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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Jan 04. 2020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hobby? 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는 것

영어 회화시간, 또는 그 어떤 제2 외국어 회화 시간에 반드시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상대방이 여가 시간이 생겼을 때 어떤 오락활동 또는 취미 활동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서로의 취미 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건 사교계의 한담, 즉 '스몰 토크 (small-talk)'에 적합한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나가는 안부와 더불어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때 굳이 서로 민감해질 수 있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관념에 대해서 캐물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회화책 대본으로 돌아가 보면 A가 B에게 "너의 취미가 뭐니?"라고 물었다면 (과장 조금 보태서) 십중팔구 B의 대답은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라고 답한다. 회화책을 펼치고 공부하는 독자로서 이런 대화가 진부하기 짝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취미생활로 "영화보기"를 꼽는 건 가장 평범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답이기 때문에 편리한 답변이라고 인정해줄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취미생활에 대해 질문을 받을 경우 이런 식으로 편리하게 답을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또는 대화가 종결되고 각자 가던 길을 마저 갈 수도 있다. 대다수의 '스몰토크'가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경우 누군가 내 취미생활에 대해서 질문을 할 때마다 긴장감에 휩싸이고 만다. "What is your hobby?"라는 질문이 다소 철학적이고 평소에 깊게 사유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단숨에 단언하여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또 불편해하는 소리가 내 귓가를 맴돈다. "뭘 또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답을 찾느냐?" "'취미 (hobby)'라고 하면 놀 때 자주 하는 거 아무거나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 등등. 물론 그렇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만큼이나 노는 걸 좋아하고, 혼자 놀기도 잘하고, 게다가 삶을 최대한으로, 완전하게 사는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뭉클하게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 여러 가지를 인지하고 실제로 실천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질문을 받고 내가 딱 한 가지를 선택해서 "이것이 나의 취미 생활이다!"라고 선언해야 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오, 벌써부터 스트레스.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주는 일은 참 많다. 예를 들어 나는 3년 차 '요기 (yogi; 요가 수련자)'로서 명상과 호흡 단련, 그리고 스트레칭을 사랑하고, 어딜 가든 책 한 권은 챙겨 다니면서 꾸준히 취향에 맞는 독서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기사나 블로그에 소개된 맛집이나 카페는 지도 어플에 저장해두었다가 아끼는 친구와 함께 방문하여 '도장 깨는 일'을 좋아하고, 그 외에도 일기를 쓰고, 엽서에 편지를 쓰고, 브런치에 내가 사유한 생각에 대해 글을 쓰는 등 '적는 일' 역시 나에게 큰 행복을 안겨주는 활동이기 때문에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여가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고 있지만 이 중 내 취미 생활을 한 가지 골라서 선언하기에는 꽤나 큰 부담을 느낀다. 어떻게 고르라는 말인가? 내 삶의 기쁨이 되는 여가 활동은 이토록 다양한데?


게다가 질문자가 "최애" 즉 나의 '페이보릿 (favorite)' 취미 생활에 대해서 묻는다면 이런 스트레스는 단숨에 배가 되고 만다. 무슨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본인이 선택한 "최애 취미 활동"이 내가 직접 정식으로 "최애"라고 표명할 만큼 충분한 열정을 보이고 있나? 충분히 시간과 에너지와 자본(?)을 투자하고 있나?라는 생각의 여파가 파급되는 것이다. 맙소사. 상대방은 그저 어색한 침묵을 깨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나는 본인의 "취미 생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평하고 타당한 답을 찾기 위해 이토록 깊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런 주제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는데 따지고 보니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거나 정말로 떠오르는 답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영화 보는 거 좋아한다"라는 편안한 답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영화 관람을 취미 생활로 삼으시는 분들은 부디 오해 마시길 바란다. 영화 관람이 얼마나 깊은 사고력과 시간, 그리고 정서적 센스를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저 회화책의 예시가 생각나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취미 생활"의 예이니 기분 상해하기 마시길.) 당장 삶이 너무 바빠서 물리적으로 여가 시간이 결여된 일상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지배한 이후로 "그냥 폰 보다가 잠든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은 터라 공감이 가면서도 동시에 안타깝다는 마음도 들었다. 작은 스크린을 주시하면서 퇴근 후 시간을 모두 써버리기엔 아직 삶의 아름다운 요소는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SNS 디톡스에 노력 중이다. 일단 오늘 날짜가 1월 4일이니 작심삼일은 성공적으로 넘겼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 것은 "취미 생활"에 대한 답변이 문화, 특히나 교육 방식의 문화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국제학교에 재학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본인의 취미 생활에 대한 열정도 강렬했고, 입시기간 동안 바쁜와중에도 공부와 취미 생활이 이분법 (dichotomy)처럼 잘 분리되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 몇 명을 언급해보자면 어렸을 때부터 테니스를 좋아해서 국내 청소년 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일본인 친구가 있었는데 배 아프게도 (?) 그 친구는 내신까지 잘 챙겼다. (역시 공부에도 체력이 중요한가?) 그리고 "물리를 잘하진 못해도 가장 좋아한다"며 대학 전공으로까지 물리학을 선택했던 스웨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와 요가를 꾸준히 했는데 최근에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접하고 보니 최근에는 요가 강자 자격증까지 따서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요가하는 물리학자라니, 너무 멋진 거 아닌가?)


물론 한국인 친구들 중에서도 취미 생활에 애정을 갖고 지내던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열정은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스스로도 확신이 덜한 취미 생활이었다. 학창 시절 좋아하는 여가 활동이 있지만 성적관리와 영어공부가 우선이었던 우리는 취미 생활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떳떳하지 못했고, 시간을 쓰더라도 비교적 몰래(?) 여가 시간을 보냈다. 공부와 함께 병행되는 오락 활동이 아닌, 그저 들키면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활동이거나, 공부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찾는 탈출구와 같은 것이었다. 내가 당장 할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키기 싫은 마음, 또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어린 시절 우리는 스스로 취미 생활을 향해 갖고 있던 열정을 키우는 일에 떳떳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성인이 되었으니 우리가 좀 더 욕심내서 취미 생활을 지켜나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던 우리의 여가 활동에 좀 더 집중하여 누군가 갑자기 "너는 취미 활동이 뭐니?"라고 물어보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야말로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힘이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중요한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이런저런 시도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고, 또는 지금의 나처럼 감히(?) 최애 취미 활동을 고르기에 이유 모를 부담감을 느낀다면 앞으로는 "My Favorite Hobby"라고 선언할 수 있는 확신이 들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삶의 방식도 내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


며칠 전 새해를 맞이한 만큼 (이번 1월도 또 얼마나 빨리 지나갈지 벌써부터 감도 안 오지만.) 아직은 새 출발의 분위기에 설렐 수 있는 지금, 자신의 취미 활동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다짐하는 일로 한 해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 확실한 취미 활동을 갖고 있는 일은 우리의 삶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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