작하고 집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먹을 수도 있고 각종 찻 잎을 구비해둔 터라 그날의 취향과 '삘'에 따라 따뜻한 차를 내려 마실 수도 있지만 유독 "카페"라는 공간을 소비하며 경험의 폭을 넓히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 같은 날엔 갑자기 집어 읽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맞아 술술 읽혀 기분이 좋아지는 책 한 권과 일기장을 챙기는 게 좋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아이패드를 챙기는 날도 있지만 오늘은 왠지 특정 대상에 대해 문장화하고 싶다면 손으로 끄적이고 싶은 날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구움 과자 카페를 찾아 마음으로 찜 해두었던 디저트를 포장해 나왔고, 근처에 처음 보지만 내부의 조명과 좌석 배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카페 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


라테를 맛있게 마시다가 문득 나의 소싯적 시절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갑자기 웬 과거 여행?이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서론과 함께 본인의 경험담을 늘어놓고 젊은이들에게 자기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나만의 "라테"가 되어 잠깐 과거 여행을 해보았다. 아직 "소싯적"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짧은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마침 어제 유성구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고 말이다.


먼저 이렇게 좋아하는 책 한 권과 다이어리를 들고 카페에 올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불과 몇 년 전 (이라고 하기엔 벌써 3년도 더 된 시간이지만, 맙소사.) 학부생 시절에는 학기 중이라면 매일 같이 소화해야 할 렉쳐 노트가 있고 과제에 허우적대던 때라 학교 근처 카페에 가서 밥 먹을 때까지, 또는 카페 사장님께서 그날 장사를 마무리하실 때까지 바쁘게 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오히려 대학원생이 된 지금 논문 공부를 하고 제출할 보고서를 손 보고 실험 계획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나의 답은 꽤나 간단명료하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내가 충분한 쉬는 시간을 갖는다는 사실과 나의 여가 시간에 연구 생각을 더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주 편해진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쉬어야 내일 할 연구를 더 할 수 있을 테니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인 것 같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 추천받은 영화를 보는 쉬는 시간이 훨씬 더 좋다.

밀라논나 선생님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나 자신과 너무 잘 노나 싶어서 의구심을 품던 와중 그런 사람이 진정 성숙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

라테를 마시며 스스로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도 사유해보았는데 이는 당장 읽고 있던 '밀라  ' 장명숙 선생님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는 유독 나이에 맞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다. 직접 표현하자면 '올드 소울 (old soul)'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글로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Old soul'이라 함은  사람이 유독 흔치 않은 성숙함을 보일 , 원숙함을 보일 때를 형용하는 단어인데 나는 내가 '올드 소울'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른 아침이 좋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더라도 합리적인 (reasonable) 시간대에 만남을 갖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작은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지 느끼고 기록하는 것이 좋고, 오감을 사용해서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아는 일은 큰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는 좁지만 깊게 유지하는 편이 더 좋고 취향도 굉장히 선별적이고 까다로우며 내 견해와 선호를 반하는 일이라면 굳이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 이런 스타일이 꼭 '올드'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노래 가사나 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는 젊은이들이 지향하는 젊고 거침 (Young and Wild) 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인 것 같다.


스스로 이런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하고 나름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요즘 나의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만족감을 유지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동료들 간 늘어나는 친목질과 잦은 술자리를 지켜보며 나도 가끔씩은 함께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한데,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날의 수많은 입력값을 돌아보고 소화시키는 시간이 꼭 필요한 성향의 나로서는 모든 시간을 타인과 함께 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다소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극한의 계획형 인간이라 번개 약속에도 취약한 편이어서 마음 잡고 친목을 도모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한 번 "마음을 잡으려면" 나 역시 그러고자 하는 의지와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그저 숙제 같은 약속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마주하고 있던 오늘, 장명숙 선생님의 글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자기 자신과 잘 노는 사람이 진정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나는 타인에게 끌려가는 삶이 아닌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기분 좋게 살기 위해 기분 좋은 습관을 만들어" 두었다. 연구든, 친구와의 약속이든, 운동이든, 나만의 루틴이 있고 그 루틴이 깨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같이 빽빽한 내 스케줄 표를 보며 "넌 너무 틈이 없다"라고 비판을 서슴지 않던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 쉽게 지나가며 던지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괜히 찔리는 마음에 유독 확대 해석한 부분도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남들과의 모임에 쉽게 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 라이프 스타일을 부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장명숙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내 시간의 관리자가 되어 "시간을 알뜰하게 써서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가려 하는 내 시간의 주인공일 뿐"인데 말이다. 밀라논나 선생님 덕분에 내 삶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심과 위로를 받아 뭉클함이 충전되는 독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고 싶고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때에도 비슷한 말을 내뱉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숙제에 더 시간을 투자하고 공부가 좋다는 이유로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독 별나고 거칠게 노는 문화에서 자란 외국인 아이들이라 그 차이를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들이 신경 쓰이곤 했다. 지금 돌아가서 그때의 나와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라고. 내 취향을 숨기거나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요소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굳건한 자존을 갖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안타깝게도 그래서 마룬 파이브의 노래 "Lost Stars"의 구절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처럼 청춘은 젊은이에게 낭비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자신이 혼자 겉도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과의 진지하고 따뜻한 대화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 것 같다. 언제 이야기를 나눠도 즐거운, 서로의 비슷함을 하나씩 발견하고 감탄하며 맛있는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까다롭고 별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선택과 집중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여 이유 없는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내 사람들을 위해 더 마음을 쓰고 나눠줄 수 있는 정성을 쏟고 싶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옳아서가 아니라 나에게 더 잘 맞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주말에 카페에 앉아 라테를 홀짝이며 내가 이만큼 진지한 생각에 빠지더라도 이런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완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오른쪽은 밀라논나 선생님의 기도문 구절인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이어리에 필사했다. 매일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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