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가계부 직접 씁니다

가계부 작성도 연구 노트처럼, 공대생의 가계부 일지

by 성급한뭉클쟁이

요즘도 직접 손으로 가계부 작성하시는 분 계실까요? 저처럼 말입니다.


요즘같이 입출금 내역을 즉시 알려주는 은행 어플도 많아지고, 본인의 소비 패턴에 따라 지출내역을 정리해주는 가계부 어플도 많다고 하지만… 필자는 요즘도 직접 입출금 장부를 만들어 본인의 경제 활동 내역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저도 “손”으로 작성하는 것은 아니고 구글시트에 엑셀 파일을 하나 만들어서 핸드폰이나 태블릿 PC, 또는 노트북으로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항상 실시간으로 좀 전에 계산된 입출금 내역을 정리하여 기록하고, 매달 25일 입금되는 (작지만 소중한) 연구 수당에 대해서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편리한 서비스가 넘쳐나는 판국에 왜 굳이 이토록 번거로운 일을 자처하는가 싶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계부를 직접 작성하는 일이 조금도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말의 귀찮음도 느껴지지 않는달까.) 귀찮기는커녕 오히려 본인의 소비습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느껴진다. 워낙 기록하고, 계획하고, 분석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성향이라 더 그런 것도 있고 말이다. 일부러 따로 시간을 내서 가계부 작성을 하는 것도 아니라 그런지 불편함이나 귀찮음 없이 기록 행위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의 이런 습관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했을 때 가계부 어플을 추천을 받은 일도 참 많다. 일상 속 지출 목록뿐만 아니라 카드, 예적금, 보험, 투자, 대출 등 다양한 돈 관리 활동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뱅크 샐러드>도 그중 하나의 예시였다. 그 외에도 스타트업, 대기업 불문하고 다양한 가계부 어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는데 심지어 아이패드 사용자를 위한 가계부 템플렛도 인터넷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창 유행하는 “다꾸” (다이어리 꾸미기)처럼 아이패드에 주간 또는 월간 별로 나의 지출 내역을 정리할 수 있으니 템플렛 다운로드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로 보였다. 하지만 (부정하지만 본인도 꽤나 공대생이라…) 가계부는 예쁜 디자인보다는 실속형이 최고라는 생각과, 어떤 디바이스를 사용하든 접근성이 높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작년 1월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스스로 만든 구글 시트 가계부에 정착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주 본격적으로 기록을 남기게 된 건 자취를 시작한 직후이다. 수년 전(?) 학부 생활을 하면서도 용돈 관리를 위해 항상 지출에 대해 계획하고 신경 쓰며 지내왔지만 당시에는 총지출액이나 총입금액에 대해서만 계산했던 것 같다. “내가 이번 달에 XX원이나 썼네” 또는 “이번 달은 생각보다 적게 썼군” 등 생각을 하며 항상 월말에 스스로의 경제 활동에 대한 평가를 했고,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주는 15일이면 친구들과 함께 기대하며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날”로 지정하여 밥 약속을 잡기도 했었다. (귀엽다, 귀여워.) 하지만 대학원에 입학하고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우선 학교나 부모님께서 주는 용돈 외에 연구 수당이 입금되기 시작했다. 대학원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노동에 대한 최저 임금이 정해져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경제적 보호 정책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연구 수당,” 즉 stipend이다. 학교마다 그리고 학과마다 굉장히 다른 기준을 갖고 있고 교수님들의 “후함”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하여 ‘랩바랩,’ ‘사바사’ 등 차이가 현저하다. 하지만 꾸준히 월급을 챙겨 받는다는 의미에서는 학부생과 분명 다른 점이 생겼고, 아직 직장인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소득이 생겼다는 점에서 나 역시 통장 잔고 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겠다는 다짐을 새로 하게 되었다.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월급에 대한 유명한 짤이다. 입금되는 순간 각종 보험, 교통비, 월세, 카드 값으로 로그아웃 되는 월급의 '웃픈' 현실이다.

그리고 대학원생이 되고 나면서 연구 수당뿐만 아니라 조교 수당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나의 경우 지도교수님 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부에서 재밌게 들었던 교양수업의 조교로서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저축할 수 있는 금액 역시 늘어난 것 같다. (이러한 조교 활동을 통해 종합대학교에 대한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하였으니 내가 더 감사해야 할 일이다.)


대학원생이 되고 늘어난 '입금' 내역뿐만 아니라 ‘출금’ 내역에 대해서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자취인 것 같다. 오랜 기숙사 생활을 마무리하며 시작한 자취라 더 그랬겠지만 새로 사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사고 싶은 것들 역시 너무 많았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취 관련 아이템만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고 매번 강림하는 '지름신'과 싸워보려 노력했지만 결과는 항상 처참한 패배였다. 하지만 봇물 터진 자취 아이템 물욕을 매번 부정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로했기 때문에 꿈꿔왔던 자취 생활의 만족감을 위해 스스로에 대한 자비로움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책임한 소비는 지양하되 저축하고자 목표 세운 범위 내에서는 매일 같이 쇼핑을 계속했고 구매 역시 강행했다.


각종 자취 아이템뿐만 아니라 뭉클한 집밥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식비가 굉장히 많이 드는 것 역시 지출 관리의 동기가 되었다. 물론 배달 음식은 먹지 않고 직접 해 먹었으니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의 식비 증가세는 아니었지만… 장보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마트를 들락거리고 핸드폰 어플로 세일하는 식재료를 무조건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해버리는 악습관(?)이 생기고 말았더니 반드시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 집 냉장고에는 1인 가구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식재료가 항상 가득했고 이를 처치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나머지 한동안 친구들과 약속도 못 잡고 혼밥 생활을 해야 한 적이 많았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하는 밥 약속 역시 즐기는 편이라 균형이 무너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커피 몇 잔 사 마시고, 세일하는 식재료 몇 가지를 집어 들었을 뿐인데 항상 합계를 계산해보면 지출액이 너무 많다... 이런 짤을 보니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ㅋㅋㅋ

분명 건강하게 절약하려고 시작한 장보기 생활인데 줄어들지 않는 지출에 대해 의문점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이런 의문점에 대해서도 연구자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을 발견했으니 각종 가설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데이터를 쌓는 일이 그다음 단계였다. 월별로 구글 시트를 만들어서 출금과 입금에 대한 목록을 날짜별로 매일같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소비 로그"라는 칸을 만들어서 그 달의 목표나 지향점을 한 번 더 적어두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옷 쇼핑은 자제하자" "집에서도 간단하게 챙겨 먹을 수 있을 정도만 냉장고 재고를 유지하자" 등이 있다.) 가계부 어플을 사용하는 것보다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은행 어플과 연동되어있지 않은 지출에 대한 데이터가 누락되는 일이 없다 보니 데이터 편향성이 줄어들었다. 수집하는 데이터가 완전해야 더욱더 정확한 분석과 이에 대한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는 가계부 어플보다 구글 시트로 지출 내역을 관리하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런 노력을 지속해온 결과 나는 지난 1년 7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가계부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구글 시트를 열면 Monetary log 라고 만들어둔 엑셀 파일이 보인다. (부끄럽지만) 가계부 예를 공개하자면 사먹은 것들, 쇼핑한 것들, 교통비 등에 대해 기록해두었다.

성실하게 기록하다 보니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데이터도 쌓이고, 보다 더 거시적인 패턴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가계부 작성 덕분에 내 소비 습관에 변화가 생기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지향하는 소비 패턴과는 아직도 거리가 있는 편인데 (쩝) 그 이유는 월말마다 분석의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빅데이터를 쌓기 위해 모든 지출 내역에 대해 기록을 강행했으나 이를 돌아보고 회고하는 시간은 현저히 부족했던 것 같다. 그 데이터를 살펴보고 분석해서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To-do list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런 시간이 부족했다. (사실 이런 점은 내가 연구할 때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실험과 발표 준비 등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막상 내가 만들어낸 데이터를 한 번 더 곱씹으며 분석하기 위한 시간 투자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더 노력해보는 수밖에.) 계속해서 열심히 가계부 작성에 임할 것이지만 앞으로는 회고의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져봐야겠다. 그래야 더 완벽한 기록이 될 것 같다.


더 완벽한 가계부 생활을 위해 스스로 지향하는 소비 습관에 대해 정리해보면 첫 번째는 “불필요한 충동구매를 지양"하는 것이다. 옷이 차고 넘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옷이 적지도 않고 옷 욕심이 없는 편도 아니다. (옷에도 꽤나 진심이다.) 평소에 오프라인 쇼핑에 시간 투자가 어렵다면 온라인 쇼핑몰을 배회하며 손쉬운 모바일 결제를 진행시키곤 하는데 갈수록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명확해지고, 믿고 살 수 있는 브랜드 수 역시 늘어나다 보니 입어보지 않고 구매하는 일에도 이전만큼의 위험 부담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옷을 더 잘 활용하고 싶다. (이런 동기부여를 좀 더 자주 느끼기 위해 옷장 저리를 자주 하는 편이다.) 물론 해외, 국내 브랜드 할 것 없이 브랜딩 팀이며 마케팅 팀이며 디자인 팀 모두 다 열일하는 탓에(?) 하늘 아래 같은 청바지는 없고, 상의 역시 패턴, 색깔, 핏 모두 다 달라서 갖고 싶은 옷은 항상 넘쳐나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두 번째는, 당장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장보기만 허용할 것. 앞서 이야기했지만 한동안 ‘할인’을 이유로 당장 먹지도 못할 음식 재료를 왕창 구매해다가 처치곤란으로 고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식재료 낭비가 싫다는 이유로 사람들도 덜 만나고 체지방도 늘어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한 달간 사용할 식비를 미리 정해두는 편은 아니지만 냉장고 상태를 점검하고 최근 이미 장보기 어플로 식재료를 구매한 이력이 여러 차례 있다면 장보기 지출은 지양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마트로 산책 가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번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면 아예 신용카드나 지갑을 집에 두고 걷기 산책을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가끔 세일률이 너무 훌륭한 아보카도나 각종 유제품을 지나치기에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빈 공간 넉넉한 냉장고와 여유 있는 통장 잔고를 바라볼 때마다 뿌듯함이 더욱 증폭되는 것 같다.

다짐은 여러번 했지만 실천도 여러번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주 장보기 물품들)

마지막 포인트는 나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위한 소비를 지향할 것. 마지막이라 그런지(?) 이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첫 번째 목표와도 연관되어있는 문제인데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충동으로 여러 차례 구매하는 일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한 작은 선물, 또는 그들과의 ‘퀄리티 타임’을 위해 투자하는 맛있는 밥 한 끼 또는 커피 한 잔이 내 삶에 더 큰 풍요로움을 가져온다고 느낀 적이 많다. 나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 구매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 좀 더 유동적인 스케줄을 유지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번개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는 뜻도 포함되어있다. 또한 선물을 구매할 때는 절대 인색하면 안 된다는 어머님의 가르침이 있었는데 (나도 갖고 싶은 물건을 선물하라는 것이 우리 어머니의 지혜이다)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로 잘 실천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더 신경 써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수밖에.

여담이지만 대전 생활 중인 대학원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온통 대전"이다. 캐시백 할인율이 점점 줄어들고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덕분에 대전 생활이 넉넉해졌다.

짧지 않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다 보면 주변 친구들이 이미 취직을 하고 4-5년이 지나 소위 말해 “자리를 잡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각자 선택한 길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시기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문득 그런 친구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귀가하는 날에는 스스로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조금은 품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승진, 이직 또는 부동산, 주식 투자를 논하고 있는데 나는 당장 논문 투고, 리비전, 학회 발표 등에 집중하느라 재테크는커녕 저축에만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학교를 떠나 자리 잡은 친구들에 비해 경제적인 자립과 목돈 마련에 있어서는 많이 뒤처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들다가도 연구실로 돌아와 실험에 매진하고 연구에 몰두하는 주변 동료들을 보면 “그래 우리는 아직 훈련을 받고 있잖아?”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기회비용을 생각하고 떳떳한 박사님으로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거겠지.) 그래도 힘이 닿는 만큼은 최대한 미래를 준비하며 절약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절약하고, 또 즐길 수 있는 부분에서는 아낌없이(?) 금융 치료에 임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힘써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전국 대학원생들의 넉넉한 일상생활을 위해, 심심한 위로와 응원의 말을 남겨본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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