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 산문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고 장기하 과몰입 중
장기하를 좋아하게 됐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아티스트를 좋아하는데 계획까지 필요한 건 아니지만 무튼 예상치 못한 덕후심에 (과장 조금 보태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는 분명 더 알아가고 싶은 가수이자 작가이자 (심지어) 배우님이다. 나는 어쩌다 장기하를 발견하게 된 것일까?
기억을 돌이켜보면 일방적이었지만 첫 번째 만남은 <유 퀴즈 온 더 블록>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의 모습이다. 제81화 "어쩌다 작가"편에 출연한 그는 당시 그의 첫 번째 산문집인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출간한 직후였다.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당시 서점에서 출간된 그의 산문집 제목을 보고 다소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모두가 각자의 고민으로 인해 괴로운 시간을 겪고 있는데 무턱대고 상관없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 듯한 뉘앙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워낙 유느님을 좋아하고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본방송을 사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인생이 파도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렸을 적 운 좋게도 입시 공부와 성향이 잘 맞았다는 이야기부터 "눈뜨고코베인"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마무리를 짓게 된 배경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는 마지막쯤 "인생을 파도"라는 비유를 사용하여 자신의 소견을 공유했다.
“인생은 파도다. 인생에서 자기가 뭘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내가 주인공이고 내 의지로 무언가를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보면 파도 위에 둥둥 떠서 파도가 이쪽으로 흘러가면 이쪽으로 흘러가고 저쪽으로 흘러가면 저쪽으로 흘러가고 수영보다는 파도 위에 떠있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발언은 내가 오랜 진로 고민의 시간을 겪으며 느꼈던 바와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에잇 되는 일이 없어!"라고 짜증을 내곤 한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는 것은, "일"이란 건 "마음대로"와는 아주 거리가 먼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하루씩 성실하게 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성실함은 언제라도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한 기초 체력과도 같은 것이고, 결국엔 물이 흐르는 대로 내가 삶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이끄는 대로 잘 살아보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는 깨달음이었다. 요즘도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인데 아티스트 장기하가 인생을 파도에 비유한 (analogy) 이 대목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장기하 편이 방영된 시점은 거의 일 년 반 정도 전이라 (2020년 늦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신규 입덕을 논하기엔 다소 뒷북이 아니냐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가장 최근에는 그의 새 앨범 <공중부양>의 의 타이틀 곡 <부럽지가 않아>를 접해 듣고 굉장히 큰 충격을 (그리고 공포?) 받은 것이 시작점이었다. 무슨 이런 노래가 다 있지?라는 첫 반응을 시작으로 궁금증이 증폭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의 새 앨범 수록곡을 반복 스트리밍 하며 온 가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나의 신규 관심사를 재빨리 파악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온갖 장기하 콘텐츠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이전 예능 출연작부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공연 영상, 공식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비디오를 추천받았는데 그중 가장 소름 돋을 만큼 신선하고 훌륭한 리듬감과 재치 있는 가사를 즐기기에 제격인 영상은 바로 채널 <딩고 프리스타일 (dingo freestyle)>의 '킬링 버스'에 출연한 장기하의 라이브 영상이었다.
약 12분 정도 분량의 영상에서 장기하는 그의 히트곡을 메들리처럼 라이브로 불러준다. 그의 메가 히트 곡 "싸구려 커피"와 "그렇고 그런 사이" 뿐만 아니라 신규 앨범 수록곡 등 다양한 노래를 들려주는데 장기하의 정확하다 못해 날카로운 딕션 (diction) 덕분에 내 귀와 가슴에 강렬하게 꽂힌 곡은 바로 2018년도 <mono> 앨범의 <그건 네 생각이고>이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 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정말이지 진한 희열이 느껴지는 가사다... GOD의 <길> 역시 뭉클한 가사 덕분에 진로 고민에 빠져있던 시절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는데 GOD의 노래는 함께 우울해져서 눈물을 흘려주는 친구 같다면 장기하의 노래는 이제 정신 차리고 일어나서 씩씩하게 앞에 놓인 길을 걸어보자고 응원해주는 친구 같다. 이분법적으로 쉽게 나눠보자면 GOD는 F형, 장기하는 T형 친구 같달까... 아무튼 모두가 의미를 찾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지만 사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점. 그저 눈앞에 놓인 길에 충실하고 타인과의 의미 없는 비교와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정말 멋있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중에서도 특히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우선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곤 한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이동진 평론가를 알게 된 후로 그의 책을 찾아 읽어보고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유독 유 퀴즈 언급이 많네.) 요가에 한창 빠져있을 땐 정우성 작가의 <단정한 실패> 그리고 김이설 외 작가의 <세상이 멈추면 나는 요가를 한다>는 책을 빌려 읽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도서관에 가서 (처음엔 그 제목이 다소 재수 없다고 생각했던)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빌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정말 즐거운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요즘에도 대전-서울을 오갈 땐 기차를 이용하곤 하는데 한 순간도 졸지 않고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산문집에서 드러난 그의 매력은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면 첫 번째는 예상치 못한 귀여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흰쌀밥"에 대해 적은 글이 있는데 수많은 미디어와 체중 관리를 논하는 사람들은 흰쌀밥이 마치 엄청난 악당인 것 마냥 그 가치를 폄훼하지만 작가 본인은 흰쌀밥 잘 먹고 잘 컸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내용이 다소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기분에 따라 내가 먹었을 때 기분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내 몸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대한 깊은 성찰을 공유하고 있는데 채식도 마찬가지고 결국 "기분만큼 믿을 만한 것도 없다"는 그의 소년 같은 소견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어떤 일이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라면 내 기분이 가장 중요한 게 맞다, 암 그렇고 말고.
스스로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살피는 일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굉장히 섬세한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은, 살 수 있는 아티스트의 라이프 스타일을 논하며 그는 그만큼의 자유가 주는 무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유를 추구하며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니 좋겠다'는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있다. 부러워서 하는 말이니 으쓱할 만도 한데, 그때마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나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닌데'라는 마음이었달까. 자유롭다는 것은 곧 막연하다는 뜻이고, 막연한 삶은 종종 외롭다.
약간의 억울함을 느낄 수 있는 이번 구절에서 나는 그의 조심스럽지만 강력한 경고이자 조언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해서는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함부로 아무 말을 내뱉지 마시라는 점. 이런 경고를 약간의 소심함과 억울함을 담아 이토록 부드럽게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소비하는 대중가요 뮤지션 장기하의 모습은 당연히 매일 같이 쳇바퀴 생활을 하는 일반인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워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인생에서 노고와 번뇌가 빠질 일은 없는 것이다. 어떤 인생이든 함부로 판단하여 오지랖을 부리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작가의 심성이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 이유.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작가에 대한 좋아함을 다소 노골적으로 자주 내비치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반가웠다. 함께 덕질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는 달리기라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언급한다.
그래도 십 년이 넘도록 흥미를 잃지 않고 해온 운동이 한 가지 있다. 달리기다... 가장 열심히 달린 것은 2018년 봄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꽤나 있을 법한데, 그 해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아, 나도 이렇게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한동안 게을리하던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아,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소개된 책 역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책 추천은 항상 조심스럽게 하는 편인데도 누군가에게 딱 한 권의 책만 소개할 수 있다면 무조건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을 추천한다. (선물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나 역시 3월부터 가벼운 조깅을 시작했는데 아주 본격적인 선수가 된 건 아니지만 뛰는 일에 슬슬 재미를 붙이고 있다.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며 작가처럼 위스키와 재즈를 곁들인 독서 시간의 낭만을 알고 책을 통해 영감을 받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좀 더 존경하게 되었다.
벌써 네 번째 이유다. 내가 느낀 장기하는 작은 것에도 큰 감동을 느끼는, 그 역시 "프로 뭉클러"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처음 브런치에 기고했던 글은 상수역 이리카페에 가서 단호박 스무디를 먹으며 혼자 써 내려갔던 글이었고, 여태까지 가장 반응이 좋았던 글은 엄마가 해준 계란말이에 대해 쓴 에세이 글이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집안에서 냉장고가 주는 기쁨,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맛있게 끓여 먹는 라면에 대한 애틋함을 글로 표현했는데 읽기도 재밌고 "일거수일투족에 큰 고민을 하는" 그의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좋았다. 그리고 짐작컨데 그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중 "굴튀김"에 대한 글을 읽었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입사 용 자기소개서에 대한 팁을 구하는 젊은이를 향해 "굴튀김"에 대한 글을 한 편 써보라고 조언한다. 사물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글을 한 편 쓰면 결국 그 사람이 글에 담긴다는 주장인데 나 역시 그 글을 읽고 굉장한 영감을 받아 브런치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냉장고" 그리고 "라면"과 같은 작은 사물에도 자신만의 개성과 의견 이에 더해 가치관까지 드러낼 수 있는 장기하의 글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장기하 작가와 그의 산문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던 다섯 번째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올 2월 그는 <공중부양>이라는 앨범을 발매하여 타이틀 곡인 <부럽지가 않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심플한 비트와 취기마저 느껴지는 그의 랩(?) 노래(?)를 경청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를 들을 수 있다.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다시 읽어보니 무한 반복되는 "부럽지가 않다"는 말이 결국엔 강한 긍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반어법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 이 노래를 접했을 때 그가 실제로 부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곡 발매보다 일 년 반 정도 앞서 출간된 그의 산문집을 참고하면 그의 좀 더 직설적이고 솔직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행복 앞에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결국 모두가 평등한 셈이므로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주눅 드는 일이 잘 없다... 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당당하고 강인한 듯 보이지만 그 역시 계속해서 본인과 싸우고 있는 거다. 부러움을 느끼지 말자고. 아무 의미도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에게 계속해서 상기시켜주고 싶어서 이런 곡을 만든 것 같다. 그 누구보다 내가 먼저 "부러움"이라는 못생긴 마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으니까 말이다. 계속해서 나 자신과 대화하고 나의 마음가짐을 돌보려는 노력이 굉장히 익숙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뭐니 뭐니 해도 (내 기준이긴 하지만) 장기하는 글을 정말 잘 쓴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이렇게까지 술술 읽히는 책은 처음이었다. 남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의 글 실력이 부러웠고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그는 "어쩌다 작가가 되었다"라고 했지만 나 역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도 생긴 것 같다. 무엇보다 그가 꾸준히 삶을 파도에 비유하는 통찰과 그 유사 (analogy) 자체가 참 좋았다.
딱 두 번 해봤을 뿐이긴 하지만, 나는 서핑을 좋아한다. 그 어떤 스포트보다도 정확히 삶을 유비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analogy) 바다 위에서 서퍼가 할 수 있는 일, 딱 그 정도가 세상에서 한 사람이 가진 몫이 아닐까. 서퍼는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다. 부표나 지푸라기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서퍼는 바다 위에서 즐겁다. 바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도, 작게나마 나름의 역할을 하며 재미를 찾는다… 마치 서퍼가 거대한 바다 앞에서 작디작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슬퍼하지 않고 어찌어찌 파도를 타고 나아가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처럼.
다소 염세주의적 발언으로 해석되거나 무기력함을 장려하는 발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마치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뜻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는 우리가 무기력함을 느낄 때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깊게 통찰했고 이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운명이자 길, 또는 파도에 감사하며 실컷 웃어보자는 것.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성실하게 마련해보자는 제안으로 나는 그의 산문집을 해석했다. 그리고 그렇게 팬이 되었다.
이번 앨범 수록곡 <얼마나 가겠어>에서도 이런 의견이 표출된다.
얼마나 갈지는 당연히 모르지
그런데 모르는 건 모르면 그만이지
왜 다 아는 것처럼 얘길 해
그럼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따지면 너 미리 죽을래?
어차피 죽을 거니깐 뭐 그만 살래?
하고 맘속으로 외칠 때
어차피 죽을 거 미리 죽자는 게 아니다. 어차피 살았으니까 그만큼 더 열심히 살아보자는 거다. 당연한 듯싶지만 이런 마음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누군가와 마주한다는 일은 굉장히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당분간 힘닿는 데까지 장기하 씨 팬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요즘 서울에서 공연도 자주 하시던데 예매 전부터 팬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 좋은 글, 좋은 연기 (연기는 아직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지만) 많이 보여주세요, 아티스트 장기하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