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긴 한데 읽을 시간도 없고 읽기 싫은 마음에 대하여
필자는 책 욕심이 정말 많다. 웬만한 책은 다 재밌을 것 같고 저명한 학자가 집필한 이번 세기 필독 도서나 몇 주 째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설책도 다 읽어내고 싶다. 소셜미디어 (SNS)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FOMO (Fear of Missing Out)'와도 비슷한 심정이려나. FOMO는 말 그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뜻하는 신조어인데 모임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사교 모임에 참여하며 내가 없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들 또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계속해서 주변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가리킨다. 나의 인싸력은 충분치 않아서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지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읽고 싶어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영화나 유튜브 영상 등 시청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이번 글에선 나의 독서 욕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욕심이 많은 탓에 책을 많이 구매하기도 하고 많이 빌려 읽기도 한다. 구매는 보통 인터넷 서점을 사용하거나 가보고 싶던 동네 서점에 방문해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한 두 권씩 사기도 한다. 굳이 고백하자면 비율만 고려했을 때 내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동네서점 상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한강 같지만 아직 학생인 탓에 10% 할인율과 문 앞까지 배송되는 인터넷 서점의 편리함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제 값 주고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책 한 번 제대로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또는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바로 드림' 서비스를 자주 사용하는데 대형서점으로 산책 가는 일을 좋아하는 나에겐 아주 제격인 서비스다. 서점에 직접 방문해서 읽고 싶은 책을 엄선하고, 재고가 있다면 바로 챙겨서 바로 드림으로 구매하기를 신청하는 거다. 기다리는 시간도 아낄 수 있고 택배 배송이 남기게 될 탄소 발자국을 줄였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지곤 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구매했다는 기쁨과 더불어 굉장히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성취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물리적인 '책' 자체에 욕심이 많은 탓에 자취를 처음 시작할 때도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가구 중 하나가 바로 책장이었다. 자취방에 걸맞은 일자형 또는 수직형 책장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 탓에 주변에서 많은 추천을 받았지만 일자형 책장으로 내가 갖고 있는 책을 모두 담아내기엔 어림도 없었다. 오랜 시간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도 직접 보유하고 있는 책의 권수는 적지 않았고 최소한 정사각형의 큰 책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120cm x 120cm 자리 책장을 구매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이 사이즈도 은근 부족해서 책을 겹쳐서 꽂아야 한다. 책장에 책을 숨겨서 꽂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나 역시 아쉬울 따름이다.
슬슬 물리적인 공간이 부족한 탓에 책을 빌려 읽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구독자분들께서 (또는 내 브런치 작가 소개글을 읽은 분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듯이 나는 아직 학생 신분을 갖고 있어서 (개이득!) 대학원생이지만 학부생과 같이 교내 도서관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꿀인 서비스가 바로 "도서구입신청"서비스인데 아직 도서관에 없는 책이거나 특히 새로 나온 신간 중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다면 가장 먼저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해서 첫 타자로 읽어볼 수 있다. 따끈따끈한 신권, 당장 어제 날짜가 찍혀 있는 도서를 받아 읽으면 괜히 차 한잔 내려 마시면서 여유를 부리고 싶어 진다. 여기에 한 가지 꿀팁을 더 공유하자면 신간 책을 추천해주는 구독 서비스에 신청하면 새로운 책 구매가 더욱 용이해진다. 나는 시사IN의 도서 추천 콘텐츠를 구독하고 있는데 관심 있는 분야의 소설이나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다양한 책을 추천해준다. 제목만 보고 끌렸다거나 또는 작가 정보를 검색해보고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든다면 망설이지 않고 도서구입신청 서비스를 사용하면 된다. 웬만하면 학생들이 읽었을 때 유익하다고 판단하시는 것 같아 교내 도서관 관리자분들도 나의 도서구입 신청건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아주 감사한 일이다.
여기까진 아주 매끄럽다. 책을 좋아하고 구매하거나 빌린 책을 주어진 시간에 읽으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나의 과한 욕심이 말썽을 피우고 만다. 워낙 모든 분야에서 욕심이 많은 편이라 한 번 시작하면 다 잘 해내고 싶어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고 정복 (master)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하다. 지금까지 이런 성향 덕분에 잘 된 일도 있었고 이런 성향 탓에 고생했던 적도 많다.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일장일단은 넘나 진리인 것.) 하지만 이런 정복성 성향은 독서를 또 하나의 '일'로 여기게 되고 과한 욕심은 과한 도서 대출과 구매, 그리고 아직 완독 하지 못한 책들을 집안 곳곳에 쌓이게 만든다.
책은 즐겁게 읽으면 되는데, 책 한 권을 집어 들고나면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은 반드시 완독 해야 한다고. 그리고 남은 페이지 수를 한 장 한 장 세어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100 장 읽었으니까 오늘은 50 장 정도 읽고 다음 주엔 꼭 300 쪽까지 읽어서 다음 주말에 끝내야지. 아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MBTI로 따지면 이러한 나의 극 J 인 성향은 독서를 즐거운 행위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과제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참으로 속상한 일이다.
완독만이 독서의 정답은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독서 평론가 이동진 작가는 그의 저작 <이동진 독서법>에서 여러 가지 독서법 포인트를 공유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첫 번째가 바로 세상에는 좋은 책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완독'에 목숨을 거는 것은 그만큼 다른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나의 컨디션과 기분, 그리고 그 당시 인생에서 겪고 있을 크고 작은 일에 따라 특정 글이 잘 읽히고 덜 읽히고의 차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런데 '완독'에 목숨을 걸면 건강치 못한 집착만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또 한 번 덧붙인다. 비문학 책의 경우 선택적으로 마음에 드는 챕터를 골라 읽어도 전혀 무방하다고. 또 다른 독서법 포인트는 손이 가는 책과 안 가는 책을 구별하라는 조언이었다. 손이 가지 않는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 재미있는 독서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것 같다. 독서는 과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내 생각에 다양성을 더해줄 수 있는 행위인데 여기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완독에 대한 강박만을 느낀다면 내게 남는 것은 피로감뿐일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독서에 대해서는 김태리 배우 역시 이동진 작가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달 전쯤 방영을 시작한 김태리, 남주혁 주연의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 하나>를 챙겨보며 더욱 김태리 배우의 팬이 되어 이런저런 영상을 섭렵하던 중 조회수 100만이 넘는 "김태리의 책 특강"이라는 영상을 시청하게 됐다. 그녀의 독서 습관, 취향 그리고 유튜브 콘텐츠에서 가장 핫 하다는 '언패킹 (unpacking)'까지 함께 하는 내용이었는데 김태리 배우 역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완독 하려고 하지 않아요. 완독이 저의 목적이 아니에요. 재미가 없지 않아도 읽히지 않는다면 손에서 놔요. 오늘 당기는 책을 집어서 들고 나가요. 그 책도 읽다가 재미가 없으면 다 읽지 않고 또 다른 책을 봐요. 그래서 저는 책갈피가 많이 필요하죠 (웃음).
태리 언니 말이 맞다. 내가 독서를 결심한 바로 그 순간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들어 읽으면 된다. 독서는 그 이상의 동기부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꽂히면 읽는 거다. 나는 인생의 수많은 일들에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만들어서 받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건강한 멘털 (mental)은 꼭 닮고 싶다.
그래서 읽으려고 마음먹은 책이 쌓이더라도 빌린 책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새로 도서구입신청 버튼을 누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해도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서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거니까! 애초에 구매했거나 빌려왔다는 의미는 그만큼 (최소한 제목이라도)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는 건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뒤적이며 내 관심을 키워줄 만한 필력과 내용인지 아닌지를 그때 검토해보면 되는 것 같다. 이런 독서 '마스터'에 대한 강박은 내가 매년 완독 한 책의 리스트를 만든 이후로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앞으론 가볍게 읽었던 책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지금은 아이폰 노트 어플에 책 이름을 적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어두거나 그때마다 느낀 점을 간단하게 적곤 한다. 또는 유독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브런치에 <뭉클한 독후감> 매거진에 독후감을 업로드하곤 하는데 한 번 글을 쓰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탓에 가벼운 마음으로 노트북을 켜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독자님들 중에 괜찮은 독후감 정리 방법을 갖고 계신다면 공유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완독도 성격에 따라 습관과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완독 자체보다는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해볼 거다. 완독을 못하는 것이 두려워서 넷플릭스를 트는 것보단 어떤 문단이라도 읽으려고 마음먹어 한 글자 한 문장 씩 읽어 내려가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과 훨씬 가깝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일이든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