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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May 11. 2020

효율과 낭만 사이

내가 생각보다 산책 운동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

탄단지를 중요시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비율 말이다.) 아무리 맛있는 걸 좋아해도 지독하게 절제할 줄 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도 잘 안다. ‘생활 다이어트’의 위력을 직접 체험한 경험이 있으며 “Every step counts” 즉 모든 발걸음이 중요하다는 말 역시 굳게 믿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우연히 시작했으나 그 ‘케미스트리’가 경의롭던 요가 수련을 꾸준히 다니게 되었고, 지난여름부터는 땀 흘리는 개운함에 나름 중독되어 아침 유산소 운동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전국, 아니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로 내 일주일의 중심을 잡아주던 요가 수업과 기숙사 체력단련실의 두 문짝이 굳게 닫힌 지 벌써 어언 삼 개월째다.


그럼 그동안 어떻게 했나? 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 운동도 하지 못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답하자면 아무 운동도 하지 않았다. 유행하는 ‘홈트 (홈트레이닝)’은 무슨. 그저 밥 약속이나 가끔 외출할 때 8천에서 만 보 정도를 걷고 귀가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 달 중 한 번은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긴 했지만 평소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기엔 너무 역부족이었다.) 마음속으론 “조금이라도 걷자, 뛰자, ‘스쾃 (squat)’나 복근 운동을 위한 ‘레그 레이즈 (leg raise)’라도?” 라며 머릿속으로 운동 계획을 세우곤 했지만 절대 실행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최근엔 대학원생 대상 세금 환급을 약속받고 새로운 운동화도 사 신었는데 말이다...

깔끔한 디자인의 615. 연청색 청바지랑 최고 잘 어울린다

말로만 듣던 “노오오오오력”의 부족인 걸까, 또는 예전에 이슈였던 “의지의 차이”인 걸까? 둘 다 그럴듯한 설명이 될 수 있겠으나 그렇게 간단하게 지금 나의 현상을 설명하기엔 내가 나를 너무 잘 안다.


나는 구경거리 없는 목적지의 부재가 싫다.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내가 특정한 장소로 가까워지든 멀어지든, 무언가 기준점 삼을만한 곳이 있는 게 좋다. 이런 최소한의 판단 기준 없이는 동기부여가 잘 안된다. 사실 그동안 나름 꾸준히 해왔던 운동도 어찌 보면 그 과정 자체보다는 철저한 목적성에 도움을 받아 꾸준히 해오던 걸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요가는 마음 수련이나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는 목적이 있고, 유산소 운동은 체지방 탄소라는 명확한 명목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체력단련실이 활짝 열려있는 한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변명거리도 없었다. 워낙 본인한테 엄한 스타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장 보러 동네 마트에 가는 산책은 굉장히 즐겨했다. (마트엔 과자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있고, 맥주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국 걷는 것 자체를 자연스럽게 즐기기보다는 목적성이 뚜렷한 일을 추구했고 그런 시간을 좋아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카페에 가더라도 절대 ‘테이크 아웃 (take out)’은 하지 않는다 -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목이 너무 마르면 시원한 탄산수를 사 마시면 되고, 졸려서 카페인이 필요한 거라면 비타민도 있고 요즘은 워낙 인터넷 직구가 쉬워진 덕분에 세계 각국의 티백을 내 개인 텀블러에 담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음료 포장으로 달성할 수 있는 거라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얼음 가득 음료 한 잔인데 (또는 너무 뜨거워서 걸으면서는 절대 마실 수 없는 ‘따아 (따뜻한 아메리카노)’같은 메뉴 말이다) 아무리 맛있는 특급 음료 메뉴라고 한들 나한텐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고 느껴진다. 내가 카페를 소비할 땐 음료보단 맛있는 디저트, 플라스틱 포장 컵보다는 개성 가득한 머그잔에 담긴 음료와 함께 그 시간과 장소를 즐기고 싶다.

 혼자 다이어리랑 읽고 싶던 책 한 권이랑 방문하는 카페나, 안부가 궁금했던 친구를 마주하고 함께 따뜻한 차 한잔을 홀짝이는 그런 시간 말이다.
물론 사준다고 하면 잘 따라가서 얻어 마실 때도 있다. 나도 그저 사람일 뿐이니까!

다시 산책 운동 이야기로 돌아와서.


앞서 내가 목적 없는 걸음을 무조건 싫어하는 것처럼 썼는데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좋은 날씨를 즐기며 자유롭게 거니는 것도 꽤나 매력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자주 그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한 방에 도착하는 지하철 대신, 조금 더 돌아가고, 몇 번 더 갈아타더라도 시내버스를 선호하는 것처럼. 시내로 놀러 나가면 식당 바로 옆에 있는 카페보단 몇 블록 더 떨어져 있는 2차를 즐기는 것처럼. 목적성이 나를 지배하는 거라면 이만큼 비논리적이고 효율성 떨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건 효율성, 또는 가성비의 문제가 아닌 듯싶다. 왜냐면 이렇게 모순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할 때 내가 추구하는 건 목적성이 아닌 호기심과 탐험 심이기 때문이다. 7-80년대 우표를 열심히 모으던 어린아이처럼, 포켓몬 빵의 스티커만 열심히 빼 모으던 어린아이처럼, 나는 경험을 모으고 그렇게 모인 경험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쌓여 나를 어떻게 또 바꾸어 줄지에 대해 상상하는 일에 설레 하고, 어제보다 나은, 다른 나로 빚어내 줄 수많은 경험들을 쌓는 시간 속에서 큰 기쁨과 뭉클함을 느낀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독서와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것 같다. 독서를 통해 나의 생각이 자라고 바뀌는 것을 좋아하고 (꼭 책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모토 중 하나인 “더 앎으로써 당신의 생각을 바꿔라 (Change the way you think by knowing more)”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평생 함께하고 싶은 모토이자 좌우명이다.) 외국어의 신선한 수식어와 싱싱한 형용사를 배움으로써 내 생각의 범주를 넓혀가는 것이 좋다.


그러니 산책을 열심히 안 한하고 난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그저 아직 주변에서 그만큼 걷고 싶은 길을 찾지 못했으며 굳이 동기부여 없는 일을 억지로, 강박적으로 해내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악당이 아닐 뿐이다. 결국 본인이 재미없는 건 절대 안 하는 성격이니, 이유가 무엇이든 다 좋아서 하는 거다. 그리고 그래서, 그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절대 산책을 안하지 않는다. 녹색도 좋아하고, 그저 새로운 길을 좋아하는데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한걸 수도 있다.
사진첩에 걷다 찍은 하늘 사진도 참 많다.

자기 탓을 많이 하던 내가 이렇게 나를 변호하고 있다니,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면 된다, 천천히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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