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급한뭉클쟁이 Oct 25. 2020

신중함의 이면

미리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넌 왜 이렇게 진지해?"


"진지하다"는 형용사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가벼운 농담에도 쉽게 웃지 못했다. 항상 논리를 찾으며 쉽게 속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장난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주변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웃음을 선사한 적도 많았다.


게다가 진지할 땐 표정이 어찌나 굳어있는지. 미간에 주름을 팍 쓰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게 습관이었다. 나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괜한 오해 않았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초면에 나의 진지한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당혹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상황마다 납득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했고, 무엇이든 설득이 잘 안될 땐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런 성향 덕분에 (?) 어렸을 때부터 공부는 꽤 잘했다. 이해가지 않으면 몇 번씩 반복해 읽었고 풀 수 없는 문제는 어떻게든 풀고 넘어가려고 노력했다.)


진지함도 개인의 성향이자 성격일 수도 있었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장난 어린(?) 지적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스스로의 진지함이 결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사회에서 불편함을 초래하는 집단을 향해 "벌레"라는 뜻을 담아 "~충"이라고 표현하는데 "내가 진지충인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나는 그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을 뿐인데. 쉽게 웃어넘기지 않고 불편함을 느꼈을 수 있는 누군가를 보살피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응은 내 속을 어지럽게 했다.


이런 진지함은 "신중함"과도 관련이 있다. 진지함은 영어로 'serious'인데 "조심스러운 고찰을 필요로 한다"는 뜻을 갖고 있고 신중함 'prudent'는 "미래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갖고 행동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나는 진지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고 이런 조심스러움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끊기지 않았다. 웬만큼의 정보 수집과 확신이 서지 않고서는 절대로 "고민보다 Go"할 수 없는 본인의 성격 때문에 굳이 피곤한 삶을 살았다. 나의 삶의 방식과 태도로부터 초래되는 피곤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를 부정하거나 고치려고 아등바등하는 일을 정신 건강에 더욱 해롭다는 깨달음을 얻고 조금은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 미래를 계획하고 인생을 설계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불안감이라는 일상 속 불청객이 나의 삶을 찾아왔다. 도무지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신중하기 때문에 최대한 잘 알아보고 결정하고 싶은 성향이 강한데 도무지 내 미래에 대해서 잘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전 글에서 소개했듯이 나름 당차게(?) 당장의 '컴포트 존 (comfort zone)'을 떠나 새로운 무대에서 비상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자 두려움이 나를 지배해버렸다.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맞춰진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이렇게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나 라는 의문이 계속됐고 자존감은 끝없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불안감 가득한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고 말았다.


불안함 마음이 계속되자 평소와 같이 원인 분석을 시도해보았다. 진지하게 논리를 구축하고 이성적으로 나의 상황을 분석해보려고 했다. 그 결과 내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나의 진중함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 달았다. 새로운 무대에 대해선 지금까지 내가 익숙히 경험했던 만큼의 사전 지식을 기대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이런 불리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내가 찾아보고 알아보는 모든 선택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현실에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진지한 정보 수집과 신중한 결정 방식을 통해 완벽을 추구해온 나로서는 정보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선택하는 일은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매일, 매시간마다 불안함을 느꼈고 이런 마음은 나의 본질과 집중력마저 크게 흩트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속상했던 깨달음은 그동안 나의 진중함 때문에 진정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거나 선택해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고, 마음 가는 대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미래에 안정적일 전공과 학교를 선택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공연 동아리보다는 네트워킹에 도움이 될만한 학회 활동을 선택했으며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즐거운 사람 대신 좋아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을 오랜 시간 좋아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주변 사람도 만족할만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잠시도 오늘을 살지 못했다는 깨달음을 내 마음을 병들게 했고 무언가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아직도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닐 터. 무엇보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나의 모든 자원이 낭비되었다는 생각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를 갉아먹고 있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깨닫는데 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앞으로 내가 몸 담고 싶은 담론, 쓰고 싶은 글의 주제,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집단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을 찾아가는데 얼마 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만 알뿐. 방법론을 모르니 답답하고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만 계속된다.


"When you come to a fork on the road and don't know the right path, then just take one. Not doing so makes you a fool regardless of how bright you are."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그 어느 길도 선택하지 못한다면 바보일 뿐이다." 하지만 잘 선택하고 실수를 용납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그럼 무엇에 대비할 수 있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건지 그 해답을 찾고 싶다. 당장으로선 내게 너무 버거운 문제다. 이렇게 큰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역량을 어떻게 쌓아 올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우선 내가 미리 파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인정하고 직접 부딪혀봐야 할 텐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참 어렵다.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돌보는 일이 아마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당차게 도전하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내 모습이 그립다. 본인의 우유부단함을 '신중함'으로 포장하는 대신 멋진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인복(人福)이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