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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Jan 17. 2020

브런치

비싼 '아점 (아침 겸 점심)'의 완곡 어구 (euphemism)

브런치는 비싸다.


물론 브런치보다 더 비싼 음식 메뉴가 많지만 말이다. 밖에서 사 먹는 브런치 메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 가성비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브런치 메뉴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오믈렛, 프렌치토스트, 팬케이크, 그리고 에그 베네딕트 정도를 생각할 수 있는데, 비교적 재료값이 저렴한 달걀과 맛있는 탄수화물이 주재료인데도 불구하고 각종 브런치 요리들의 기본 가격은 적어도 만원에서 이만 원을 훌쩍 넘는다.

훈제 연어 콥샐러드와 바나나&딸기 프렌치 토스트. 건강하게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심심치않게 설탕으로 혈당 수치를 높여준다.

브런치는 눈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결국 두 번 먹을 수 있는 음식 이어서일까? 양도 충분치 않고 (물론 다 먹고 나면 달콤한 탄수화물 덕분에 배가 불러오지만) 오랜 조리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식은 아닌 듯 보이는데... 달달하고 부드러운 재료들이 알록달록 예쁘게 '플레이팅 (plating)'된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지만 비싼 가격이 아쉽다는 마음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필자가 비싼 브런치 식사를 지양하는가? 묻는다면 그건 또 절대 아니다. 수많은 이유를 논하기 전에 결론부터 공유하자면 필자는 브런치를 참 좋아한다. 음식 재료만으로 브런치 메뉴 가격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필자를 설득하기는 어렵겠지만 필자의 지갑은 브런치 카페에선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활짝 열린다. 값이 얼마든 브런치 카페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문득 오늘 하루의 첫 오전 식사는 여유롭고 달콤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난 언제나 그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 사실 꼭 오전 식사가 아니어도 좋다. 늦은 오후에도, 심지어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에도 가능하다. 시간대에 상관없이 설탕 가득한 계란물에 푹 적셔진 프렌치토스트는 달콤할 것이고, 알맞게 덜 익혀진 에그 베네딕트 위의 수란은 지금이 몇 시이든 상관없이 영롱하게 터트려서 연어나 감자 해쉬브라운, 또는 시금치랑 버섯과 함께 맛있게 '찍먹 (찍어먹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브런치'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중간의 늦은 오전 시간대에 먹는, 즉 아침 겸 점심으로 챙겨 먹는 오전 식사의 영어 표현이다. (물론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플랫폼을 칭하는 고유명사 '브런치'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브런치'에서 '브런치'를 논하다니. 감회가 새롭다!(?)) 영어로 아침 (breakfast)와 점심 (lunch)를 합성한 영어 단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하고 빠르게 끓여먹는 라면 한 그릇도 브런치가 될 수 있다는 건데, 앞서 이야기한 듯이 필자가 애정 하는 '브런치'는 이런 감성이 아니다. 여느 포털사이트에 '브런치 맛집'이라고 검색하면 너도나도 핫플이라고 주장하며 수백 개의 검색 결과가 나오는 그런 '브런치' 가게에서 판매하는 메뉴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가성비가 아쉬운 브런치 메뉴에 열광하고 언제나(?)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가?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먼저 이전 글에서도 자주 언급한 바 있듯이 필자는 균형 잡힌 영양소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데 브런치 메뉴는 생각보다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균형 있게(?) 모두 갖고 있다. 물론 버터가 많이 들어가 지방이 많고, 계란이 주재료이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을 것이고, 설탕이 많이 들어가 탄수화물과 당류가 필요 이상일 것이라고 주의를 주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지만 이번만큼은 모르고 넘어가고 싶으니 양해 부탁드리는 바다. (머쓱) 그래도 비타민과 식이섬유 가득한 콥 샐러드로 시작해서 단백질을 넉넉하게 충전해줄 치즈 버섯 오믈렛으로 중간을 짭조름하게 장식해주고, 마지막으로 단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에게 달달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제철과일이 곁들여진 프렌치토스트로 입가심을 한다면 '스타터' '메인' '디저트, ' 즉 코스 요리 부럽지 않은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완벽해...


무엇보다 '브런치'는 기분 전환이 보장되는 한 끼 식사라고 생각한다. 밝은 아침 햇살이 가득 드는 창가 자리에 자리 잡고 좋아하는 친구나 애인, 또는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브런치 메뉴를 주문해서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면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예쁜 카페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평소엔 아껴입느라 자주 입지 못했던 예쁜 옷까지 꺼내 입었을 확률이 높다. 이런 필자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카페 사장님께서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접시 위에 디테일에 듬뿍 신경을 써서 음식을 담아 서빙해주신다. 물론 집에서 간단하게 차려먹는 밥보다는 비싸겠지만 이렇게 본인과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누군가와 근사한 식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는 한 끼라고 생각한다. 이런 보장된 행복을 통해 스스로를 더 소중히 여겨줄 수 있다고 믿는다.


크로아상 베이스의 에그베네딕트와 치아바타의 쫀득함이 매력있었던 카프레제 샌드위치 (왼쪽) 그리고 햄&치즈 파니니와 과일 프렌치 토스트 (오른쪽)


집에서는 근사한 식사가 불가한가?라고 반문한다면 그렇다기보다는 밖에서 사 먹는 그 맛이 잘 안 난다고 답하고 싶다. 요즘은 유튜브에 쿠킹 채널도 많고 요리책도 친절하게 잘 출판되어 '레시피 (recipe)'관련 정보를 구하기엔 참 용이하다. 하지만 집에서 계란물을 풀고 오믈렛을 만드려고 한다면 투척하는 버터 양에 대해 굉장히 소심해진다. (내가 이렇게 큰 버터 조각을 다 먹는 거라고?) 달콤함이 생명인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도 계란물에 풀어내는 설탕 양에 한 번 망설이게 되고 (이러다 당뇨 생기는 거 아닌가),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아끼게 된다. 에그 베네딕트 용 수란을 만들 때는 국자 위에 계란을 돌려내다 결국엔 터트리거나 완숙으로 삶아진 계란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사실 야채값이 금값이라고, 제대로 된 샐러드를 만들어보려면 채소 값도 꽤 들고 (평소 장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루꼴라가 한 단에 얼마인지 다들 아실 거다) 결국 시들기 전에 다 먹지 못해 낭비를 초래하게 되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서 결국 브런치는 기분 좋게 밖에 나가서 사 먹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글을 다시 읽어 보니 필자는 합리화에 소질이 있는 듯하다. (사실 합리화라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 항상 탐구하고 그 이유를 타인에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가격이 어떻든,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나의 돈을 소비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필요 이상의 타당성을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브런치에 대해 한 없이 관대한 나조차 용납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그것은 바로 특정 카페에서 지나치게 음식의 '비주얼'만 고려하는 경우다. '브런치'는 예뻐서 먹기 좋지만 예쁘다고 다는 아니다. 음식의 온도도 중요하고, 각 재료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너무 달거나 느끼하지는 않은지도 중요하다. 플레이팅의 청결 정도도 중요하고, 함께 마실 수 있는 커피나 차 한 잔의 풍미도 중요하다. 브런치를 즐긴다는 것은 이 모든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위해 소비한다는 것을 뜻한다. 내면의 미(美)를 간과하고 겉모습만 중요시하는 브런치 말고 진국으로 맛있고 기분 좋아지는 브런치 경험이 필자의 마음을 마음껏 설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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