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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Jun 20. 2020

인복(人福)이란 무엇인가?

타고나는 것도, 미리 결정되는 것도 아닌,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존경하는 칼럼니스트계의 아이돌, 김영민 교수님의 에세이 스타일로 글의 제목을 정해보았다.


진로 고민, 아니, 때 놓친 사춘기를 겪느라 이런저런 생각에 홀로 빠진 요즘, '인복'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복은 사람 '인', 복 '복', 즉 사람 복이 많다는 뜻이다. 좀 더 풀어서 정의해보면 '인복이 많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예쁨과 도움을 많이 다'는 뜻일 것이다.


필자는 인복이 많다. 대학공부를 하러 도착한 캠퍼스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접하게 된 소중한 인연도 많다. 삶이란 참 신기한 게 어떻게든 연이 닿은 사람과는 결코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또 한 번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남의 횟수를 늘려가면서 서로에게 정을 느끼고, 혹시나 힘을 보태줄 방법이 더 있을지 고민하며, 때로는 위로의 말을 건네줄 수 있는 훌륭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인복 또한 우리 인생 중 하나의 지표(index)로 여길 수 있다면 이는 질적(qualitative)일까 양적(quantitative)일까? 필자는 단언컨대 인복은 질적인 요소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물론 개인의 인생에 소중한 인연이 많고 많으면 좋겠지만 소위 말해 '머리수'로 싸워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할뿐더러 사실 '인복'의 문제는 승패를 나눌 수 있는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런 견해를 갖고 있는 건 지극히 개인적 역사에 기반한 의견일 수도 있는데 필자는 너무 많은 '인연'들과 관계 유지를 다소 버거워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는 관계의 '핵심층 (inner circle)'이 있을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교제 범위 중 가장 친밀한 '코어 (core)' 구성원을 가리키는데 감정적으로, 무엇보다도 물리적으로 과녁의 중심에는 많은 사람을 담아내기 어렵다. 물론 개인의 역량에 따라 과녁의 사이즈가 클 수도 있고, 비좁더라도 신문 밟기 놀이를 하듯 많은 사람을 핵심층 구성원으로 끼워 넣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녁의 한가운데가 되는 점' 즉, '정곡'의 사이즈가 크다면 과연 그것을 과녁의 중심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활시위를 힘껏 당겨 화살이 정곡을 향해 날아가 꽂혔을 때의 희열을 생각해보라. 유독 흔하고 쉽다면 '정곡'의 뭉클함이 없을 것이며 점수 배점도 가장 높지 않을 것이다.


사실 많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 자체가 버거운 일인지, 또는 관계의 증류 작용으로 농축되어 소수의 핵심인사만 남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는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의 논의와 비슷한 전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공감을 통해 하나의 이치로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진정한 '내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더 할애하고 세밀한 추억을 촘촘하게 더 많이 쌓아나가는 것이 우리를 외로움으로부터 구원해주고 더 큰 행복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는 점이다. 표면적 관계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든든한 지원군과 연대하고 그들의 존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필자가 진로 고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중 항상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흔들리는 필자의 중심을 바로 세워 잡아주었고 덕분에 타인이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이런 감사한 도움을 받으면 받을수록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을 절대 당연한 일로 여길 수 없었는데 문득 어떻게 내 사람들과 이만큼의 유대감과 믿음, 사랑과 우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필자는 본인의 '기브 앤 테이크 (Give and Take)' 성향이 이를 가능케 했다고 생각한다. 강박의 수준(?)에 가까운 기브 앤 테이크 욕망은 '감사히 받은 게 있으면 반드시 돌려주자' 사고방식을 갖게 했고 특히나 진정으로 고맙고 관계 유지에 대한 욕구가 솟구치는 사람이라면 더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닳도록 들은 뻔한 이야기지만 필자는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는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과의 교류 (interaction)를 통해 내가 더 성장하고 본인의 눈에도 더 만족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해간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아낌없이 진심을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상대방 역시 나를 '핵심 인사'로 여겨줄 것이고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또는 그저 서로의 존재가 필요할 때,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애정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아껴주고 예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다소 무서워했던(?) 월레스와 그로밋 만화 영화 중 다음과 같은 대사를 발견했다.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 인복이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이지"

"단순히 인복이 있다기보다 네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다고 생각해도 돼. 사람은 원래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거든. 네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친해지지 못했을 걸?"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좋다. 행복해졌어."

"너를 아는 사람들도 네 덕분에 오늘 행복했을 거야. 나도 마찬가지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고백이 있을까. 사실 이런 진심은 그저 좋아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고백 그 이상이다. 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건 너 역시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일깨워 주고 싶은 마음. 필자 역시 '유유상종'의 신봉자로서 뭉클해지는 대사였고 계속해서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자존감도 지키고 삶에 대한 자신감을 채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자. 그리고 감사하자.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 내 곁에 있다는 기적에 감사하고 나 역시 어떤 진심을 되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 열심히 감사하고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레 본인의 '인복 마일리지' 실적을 쌓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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