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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Nov 21. 2021

잠봉이 뭐길래

잠봉과 뵈르, 햄과 버터의 미친 조합에 푹 빠지다

잠봉 뵈르. 이제는 비교적 익숙해진 음식인듯하지만 꽤나 이국적인 이름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샌드위치 이름다. 잠봉은 (Jambon) '돼지다리살로 만든 얇게 저민 햄'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이고 뵈르는 (Beurre) 프랑스어로 '버터'를 가리킨다. 잠봉과 뵈르. 잠봉 뵈르는 말 그대로 햄과 버터를 바게트 빵 사이에 채워 넣은 간단한 샌드위치를 칭하는 음식 이름이다.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이름이 힌트를 주듯 잠봉 뵈르는 프랑스 국민 샌드위치 종류로 잘 알려져 있는데 '잠봉'이라는 햄 종류는 아일랜드가 원조 인터라 아일랜드 사람들 역시 잠봉과 치즈 그리고 버터를 곁들인 샌드위치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간장계란밥을 만들어 먹듯 쉽게 '있는 재료를 가져다 만들어 먹는' 일상적 음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만 원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해서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쩝. 


언제부터 잠봉 뵈르의 인기가 시작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니, 언제부터 내가 이토록 잠봉 뵈르에 빠지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샌드위치는 항상 좋아했는데 빵 종류 중에서도 일반 식빵이나 치아바타, 또는 포카치아보다는 항상 입천장이 싹 다 까져버리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가장 좋아했다. ("아프니까 맛있다" 뭐 이런 건가.) 유독 껍질이 바삭하고 윤기가 흘러서 맛이 좋은데 속내는 쫀득하니 짭조름해서 씹는 재미까지 더해진다. 고등학생 때 베트남으로 봉사 여행을 떠났다가 로컬 맛집에서 맛 본 프랑스식 바게트 빵의 맛을 잊지 못한 이유도 있는데, 나는 어쨌든 바게트 샌드위치를 정말 좋아한다. 게다가 샌드위치는 내가 누누이 강조 하지만 완전식품이다. 탄수화물, 지방, 그리고 단백질이 모두 들어가 있고 (물론 함량 비율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야채까지 더해져서 맛과 영향 모두 조화로운 음식이다. (굳이 따지는 사람도, 물어보는 사람도 없겠지만) 따라서 샌드위치는 그냥 다채로운 풍미의 조화를 그저 맛있게 즐기면 된다.


잠봉 뵈르 인기의 시발점은 잘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기쁘고 잘 된 일이다. 고소하고 짭짤한 맛의 조화를 프랑스 파리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과학의 도시(?) 대전에서도 심심치 않게 잠봉 뵈르를 판매하는 베이커리를 찾아볼 수 있는데 요즘은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 친구들이랑 한 군데씩 도장 깨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둘이 가면 종류별로 먹어볼 수 있고 셋 이 가면 감자수프에 다 먹고 나서 디저트까지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다니는 빵 투어도 좋지만 함께 하면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것이야 말로 빵집 투어이니... 그래서 오늘은 내가 최근에 맛있게 먹은 잠봉 뵈르 샌드위치를 간단하게 기록하고 돌아보려고 한다! (꼭 추천하고 싶은 더 맛있는 빵집도 알고 계신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공유 부탁드립니다. 꾸벅.)


첫 번째는 우스 블랑의 바게트 샌드위치다. "백곰 셰프가 만드는 빵집"이라는 귀여운 부제를 갖고 있는 효창공원의 베이커리 카페인데 페스츄리, 디저트 종류도 많고 사워도우나 깜빠뉴, 그리고 치아바타와 같은 식사 빵도 굉장히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우스 블랑의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귀여운 백곰이 제빵을 하거나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귀여운 소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인데 계산 전 굿즈 진열대를 그냥 지나치기 정말 어렵다. (본인도 냉장고용 마그넷을 두 개나 챙겨 왔다.) 우스 블랑에서는 크루아상 샌드위치, 바게트 샌드위치, 잠봉 샌드위치, 포카치아 샌드위치 등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는데 나는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불호하는 편이라 바게트 샌드위치와 잠봉 샌드위치, 그리고 감자 수프를 함께 주문했다! 생각보다 양이 굉장히 많았고 감자수프를 주문하면 치아바타 빵까지 함께 내어주셔서 디저트까지 맛보고 싶다면 양 조절이 필수다. 바게트 샌드위치는 싱싱한 양상추와 우리가 쉽게 "샌드위치"라고 하면 상상할 수 있는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잠봉 샌드위치는 메뉴의 설명 그대로 "버터 쓱쓱, 잠봉 햄, 그뤼에 치즈" 이렇게 세 가지 재료만 남겨 있었다. 단순하고 간단한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픽은 잠봉 샌드위치였다. 그뤼에 치즈 (Gruyere cheese)의 짭조름한 맛이 잠봉 햄의 묵직한 식감과 정말 잘 어울렸고 버터는 "쓱쓱" 바른 것이 다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소스 맛이 느껴졌다. 진짜 버터 들어가면 모든 게 다 맛있어진다는 건 과장이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요리의 풍미과 식감에 지방의 역할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감자 수프와 샌드위치의 조화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2층 창가 자리에 앉아서 여유롭게 커피와 빵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공간인 것 같아서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우스 블랑의 (ours blanc) 바게트 샌드위치, 잠봉 샌드위치 그리고 감자수프와 포카치아. 적은 양처럼 보이지만 하루 종일 배가 불러서 헉헉댔다. 그래도 맛있으니 후회는 없다

두 번째는 공덕역 근처 빵집 파네트의 잠봉 뵈르 샌드위치다. 여기서도 다른 재료는 없이 버터와 잠봉 햄, 그리고 치즈를 곁들인 샌드위치를 판매하고 있다. 야채가 없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사실 "잠봉 뵈르"라는 이름에 충실한 샌드위치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햄과 버터의 조화로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상큼함을 더해줄 야채나 자기주장이 강한 잼류를 곁들이기엔 위험 요소가 커서 그런 것 같다. (또는 프랑스 사람들이 귀찮음을 쉽게 느끼는 사람들이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너무 좋은 재료들이 수중에 있다는 점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네.) 파네트에서는 원래 올리브 식빵이나 단호박 깜빠뉴 등 맛있는 식사빵을 자주 사 먹는 편이라 믿고 먹어본 잠봉 뵈르 샌드위치인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맛있었다. 이 집은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아깝지 않을 만한 맛을 보장해주는 빵집인데 앞서 언급한 식사빵과 케이크류뿐만 아니라 샌드위치까지 대만족이었다. 

파네트 잠봉 뵈르의 측면. 정말 기본에 충실한,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샌드위치가 왜 그토록 맛있는 건지 원. 
요즘 이렇게 감성 넘치는 포장 용기에 잠봉뵈르를 판매하는 빵집이 꽤 많은 것 같다. 엄마랑 언니랑 주말 빵 파티를 즐긴다고 앙버터 프레첼과 애플파이도 먹었다.

세 번째 집은 대전 퍼블릭 마켓의 바게트 샌드위치다! 퍼블릭 마켓은 이전 글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대전 어은동의 식품점인데 다양한 와인과 식재료, 그리고 소품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내가 학교 생활 7년 만에 어은동에서 잠봉 뵈르를 먹을 수 있게 해 준 아주 고마운 곳이랄까... 사실 양은 매우 아쉬운 편이지만 (샌드위치 단품만 먹기에는 간식과도 비슷한 양이다.) 감자 수프를 곁들이거나 덕분에 디저트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그 정도면 됐다, 그리고 가볍게 먹고 싶은 날도 있으니깐. 퍼블릭 마켓의 샌드위치는 루꼴라도 들어가 있고 함께 나오는 소량의 당근 라페를 곁들여 먹을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바게트 빵 사이에서 느껴지는 트러플 마요네즈의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트러플 마요를 따로 판매해주시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서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으니 이것도 만족!

퍼블릭 마켓의 샌드위치. 맛있는 햄과 치즈, 루꼴라, 그리고 당근 라페를 함께 주신다. 양은 매번 아쉽지만, 존재 자체가 고마우니 어쩔 수가 없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대전 죽동의 신상 베이커리, 파셀이다. 유럽 스타일의 빵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파셀은 입장 대기시간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인기 급상승 빵집인데 먹어보니 납득이 갈만했다. (오랜 대기 시간이 두렵다면 수다 메이트와 함께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전 죽동의 파셀 베이커리. 폰트도 포장지도 마음에 든다. 오랜 시간 기다린게 아까워서(?) 이빵 저빵, 3만 5천원어치 빵을 사서 나왔다. 이것이 바로 대학원생의 빵 플렉스다.

바게트 샌드위치의 종류도 다양하고 잠봉 뵈르 샌드위치도 기본과 페스토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연어 크림치즈 바게트 샌드위치와 기본 잠봉 뵈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우선 속재료가 아주 빵빵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만큼 배부르고 그만큼 맛이 풍부해서 든든하고 아깝지 않은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연어와 크림치즈의 더할 나위 없는 조화에 꿀 맛이 살짝 감도는 달달한 소스가 기억에 남았고, 잠봉 뵈르는 기본 재료에 루꼴라가 더해졌음에도 잠봉과 버터, 그리고 치즈의 고소한 풍미와 조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정말 맛있었다. 기다리는 시간 감안하더라도 꼭 재방문하고 싶은 카페다! 테이크 아웃 밖에 안된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외부음식 반입을 허락하는 스타벅스나 집에 돌아와서 드립 커피와 함께 먹어도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파셀 카페의 연어 크림치즈 샌드위치와 잠봉 샌드위치. 
요즘 샌드위치 먹기 전에 측면을 찍는 재미에 푹 빠졌다. 너무 영롱하다. 

이전에 빵식의 매력에서 소개한 것처럼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 구워 먹는, 곁들여 먹는 빵식도 좋지만 밖에서 사 먹는 샌드위치의 매력도 대단하다. 스스로 마음이 소심해져서 충분히 바르지 못하는 버터 양 때문인가, 또는 비싼 가격에 쉽게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고급 햄 덕분인가. 이유가 무엇이든 빵을 나보다 더 진심으로 사랑하는 베이커리 사장님들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는, 그중에서도 잠봉과 버터, 그리고 치즈가 함께하는 지방 가득한 잠봉 뵈르가 너무 맛있다. 막상 프랑스엔 한 번도 가보진 못했는데... 하루빨리 프랑스 파리에 직접 방문해서 바게트를 뜯어먹으며 와인에 취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전까지는 국내 빵 투어를 더 열심히 다니며 잠봉 뵈르 빅데이터를 구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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