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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Jan 01. 2020

인스타그램 디톡스 (detox)

2020년엔 공유하지 않아도 마음 편하고 싶다

새해가 밝았다. 201X도 아니고 이젠 새로운 '데케이드 (decade)'의 시작이다. 대학가에서도 1X 학번이 아닌 20학번으로 자기소개하는 학생들이 생길 것이다. (나는 14학번인데 말이다...) 신기하게도 올해만큼 새해가 다가온 것에 대해 감흥이 없던 적도 처음인 듯하다. 원래 과도하게 아련함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는 성향에 D-Day 어플을 종류별로 사용해보고, 특별히 더 뭉클했던 날은 기억해뒀다가 "벌써 일주일/한 달/반년/일 년/X 년이나 지났네"라고 꼭 말 한마디를 붙이는 타입인데 이번엔 (거의) 아무 감흥이 없었다. 이게 바로 나이 드는 건가 싶기도 하면서, 아직은 어린데 싶은 마음에 억울하기도 하다.


사실 스스로 지나가는 한 해에 대한 아쉬움도,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설렘도 제대로 느끼고 있지는 못했지만 스마트폰 속 SNS 어플 안에서는 온갖 연말연시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당장 나를 감싸고 있는 물리적 환경은 아니지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특히 스토리 기능을 통해서 내 친구들, 지인과 동료, 그리고 연예인/셀렙들이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무엇을 먹으며 얼마나 달콤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친구 A는 남자 친구와 함께 달콤한 연말 데이트를, 가수 B 군은 작업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송년회 파티 중이었고, 선배 C는 본인이 독서 중 마음에 들었던 구절과 함께 2019년 올 한 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그리고 내년에도 더욱 행복할 수 있길 희망하는 연말연시 정석의 글을 업로드하셨다.


이렇게 스크린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구경하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와 여기 레스토랑은 어디지? 다음에 나도 가봐야지" "연인이랑 함께 보내는 새해는 얼마나 달콤할까, 부럽다" "이 사람은 행복한 한 해를 보낸 것 같네" 등 누가 누구랑 무엇을 먹는지, 누가 누구랑 연말의 순간을 함께할 만큼 친한지, 그리고 각자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에 대해 읽어보면 다들 개성 넘치는 듯 비슷한 삶을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 역시 공유한다. 내가 외출을 위해 길을 나선 순간 하늘이 예뻤다면 찰칵. 오늘 입은 옷이 - OOTD (Outfit of the Day) - 마음에 들었다면 거(울) 셀(카) 한 장을 업로드. 함께하기로 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였을 때 서로 SNS 계정을 '태그 (tag)' 하여 한 번 더 올리고, 반대로 내가 태그 됐다면 "우리가 이만큼 친하고, 내가 이렇게 친구가 많다!"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같은 포스트를 또 한 번 공유해준다. 마지막으로 빠질 수 없는 오늘 내가 섭취한 음식들. 끝내주는(?) 분위기에 양질의 음식을 즐길 줄 아는 나의 센스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 게다가 친절하게 위치 태그랑 메뉴 이름까지 해시태그로 더해서 -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공유를 해준다. 정말 이보다 더 친절할 수는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SNS 용 '공유 (sharing)'를 비꼬려는 의도는 없다. 스스로가 이미 끊임없는 공유의 '루프 (loop)'에 갇혀있으면서 이런 공유 행위를 비판하거나 폄하하는 일은 너무나도 위선적일 것이다. 다만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에 좀 더 가까워 지기 위해서 솔직하게 글을 써보기로 했다 - 나는 왜 계속해서 사진에 맞는 캡션을 떠올리며 스토리 공유 버튼을 누르고 있는가? 그리고 가끔씩 (또는 꽤 자주) 내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자가 아닌 편집자의 입장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가?


먼저 다소 교과서적인 이유를 대자면 이는 기록을 위한 행위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분명히 매우 기쁜 일이다. 그렇다면 찍은 사진을 정리해서 그 날의 대화를 간단하게 요약하고 개인 SNS에 업로드한다면 분명 기록 보관소 (archive)처럼 SNS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을 '태그 (tag)'하고 서로 댓글을 달며 그 날을 추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뭉클할 것이다. 물론 꼭 행복한 기억일 필요는 없다.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래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과의 접촉을 시도할 수도 있다. 또는 단순히 생각 정리용일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이런 글을 써 내려가는 것처럼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해 SNS라는 공간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재미다. 앞서 언급했듯이 SNS 상 공유 행위가 단순히 기록을 위한 것이라면 누군가는 질문할 수 있다. "그럼 다이어리에 쓰면 되잖아?" "개인 블로그나 웹사이트는?" 물론 이런 대안도 있지만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반응하면 재미가 덜하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2013년부터 사용하면서 단 한순간도 공개 계정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내가 잘 모르거나 친하지도 않은 누군가 내 일상을 엿보는 것이 불편하고, 팔로워 구성에 대해 예민해서 굉장히 배타적으로 (exclusive)하게 SNS 계정을 운영 중이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게 이렇게 아무나 훔쳐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면서도 아무도 안 봐주면 은근 서운해한다. 개그욕심이(?) 강한 나는 친구들의 반응에 신이 나곤 한다.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즐거운 인간일 뿐이다.


마지막 이유는 확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렇게 재밌다는 점, 그리고 내가 이렇게 고급진 음식을 먹고 즐길 줄 안다는 점. 내가 친구들도 많은 '인싸 (insider)'라는 점과 나는 이렇게 영화도 많이 보고 독서도 많이 하는 교양 넘치는 문화인이라는 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입고 싶은 옷도 예쁘게 사 입고, 나름의(?) 몸매 유지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이 모든 점을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자랑'이랑은 약간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랑을 위해 SNS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건 다 개인의 자유다.) 확인과 인정 욕구가 강해지면 상대적 비교가 불가피해지고 정도가 심해지면 자랑이 되고, 필요 이상으로 일상생활을 공유하게 되면 (oversharing) '꼴불견'이나 '관종'소리를 듣는 사용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싫다고 내 공유 욕구를 억지로 삼키고 참아낼 필요는 또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가입하고 내가 꾸려나가는 SNS 공간인데, 왜 내가 업로드하는 내용과 빈도수, 그리고 타인의 반응까지 걱정해야 하는가? 결국 다 나를 표현하고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타인의 판단이 두려워 SNS를 그만둘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SNS에 어떤 내용을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올 해부터 SNS와, 아니 인스타그램과 조금은 멀어지고 싶어서 새해 첫날 이번 글을 쓰게 됐다. 개인의 일상생활 외에도 많은 정보가 있다는 걸 잘 안다. 요즘은 인스타그램 DM (Direct Message)로만 예약을 받는 음식점도 생기고, 휴무일을 인스타 공식 계정에만 공지하는 카페도 많다. 여행 전 위치 태그로 날씨와 사람들의 옷차림을 파악할 수도 있고, 솔직한 후기를 위해 검색할 수도 있다. 심지어 내 취향에 맞는 옷 스타일을 구경하고 쇼핑도 할 수 있다. 정말 마음만 먹으면 얻을 수 있는 정보다 넘쳐나는 게 SNS의 세상인 것 같다. 이런 이점 (advantage)도 분명 인식하고 있지만 문득 나의 공유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매 순간을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편집자의 입장에서 이번 사진을 어떤 캡션과 함께 업로드할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나 당장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물론 그 순간이 끝난 후 일기의 형태나 회고록 등은 생각 정리와 마음의 기쁨을 위해 중요할 수 있지만 매 순간 '공유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장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너무 마음에 와 닿거나 방금 주문한 당근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래도 된다, 이건 틀린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내가 집중하고 싶은 순간들을 스크린 안에서가 아닌 내 피부가 직접 닿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물리적 공간에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 타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든 생각이다. 앞으로는 더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읽기 위해 책을 손에 쥐고 있고, 너무 맛있는 케이크 맛집을 발견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한 번 더 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 첫 날, 잠깐이라도 멀어지자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웠다. 이래 놓고 웹 브라우저로 로그인을 해서 똑같이 화면을 '스크롤 (scroll)'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며칠 후 다시 어플을  다운로드해서 끊임없는 알림을 받고, 다들 뭐하고 사는지에 대해 가장 최신의 정보까지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20년 1월 1일,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날,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해 노력해본 시도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하고 싶었다. 작심삼일이 될지 모르는 '인스타그램 디톡스'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올 해도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해,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내가 추구하는 삶과 인간상을 위해 노력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인스타그램, (잠깐이라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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