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보단 조리에 가깝지만 따뜻한 나의 밥상

자취 2년 차, 요즘은 뭐해 먹게요?

by 성급한뭉클쟁이

“넌 그럼 밥 해 먹어?”


주변 사람들에게 자취 소식을 전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요리 여부에 대한 것이다. 다들 바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와중에 끼니를 챙겨야 하면 밥을 해 먹는지, 시켜먹는지, 사 먹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실제로 자취방에는 잠만 자러 귀가한다는 대학원생 친구들도 있고, 퇴근길에 김밥을 포장하는 친구들, 또는 특별한 날에는 퇴근 전 배달 어플을 켜서 치킨 한 마리를 시켜두는 친구들도 봤다. (이렇게 하면 고된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에 드러설 때 선물이 도착해있는 느낌 이래나 뭐래나.) 그래서 자취를 시작하고 배달어플 VIP로 등극한 친구들도 여럿 봤다.


우리는 끼니를 챙겨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기숙사에 살든, 자취방에 살든 밥은 먹어야 하고 배꼽시계가 울리면 끼니를 챙기는 것이 필수인 종족이다. 배고픔에 대응하여 식사 메뉴를 정해야 하는 이러한 진화적 현상을 ‘귀찮음’이나 ‘불편함’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런 유형의 친구들이 바로 배달 어플 VIP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식사 시간과 메뉴를 정할 수 있음을 ‘특혜’로 생각하는 편이고 자취를 시작한 덕분에 ‘요리’를 통해 나의 계획 욕구와 창작(?) 욕구를 충족시키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의 답으로 돌아가자면 “그렇습니다, 저는 밥을 직접 해 먹습니다”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브런치에 관련 글을 여러 번 업로드한지라 반복하는 느낌이 매우 강하지만 나는 요리하는 시간을 정말 좋아한다… 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요리”라고 할 만큼 거창한 스케일은 아니고 열심히 “조리”해서 내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을 스스로에게 제공하고 있다. 간단한 식재료는 동네 마트나 파머스 마켓에서 장을 봐와서 메뉴를 정하고, 꽤나 자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깍두기, 파김치 또는 밑반찬을 협찬받아 맛있는 끼니를 차려먹고 있다. 이런 ‘본가 찬스 협찬 음식’은 명절 시즌에 가장 큰 빛을 발하는데 설날이나 추석엔 각종 전이나 나물 반찬까지 받아올 수 있어 한동안 든든한 생활이 가능하다. (명절 시즌이 끝나도 체중이 늘어나는 건 기분 탓이겠죠.) 가끔씩 운이 좋으면 돼지고기를 협찬받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엔 동네 친구를 불러서 목살구이 정식을 나눠 먹었다. 기름 연기를 제거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긴 했지만 오래간만에 분위기 낼 수 있는 ‘불금 메뉴’에 아주 적합한 선택이었다.

명절 시즌에 대전으로 돌아와서 차려 먹는 식단에는 항상 나물 반찬과 동태전, 동그랑땡 등 다양한 전 음식이 포함되어있다. 메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낫또 아보카도 덮밥이다.
엄마가 챙겨준 목살. 동네 마트에서 상추랑 깻잎 쌈을 사다가 양파랑 함께 구운 돼지고기 목살을 맛있게 먹었다. 후라이팬에 구워도 맛은 일품이다.

명절 시즌 같은 특별한 날 말고 평소엔 내가 무얼 해 먹지?라는 가벼운 질문이 생겨서 새로운 브런치 글 업로드를 위한 사진들을 계속해서 정리해보기로 했다. 자취 2년 차, 여름을 맞이해서 내가 무엇을 제일 많이 먹었는지 살펴보면 가뿐히 일등을 차지하는 메뉴는 바로 “낫또 아보카도 덮밥”이다. 낫또는 발효 음식으로서 청국장 비주얼을 갖고 있지만 냄새는 거의 없고 샐러드나 밑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끈적한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좀 나뉘는 경우가 있지만 나의 경우엔 항상 낫또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대로 퍼먹기도 하고 비빔밥처럼 밥과 함께 먹는 경우도 있는데 따뜻한 밥에 낫또를 올리고 계란 프라이까지 얹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약간의(?) 사치를 부릴 수 있다면 잘 익은 아보카도까지 얹어주면 연희동 일본 가정식 맛집 부럽지 않은 메뉴를 집에서 뚝딱 즐길 수 있다. (꿀팁을 한 가지 더 공유하자면 덕분에 변비 탈출 성공했습니다!)

은혜로운 비주얼의 낫또 아보카도 비빔밥. 참기름 한 바퀴 돌리고 깨소금까지 더해주면 미친 풍미를 자랑하는 건강식이 완성된다.

낫또가 없을 때는 아보카도와 함께 간단한 덮밥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아보카도는 빵에나 어울리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아보카도는 원체 지방이 풍부한 식감을 자랑하는 음식이라 계란과 함께 먹으면 계란 간장 버터 비빔밥과 같은 식감과 풍미를 자랑한다. 김이나 양배추 쌈에 싸 먹으면 (과장 조금 보태서) 참치회덮밥을 먹는 느낌도 있다. 그리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사서 처치곤란이 되어버린 양파를 소진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캐러멜 양파’를 만드는 방법이다. 캐러멜이라고 하면 설탕으로 볶은 건가? 싶어서 놀라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양파는 원래 본연의 단 맛을 갖고 있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식용유에 볶기만 해도 단맛이 듬뿍 흘러나온다. 매운맛을 없애고 단 맛을 증폭시키려면 시간적 여유를 갖고 볶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양파를 볶아두고 덮밥을 만들 때마다 소량을 데워 밥 위에 얹어줘도 좋다. 역시나 빠질 수 없는 참기름과 깨소금의 조합, 그리고 짭조름한 스팸 한 조각을 더해주면 간단하지만 아주 맛있는 한 끼를 완성할 수 있다.

아보카도 덮밥. 아보카도랑 계란 조합은 정말 누가 생각해낸걸까. 밥 위든, 빵 위든 너무 맛있다. 스팸은 너무 짠 맛을 없애기 위해 뜨거운 물에 1-2분 정도 데쳐먹고있다.
양송이 버섯은 소금과 후추 약간을 넣고 볶아줘도 훌륭한 반찬이 된다.

그 외에도 맛 좋고 가성비 좋고 영양가 좋은 식재료를 소개하자면 순두부와 가지다. 순두부는 계란에 섞어 볶아 먹어도 맛있고 육수를 내서 애호박과 함께 끓여먹으면 해장에도 좋은(?) 순두부탕이 완성이 된다. 요즘엔 더워서 국 끓이는 일은 지양하고 있지만 따뜻한 국이 먹고 싶은 날엔 순두부도 자주 애용하고 있다. 가지는 볶아 먹든 삶아 먹든 튀겨 먹든 구워 먹든 다 맛이 좋은 식재료지만 개인적으로 양파와 함께 굴소스를 넣고 볶아 덮밥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기분에 따라 돼지고기 다짐육과 함께 볶으면 더 든든한 메뉴가 완성되는데 위가 편안한 식사에는 확실히 채소가 주재료인 메뉴로 만드는 게 좋은 것 같다.

애호박 순두부 탕 (왼쪽) 그리고 가지 덮밥이 메인 메뉴였던 친구들과의 주말 점심. 양배추 쌈과 냉동 보관 중이던 녹두전을 데워 함께 먹었다 (오른쪽).

지난번에도 소개했지만 최근엔 소면을 삶아 콩국물을 부어주기만 하면 완성되는 콩국수를 자주 먹고 있다. 서리태 콩물을 사서 소면을 삶고, 오이가 없더라도 싱싱한 토마토와 삶은 계란, 그리고 여기에도 깨소금을 얹어주면 아주 맛있는 식사가 완성된다. 원래 소화가 잘 안 돼서 면 메뉴를 잘 못 먹는데 콩국수는 예외다. 그리고 양배추를 더해서 씹는 맛을 더해도 아주 맛있는 홈-메이드 콩국수가 완성된다.

서리태 콩물과 소면 1인분으로 만든 콩국수. 여름엔 왜 이렇게 콩국수 생각이 끊이지 않을까. 너무 맛있다.

“여름”하면 생각나는 또 하나의 메뉴는 바로 감자 샐러드다. 감자는 따뜻하게 쪄먹는 게 일품이라 겨울 메뉴라고 인식될 수도 있지만 오븐에 구워 올리브유, 파슬리, 또는 마요네즈에 휙휙 비벼 주기만 해도 레스토랑 맛+비주얼의 음식이 완성된다. 양송이버섯도 구우면 구울수록 담백한 맛을 자랑하기 때문에 씹는 맛을 위해 버섯이나 스위트 콘을 넣어줘도 아주 좋다.

양송이 버섯과 양파 그리고 감자를 오븐에 구워 올리브유, 후추에 버무린 감자 샐러드.

하루의 시작을 밥 식으로 했다면 그 끝은 빵식으로 자랑하는 편이다. 빵을 너무 좋아하지만 빵만 먹기엔 밥도 먹고 싶고, 나름 건강을 생각하기 위해(?) 하루의 모든 끼를 밀가루로 채우지는 않기로 결심한 내 노력의 결실이랄까. 흥미롭게도 빵식만 하면 나는 완전한 욕심쟁이로 빙의된다. 크림치즈며 리코타 치즈며 올리브유에 아보카도까지. 또는 만들어둔 당근 라페나 후무스를 곁들이고 싶어 진다. 빵도 통밀빵, 베이글, 사워도우나 식빵 생각도 나고 또 자존심은(?) 있어서 단백질도 필요하다는 이유로 삶은 계란까지 준비해온다. 여기에 드립 커피까지 내려서 함께 마시면 최소 빵 두 조각은 소화돼서 내려가는 느낌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걸 안다.) 이것저것 다 먹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는 샌드위치보다는 뷔페식으로 빵식을 해 먹고 있다.

이것저것 다 꺼내 먹는 나의 빵식. 퀘스크렘 크림치즈는 지방함량도 낮고 풍미는 더 강해서 자주 애용하고 있는 크림치즈다.

그리고 “빵 동고” (빵을 저장하는 냉동고의 줄임말이다)를 정리하고 싶은 날엔 구매한 지 좀 오래된 빵을 처리하기 위한 ‘조리’ 시간이 시작되는데 바게트 같이 수분기가 적어 딱딱함이 지속되는 빵의 경우 실온 해동 후 우유에 계란을 풀어낸 물에 적셔 30분 정도 기다리면 ‘겉바속촉’의 진가를 보여주는 바게트 프렌치토스트가 완성된다. 달달하게 먹고 싶은 날엔 딸기잼을 곁들이는데 이렇게 알뜰하게 냉동고 정리도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반하며 주말 빵식을 마무리하곤 한다.

30분 정도 계란물에 재웠더니 바게트 마저 촉촉하게 살아났다. 딸기잼을 듬뿍 발라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면 아주 훌륭하다.

대전에 살기 때문에 한창 대전의 자랑 “성심당” 빵을 애용하다가 요즘엔 “타르틴 베이커리”의 빵을 애용하고 있다. 마켓 컬리가 성사시킨 입고 현황 덕분에 배송비가 부담인 날엔 동네 친구와 함께 빵을 주문해서 공수받고 있다. 쿰쿰한 맛이 일품인 발효빵이 나의 최애 빵 종류인데 ‘컨트리’와 ‘포리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구매하자마자 소분해서 냉동고를 향해야 하는 빵의 운명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1인 가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안전하고 맛있게 먹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구매한 빵은 지난번 여름 음식 편에서 소개한 완두콩 부라타 샐러드나 당근 라페, 그릭 요구르트와 함께 맛있게 즐기고 있다.

‘요리’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것 같고 ‘조리’라고 하기엔 꽤나 진심인 나의 자취 식탁. 그래도 “직접 해 먹는다”는 자부심은 나를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소화기관이 약한 탓에, 그리고 오랜 기숙사 생활 동안 한이 맺힌 탓에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한 자취 요리 생활이지만 덕분에 더욱 건강해지고 나의 입맛을 발견하고 있어서 좋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제철 식재료를 다듬는 일상생활의 지혜이자 알뜰살뜰 나를 돌볼 수 있는 “야무짐”을 더 키워내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1인 가구가 아닌 나의 가족을 위해 스케일을 더 키워야 하는 날도 오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아마, 제발. 꼭 그런 날이 왔으면.)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살림 실력을 연마하고 직접 요리해먹는 장보기의 기쁨과 지혜로움을 충전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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