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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Jun 11. 2022

본업 천재가 꿈 입니다만.

본업 잘하는 부캐가 사랑받는 이유

**본 글은 절대 시험공부하기 싫어서 작성하는 글이 아닙니다**


어김없이 찾아온 기말고사 시즌이다. (한국 나이) 스물여덟 살인데 아직까지 태블릿 PC로 렉쳐 노트를 들춰보며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니. 학창 시절 칭찬받는걸 너무 좋아하긴 했나 보다. 어쩌다가 계속 책과 씨름해야 하는 길을 선택한 것일까. 아주 잠깐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요즘 높아진 자존감 덕분에 굉장히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고 있다. (너무 빠른 태세 전환인가.) '만년 프로 찡찡이'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요즘 스스로 본인의 마음 상태와 컨디션을 살펴봐도 정말 신기할 정도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인해 '자기 연민' '과거 부정'이라는 지독히도 어두운 터널로부터 내가 해방될  있었던 걸까? (,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나의 해방 일지>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때리는 명대사 대잔치 때문에 종방 2 차인데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

너무 많은 장면에서 멈추고 대사를 필사하고 싶을 만큼 좋았던 <나의 해방 일지>. 기정, 창희, 미정이 그리고 구 씨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박해영 작가님 돈 많이 버세요!

심오한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을 내려보자면 최근 나의 안녕은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이다. 앞서 뉴욕에 다녀온 여행(이자 학회 출장) 일지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간만의 해외 학회 일정 덕분에 충분한 리프레쉬 (refresh) 그리고 오랜 시간 마주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롤모델적(?) 과학자들을 만나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하든 궁극적 목표와 의미를 찾는 과정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데 벌써 4년 차 대학원생이지만 그동안은 내가 대학원생으로서 생명공학을 전공하며 연구를 배우고 있는 나의 현실에 대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상황이 이렇게 흘러온 것이니 일단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유일한 위로를 건네며 현재 상황에 대한 감사 (appreciate)는 커녕 과거의 본인을 자책하고 원망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잘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잘하고 싶다는 이유도 분명해졌다. 나 역시 연구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끝없는 호기심을 무기로 중요한 질문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동료들과 협업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바쁘다. 원체 밤샘 공부나 (all nighter) 야근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 절대적인 출근 시간으로 승부를  수는 없겠지만 (솔직히 출근 시간이  사람의 노력과 집중력을 대변해준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동기부여를 느끼고 있다. 시간이 남으면 연구실에   머물며 논문 공부도 하고 싶고, 되도록이면 실험 결과는 하루라도 먼저 확인하고 싶다. 이전에는 마냥 어렵게 느껴지던 생물정보학 분석법도 이제는 미루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다. 간단한 정도라도 반드시 성공해서 '마른 (dry)' 분석이든 '젖은 (wet)' 실험이든   해낼  있는 능력자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마음 덕분에 요즘  즐겁다. 드디어 내가  담고 있는 전문 (professional) 분야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드러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을 담아 집중하고, 마른걸레를 쥐어 짜내야 하는 호기심이 아닌  연구적 자아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궁금증이 담긴 연구 과정을 경험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실험실에서 "젖은" 용액으로 진행되는 데이터 수집을 "Wet lab" 반대로 "마른" 책상과 컴퓨터를 활용한 분석을 "Dry lab"이라고 부른다 (출처: BNU-China)

나도 드디어 본업 천재로 거듭나는 궤도에 오른 걸까? (호들갑,  호들갑.) 오래전부터 본업 천재가 꿈이었던 탓에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 당최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유독 속상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한 동기부여와 길고  대학원 생활의 종착점에 내가 그리는 나의 이상적 모습이 생겼으니   의미 있고 당찬 모습으로 보람찬 박사과정 기간을 보낼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마음을 동료들과도 신나게 나누고 있고 항상 그러셨듯이 지도교수님께서도  많이 도움을 주셔서  감사한 날들이다. 모든   똑같았지만 이제야 느껴지는 감사할 부분들일 수도 있지만, 무튼 이런 변화가 정말 반갑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유독 자주 삘 받아서 아침에 카페에서 논문 읽다 출근하는 날이 잦아졌다. 당장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미루던 논문 공부, 학회 다녀오니 그 필요성을 더 깨닫는 중이다.
논문 스터디는 역시 커피와 당 충전이 필수입니다. 직접 구운 스콘이랑 아메리카노와 함께한 논문! (기억나는 내용은 질문하지 말아 주세요...)

오래전부터 왜 내가 본업 천재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리 잘하는 게 많아도, 뭐니 뭐니 해도,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이 가장 "간지 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게 무엇이든 본인이 맡은 일을 잘하고, 전문성을 보이고, 개인적인 (personal) 자리에서는 말을 붙이기 쉬운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전문적인 (professional)한 상황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돌변하는, 어찌 보면 그 반전 매력이 정말 멋진 것 같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취미 부자에 다양한 사람들과 분야에 뛰어드는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최우선적으로 자신의 본업을 잘해야 그 멋짐이 더욱 큰 에너지를 갖고 폭발하게 된다. 괜히 아무것도 본인의 주 (major) 무기로 내세우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게임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활, 총, 칼 등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며 적을 물리치려고 하는 것보다 활을 엄~청 잘 쏜다든가 칼을 엄~청 잘 다룬다는 가 하는 하나의 명확한 무기를 갖고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본업 천재에 대해서 고심(?)하다 보니 요즘 유행하고 있는 "부캐"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우선 "부캐" '원래 캐릭터'라는 뜻을 가진 "본캐" 다르게 '사용 빈도가 적은  다른 캐릭터' 가리키는 말이다. MBC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부캐의 대중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선사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그 외에도 다양한 '프로 부캐러'들이 있고 그들은 대중의 열정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으로는 SNL 주현영 배우님. 그 어떤 캐릭터를 맡더라도 기가 막힌 연기력과 디테일을 표현해내는 섬세함으로 대중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사람은 모델 주우재. 187cm가 넘는 신장과 훌륭한 비율, 차가울 것 같은 인상과 다르게 그의 유튜브 채널과 최근 출연한 <런닝맨>에서는 유독 허당기 넘치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미노이가 생각나는데 그녀의 본업은 싱어송라이터이자 래퍼인 뮤지션인데 '킹 받게 하는' '잼민이' 같은 모습으로 큰 재미를 끌고 있는 유튜브 콘텐츠 <미노이의 요리조리>의 진행을 맡고 있다.

tvn <놀라운 토요일>에 함께 출연한 주우재, 주현영 그리고 미노이. 각자 귀엽고 독창적인 매력을 실컷 뽐냈다. 세 명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들도 계속 찾아보는 중이다. 

이렇게 최근 들어 유독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세 명에 대해 내 나름의 분석을 해본 결과 아주 명확한 공통점을 찾아냈다. 바로 이들 모두 본업 천재라는 점이다. SNL과 같은 장난스러운 '고품격 풍자 코미디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주현영의 진짜 매력은 탄탄한 연기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허당기와 광기 넘치는 모습의 주우재 역시 모델 일과 패션계에서는 그 누구보다 센스 있는 스타일링 팁을 공유하고 있는 전문가다. 미노이 역시 커버곡이나 발매곡 모두 높은 스트리밍과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는데 고유한 매력을 자랑하는 목소리와 음색 덕분에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갑자기 분위기 대중문화 평론인 느낌이 없지 않아 조금 머쓱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독특하고 매력 넘치는 부캐릭터로 인정받고 사랑받는데 필요한 조건 역시 "본업 천재"라는 깨달음에 나도 계속해서 열심히 연구해야겠다는 다짐을 세웠다는 이상하고도 기괴한 결말이다... 이제는 좀 더 회복력 있는 (resilient) 대학원생이 되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취미들이 있지만 이 모든 것 역시 내가 더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 여담으로서 내가 꿈꾸는 부캐에 대해 공유하자면 바로 '푸드 칼럼니스트'이다. 이전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음식에 꽤나 진심이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꾸며낼 수 없는 열정과 자부심이 충만한 편이라 "음식"과 "글쓰기"라는 테마를 갖고 귀중한 시간을 (quality time) 보내며 부캐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앞으로는 "뭉클한 푸드 칼럼"이라는 브런치 매거진에 글을 더 많이 게재해볼 계획인데 많관부, 많사부다. 우리 모두 본캐와 부캐, 둘 다 잃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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