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에서 포닥으로서 다시 찾은 학회장
수많은 청중 앞에 서서 인사를 하고 곧은 자세로 바로 선다. 청중 쪽 불이 꺼지고 모든 조명은 강단 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위에 서있는 발표자인 나를 밝히기 시작한다. 조금 전 USB로 행사장 컴퓨터 본체에 옮겨둔 자료 파일을 열어 발표 모드를 시작한다. 이번 발표의 제목과 발표자 이름, 소속, 날짜 그리고 관련 학술대회의 로고가 담긴 슬라이드가 무대 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 손에는 레이저 포인터가 장착된 프레젠터를 쥐고 다른 한 손은 갈 곳을 잃었으나 최대한 태연한 척 프로페셔널한 바디 랭귀지를 이어가며 자신 있게 자기소개를 마친다. 성공적인 공개 연설의 키 (key)는 결국 기세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원생, 아니 연구자들에게 이는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관련 분야의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제출한 초록이 덜컥 구두발표에 선정되어 버리고 나면(!) 좋든 싫든 강연장을 가득 채운 학회 참가자들 앞에서 내 연구를 소개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10분에서 15분 내외. 스스로 3-4년을 투자한 연구 프로젝트일지라도 학술대회 조직위원회는 공정하다. 나에게 할당된 짧은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서 연구 질문을 소개하고, 연구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험실에서 열심히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수많은 눈동자들 앞에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한 채 모든 슬라이드를 다루고 나면 공포의 질의응답 시간이 발표자를 기다리고 있다. 질문이 많아도 고민, 없어도 재앙이다. 전자의 경우 발표 내용을 깔끔히 설명하지 못했거나 논리의 흐름에 빈틈이 많았다는 의미일 수 있고, 후자의 경우 내 발표가 재미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이 살짝 다를 수 있지만 악플과 무플 중 무엇이 더 두려운지의 차이와 비슷하다.)
우여곡절 끝에 발표를 마치면 꾸벅 인사를 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면 된다. 붉게 상기된 두 볼을 식히며 쏜살같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때 과도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 급한 마음에 스텝이 꼬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넘어지는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장됐던 마음을 잘 다스리고 누구보다 차분하게 복귀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끝났다!" 하고 말이다.
상상만 해도 초조해지지만 필자의 경우 이런 발표 기회를 굉장히 즐기는 편이다. 초조함 자체를 즐긴다는 것은 아니고 나는 학술대회에서 구두 발표를 하게 되면 극도로 긴장하는 대신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받는 관심을 좋아한다. 나에게는 강단 자체가 준비한 공연을 뽐내는 "무대"와도 같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걸 바로 "학계 관종"이라고 해야 하나?)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의 공들여 작업한 연구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자체가 즐겁고, 나 역시 그 속에서 공유할 프로젝트가 생겼을 때 큰 성취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소심한 성격 탓에 제대로 된 공연 활동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학회 기간 중 연구 발표야말로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평소 공부해 둔 내용을 바탕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잘 마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 꽤나 성장해 있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기특한 마음도 든다. 세션 사이에 프로젝트 내용에 교수님들 그리고 동료 대학원생들과 토론 과정을 거치며 건설적인 피드백을 얻게 될 때도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
나는 운 좋게도 학술 활동에 진심인 지도교수님을 만나 대학원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실험실 생활도, 대학원 과정 중 수업 활동도, 연구실에서 읽는 논문 스터디도 모두 중요하지만 국내외 학회에 참석하여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동료 연구자들과 우정을 쌓고, 분야 내 "핫 (hot)"한 주제를 파악하며 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분이었다. 이러한 교수님의 성향을 미리 알고 연구실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같은 이유 덕분에 지도 교수님을 더욱 존경했다. 사실 학회 참석에는 시간과 노력뿐 아니라 "연구비"라는 소중한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기에,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위해 얼마나 큰 너그러움을 베풀어주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주변 사례를 보면 따로 여비 보조 (travel grant) 장학금을 받지 못할 경우 학회 참석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필자는 생명과학/공학 분야를 전공했기 때문에 국내의 경우 한국생물공학회 (KSBB),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KSMCB) 등 학회에 참석했었다. 2022년도 리보핵산분과에서는 Young Investigator Award 수상자로 선정되어 영광스러운 구두발표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국내 학회장에서도 많은 만남과 배움, 그리고 연구실 동료들과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는데 이번 글에서는 특히 해외 학회를 참석하며 내가 느낀 점, 그중에서도 나의 진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경험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기억나는 첫 번째 해외학회는 바로 2022년 봄의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CSHL) 학회다. 바야흐로 "코로나 시절, " 한창 해외 일정은 꿈도 꾸지 못하다가 슬슬 여행길이 풀리던 시기였다. (물론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결과지를 제출하고, 기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지만 말이다.) 당시 지도교수님께서도 다시 해외 학회 참석을 계획하고 계셨고, 나 역시 운 좋게 뉴욕주에 위치한 CSHL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유독 CSHL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비번역 리보핵산 (non-coding RNA) 특이적인 주제를 다룬다는 점과 더불어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학회장이 뉴욕주라는 점이 가장 매력 있게 느껴졌다. 2018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뉴욕에 다시 발을 디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4년 만에 다시 뉴욕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심지어 이번에는 대학원생으로서 나만의 연구 프로젝트가 담긴 포스터를 손에 쥐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CSHL 학회장이 뉴욕 "주 (state)"에 위치하고 있지만 뉴욕 "시 (city)"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말인즉슨, 학회장은 내가 좋아하는 맨해튼 한 복판이 아닌, 그로부터 차로 한 시간, 기차로는 거의 두 시간 넘게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롱아일랜드 자치구의 한 연구소라는 의미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학회장은 "뉴욕"과는 아주 거리가 먼 곳이었지만 뭣이 중헌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수많은 RNA 분야 연구자들의 강연을 듣고, 그들과 한 공간에서 밥을 먹고, 포스터 세션 내내 흥미로운 토론을 이어가며 한국에서 온 박사과정생인 나는 매 순간 값진 영감을 받게 되었다.
마천루는커녕 2-3층 이상의 층고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콘크리트 빛깔의 회색이 아닌 자연친화적인 초록색 잔디와 푸른빛 바닷가가 학회 참가자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연구소"에 필요한 실험실, 사무실, 구내식당, 강당 등 모든 건물은 항구를 따라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체크인 후 도착한 숙소 역시 연구소 뒷동산에 위치한 오두막 같은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바로 당시 "대표 (Representation)"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학회 프로그램 중 세 명의 키노트 (Keynote) 연사 분이 계셨는데 그중 첫 번째 발표를 맡으신 분이 바로 대한민국 서울대학교 생명과학과에 재직 중이신 김빛내리 교수님이셨다. 대학원에서 RNA를 전공하면서 김 교수님을 모를 수 없게 되었는데 (꼭 전공자가 아닌 대중적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뵌 것은 2022년 CSHL 학회에서가 처음이었다. 학회 일정 중 가장 명망 있는 키노트 세션의 연설자신점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도 첫 번째 발표자셨다. 게다가 발표가 끝나고 나서 수많은 "외국인" 연구자들이 줄을 서서 김 교수님께 질문을 하고, 연구 이야기를 나누고, 본인 프로젝트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어 했는데 (김 교수님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도 수많은 연구자들 사이에 둘러 쌓여있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나 역시 이공계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한 명의 한국인 여성 과학자로서 엄청난 성공사례를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에 크게 감동한 것 같다.
김 교수님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지만 분명 큰 깨달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정의했을 때 "멋있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컸는데 처음으로 (라고 하면 석사과정 내내 고생한 나 자신이 조금은 안쓰럽지만) 연구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리고 열심히 했을 때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엄청난 성공사례를 보며 압박을 받은 것은 아니고 김 교수님을 만나 뵌 것 외에도 학회에서 수많은 교수님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 그리고 나와 같은 신분의(?) 대학원생들과 교류하며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즐거움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어른들 (부모님과 선생님) 말을 잘 들으며 열심히 공부해 왔는지 깨닫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지적 자극 (intellectual stimulus)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게 되면 뿌듯하고, 반대로 아직 공부가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에 잠깐 좌절하지만 새롭게 읽어볼 논문 목록이 생겼다는 마음에 신이 난다. 무엇보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영감 받는 일이 참 많다. 이미 똑똑한 사람들이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고, 앞으로도 이 사람들을 "동료"라고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신기하게도 다녀온 이후 연구나 작업 중인 논문이 하나둘씩 잘 풀리기 시작했다. 투고한 논문이 길고 길었던 리비전 끝에 게재 확정 소식을 받았고, 처음 생긴 1 저자 논문 덕분에 의생명과학분야 대학원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또한 연구자들 간의 소통을 즐기는 필자의 성향을 발휘한 덕분에 흥미로운 기회가 닿아 RNA society라는 학술단체에서 "젊은 과학자 대표 (Junior Scientist Representative)"로 2년 동안 활동하게 되었다. 지원 당시에는 단순히 취지가 마음에 들어서 지원했던 것인데 알고 보니 활동기간 동안 학회 등록비와 숙소비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어서 남은 박사과정 기간 동안 교수님께 덜 죄송한 마음으로 해외학회에 다녀올 수 있었다. 젊은 과학자 대표로 활동하면서 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에서 공부하는 여성 대학원생을 "대표 (represent)"하며 학회에 참석하고, 프로그램 중 세션 하나를 책임지고 구성하여 연사를 초청하고, 패널 토론의 진행도 맡았다. 덕분에 즐거운 팀워크를 경험했고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도 소중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졸업 후 포닥으로 지낸 지 5개월 만에 같은 CSHL 학회장을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발표를 통한 "뽐내기"가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지도교수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 덕분에 한국에서 오신 지도교수님을 포함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나고 왔다. 더 이상 같은 소속 (affiliation)이 적혀있는 이름표가 아니라 어색했지만 천천히 그래도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학회 중 여러 식사 시간을 통해 지도교수님과 근황 토크를 이어갔고, 실험실을 떠나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된 동료들끼리 연구적 또는 개인적 주제에 대해 많은 수다를 떨었다. 물론 강연마다 경청하며 (하려고 노력하며) 새로 얻게 된 배경 지식과 연구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국 새롭게 사귄 또는 익숙한 사람들과의 교류 시간이 가장 값졌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 관련 학회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우정을 다지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하든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박사과정생으로서 참석한 학회장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을 만났고, 결국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얻게 된 것 같다. 말하고, 글 쓰고,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강단을 무대 삼아 내 연구를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