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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Mar 10. 2020

함께하는 힘

진부하지만 '같이'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큰 기쁨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아무리 효율성을 중요시해도 중요한 결정 앞에선 우유부단하고 오랜 시간 '결장 (결정장애)'의 성향을 보이지만 'What Makes You Happy?'에 대한 대답만큼은 다르다.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하다.


하지만 나는 (아쉽게도) '글 쓰기' 그 자체를 업으로 삼고 있지 못한다. 물론 아직 학생 신분인 덕분에 배운 내용을 글로 써보고 연구 결과에 대하여 교수님이나 동료에게 설명하기 위해 작문을 하고 그 문장들을 다듬어야 하는 시간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공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글쓰기에 몰두할 시간보다는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실험에 더 긴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에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겐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운 좋게도 가까운 미래에 논문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면 글쓰기 작업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그 덕분에 본인의 일상생활이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을 자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주 구체화하지는 못했어도 내가 진정으로 매일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은 주제는 공학 그 자체보다는 공학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 끝은 사회과학과 철학을 가리키고 있는 그 어떤 학문 분야이다. 사실 나는 내가 공학과 사회과학의 '융합적' 학문에 대해 느끼는 갈망마저도 '결정 장애'의 파문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나의 지적 호기심마저 한 곳을 가리키지 못하고 '둘 다 좋다'는 진부한 핑계로 계속해서 욕심을 부리고 그 어느 손도 놓지 못하고 있다.


(서론이 좀 길어지고 있는데 내가 '같이'의 '가치'에 대해서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상황 설명이 중요해서이다. 내가 겪고 있는 일상의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 내가 '함께하는 힘'에 대해 느꼈던 뭉클한 깨달음과, 이런 느낀 점이 내 일상생활에 미친 어마어마한 파급력에 대해 잘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서 길지만 내 개인적 상황 설명을 조금 덧붙이기로 했다.)


좀 더 간단명료하게 나의 지적 호기심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자면, 나는 놀랍게도(?) 공부를 참 좋아하는데 내가 진정으로 좋아한다고 느끼는 공부를 실컷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당장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매일같이 회의감을 느끼고 이질감을 느꼈으며 포기하고 싶다는 욕구와 무책임한 개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갈망 사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옥죄이고 괴롭혀왔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마음에 없는 공부를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이 질문이야말로 내가 일찍이 물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게 나의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변명을 해보자면 난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좋다는 걸 잘하고 싶었고, 그럼으로써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예쁨 받고 그리고 칭찬받고 싶었다. 다행히 노력하는 것에 익숙하게 즐긴 덕분에 성과에 대해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끼며 자라진 않았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멈춰 서서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내 삶의 주도권을 잡기까지는 (또는 잡으려고 노력을 시작하기 까지는) 꽤나 오랜 배움과 깨달음의 시간이 소요된 듯하다.


나는 이렇게 충돌하는 갈망 사이에서 꽤나 고통스러운 1년을 보내고 있었다. 큰 도시를 좋아하고,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내가, 작은 도시에 있는, 다소 삭막한 학교에서 학위 취득을 위해 공학 분야 연구실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그렇게 큰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연구실 출퇴근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의 변화를 내 삶에 안겨주었다. 매일 내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책상과 실험대, 친구처럼 성향 따라 성격 따라 '유유상종' 골라 사귈 수 없는 실험실 식구들, 더 좁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서로에 대한 관찰과 감독, 그리고 언급했듯이 어색하게 쥐어 짜내야 하는 나의 지적 호기심이 나의 하루하루를 괴롭게 했다. 실험실 안 페트리 접시 대신 넓고 넓은 세상 그 자체를 실험실로 삼고 싶었던 나는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뒤로  지적 호기심 대신 지적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퇴근 후 시간에라도 좋아하는 책을 읽고 관심 있는 기사를 정독하기 위해 매일 같이 늦은 출근과 이른 퇴근을 반복하며 첫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공부를 찾기 위해 시간을 벌었다는 애매한 목적을 제외하고는 연구실에서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목표 의식을 뚜렷이 갖고 노력하는데 익숙했던 나는 사기가 빠진 스스로의 모습이 어색했고 밉기까지 했다. 항상 본인의 성취감과 학구열에 도취하여 '엑스트라 (extra)'로 노력했던 과거의 나를 그리워했고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다음날 아침이 기다려질 만큼 설레는 공부를 배우고 싶고 정 공부가 아니라면 직업을 찾고 싶었다. 무엇이든 내가 설렐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나는 더욱 어두운 에너지에 휩싸이게 됐고 어느새 일요일 저녁만 되면 다음날 연구실 출근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방에서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대학원생이 되어있었다. 한 때는 "월요병"조차 공감 못하던 '프로 노력파'였는데 말이다.


이런 '다크 에너지 (dark energy)'는 숨기기도 어려웠다. 나는 하루 종일 웃지도 않았고 말수도 심하게 줄어들었다. 그저 내가 할만치만 하자, 1인분만 채우자라는 마음으로 연구실에 도착해서 정말 할 일만 하고 집에 갔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갖는 모든 관심이나 걱정이 간섭과 침해로 느껴졌고 나는 더욱 연구실 동료 그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안티 소셜 (anti-social)'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내 주변 사람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던 건 아니다. 연구실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만큼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친구들과 가족, 선후배를 찾아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그들과의 속 깊은 대화 덕분에 내가 힘든 시기를 겪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주일 중 최소 5일, 그리고 하루 24시간 일과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과 연대감은커녕 적대감을 키워나가는 건 그 당시 직접 인지하지는 못했어도 나에게뿐만 아니라 실험실 구성원 서로에게 충분히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본인과 실험실 내 분위기에 해로운 상황들이 계속되다 보니 오랜 대화와 고찰 끝에 도달한 결론은 본인이 속한 단체에서 스스로 좋아하고 인정할  있는 개인의 정체성을 빚어야 한다는 점과 이런 상황 속에서도 무조건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즐길  있도록 열심히 나만의 체계를 구축하고  약속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 어떤 스타일이든 본인에게 잘 맞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추구할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적으로 공부하고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고, '으쌰 으쌰!' 감성의 시너지 효과로부터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좋다. 그 어느 쪽이든, 또는 어느 중간 지점이든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연구실 라이프스타일을 마련하고, 꼭 맞는 스타일을 발견했다면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는 것이(?) 지혜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연구실 생활 초반에 무의식적으로 선택했던 (물론 그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극단 개인주의적' 스타일은 사실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옷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선택한 스타일에 대해 당당하지도 못했다. 스스로 어울림을 원치 않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생기는 본인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고 항상 미안한 마음을 달고 살았다. 착한 척도 아니고, 정말 피곤하게 지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뒤늦게라도 내가 연구실에서 취했던 태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소화시킬 수 없는 음식과도 같다고 판단했고, 다행히도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용기 충전 덕분에 동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 역시 마음을 열기 시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는 나의 표정과 어투, 그리고 행동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고, 덕분에 동료들과 더 연대하고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되자 내가 연구실에서 느끼는 만족도 역시 상승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을 열고 나니 내 실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실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언을 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다짐을 나눌 수 있었으며 실수의 '멘붕'으로부터 더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열심히 한다는 마음에 자극도 되고 동기 부여도 확실히 된다는 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무조건 "느린 출근, 빠른 퇴근"을 외쳤을 테지만 연구실에 조금 더 남아있을 때 동료들과 서로 나누게 되는 이야기들, 선배들로 부터 듣게 되는 조언들, 그리고 시시콜콜하지만 누구보다 서로 맥락을 잘 이해하는 동료들끼리 던질 수 있는 농담들이 일상에서 큰 힘이 된다는 점을 감사하게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마음을 나눴다고 해서 모두와 잘 지낼 수 있고 모두와 '베프 (Best Friend)'가 되어 공과사의 구분 없이 내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 것은 아니다. 사실 대학원이라는 학업적 공간과 인생의 단계는 그 본질이 참 모호한 회색 지역과도 같아서 “이 부분은 '공'이다! 저 부분은 '사'다!”라고 나누기도 참 어려운게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개인의 공간과 영역도 필요한 법이고, 단체에 속한 모든 개인과 죽이 잘 맞아 오랜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연 유토피아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다.) 내가 바랬던 것은, 그리고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은 한 '커뮤니티'의 모두와 절친이 되어 매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응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환경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니 이런 '누군가'를 사귈 수 있게 되었고 동료들 사이에서 느끼는 연대의 기쁨과 그 긍정적 파급력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동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니 무엇보다 나 역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최고로 좋았다. 일단 본인부터 챙기자라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지 않거나 둘러보더라도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게 되는 순간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나누는 동료가 생기고 나니 표현하지 않아도 먼저 상대방의 불편함이나 속상함에 대해 살피는 버릇이 생겨서 내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이런 나의 행동과 보살핌의 노력 덕분에 힘든 시기를 함께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동료의 말을 듣고 나 역시 큰 감동을 느꼈고, 일상생활에서의 뭉클함이 아닌 배움과 일 속에서의 뭉클함을 맛볼 수 있었다.


공학을 공부하고 더 깊은 학문의 재미를 파헤치기 위해 입학한 대학원 실험실에서 '같이'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게 되었다. 지난 시간들이 참 힘들었지만 역시 인생에 지름길은 없는 법. 고통의 시간은 결국 고찰과 인내를 필요로 했고 함께 고생을 겪고 나니 이는 또 한 번 큰 배움의 순간이 되어 나를 더 단단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앞으로도 귀찮음을 느끼지 않고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상대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같이' 나누면서 얻을 수 있는 '가치' 또한 함께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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