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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Mar 19. 2022

허무한 마음이 들 땐 꿈의 직장에 대해 상상해보자

삶에서 보장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노력뿐이기 때문에

열심히 산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노력이 당연시되고 1% 의 운이 내 편일지 아닐지 기대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이자 입장인 듯 보이지만, 말이 쉽지 99% 노력은 굉장히 어렵다. 아니 노력까지 했는 데 성공할지 안 할지도 보장도 받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에 대해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없다. 인생에서 우리가 보장 (guarantee) 받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더 쉽다. 우리는 수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실현되는 계획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예를 들어 작가가 되고 싶었던 방송국 지망생은 공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유학에 도전하고 싶었던 그녀는 만 2년 전 코로나 19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맞닥트리게 됐다. 그렇다. 인생에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 (variable)가 너무 많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과  싸울 여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면 안타깝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처럼 현실을 인식하고 만다. 무려 열심히 살아온 자에게는 정말 가혹한 현실이다.


이렇게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고 나면 다음 단계는 바로 무기력이다.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원한적이 없는데,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지? 하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괴로움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권여선 작가의 장편 소설 <레몬>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이와 같은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나는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삶을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선택한 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최근 들어 삶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불평하며 살아왔다. “최근이라고 하면 대학원에 입학한  3  시점부터의 시기를 가리키는데 스스로  생명공학 공부를 선택했으며  나은 (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는 연구 분야를 알아보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남들은 기업 연계형 산학 장학생으로서   안정감 있는 대학원 생활을 하는  같은데, 나는  미리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나를 미워하게 되고, 침체된 환경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답답함이 커다란데도 좀처럼 학교라는 ‘컴포트  (comfort zone)’ 떠나지 못하는  자신이 겁쟁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이런 삶을 원한 적은 없다고 할지라고, 그러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라도 있다면 놀라울 것이다. 나는 지도 교수님의 실력과 인품,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생물학을 접목하여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만한 연구 분야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 연구실을 선택했다. 과거에는 분명한 이유로 본인을 설득하여  부러지게 선택해놓고 비슷한 일상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며 일이 힘들어지는 날엔 본인의 과거를 부정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고 마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이럴 때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다. 원한적은 없지만 지금  삶은 내가 선택한 삶이다. 그리고  명의 인간으로서, 무엇보다 어엿한 어른으로서, 이젠  선택에 대해 용기 있게 책임지는  역시 인생에서 배워야  덕목이 되었다.

일년 동안 랩장을 맡았던 작년. 퇴임식 기념으로 백화점에서 아주 맛있는 점심을 사주신 지도교수님 짱!

이런 마음이 소설화되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공감을 얻는 것을 보니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은 만인이 겪는 사춘기적 성찰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삶과 이를 이루는 많은 것들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계속된다면 꽤나 장기적인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 물들어버리기 십상이다. 노력해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면, 원해도 이룰 수 없는 꿈과 계획이 가득한 게 바로 인생이라면 우리는 왜 노력해야 하는가? 노력은 정말 헛된 것인가? 꿈꿔왔던 삶이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내가 쏟아부은 모든 노력은 정말로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건가?


그렇지 않다. 왜냐면 진부한 말이지만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생물공학 전공자 같은 발언일 수도 있지만 노력은 조직에 남고 세포에 남고 조금 더 과장을 보태서 우리의 유전정보, 즉 DNA에 남는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 인간의 유전체에 고스란히 발자취를 남긴다는 논문은 아직 발견한 적이 없다.) 노력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고 체계적으로 묵묵히 해나가는 행위를 가리킨다. 노력하다 보면 실패하는 날도 오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이렇다 할 결과물, 즉 열매 없는 농작물을 타인에게 선보이는 일이 당장은 부끄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사실 변화는 분명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실패했어도 내년엔 더 잘할 수 있는 기본기가 한층 더 탄탄해진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직면했을 때는 이번보다는 다음에 좀 더 빨리 그리고 지혜롭게 해답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치가 분명히 쌓였을 것이다.


그리고 “열매”에 대한 기준치를 정하는 일도 굉장히 모호한 부분이 많다. 물론 우리 모두는 새빨간 사과가 나무 위에 주렁주렁 맺혀있는 모습을 기대하게 되지만 “열매”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정의를 갖고 있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열매”의 모습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렸을 땐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컸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종종 선물 받았고, 학교에선 선생님이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모아 매일 같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외국에서 다녔던 초등학교에는 칭찬 도장 대신 “메리트 (merit)” 스티커를 모으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나는 스티커에 유독 진심이어서 한 학기에 150개를 모으며 학교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도 매월 치르는 월말 평가과 수능 시험 성적이라는 명. 확. 한 지표를 통해 노력의 결실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무사히(?) 치르며 학기 말 포털 사이트에 업데이트되는 본인의 GPA로 내 노력을 수치화할 수 있었다. 유년 시절에는 이토록 단순하게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니 그렇지 않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 누구도 이유 없이 친절하게 내게 말을 걸며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스티커를 붙여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엔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실적’이라는 차갑고 애매모호한 지표로 내가 건강하고 건설적인 사회를 도모하기 위한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일 인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명을 해 보여야 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지도교수님께 칭찬 스티커 제작을 부탁드릴 순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스스로 내 노력의 지표 (milestone)이자 본인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기준점을 세워야 한다. (필요한 경우라면 직접 나만의 칭찬 스티커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정해둔 루틴 (routine)을 지켰는지, 단기적으로 계획해둔 할 일들을 제시간에 잘 마무리하였는지 등 비교적 간단하고 자신에게 친절한 기준을 세워 내가 제대로 궤도에 올라와 있다는 확신을 본인에게 주어야 한다. 일상적인 지정표 외에도 (대학원생의 경우라면) 학회에 참석한다든지, 수업이나 연구실 세미나를 열심히 준비한다든지, 또는 장학금 지원에 신청하는 방법 등을 통해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선사해주어야 한다. 그 누구도 이를 대신해줄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원동력 (motivation)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는 선생님이 찍어주는 칭찬 도장이 아닌 내가 나에게 약속해줄 수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을 기반으로 동기를 찾아야 한다. 사실 내가 대학원에 와서 크게 느낀 슬럼프와 사춘기의 원인은 이전까지는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성취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 어른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있었다는 점이 큰 것 같다. 물론 이런 마음 역시 큰 원동력이 되어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반드시 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거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실하게 매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선 어렴풋이라도 목표를 설정해두고 이러한 청사진을 기반으로 내가 희망하는 미래를 그려나가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커리어 옵션은 바로 ‘과학 잡지 편집자’이다.


이전부터 지도교수님께서 추천해줬던 선택지이긴 한데 당시에는 이런 추천을 칭찬은커녕 비판으로 받아들인 적도 있다. 과학연구에는 소질이 없으니 과학 논문에 실릴 논문 원고를 살펴보는 일이 더 어울리려나? 하고 못생긴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인지하고 있는 과학 저널 에디터 일을 생각보다 매력적인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우선 전문성이 요구된다.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아니 대학원에서 과학 연구를 경험하고 논문을 써보지 않고서는 과학 저널 에디터가 될 수 없다. 단순히 그 고충을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과학 연구의 모든 절차를 이해하고 논문의 흐름과 주장을 파악하여 저널과의 적합성, 연구 방법의 윤리성, 그리고 논문에서 펼치고 있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간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일에 큰 가치를 느끼는 나에겐 일로서 논문을 읽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꽤나 매력적인 직업 활동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에 초청받아 연구자들을 만나고, 우리 논문 좀 잘 봐달라고 애타게 러브콜을 보내는 수많은 교수님들을 직접 관찰할 수도 있다고 하니, 은근(?) 희열이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평생 실험과 싸움하면서 논문 실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보다는 어떤 논문을 실을지 다양한 연구에 대해 읽어보면서 고민해보는 일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연구를 배우고 있는 모든 대학원생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직업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굉장히 가치 있는 요소가 많은 직업인 것 같다.


과학 저널 편집자 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후 좀 더 알아본 결과 아쉽게도 아직 한국에는 사무실을 두고 있는 저널 출판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해외 생활에 대한 갈망도 있고, 내가 일하면서 서울 오피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열정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에디터 일을 하면서 학술적 패권 (academic hegemony)를 타파하고 싶다는 작지 않은 꿈도 생긴 것 같다. 너무 많은 논문이 오직 영어로만 출판되어 출신 국가와 상관없이 모든 연구자가 영어로 논문을 읽고 영어로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글로 논문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다. 중요한 과학 기술 발전 소식들이 좀 더 많은 독자와 닿아 소통될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 일을 하고 싶다.


어렸을  나는 방송국 기자가 되어 외교부를 전담하여 취재에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여담이지만  어렸을 때는 한의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외국 인사들과 소통하며 취재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어 공부도 꾸준히 해서 좋은 기사를 쓰고  도시를 누비며 사무실 생활을 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말이다. 지금 나는 대전의  구석의 학교에서 화장실 타일과도 같은 외부벽을 자랑하고 있는 응용공학동 5층에서 실험을 하고 논문을 읽으며 간간히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며 교수님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정확히 내가 상상했던 스물여덟 살의  모습은 아니지만,  한순간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마음대로 원하는 인생을   없어서 노력을 포기하는 대신, 내가 살고 있는   속에서 내가 그려나갈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기획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성실해지려고 한다. 우리 인생에서 장담할  있는 것은 내가 직접 해내는 나의 노력뿐이라는 점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말이다.

화려한 대도시는 아니어도 거위가 평화롭게 거닐고 있는 우리 학교 캠퍼스가 참 좋아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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